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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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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 衛文公大布之衣
위 문공衛 文公이 거친 베옷을 입다
09-05-01 衛文公大布之衣
위 문공衛 文公이 거친 베옷을 입다
[左傳]閔二年이라 衛文公 으로 하고 하고
민공閔公 2년, 위 문공衛 文公이 거친 베옷을 입고 거친 명주로 지은 모자를 쓰고서 힘써 목재木材축적蓄積하고 농사農事를 가르치며, 물자를 유통流通시키고 공인工人우대優待하며,
교육敎育을 중시하고 학문學問을 권장하며, 관리官吏도리道理를 가르쳐 능력 있는 자를 임용任用하니, 희공僖公 원년에 30이던 병거兵車가 희공 말년에는 300이 되었다.
09-05-02 趙宣子爲國政
조선자趙宣子국정國政이 되다
문공文公 6년, 조선자趙宣子국정國政이 되어 사전事典제정制定하여 법죄法罪개정改正하고, 옥형獄刑심리審理하며, 포도逋逃독찰督察하고, 질요質要를 사용하며,
治舊洿하고 本秩禮하며 續常職하고 出滯淹하다 旣成 以授太傅陽子與太師하야 使行諸晉國하야 以爲常法하다
구오舊洿를 다스리고, 질례秩禮를 근본으로 되돌리며, 상직常職존속存續시키고, 체엄滯淹진출進出시키는 등의 법제法制제정制定하였다. 이 법제가 완성되자 태부 양자太傅 陽子태사 가타太師 賈佗에게 주어 나라에 시행하여 상법常法으로 삼게 하였다.
09-05-03 晉悼公卽位
진 도공晉 悼公이 즉위하다
[左傳]成十八年이라 晉悼公卽位于朝하고 始命百官하며 하고 逮鰥寡하며 하고
성공成公 18년, 진 도공晉 悼公이 조정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서, 처음으로 백관百官을 임명하고, 은혜恩惠를 베풀어 포흠逋欠을 면제하며, 시혜施惠가 홀아비와 과부寡婦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폐출廢黜되었거나 오래도록 낮은 자리에 머문 사람을 기용起用하며,
匡乏困하며 救災患하고 禁淫慝하며 薄賦斂하고 宥罪戾하며 節器用하고 하야
궁핍한 자를 구제하고, 천재天災환난患難을 당한 자를 구호하며, 음특淫慝한 행위를 금지하고, 부세賦稅를 경감하며, 죄인罪人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기용器用을 절약하며, 농한기農閑期민력民力을 사용하여 사욕私慾으로 농시農時를 침범하는 일이 없게 하며,
하고 荀家荀會欒黶韓爲公族大夫하야 使訓卿之子弟共儉孝弟하고
위상魏相사방士魴위힐魏頡조무趙武으로 삼고, 순가荀家순회荀會난염欒黶한무기韓無忌공족대부公族大夫로 삼아 자제子弟들을 공검共儉효제孝弟교훈敎訓하게 하고,
使士渥濁爲太傅하야 〈使〉修范武子之法하며 하야 使脩士蔿之法하며
사악탁士渥濁태부太傅로 삼아 범무자范武子수명修明하게 하며, 우행신右行辛사공司空으로 삼아 사위士蔿의 법을 수명修明하게 하며,
하야 하며 荀賓爲右하고 司士屬焉하야 하며
변규弁糾융어戎御로 삼고 교정校正을 그에 영속領屬시켜 제어諸御들에게 절의節義를 알도록 교훈하게 하며, 순빈荀賓거우車右로 삼고 사사司士를 그에 영속領屬시켜 용력勇力전사戰士들을 교훈하여 적시에 사용할 수 있게 하며,
하고 立軍尉以攝之하며 祁奚爲中軍尉하고 羊舌職佐之하며 魏絳爲司馬하고 張老爲하며
의 수레에 공어共御를 없애고 군위軍尉를 세워 그 일을 대행代行하게 하며, 기해祁奚중군위中軍尉로 삼고 양설직羊舌職을 그의 로 삼으며, 위강魏絳사마司馬로 삼고 장로張老후엄候奄으로 삼으며,
鐸遏寇爲上軍尉하고 籍偃爲之司馬하야 하며 하니
탁알구鐸遏寇상군위上軍尉로 삼고 적언籍偃을 그의 사마司馬로 삼아 보병步兵거병車兵을 교훈하여 서로 친애親愛하여 상명上命을 따르게 하고, 정정程鄭승마어乘馬御로 삼고 육추六騶를 그에 영속領屬시켜 모든 들을 교훈하여 를 알게 하니,
擧不失職하야 하며 爵不踰德하니 하고 民無謗言하니라 所以復霸也
육관六官은 모두 백성의 기림을 받는 사람이었으며, 등용登用된 사람은 모두 그 직분職分을 잃지 않았다. 관원官員은 자기의 직분을 넘지 않으며, 관작官爵이 그 을 넘지 않으니 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핍박逼迫하지 않고, 백성들은 비방하는 말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라가 다시 패자霸者가 된 것이다.
