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二十二年
이라 初
에 에 이라가 見被髮而祭於野者
하고 曰 不及百年
하야 此其戎乎
ㄴ저
注
[主意]辛有見伊川之被髮野祭하고 而預料遷戎之事於百年之前하니 可謂知幾矣로다
然當被髮野祭之時에 其地雖華나 而人則夷矣니 豈待陸渾旣遷而後爲夷哉아
物之相召者
가 捷於風雨
注+物之相召者 捷於風雨:言氣類之相感甚速라 地夷而人華者
는 公劉之治豳也
注+地夷而人華者 公劉之治豳也:公劉 后稷之孫 居於豳 豳乃西戎之地 公劉修后稷之業 以厚其民 故曰 地夷而人華니
以華召華
하야 不旋踵而有文武之興王
注+以華召華 不旋踵而有文武之興王:周之先 后稷 名棄 堯擧爲農師 天下得其利 有功 封於邰號曰后稷 別姓姬氏 越三世而公劉立 公劉雖在戎狄之間 復修后稷之業 百姓懷之 多徙而保焉 周道之興 實自此始하고 地華而人夷者
는 晉帝之納款也
니 以夷召夷
하야 不旋踵而有耶律之俘虜
注+地華而人夷者……不旋踵而有耶律之俘虜:五代晉高祖石敬瑭 其本出於西夷 初 爲河東節度使 徙鎭天平 受命 唐主命張敬達討 敬瑭求援於契丹 入自鴈門 唐兵大敗 遂約爲父子 立敬瑭爲皇帝 及崩 出帝卽位 大臣議奉表稱臣 告哀於契丹 景延廣請致書稱孫而不稱臣 契丹大怒 遂大擧入冦 出帝北遷하니
是知居夷而華者
는 必變夷爲華
하고 居華而夷者
는 必變華爲夷
라 物物相召者
는 未嘗不以其類也
注+物物相召者 未嘗不以其類也:物物若此 華夷亦然 此結上文니라
中天下而畫壤者
인댄 是爲伊洛
注+中天下而畫(획)壤者 是爲伊洛:伊洛 二水名 其地正在天地之中 故王遷于洛邑이니 萬國莫先焉
注+萬國莫先焉:言伊川正當中國이라
天地之所合也
注+天地之所合也:天地之氣 於此訢合요 四時之所交也
注+四時之所交也:四時 於此而交通요 風雨之所會也
注+風雨之所會也:風雨 以序而至요 陰陽之所和也
注+陰陽之所和也:陰陽調而不乖 以上四句 出周禮地官大司徒라
自伊洛而俯
夷狄
注+自伊洛而俯()[眎]夷狄:自天地之中 而下視偏方之陋이면 猶鈞天帝居與偃溷然
하야 相去不知其幾千百等
注+猶鈞天帝居與偃溷然 相去不知其幾千百等:其尊卑貴賤 大有逕庭이라
風俗隳壞
注+政使風俗隳壞:假使伊洛之地 風俗頽敗라도 何至遽淪於夷狄乎
注+何至遽淪於夷狄乎:亦未至遽流於夷狄也 此設問아 辛有一見被髮之祭
注+辛有一見被髮之祭:辛有 周大夫 見有被髮而祭於野者하고 預期爲戎於百年之前
注+預期爲戎於百年之前:曰不及百年 此其爲戎乎한대
而秦晉之遷陸渾
注+而秦晉之遷陸渾:此年二國共遷陸渾之戎于川이 果不出其所料者
注+果不出其所料者:自辛未年周平王東遷 至是年癸未 已一百三十三年하니 抑有由矣
注+抑有由矣:其說在下니라
曠百世而相合者
는 心也
注+曠百世而相合者 心也:時有久近 心無久近요 跨百里而相通者
는 氣也
注+跨百里而相通者 氣也:有遠邇 氣無遠邇라
伊洛之民
이 雖居中華聲明文物之地
注+伊洛之民 雖居中華聲明文物之地:謂中國之地 聲明文物 나 然被髮野祭
注+然被髮野祭:地華而人夷하니 意之所向
이 已在於太荒絶漠之外矣
注+意之所向 已在於太荒絶漠之外矣:太荒絶漠 夷狄所居也 言身居於此而意在彼라
故以心感心
注+故以心感心:應在前百世而相하고 以氣動氣
注+以氣動氣:應前跨百里而相하니 安得不爲陸渾之遷哉
注+安得不爲陸渾之遷哉:心氣自然感召如此리오 旣爲沮澤
注+旣爲沮澤:沮澤之勢卑下이라 潦水自歸
注+潦水自歸:不期流水之歸而自歸하고
旣爲羶肉
이라 螻蟻自集
이며 旣爲夷俗
注+旣爲沮澤……旣爲夷俗:夷狄之俗僻陋이라 戎狄自至
