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七年
이라 趙宣子背先蔑而立靈公
하다 己丑
에 하다 士會在秦三年
에 不見士伯
한대 其人曰
하고 오
物之易合者
는 莫如居患難之時
라 同川之魚
는 鱣不知鮪
하고 鮪不知鱣
하야 游
不相顧也
라가 及失水
면 則相沫相濡
하야 驩然而相親
하니 豈得水則不仁
하고 失水則仁耶
리오 居患難之地
하야는 不得不合也
ㄹ새니라
同舟之人은 胡不知越하고 越不知胡하야 語言不相入也라가 及遇風이면 則相赴相救하야 慨然而協力하니 豈無風則不義하고 有風則義耶리오 居患難之地하야는 不得不合也일새니라
隨會之與先蔑과 竝立於晉朝하야 其游居周旋之久하니 豈如胡越之無情哉리오
及以公子雍之故로 俱得罪而奔秦하니 此政涸澤之魚相濡沫之時어늘 會之視蔑乃漠然無情하야 歲律三改而曾不與之一面하니라
居患難之地하야 而反落落難合은 何耶아 人知患難之易合이요 而未知其所以合也라 憂同則易合하고 怨同則易合하며 忿同則易合하니
同憂相遇면 必相親以謀其憂하고 同怨相遇면 必相親以毁其怨하며 同忿相遇면 必相親以逞其忿하니
其朝夕聚會하야 握手而語하고 促膝而議者에 豈復有善意哉아 非咎人則訾人也며 非私計則詭計也니 以憂濟憂하고 以怨濟怨하야 交日深而惡日長矣리라
其所以易合者
가 果正耶
아 ]竇嬰灌夫父子歡於廢退之時
注+竇嬰灌夫父子歡於廢退之時: 하고 淮南衡山昆弟語於怨望之日
注+淮南衡山昆弟語於怨望之日:이나 其終之爲何如耶
아
吾嘗聞君子處患難矣에 內省不疚者也요 反求諸己者也요 素其位而行者也라
本未嘗憂하니 何必與人共其憂며 本未嘗怨하니 何必與人共其怨이며 本未嘗忿하니 何必與人共其忿이리오
使其人道義可慕하고 忠信可友하며 樂易可近하고 慈仁可依면 則未有患難之始에 吾固與之合矣니 豈必待有患難而與之合耶리오
待患難而始合
이면 則其
合者非吾本心也
라 驅於患難
하야 苟合以濟事也
니 是宜隨會之所不忍爲也
라
貧者不肯與富者狎하고 而與貧者狎은 是何也오 富者其所忌나 兩貧則無所忌也ㄹ새니라
愚者不肯與賢者狎하고 而與愚者狎은 是何也오 賢者其所忌나 兩愚則無所忌也ㄹ새니라
人居患難之時에 以己之在難으로 而疾人之無難하야 其視優豫愉佚之人이면 且憎且忌하야 望望然去之하고 惟其同在難者라야 欵密親狎而無間하니 其心豈不甚淺狹而可憐耶아 是宜隨會之所不忍爲也라
或曰 趙盾實執晉柄이어늘 背先蔑而立靈公하니 則盾之所讐者는 惟蔑爾요 至隨會하야는 雖以累而俱出이나 本非盾所怒也라
會明絶蔑於秦은 乃所以陰結盾於晉하야 僥倖歸國하야 不顧賣友以市恩이니 非險薄之尤者乎아
吾應之曰 此後世之心이요 而非隨會之心也라 以後世之利心으로 而量君子之公心이면 則其擧其措와 其語其黙이 無不可名以利니 豈獨先蔑一事哉리오
會果出於利心이면 則其險譎僅足以欺一夫耳아 不動聲色而群盜自奔이 是亦可以利心感之耶아
光輔五君而名聞諸侯하니 是亦可以利心圖之耶아 固不可以後世之利心으로 量君子之公心也라
雖然會之公心도 吾猶有憾焉이라 會不以同患而親蔑可也어니와 至於絶迹不見은 則矯枉過直矣라
吾不知會在晉之時에 於朝廷과 於官府와 於衢路에 果能避蔑而不見耶아 在晉則見之하고 在秦則不見은 是不免以罪自嫌이요 而非公之盡也라
以公自處면 則去國如在國하고 有難如無難하야 雖不加親이라도 亦不加疏니 豈以晉秦二其心哉아
吾固疑會公心之未盡也ㄹ새 吾固以公心責之하고 而不以利心量之也로라
傳
문공文公 7년, 조선자趙宣子(조돈趙盾)가 선멸先蔑을 배신하고 영공靈公을 세웠다. 기축일己丑日에 선멸先蔑이 진秦나라로 도망가니 사회士會도 따라갔다. 사회士會가 진秦나라에 있는 3년 동안 사백士伯(선멸先蔑)을 만나지 않으니, 그 종자從者가 말하기를 “그 사람과 진晉나라에서 함께 도망하였으면서 이곳에서 만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였다.