09-05-04 晉侯謀所以息民
진후晉侯가 백성이 편히 살게 할 방법을 계획하다
[左傳]襄元年이라 晉侯歸하야 謀所以息民하니 魏絳請하야 輸積聚以貸하고 自公以下 苟有積者 盡出之하다
양공襄公 원년, 진후晉侯가 돌아와서 백성을 안식安息시킬 방법을 계획하니, 위강魏絳이 은혜를 베풀어 쌓아둔 재물을 다 풀어 백성에게 대여貸與하고, 임금으로부터 이하로 대부大夫에 이르기까지 저축貯蓄이 있는 자는 그 재물을 다 내놓게 하기를 청하였다.
하니 亦無困人하고 하니 하다
나라에 적체積滯된 재물이 없으니(물화物貨를 유통시킴) 곤궁한 사람이 없고, 임금이 이익을 금하지 않으니(이익을 독점하지 않음) 탐욕貪慾하는 백성이 없어졌다.
하고 賓以特牲하고 하고 車服從하니 行之期年 國乃有節하다 하니라
기도祈禱에는 폐백幣帛으로 희생犧牲을 대체하고 빈객賓客의 접대에는 특생特牲(한 종류의 짐승)만 사용하며, 새로 기용器用을 만들지 않고 거마車馬복장服裝은 필요한 만큼만 제작하니, 이렇게 시행한 지 1년 만에 나라에 절도節度가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가 세 차례 출병出兵하였으나 나라는 나라와 승패勝敗를 다투지 못하였다.
09-05-05 楚爲司馬
나라 위엄蔿掩사마司馬가 되다
[左傳]襄二十五年이라 楚蔿掩爲司馬 子木使庀賦하고 數甲兵하니 甲午 호대
양공襄公 25년, 나라 위엄蔿掩사마司馬가 되자, 영윤 자목令尹 子木(굴건屈建)이 그에게 부세賦稅를 관리하고 갑병甲兵의 수량을 검열檢閱하게 하니, 갑오일甲午日위엄蔿掩토지土地의 특성을 조사해 기록하되,
하고 하고 하고 하고 數疆潦하고 하고
산림山林목재木材를 계산[]하고, 수택藪澤(늪)의 물산을 집계集計[]하고, 고지高地구릉丘陵을 구별하고, 염분鹽分이 섞인 땅에 팻말을 세워 표시하고, 흐르는 물가에 있는 토지는 그 침수면적浸水面積을 계산[]하고, 저수貯水의 용량을 계산[]하고,
제방堤防 사이의 자투리땅을 경지耕地구획區劃[]하고, 습지濕地방목지放牧地로 삼고, 비옥한 평야에는 전지田地으로 구획하여 수입을 계산해 부세賦稅의 액수를 정[]하며,
하고 賦車兵徒卒甲楯之數하다
병거兵車마필세馬匹稅를 징수하고, 거병車兵보졸步卒이 사용할 갑옷과 방패의 수를 계산해 수세收稅하기로 하였다. 이 문서가 완성되자 자목子木에게 바쳤으니 에 맞았다.