注+戎狄自至:不期戎狄之至而自至하니 辛有所以能預期於百年之前者
는 非有他術也
注+辛有所以能預期於百年之前者 非有他術也:以與類相感而知之也라
閒田隙地
로 散在九州者 尙多也
注+閒田隙地……尙多也:可以處戎狄者 非特伊川로되 秦晉必徙於此
하고 而不之他焉
注+秦晉必徙於此 而不之他焉:秦晉不徙陸渾於他處 而徙於伊川하며
陸渾亦必居於此
하고 而不之他焉
注+陸渾亦必居於此 而不之他焉:陸渾之戎 不遷居於他處 而居於伊川하니 是豈嘗擇而處之哉
注+是豈嘗擇而處之哉:非故擇伊川以處陸渾也리오
風聲氣習
이 自相感召
注+風聲氣習 自相感召:斷以主意하야 以默而驅之
注+以默而驅之:非陸渾能驅之하고 濳而趍之
注+濳而趍之:非秦晉能趍之하니 盖有不能自已者矣
注+盖有不能自已者矣:感召之機 自然而然라
是故秦晉非能徙
라 不得不徙
며 陸渾非能居
라 不得不居
注+是故秦晉非能徙……不得不居:發明自然感召之意니 罪在此而不在彼也
注+罪在此而不在彼也:罪在伊川之民 不在秦晉陸渾라 使在我無召戎之具
면 彼胡爲乎來哉
注+使在我無召戎之具 彼胡爲乎來哉:風聲氣習 召戎之具리오
嗚呼
라 辛有可謂知幾矣
注+嗚呼 辛有可謂知幾矣:稱其先見事幾로다 然其言曰 不及百年
하야 此其戎乎
注+然其言曰……此其戎乎:却貶他此語未盡善ㄴ저호되 吾以爲猶未盡也
注+吾以爲猶未盡也:何必拘百年之數로라
善惡無定位
注+善惡無定位:欲善則善 欲惡則惡하고 華夷無定名
注+華夷無定名:召華則華 召夷則夷하니 一渝禮義
注+一渝禮義:渝 變也면 旋踵戎狄
注+旋踵戎狄:中國所以爲中國者 以禮義也 禮義一變 卽戎狄矣이라
彼被髮野祭之際
에 固已爲戎矣
注+彼被髮野祭之際 固已爲戎矣:人非戎而心已戎矣니 豈待百年而始爲戎乎
注+豈待百年而始爲戎乎:辛有百年之說 所以大拘아
陸渾未遷之前
엔 戎狄其心者也
注+陸渾未遷之前 戎狄其心者也:伊川之民 心已爲戎나 陸渾旣遷之後
엔 戎狄其形者也
注+陸渾旣遷之後 戎狄其形者也:伊川之地 始居眞戎 此發主意 最精采處라
人徒以秦晉之遷陸渾
으로 爲亂華之始
注+人徒以秦晉之遷陸渾 爲亂華之始:常人所見如此하고 不知伊洛之爲戎久矣
注+不知伊洛之爲戎久矣:被髮野祭之時 已爲戎矣니
豈待氈毳其服
注+豈待氈毳(전취)其服:毳 細毛也 戎狄 以氈毛爲服飾하고 其居
注+穹廬其居:穹 大也 廬 室也 戎狄以露天爲居屋하며 侏離其語
注+侏離其語:侏離 戎狄之語音也然後謂之戎哉
注+然後謂之戎哉:不待此時眞戎居之而後謂之戎也아
十九年掘鼠牧羊於北海之濵
注+十九年掘鼠牧羊於北海之濵:漢蘇武使匈奴 匈奴欲降之 蘇武不屈 匈奴乃徙武居北海上 留十九年方得歸이로되 而未嘗少改蘇武之漢也
注+而未嘗少改蘇武之漢也:武雖身居戎狄之地 而仗漢節牧羊 不爲戎狄所變나 承乾身未離唐宮
이로되 而已純乎突厥矣
注+承乾身未離唐宮 而已純乎突厥矣:唐太宗立承乾爲太子 承乾使宮奴數十百人 音聲 學胡舞 椎髻剪綵爲舞衣 又好突厥言及所服 選貌類胡者 被以羊裘辮髮 設穹廬自居 承乾身作可汗云라
天下之可畏者
는 莫大於吾心之夷狄
注+天下之可畏者 莫大於吾心之夷狄:應前戎狄其心이요 而要荒之夷狄次之
注+而要荒之夷狄次之:應前戎狄其形 戎狄之國也 結語簡嚴峻厲니라
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에 사는 戎族을 移住시키다
傳
僖公 28년, 당초에 平王이 東遷할 때에 辛有가 伊川에 갔다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野外에서 제사 지내는 자를 보고 말하였다. “백 년도 못 되어 이곳은 戎이 될 것이다.