사계士季(사회士會)가 말하기를 “나는 그와 죄罪가 같기 때문에 함께 도망한 것뿐이고 그를 의롭게 여겨 따라온 것이 아니니 무엇 때문에 만나겠는가?”라고 하고서, 진晉나라로 돌아올 때까지 끝내 선멸先蔑을 만나지 않았다.
물류物類가 쉽게 뜻이 맞는 것은 환난患難을 당하는 경우만한 때가 없다. 같은 하천河川의 어류魚類 중에 전어鱣魚는 유어鮪魚를 의식하지 않고 유어鮪魚는 전어鱣魚를 의식하지 않고서 각자 헤엄치면서 서로 돌아보지 않다가 하천에 물이 줄면 서로서로 입안의 침으로 적셔주면서 즐겁게 화합하며 서로 친애하니, 어째서 물을 얻으면 서로 친애하지 않고 물이 줄면 서로 친애하는 것인가? 이는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 투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선박에 탄 사람 중에 북방인[호胡]은 남방인[월越]을 의식하지 않고, 남방인은 북방인을 의식하지 않아 서로 말도 건네지 않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서로 달려가 구원하고 격앙된 모습으로 협력하니, 어째서 폭풍우가 없으면 도의道義가 없고 폭풍우가 있어야 도의가 있는 것인가? 이는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 서로 투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회隨會(사회士會)가 선멸先蔑과 함께 진晉나라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교유하고 왕래한 세월이 오래이니, 어찌 북방인과 남방인처럼 조금의 정감도 없었겠는가?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 세우려한 일로 인해 함께 죄를 얻어 진秦나라로 출분出奔하였으니, 이때는 바로 물이 마른 수택水澤의 어류魚類가 입안의 침으로 서로를 적셔주어야 할 때였는데, 수회隨會는 선멸先蔑을 대하기를 도리어 냉담하리만큼 무정하게 하여 3년이 지나도록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함께 환난의 처지에 있으면서 도리어 외로이 혼자 지내고 투합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들은 단지 환난이 있을 때에 쉽게 투합하는 것만을 알 뿐, 투합하는 까닭은 모른다. 우환이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하고, 원한이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하며, 분노가 같은 사람이 〈서로 만나면〉 쉽게 투합한다.
우환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그 우환을 해결할 방법을 꾀하고, 원한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그 원한을 끼친 사람을 헐뜯고, 분노가 같은 사람끼리 서로 만나면 반드시 서로 친구가 되어 분노를 함부로 토로한다.
그들이 아침저녁으로 모여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고 무릎을 맞대고 논의하는 말에 어찌 다시 선의善意가 있겠는가? 남을 꾸짖는 말이 아니면 남을 헐뜯는 말이고, 사사로운 계획이 아니면 속임수일 뿐이니, 이는 우환으로써 우환을 조장助長하고 원한으로써 원한을 조장하는 것과 〈같아서〉 친분이 날로 깊어질수록 죄악도 날로 자라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쉽게 서로 투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과연 정당하지 않은 것인가? 〈
한漢 경제景帝 때의〉
두영竇嬰과
관부灌夫는 정분이
부자父子 같았는데, 〈
두영竇嬰이 버림을 받고〉 조정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분이 여전하였고,
注+≪漢書≫ 〈竇田灌韓列傳〉에 보인다. 〈
한漢 무제武帝 때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과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 형제는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여〉 원망하던 때에 서로 모의하였으나,
注+≪漢書≫ 〈淮南衡山濟北王列傳〉에 보인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내 일찍이 듣건대 군자는 환난患難에 처했을 때에 마음속으로 반성해보아도 허물이 없고, 자신을 반성하여 자기에게서 구하며,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다.