09-05-06 平王封陳蔡復遷邑
초 평왕楚 平王나라와 나라를 봉해주고 옮겼던 읍인邑人을 회복시켜 살게 하다
[左傳]昭十三年이라 平王封陳蔡하고 하고 하고 하고 宥罪하다 召觀從하야 王曰 唯爾所欲하리라
소공昭公 13년, 초 평왕楚 平王(기질棄疾)이 나라와 나라를 봉해주고, 옮겼던 읍인邑人을 〈원래의 주거지로〉 회복回復시키고, 〈처음 거사擧事할 때 주기로 약속했던〉 재물財物을 모든 사람에게 주고,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고, 유죄자有罪者사면赦免하고, 폐기廢棄관직官職수복修復하였다. 관종觀從을 불러 보고서 이 말하기를 “네가 원하는 바를 내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09-05-07 子旗請伐吳
자기子旗나라를 칠 것을 청하다
소공昭公 13년, 나라가 주래州來격멸擊滅하니, 영윤 자기令尹 子旗가 오나라를 치기를 청하였다. 초 평왕楚 平王은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는 아직 백성을 안무按撫하지도, 귀신鬼神을 섬기지도,
未修守備하고 未定國家어늘 而用民力이라가 敗不可悔 州來在吳 猶在楚也 子姑待之하라
수비守備설치設置[]하지도, 국가를 안정시키지도 못하였는데, 백성의 힘을 사용하여 토벌하였다가 실패한다면 후회막급後悔莫及일 것이다. 주래州來가 오나라 수중手中에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수중에 있는 것과 일반이니 그대는 우선 기다리라.”고 하였다.
09-05-08 楚子使然丹屈罷簡兵
초자楚子연단然丹굴파屈罷를 보내어 군대를 선발하다
[左傳]昭十四年이라 하고 且撫其民하야 하며
소공昭公 14년, 여름에 초자楚子연단然丹을 보내어 종구宗丘에서 상국上國의 군대를 선발하고 또 그곳 백성들을 위무慰撫하여, 가난한 자에게 물자物資를 나누어주고 곤궁困窮한 자를 구휼救恤하며,
長孤幼하고 養老疾하며 하고 救災患하며 하고 赦罪戾하며 姦慝하고하며
어린 고아孤兒를 양육[]하고 병든 늙은이를 봉양하며, 의지할 곳 없는 독신獨身들을 수용收容하고 재환災患당한 자들을 구호하며, 고아孤兒과부寡婦에게는 부세賦稅를 감면하고 죄인罪人들을 사면하며, 간특姦慝한 자를 문책問責하고 엄체淹滯인재人才를 거용하며,
하고 하며 任良하다 使屈罷簡東國之兵於召陵하고 亦如之하다
신인新人(외국外國에서 온 나그네)을 예우禮遇하고 구인舊人(옛 관원官員)을 서용敍用하며, 공훈功勳이 있는 자에게 祿을 주고 친족親族과 화합하며, 현량賢良을 임용하고 관직을 맡을 만한 사람을 물색物色하게 하였다. 굴파屈罷를 보내어 소릉召陵에서 동국東國의 군대를 선발하고서, 또 연단然丹과 같이 하게 하였다.
好於邊疆하야 息民五年하고 而後用師하니 禮也
사방 변경邊境의 이웃 나라와 우호를 맺어 백성들을 5년 동안 안식安息시킨 뒤에 군대를 사용하였으니, 에 맞았다.
09-05-09 楚城州來
초인楚人주래州來에 성을 쌓다
[左傳]昭十九年이라
리라 昔吳滅州來 子旗請伐之한대
소공昭公 19년, 초인楚人주래州來을 쌓으니, 심윤 술沈尹 戌이 말하였다. “초인楚人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전에 나라가 주래州來격멸擊滅하였을 때 자기子旗나라를 토벌하기를 청하자,
王曰 吾未撫吾民이라하니라 로되 而城州來하야 以挑吳하니 能無敗乎
초왕楚王은 ‘나는 아직 우리 백성들을 안무安撫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지금도 그때와 일반으로 〈백성을 안무安撫하지 못하였는데〉, 주래州來을 쌓아 나라에 도전挑戰하니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侍者曰 王施舍不倦하고 息民五年하니 可謂撫之矣니라 戌曰 吾聞撫民者 節用於內하고 而樹德於外하야 라하니라
그러자 그 시종侍從이 말하였다. “군왕君王께서 은혜 베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을 5년 동안 안식安息시켰으니 백성들을 안무安撫하였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백성을 안무安撫하는 임금은 국내國內재용財用을 절약하고 국외國外덕행德行을 수립하여 백성들이 생활[]을 즐기고 구수寇讐가 없게 한다고 하였다.
今宮室無量하야 民人日駭하며 勞罷死하야 忘寢與食하니 非撫之也니라
그런데 지금 궁실宮室규모規模한도限度가 없어서 백성들은 날마다 두려움에 떨며, 노고勞苦에 지쳐 죽은 시체尸體가 이리저리 뒹굴어 침식寢食도 잊고 있으니, 이것은 안무安撫가 아니다.”