周나라의 禮가 먼저 없어졌다.” 가을에 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의 戎을 伊川으로 이주시켰다.
注
辛有가 伊川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제사 지내는 자를 보고, 戎狄을 이주시킬 일을 백 년 전에 예측하였으니 기미를 알았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제사 지낼 때에, 그 땅은 비록 中華였으나 사람은 夷狄이었으니, 어찌 陸渾의 戎族을 이주시킨 뒤에 이적이 되었겠는가?
물건이 서로 감응하는 것이
風雨보다 빠르다.
注+氣類(기질이 같은 것)는 서로 감응함이 매우 빠르다는 말이다. 땅은
夷狄의 땅이나 사람은
中華의 〈도리를 행하는〉 사람이었던 경우는
公劉가
豳을 다스렸을 때이니,
注+公劉는 后稷의 증손으로 豳에 살았다. 豳은 바로 西戎의 땅인데 公劉가 后稷의 遺業을 닦아 그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였기 때문에 ‘땅은 夷狄의 땅이나 사는 사람은 中華의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중화 사람으로서 중화 사람들을 감응시켜 얼마 되지 않아
文王‧
武王의 왕업을 일으킨 것이고,
注+周나라의 先祖는 后稷이니 이름은 棄이다. 堯임금이 그를 擧用하여 農師로 삼으니 天下사람들이 그 이익을 얻었다. 공적이 있자 邰에 봉하여 后稷이라 호칭하고 따로 姬氏 姓을 하사하였다. 3世 뒤에 公劉가 즉위하였는데, 公劉는 비록 夷狄의 지역에 살았으나, 다시 后稷의 유업을 닦으니 百姓들이 사모하여 대대적으로 옮겨와 歸附하였다. 周나라의 道가 흥성한 것이 실로 이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땅은 중화의 땅이나 사람은
夷狄이었던 경우는
後晉 황제가 〈거란에게〉 복종하였을 때이니,
夷狄으로서
夷狄을 감응시켜 얼마 되지 않아
耶律의 포로가 되었다.
注+五代 때의 後晉 高祖 石敬瑭은 본래 西夷 지역 출신이다. 淸泰 初年에 河東節度使에서 天平節度使로 좌천되자 〈황제의〉 命을 따르지 아니하니, 唐主(後唐 廢帝)가 張敬達에게 토벌할 것을 명하였다. 石敬瑭이 契丹의 耶律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耶律이 鴈門으로 쳐들어와 唐軍을 대패시키고서 마침내 父子관계를 맺고 石敬瑭을 추대해 皇帝로 삼았다. 石敬瑭이 죽고 出帝가 즉위하니, 大臣들이 ‘表文을 올려 臣이라 칭하고 契丹에게 喪事를 알리자.’고 의논하였다. 景延廣은 〈표문을 올리지 말고〉 편지를 보내되 孫이라 칭하고 臣이라 칭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契丹이 크게 노하여 마침내 대규모의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와서 出帝를 북쪽 변경으로 축출하였다.
이로 인해
夷狄의 땅에 사나
中華의 도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夷狄을 변화시켜
中華가 되게 하고,
中華의 땅에 사나
夷狄의 도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中華를 변화시켜
夷狄이 되게 함을 알겠다. 물건과 물건이 서로 감응하는 것은
同類가 아닌 적이 없다.
注+물건과 물건의 관계가 이와 같으니 中華와 夷狄의 관계도 그러하다. 이는 윗글을 맺은 것이다.
天下의 중심에 서서 천하를 구획한다면 바로
伊水와
洛水注+伊와 洛은 두 강의 이름이다. 이 지역이 바로 天地의 중심에 해당하기 때문에 平王이 洛邑으로 遷都하였다는 말이다. 〈일대가 천하의 중심이니〉 천하에 이곳보다 더 중심점에 가까운 곳은 없다.