본래 근심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근심을 함께 걱정할 필요가 있으며, 본래 원한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원한을 끼친 사람을 함께 헐뜯을 필요가 있으며, 본래 분노한 적이 없으니 어찌 사람과 더불어 그 분노를 함께 토로할 필요가 있겠는가?
가령 그 사람의 도의道義가 앙모仰慕할 만하고 충신忠信이 벗할 만하며, 〈인품이〉 화락하고 평이平易하여 가까이할 만하고 인자仁慈가 의지할 만하다면 환난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그와 투합하였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환난이 있기를 기다려 그와 투합하겠는가?
환난을 기다려 그와 투합한다면 이 투합은 나의 본심이 아니라 환난에 몰리어 구차히 투합해 일을 이루려는 것이니,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마땅하다.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와 친압親狎하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와 친압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가 꺼리는 바이지만 둘 다 가난하면 서로 꺼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자와 친압하려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와 친압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가 꺼리는 바이지만 둘 다 어리석으면 서로 꺼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환난 속에 있을 때에 자기가 환난 속에 있다 하여 환난이 없는 남을 미워하여, 한가롭고 안락한 사람을 보면 미워하고 시기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오직 함께 환난 속에 있는 사람이라야 흉허물 없이 친밀하게 대하니, 그 마음이 어찌 가여울 정도로 매우 얕고 좁은 것이 아닌가? 이로 보면 수회隨會가 차마 선멸先蔑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마땅하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조돈趙盾이 실로 진晉나라의 정권政權을 잡았는데 그가 선멸先蔑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영공靈公을 세웠으니, 조돈趙盾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은 오직 선멸先蔑뿐이고, 수회隨會로 말하면 비록 연루되어 선멸先蔑과 함께 출분出奔하였으나 본래 조돈趙盾이 원노怨怒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수회隨會가 공개적으로 진秦나라에서 선멸先蔑과 관계를 끊은 것은 바로 암암리에 진晉나라의 조돈趙盾과 결탁하여 귀국하기를 바라,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벗을 팔아 은혜를 베푸는 짓을 한 것이니, 어찌 더욱 음험하고 각박한 자가 아닌가?”라고 하기에,
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후세 사람들의 마음이고 수회隨會의 마음이 아니다. 이익을 탐하는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군자君子의 공심公心을 추측하면 군자의 행동거지와 언어동작이 모두 이익을 탐하는 짓이라고 명명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어찌 유독 선멸先蔑의 한 가지 일뿐이겠는가?
수회隨會의 행위가 과연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어찌 그의 음험陰險과 궤휼詭譎이 겨우 조돈趙盾 한 사람만을 속이기에 충분하였을 뿐이겠는가? 〈뒤에 수회隨會가 국정을 주지主持할 때에〉 큰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어도 군도群盜가 스스로 도망갔으니,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도둑들을 감화시켜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晉나라의 다섯 군주君主를 보좌하여 명성이 제후諸侯에 알려졌으니,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 패업覇業을 도모해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이익을 탐하는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군자의 공심公心을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나 수회隨會의 공심公心도 나의 〈생각에는〉 오히려 만족스럽지 못함이 있다. 수회隨會가 환난을 함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멸先蔑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괜찮지만, 발길을 끊고 만나보지 않은 것은 너무 지나쳤다.
내 모르겠으나, 수회隨會가 진晉나라에 있을 때에 조정朝廷이나 관부官府나 길거리에서 과연 선멸先蔑을 피하고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가? 진晉나라에서는 서로 만나고 진秦나라에서는 만나지 않은 것은 스스로 혐의가 있어서 그렇게 했다는 죄에서 면할 수 없으니 공심公心을 다한 것이 아니다.
공심公心으로 자처했다면 나라를 떠났을 때나 나라에 있을 때의 행동이 같았을 것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나 어려움이 없을 때의 행동이 같았을 것이니, 설령 더 친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더 소원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어찌 진晉나라에 있을 때와 진秦나라에 있을 때의 마음이 다를 수 있는가.
나는 본래 수회隨會의 공심公心이 지극하지 못함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진실로 그의 공심公心이 미진함을 꾸짖고 이익을 탐하는 마음으로는 헤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