將以天下之事 而責之一人之身인댄 本數末度하야 弛張廢置하고 品叢目雜하야 參錯塡溢이니 非立談之間所能決也
천하 다스리는 일을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면, 〈천하의 일을〉 본말本末을 헤아려보아 긴장과 이완, 폐지와 시행을 알맞게 써야 하고, 품등과 종목을 모아 참작하여 잘 배치해야 하니 잠깐 말하는 사이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必精思熟慮하야 用心而不知其幾然後 粗能通其本原이요 博問廣詢하야 閱人不知其幾然後 粗能熟其利害
반드시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어느 정도 마음을 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쓴 뒤에야 대략이나마 근원을 통할 수 있고, 널리 묻고 살펴서 어느 정도 살펴보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사람을 잘 살핀 뒤에야 대략이나마 이해관계를 익숙히 알 수 있고,
歷歲踰時하야 費日不知其幾然後 粗能成其紀綱이라 法雖備矣라도 未嘗試而驟欲布之
세월이 지나고 때를 넘겨 어느 정도 소비하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시간을 소비한 뒤에야 대략이나마 일의 기강紀綱을 이룰 수 있다. 방법이 비록 갖추어졌다 해도 일찍이 시험해본 적이 없는 것을 갑자기 펼친다면,
天下從歟違歟 欣歟戚歟 有效歟無效歟 是皆未可前定也 用法者方且怵然疑하고 慄然懼하야 必待事果便하고
〈이 일을〉 천하 사람들이 따를지 어길지, 기뻐할지 걱정할지, 효과가 있을지 효과가 없을지 등, 이런 모든 일을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방법을 쓰고자 하는 자는 바야흐로 긴가민가 의심해보고 전전긍긍 두려워하여 반드시 과연 일이 편리해지고,
國果治然後 敢自이라 法未出之前 營度布置 如彼其勞也 法旣出之後 憂疑皇惑 如此其危也 嗚呼難矣哉ㄴ저
과연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감히 스스로 편안해지는 것이다. 방법을 쓰기 전에는 재고 헤아리고 배치함이 저와 같이 그렇게 수고롭고, 방법을 쓴 뒤에는 걱정과 의심으로 당혹해함이 이와 같이 그렇게 위태로우니, 아! 어려운 일이로다.
吾讀左氏라가 至衛文公趙宣子晉悼公魏絳蔿掩之治國하얀 規摹條畫 巨細畢備하고 確實切近하야 可擧而行
내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다가 위 문공衛 文公조 선자趙 宣子진 도공晉 悼公위강魏絳위엄蔿掩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이르렀는데, 〈그들이 나라를 다스린〉 크고 작은 규모와 계획이 다 구비되어 있고, 확실하고 절실하여 거행할 만하였다.
如入 之室하야 物物可以濟貧하고 如發 之笥하야 物物可以伐病하니 非爲空言者也
마치 가난을 구제할 수 있을 만큼 물건이 풍부한 도주공陶朱公의 집에 들어간 것 같고, 무슨 병이든 치료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약재가 든 창공倉公의 상자를 연 것 같았으니, 그들은 빈말을 한 자들이 아니었다.
世之爲治者 與其鑿空創意如是其難으론 曷若取數公已成之法하야 按而行之乎ㄴ저 所以漫不加省者 特易之以爲紙上語耳
세상에 정치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어렵게 허공을 뚫고 뜻을 창조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위의 몇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방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소홀히 여겨 더 이상 살피지 않는 이유는, 다만 ‘책속에 적힌 말’이라고 하여 가볍게 여겨서일 뿐이다.