注+伊川이 바로 中國의 중앙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곳은
天地의 기운이 만나는 곳이고,
注+天地의 기운이 이곳에서 交合한다는 말이다. 四時가 교차하는 곳이며,
注+四時가 이곳에서 서로 갈마든다는 말이다. 바람이 알맞게 불고 비가 알맞게 내리는 곳이고,
注+비와 바람이 차례로 이른다는 말이다. 陰陽이 조화하는 곳이다.
注+陰陽의 기운이 조화하고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의 네 구는 ≪周禮≫ 〈地官 大司徒〉에 보인다.
伊水와
洛水 지대에서
夷狄을 굽어보면
注+천하의 중심에서 누추한 一方을 내려다본다는 말이다. 마치 하늘 중앙[
鈞天]의 옥황상제의 거처에서 더러운 측간을 보는 것과 같아서 그 차이가 나는 것이 몇천 등인지 몇 백 등인지 알 수 없다.
注+그 尊卑와 貴賤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가령 풍속이 무너졌다 하더라도
注+‘가령 伊水와 洛水 지역의 風俗이 무너졌다고 하더라도’의 뜻이다. 어찌 이렇게 갑자기 이적에 빠지게 된 것인가?
注+그렇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夷狄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辛有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祭祀 지내는 자를 한번 보고서
注+辛有는 周나라 大夫이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祭祀 지내는 자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백 년 뒤에
戎狄이 될 것을 예견했는데,
注+“백 년도 못 되어 이곳은 戎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의
戎族을
伊川으로 이주시킨 것이
注+이해에 두 나라가 함께 陸渾의 戎族을 伊川으로 이주시켰다. 과연 그의 예견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注+周 平王이 東遷했던 辛未年에서부터 이해 癸未年까지가 이미 133년이다. 이는 원인이 있다.
注+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있다.
백 세대가 떨어졌어도 서로 합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고,
注+시간에는 길고 짧음이 있으나, 마음에는 길고 짧음이 없다는 말이다. 백 리가 떨어졌어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은 기운이다.
注+거리에는 멀고 가까움이 있으나, 기운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는 말이다.
伊水와
洛水 지역의 백성이 비록
中華의
禮樂文物이 성대한 지역에 살고 있으나
注+中國의 땅을 이른다. 聲明文物은 〈楚滅弦黃〉편 註에 보인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제사 지냈으니
注+땅은 中華의 땅이나 사람은 夷狄이라는 말이다. 이는 그 마음이 이미 황량하고 먼
大漠(사막) 밖의 풍속에 쏠려 있었던 것이다.
注+크게 황량하고 먼 사막지대는 夷狄이 사는 곳이니, 몸은 이곳에 있으나 뜻은 저곳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고
注+앞의 ‘백 세대가 떨어졌어도 서로 합할 수 있는 것’에 호응하는 말이다. 기운으로써 기운을 움직였으니
注+앞의 ‘백 리가 떨어졌어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에 호응하는 말이다. 어찌
陸渾의
戎族이 이주해 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注+마음과 기운이 저절로 감응하는 것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이미 늪지대가 되었으므로
注+늪지대의 지세가 낮다는 말이다. 빗물이 저절로 흘러들고,
注+물이 흘러 들어오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든다는 말이다.
이미 누린내 나는 양고기가 되었으므로 개미떼가 저절로 모여들고, 이미
夷狄의 풍속이 되었으므로
注+夷狄의 풍속이 누추함을 말한다.戎狄이 저절로 옮겨온 것이다.
注+戎狄이 오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는 말이다. 辛有가 백 년 전에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注+같은 종류는 서로 감응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말이다.
九州에 흩어져 있는
空閒地가 오히려 많은데도
注+戎狄이 살 수 있는 곳이 伊川뿐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秦나라와
晉나라가 하필이면
陸渾의 융족을 이곳으로 이주시키고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았으며,
注+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의 戎族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지 않고 伊川에 이주시켰다는 말이다.
陸渾의 융족도 하필이면 이곳에 거주하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으니,
注+陸渾의 戎族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살지 않고 伊川에 살았다는 말이다. 이것이 어찌 일찍이 선택하여 거주하게 한 것이겠는가?
注+일부러 伊川을 선택하여 陸渾의 戎族을 살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風聲과
氣習이 서로 감응[
感召]하여
注+主意로써 논단한 것이다. 말없이 달려가고
注+陸渾의 戎族이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몰래 좇은 것이니
注+秦나라와 晉나라가 좇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서였던 것이다.
注+감응하는 기미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秦나라와
晉나라가 저들을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이주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陸渾의 융족이 이주한 것이 아니라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注+저절로 감응한 뜻을 발명하였다. 잘못이 이쪽에 있고 저쪽에 있지 않다.