自衛文而至蔿掩 其治法載在方冊者 雖止於數簡이나 曾不知其經畫之初 耗精弊神하야 竭平生之力然後 僅能底於此也니라
아, 위 문공衛 文公에서부터 위엄蔿掩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다스린 그들의 방법이 서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몇 개의 죽간竹簡에 불과하지만, 일찍이 경영을 계획하는 초기에 정신을 소모하고 혹사하여 평소의 힘을 다 쓴 뒤에야 겨우 이런 데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是數公平生之精力 聚於數簡之間하니 其可以紙上語易之歟
이 몇 사람들의 평소 정신과 노력이 몇 개의 죽간 사이에 모아져 있으니 ‘책속에 적힌 말’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彼苦身而立其法於數千百載之前일새 我安坐而得其法於數千百載之後 彼任其勞하야 而遺我以其逸하니 可謂幸之尤者也로다
수백 년 전에 저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확립하였기 때문에, 수백 년 뒤에 우리가 편히 앉아서 그 방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이 자기의 수고를 감당하여 우리들에게 편안함을 남겨주었으니 더욱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工之巧者 不肯授人以其法하고 琴之妙者 不肯授人以其調하나니 固有服役終身이라도 而莫得其傳者矣니라
솜씨 좋은 장인은 다른 사람에게 그 방법을 전수하려 하지 않고, 신묘한 연주를 하는 거문고 악공은 다른 사람에게 그 악조를 전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그를 위해 일해주어도 전수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使幸而得之 其喜爲如何 其感爲如何리오 治國之法 非一工一琴比也
가령 다행히도 전수받게 된다면 그 기쁨이 어떠하며 그 감동이 어떠하겠는가? 〈더구나〉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일개 장인의 일이나 일개 거문고 연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今數公治國之良法 表裏纖悉 左氏盡發其秘於書하니 學者一開卷而盡得之로되 反不知貴重하니 豈不怪耶
지금 위의 몇 사람들의 훌륭한 치국治國 방법을, 좌씨左氏가 속속들이 자세하게 서책에서 비밀을 다 밝혀내었으니, 배우는 자가 한번 책을 펼쳐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하니 어찌 괴이하지 않은가?
必嘗習畫然後 知珍 必嘗習字然後 知寶이니
반드시 그림을 익혀본 뒤에야 고개지顧愷之육탐미陸探微의 그림이 진귀함을 알고, 반드시 글자를 익혀본 뒤에야 종요鍾繇왕희지王羲之의 서첩이 보물임을 알 것이니,
持以示田舍翁이면 則詆爲敗素腐楮耳리라 苟未嘗留意治體이면 亦安知數公之遺法可貴哉리오
이것을 가져다 농부에게 보여주면 비단과 종이를 훼손했다고 비난할 것이다. 진실로 치국의 요체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면 또한 어찌 위의 몇 사람들이 남겨준 방법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或曰 楚平王之始得國 宥罪擧職하고 簡兵撫民하니 其法與數公無異者로되 然楚終不振하니 是法不足以爲治也라하여늘
어떤 이가 말하였다. “초 평왕楚 平王이 처음 나라를 얻었을 적에, 죄인을 용서하고 없어진 관직을 다시 세우며, 군사를 선발하여 백성을 위무하였으니, 그 방법이 위의 여러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초나라가 끝내 떨쳐지지 못하였으니, 이런 방법은 치국治國하기에 부족한 것이다.”
曰 使平王常守是法하야 而楚終不振이면 謂法不足爲治라도 可也어니와
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가령 초 평왕이 항상 이 법을 지켜 초나라가 끝내 국위를 선양하지 못한 것이라면, 이 법이 치국하기에 부족하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其後宮室無量하고 民人日駭하니 則旣不能守是法矣 然則楚之不振者 非法之罪也 廢法之罪也
그러나 초 평왕은 그 뒤에 한정 없이 궁실宮室을 짓고 날마다 백성들을 놀라게 했으니, 이미 이 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나라가 국위를 선양하지 못한 것은 이 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법을 폐기한 죄이다.
今日服하고 明日服코서 乃指參朮之爲殺人이면 可耶不可耶
오늘 인삼人蔘백출白朮을 복용하고, 내일 오훼烏喙[부자附子]를 복용하고서 인삼과 백출이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역주
역주1 大布之衣 大帛之冠 : 大布는 거친 베이고, 大帛은 두꺼운 명주이니, 諸侯가 喪中에 입는 옷을 착용한 것인 듯하다.
역주2 務材訓農 : 木材를 蓄積하고 農事를 가르친 것이다.
역주3 通商惠工 : 工人에게 더욱 惠澤을 입혀 器用을 편리하게 만들도록 勸獎한 것이다.
역주4 敬敎勸學 : 五敎(五倫)를 중시하고 백성들에게 學問을 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역주5 授方任能 : 方은 모든 일에 알맞은 도리이다.
역주6 元年……乃三百乘 : 衛 文公이 이해 겨울에 즉위하였고, 齊 桓公이 이해에 비로소 魯나라의 난리를 평정하였으므로, ≪春秋左氏傳≫에서 齊 桓公이 霸者가 된 까닭과 衛나라가 復興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革車는 兵車이다. 季年은 魯 僖公 25년이다. 衛 文公이 離散한 백성들을 불러 모아 懷柔하였기 때문에 백성을 10배로 늘릴 수 있었다.
역주7 趙宣子 : 趙盾(돈)이다. 宣은 趙盾의 諡號이다.
역주8 國政 : 政權을 담당하는 正卿이다.
역주9 制事典……以爲常法 : 事典은 일을 처리하는 規定이다. 法罪는 罪人을 처벌하는 法律이고, 獄刑은 未決狀態로 있는 獄事를 審理하는 것이다. 逋逃는 罪를 짓고 도망한 자이고, 督察은 追捕하기 위해 엄히 살피는 것이다. 質要는 券契로 오늘날의 契約書 같은 것이다. 舊洿는 지난날에 저지른 不正이다. 秩禮는 上下와 貴賤을 分別하는 禮이다. 本은 근본으로 돌린다는 말로 回復의 뜻이다. 常職은 永久히 存續시켜야 할 官職이고, 滯淹은 進出이 막혀 下位에 있거나 草野에 묻혀있는 人才를 말한다.
역주10 賈佗 : 公族으로 晉 文公이 亡命했을 때 따라다닌 신하이다.
역주11 施舍已責(채) : 施는 恩惠를 베푼다는 뜻이고, 舍는 勞役을 廢止한다는 뜻이다. 已는 그만두는 것이고, 責는 債와 通用이니, 官家에 진 빚을 免除하는 것이다.
역주12 振廢滯 : 德이 높은 老臣을 起用한 것이다.
역주13 時用民 : 백성을 農閑期에 부리는 것이다.
역주14 〈欲無犯時〉 : 欲은 私慾이니, 사욕을 함부로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주15 使魏相士魴魏頡趙武爲卿 : 相은 魏錡의 아들이고, 魴은 士會의 아들이고, 頡은 魏顆의 아들이고, 武는 趙朔의 아들이다. 이 네 사람은 그 父祖가 모두 晉나라에 功勞가 있었다.
역주16 無忌 : 韓厥의 아들이다.
역주17 右行辛爲司空 : 辛이 右行의 將帥였기 때문에 右行을 그 氏로 삼은 것이다.
역주18 弁糾御戎 校正屬焉 : 弁糾는 欒糾이고, 御戎은 國君의 戎車를 모는 사람이며, 校正은 主馬官이다.
역주19 使訓諸御知義 : 諸御는 일반 兵車를 모는 사람이다.
역주20 使訓勇力之士時使 : 勇力은 모두 車右이다. 勇力이 있는 자는 대부분 上命을 順從하지 않기 때문에 가르쳐서 適時의 使用에 이바지하게 한 것이다.
역주21 卿無共御 : 卿은 各軍의 將佐이고, 共御의 共은 供과 通用으로 執役의 뜻이다.
역주22 (侯)[候]奄 : 저본에 ‘侯’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候’로 바로잡았다, 奄은 斥候를 主管하는 中軍의 官職이다.
역주23 使訓卒乘 親以聽命 : 수레를 護從하는 兵士를 卒이라 하고, 수레를 타는 兵士를 乘이라 한다. 대개 中軍과 上軍의 尉와 司馬로 하여금 각각 그 士卒을 가르쳐 서로 親愛하여 上命을 따르게 한 것이다.
역주24 程鄭爲乘馬御……使訓群騶知禮 : 程鄭은 荀氏의 別族이다. 乘馬御는 乘車의 御者이다. 六騶는 六閑의 騶이다. ≪周禮≫ 〈夏官 校人〉에 “諸侯는 六閑의 말이 있다.”고 하였다. 乘車는 禮容을 숭상하기 때문에 모든 騶를 가르쳐 禮를 알게 하는 것이다. 騶는 官命이고 閑은 馬廐인데, 閑마다 216匹의 말이 있다. 疏에 의하면 “≪周禮≫ 〈校人職〉에 ‘良馬 3乘(12匹)이 1皂인데 皂에는 下士인 趣馬[騶] 1人이 있고, 3皂가 1系인데 系에는 中士인 馭夫 1人이 있고, 6系가 1廐인데 廐에는 上士인 僕父 1人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注에 鄭玄은 ‘1廐가 1閑인데, 閑에는 216匹의 말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計算하면 廐마다 趣馬가 18人이니, 6閑에 趣馬가 108人인데, 이들을 모두 程鄭에게 領屬시켜 統率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5 凡六官之長 皆民譽也 : 大國은 三卿인데, 晉나라는 이때 六卿을 두어 各軍의 將帥로 삼았다. 그러므로 六官을 모두 들어 말한 것이니, 모든 官員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주26 官不易方 : 모든 官員이 자신의 職分만 지킬 뿐, 서로의 직분을 넘는 일이 없었다.