注+잘못이 伊川의 백성에게 있고 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의 戎族을 이주시킨 데 있지 않다는 말이다. 가령 우리에게 융족을 불러들일 방법이 없었다면 저 융족이 어찌 올 수 있었겠는가?
注+風聲과 氣習이 戎族을 불러들인 방법이라는 말이다.
아!
辛有는 기미를 안 사람이라고 이를 만하다.
注+그가 먼저 일의 기미를 안 것을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백 년도 못 되어 이곳은
戎狄의 거주지가 될 것이다.”
注+도리어 그가 말한 이 말이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폄하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나, 나는 오히려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注+구태여 ‘百年’이라는 수에 구애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善과
惡은 고정된 자리가 없고,
注+善을 하고자 하면 善이 되고, 惡을 하고자 하면 惡이 된다는 말이다. 中華와
夷狄은 고정된 이름이 없으니
注+中華로 인도하면 중화가 되고, 夷狄으로 인도하면 이적이 된다는 말이다. 한번이라도
禮義를 변경하면
注+渝는 바뀐다는 말이다. 바로
戎狄이다.
注+中國이 中國이 된 이유는 禮義를 지키기 때문이니, 禮義가 한번 변하면 바로 戎狄이라는 말이다.
저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제사 지낼 때에 이미 융적이 된 것이니,
注+사람은 戎狄의 사람이 아니나, 마음은 이미 戎狄이라는 말이다. 어찌 백 년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융적이 되었겠는가?
注+辛有의 ‘百年’이란 말에 크게 구애되었기 때문이다.
陸渾의
戎族이 이주해 오기 전에는 그 마음만
戎狄이었으나,
注+伊川의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戎狄이 되었다는 말이다. 陸渾의
戎族이 이주해온 뒤에는 그 모습까지 융적이 되었다.
注+伊川 땅에 비로소 진짜 융적이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이 主意를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다.
사람들은 다만
秦나라와
晉나라가
陸渾의
戎族을 이주시킨 것이 중화를 어지럽게 한 시초로만 여기고,
注+보통 사람의 견해는 이와 같다는 말이다. 伊水와
洛水 일대가 융적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모른 것이니,
注+머리를 풀어 헤치고 야외에서 祭祀 지낼 때에 이미 戎狄이 되었다는 말이다.
어찌 털옷을 입고
注+毳는 가는 털이다. 戎狄은 짐승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 파오에 살며
注+穹은 크다는 뜻이고, 廬는 집이다. 戎狄은 露天을 주거로 삼는다. 蠻語를 한
注+侏離는 戎狄의 언어이다. 뒤에야 융적이라고 하겠는가?
注+이때 진짜 융적이 거주하기를 기다린 뒤에 융적이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蘇武는 19년 동안
北海 가에서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으며 양을 길렀으되
注+漢나라 蘇武가 匈奴에 사신으로 갔을 때 匈奴가 그를 굴복시키고자 하였으나 蘇武가 굴복하지 않자 흉노는 곧 소무를 北海 가로 유배하여 숫양을 기르게 하였다. 소무는 그곳에 19년 억류되었다가 귀국하였다. 그는
漢나라에 대한
忠心을 조금도 바꾼 적이 없었다.
注+蘇武는 비록 그 몸은 융적의 땅에 살면서 漢節(한나라 사신의 旗)을 짚고서 양을 길렀으나 戎狄에게 변화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承乾은 몸이
唐나라 황궁을 떠난 적이 없었으되 이미 완전히
突厥 사람이었다.
注+唐 太宗이 李承乾을 太子로 삼았는데, 承乾이 宮奴 수십 명에게 돌궐의 노래를 익히게 하고 돌궐의 춤을 배우게 하였으며, 상투를 틀고 비단을 잘라 舞衣를 만들게 하였다. 또 돌궐의 말과 복식을 좋아하여 돌궐인과 외모가 비슷한 자를 선발해서 양 갖옷을 입히고 머리를 땋아 늘어뜨리게 하고서 파오를 지어 스스로 그곳에 거처하며 承乾 자신이 칸[可汗]이 되었다고 한다. 蘇武
천하에 두려운 것은 내 마음이
夷狄이 되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고,
注+앞의 ‘그 마음만 戎狄이다.’에 호응한 것이다. 要服이나
荒服의
夷狄은 그 다음이다.
注+앞의 ‘그 모습까지 戎狄이다.’에 호응한 것이다. 要荒은 荒服이니 戎狄의 나라이다. 結語가 간결하면서도 준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