역주27 師不陵正 旅不偪師 : 正은 各軍의 將帥로 命卿(天子가 임명한 諸侯의 卿)이고, 師는 2,500人의 장수이고, 旅는 500人의 장수이니, 上下에 禮가 있어 서로 업신여기거나 逼迫함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28 施舍 : 恩惠를 베풀고 勞役을 廢止하는 것이다.
역주29 國無滯積 : 財物을 널리 流通시켜 民間에 있게 하는 것이다.
역주30 公無禁利 : 山林川澤의 이익을 國家가 독점하지 않아, 이익을 백성과 공유하는 것이다.
역주31 亦無貪民 : 백성들이 禮讓을 행하기 때문이다.
역주32 祈以幣更 : 神에게 祈禱할 때 幣帛으로 犧牲을 대체하고, 희생을 쓰지 않는 것이다.
역주33 器用不作 : 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쓰고 새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역주34 : 일을 처리하기에 충분한 정도를 이른다.
역주35 三駕而楚不能與爭 : 三駕는 세 차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니, 襄公 10년에 牛首에 주둔했던 전쟁과, 11년에 向에 주둔했던 전쟁과, 그해 가을에 鄭나라 東門에서 武力을 誇示했던 전쟁을 이른다. 이때부터 鄭나라는 드디어 晉나라에 服從하였다.
역주36 (薳)[蔿]掩 : 저본에 ‘薳’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蔿’로 바로잡았다. 以下의 ‘薳’자도 ‘蔿’의 誤記이므로 일일이 지적하지 않고 바로잡았다. 蔿掩은 蔿子馮의 아들이다.
역주37 蔿掩書土田 : 그 土地의 특성이 어떤 용도에 적합한지를 조사해 기록하는 것이다.
역주38 度(탁)山林 : 山林의 木材를 계산하여 國用에 공급하려 한 것이다.
역주39 鳩藪澤 : 鳩는 모음이니, 물을 모아 藪澤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破壞하지 못하게 하고 사냥터로 대비하고자 한 것이다.
역주40 辨京陵 : 辨은 分別하는 것이다. 매우 높은 곳을 ‘京’이라 하고, 큰 언덕을 ‘陵’이라 하는데, 이를 분별해 무덤을 쓸 땅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혹은, 각종 高地를 區別하여 種植(耕作)과 行軍(防守)을 대비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41 表淳鹵 : 淳鹵는 메마른 땅이다. 달리 表示하는 것은 그 부세를 輕減하기 위함이다. ≪說文≫에 “鹵는 西方의 鹽分이 섞인 땅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2 規偃豬 : 偃豬는 地帶가 낮아 濕氣가 많은 땅이니, 그곳에 受容된 물의 多少를 계산하는 것이다.
역주43 町原防 : 넓고 평평한 곳을 ‘原’이라 하고, 防은 둑이니 堤防 사이의 자투리땅이다. 이곳은 井田과 같이 方正하게 區劃할 수 없으므로 따로 작은 頃(土地面積의 단위로 100畝를 이름)으로 區劃[町]한 것이다.
역주44 牧(㬎)[隰]臯 : 隰은 卑濕한 곳이고, 臯는 물가의 흙이 쌓인 곳으로 물과 풀이 많기 때문에 牛馬를 放牧하기에 좋다. 저본에 ‘㬎’으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隰’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5 井衍沃 : 衍沃은 평평하고 아름다운 땅이니, 이런 곳은 ≪周禮≫의 제도와 같이 井田으로 구획한 것이다. 六尺이 ‘步’이고, 100步가 ‘畝’이고, 100畝가 ‘夫’이고, 9夫가 ‘井’이다.
역주46 量入脩賦 : 九土의 수입을 계산해 稅法을 정리한 것이다. 九土는 이상에 列擧한 山林, 藪澤, 京陵, 淳鹵, 疆潦, 偃豬, 原防, 隰臯, 衍沃을 이른다.
역주47 賦車籍馬 : 賦와 籍은 모두 稅이다. 백성의 財物을 稅로 거두어 車馬를 갖추게 한 것이다. 兵車와 馬匹은 다른 물건이기 때문에 區別해 글을 만든 것이다.
역주48 旣成……禮也 : 나라를 다스리는 禮를 얻은 것이다. 이상은 楚나라가 興盛하게 된 원인을 말한 것이다.
역주49 復遷邑 : 昭公 9년에 옮겼던 백성들을 원래의 居住地로 復歸시킨 것이다.
역주50 致群賂 : 처음 擧事할 때 주기로 허락했던 財物을 지금 모두 준 것이다.
역주51 施舍寬民 : 은혜를 베풀고 負債를 蕩減[舍]하여 백성들의 財力을 여유롭게[寬] 한 것이다.
역주52 擧職 : 廢棄된 官職을 修復한 것이다.
역주53 吳滅州來……子姑待之 : 이 글은 平王이 능히 國家를 소유하게 된 원인을 말한 것이다.
역주54 楚子使然丹簡上國之兵於宗丘 : 上國은 國都의 서쪽이다. 서쪽이 上流에 있기 때문에 그곳을 ‘上國’이라 한 것이다. 宗丘는 楚나라 땅이다.
역주55 分貧振窮 : 分은 주는 것이고, 振은 구제함이다.
역주56 (救)[收]介特 : 介特은 獨居人이다. 거두어 모여 살게 하여, 사방을 떠돌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저본에는 ‘救’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收’로 바로잡았다.
역주57 宥孤寡 : 그 賦稅를 너그럽게 減免한 것이다.
역주58 : 責問이다.
역주59 淹滯 : 才德이 있는데도 登用되지 못한 자이다.
역주60 禮新敍舊 : 新은 나그네이다.
역주61 祿勳合親 : 勳은 功이고, 親은 九族이다.
역주62 物官 : 物은 事이니, 일을 처리하는 관직이다.
역주63 楚人城州來……非撫之也 : 이 글은 楚 平王이 霸者가 되지 못한 이유를 말한 것이다.
역주64 楚人城州來……楚人必敗 : 昭公 13년에 吳나라가 州來를 縣으로 삼았는데, 지금 그곳에 성을 쌓고서 점유한 것이다. 戌은 莊王의 曾孫 葉公 諸梁父이다.
역주65 今亦如之 : 지금도 우리 백성들을 安撫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역주66 民樂其性 而無寇讐 : 人民이 安樂하여 각각 나름대로 생활을 營爲하고, 도적과 外敵의 근심이 없는 것이다.
역주67 〈轉〉 : 저본에 一字 空欄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轉은 이리저리 옮기는 것이다.
역주68 (守)[安] : 저본에 ‘守’로 되어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9 陶朱 : 춘추시대 范蠡이다. 越王 句踐을 도와 吳나라를 멸망시킨 공이 있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월나라를 떠나 陶로 가서 朱公이라 이름을 바꾸고 商人이 되었다. 뒤에 큰 富者가 되었으므로, 부자를 다른 말로 陶朱公이라고도 한다.
역주70 倉公 : 漢代의 淳于意이다. 齊나라의 太倉長을 지내어 倉公이라 불리었으며, 醫術에 뛰어나 병을 잘 치료하였으므로 扁鵲과 더불어 명의로 알려진 인물이다.
역주71 顧陸之圖 : 유명화가의 名畵를 말한다. 顧는 東晉의 顧愷之이고, 陸은 南朝시대 宋나라의 陸探微이니, 화가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다.
역주72 鍾王之帖 : 서법가의 名作을 말한다. 鍾은 삼국시대 魏나라의 鍾繇이고, 王은 東晉의 王羲之이니, 글씨를 잘 쓰는 것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다.
역주73 參朮 : 參은 蔘과 같으며, 人蔘‧紫蔘‧玄蔘 등이 있다. 朮은 白朮‧蒼朮 등으로 불리는데, 모두 뿌리와 줄기가 약용으로 쓰인다.
역주74 烏喙 : 附子라고도 하는 독초이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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