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享曹太子
할새 에 樂奏而嘆
이어늘 施父曰 曹太子其有憂乎
인저
傳
【左傳】文十七年이라 襄仲如齊하야 拜穀之盟하고 復曰
傳
冬
에 公孫歸父會齊侯于穀
에 見晏桓子
하고 與之言魯
에 樂
이어늘 曰
其亡乎
ㄴ저
傳
【左傳】宣十五年이라 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러니 不敬하다
傳
【左傳】成四年이라 公如晉하니 晉侯見公에 不敬하다
傳
【左傳】成十三年
이라 晉侯使郤錡來乞師
러니 不敬
하다
禮는 身之幹也요 敬은 身之基也어늘 郤子無基하다
且
也
로 受命以求師
는 將社稷是衛
어늘 而惰
하니 棄君命也
라
傳
【左傳】成十三年이라 公如京師할새 及諸侯朝王하고 遂從劉康公成肅公會晉侯伐秦하다
成子
에 不敬
이어늘 劉子曰 吾聞之
컨대 民受天地之中以生
하니 所謂命也
라
國之大事
는 在祀與戎
하니 祀有
하고 戎有受脤
이 神之大節也
어늘
傳
叔孫穆子相
이러니 趨進曰 諸侯之會
에 이어늘 今吾子不後寡君
하니 寡君未知所過
로라
傳
【左傳】襄十年이라 春에 齊高厚相太子光하야 以先會諸侯于鍾離에 不敬하니
士莊子曰 高子相太子以會諸侯는 將社稷是衛어늘 而皆不敬하니 棄社稷也라
傳
는 禮之經也
요 禮
는 政之輿也
며 政
은 身之守也
니 怠禮
면 失政
하고 失政
이면 不立
이라
傳
【左傳】襄二十八年이라 蔡侯歸自晉에 入于鄭하니 鄭伯享之한대 不敬하다
君小國하야 事大國에 而惰傲以爲己心하니 將得死乎아
傳
【左傳】襄三十一年이라 穆叔至自會하야 見孟孝伯하고 語之曰 趙孟將死矣리라
하야 不似
하고 且年未盈五十
이로되 而
焉如八九十者
하니 弗能久矣
리라
吾子盍與季孫言〈之〉
오 라 孝伯曰 人生幾何
완대 리오
傳
니 子盍亦
하야 而大庇民乎
아 對曰 老夫罪戾是懼
니 焉能恤遠
이리오
傳
【左傳】昭十一年이라 單子會韓宣子于戚에 視下言徐하다
會朝之言
은 必聞于表著之位
하니 요 視不過結襘之中
하니 所以道容貌也
라
今單子爲王官伯하야 而命事於會호대 視不登帶하고 言不過步하며 貌不道容하고 而言不昭矣라
傳
【左傳】昭二十五年
이라 宋公享昭子
에 賦
하니 昭子賦
하다
傳
【左傳】昭三十二年
이라 十
月
에 晉魏舒韓不信如京師
하야 合諸侯之大夫于狄泉
하야 하고 且令城成周
하다
傳
【左傳】定十五年이라 春에 邾隱公來朝하니 子貢觀焉하다
夫禮
는 死生存亡之體也
니 하며 어늘 今正月相朝
호대 而皆
하니 라
春秋之際의 盟會聘享에 人皆視升降語黙之節하고 爲吉凶禍福之占하니
觀人之術
은 在隱
이요 不在顯
하며 在晦
요 不在明
注+此是反難設疑之體 隱顯晦明四字是眼目하니
顯與明
은 人之所畏也
注+顯明者 人所共見之地 故皆有所畏요 隱與晦
는 人之所忽也
注+隱晦者 人所不見之地 故皆有所忽라
人之所畏
注+顯明之地는 雖小人
이라도 猶知自飾
注+一時矯操者 小人之所能이어니와 人之所忽
注+隱晦之地은 雖君子
라도 不能無疵
注+平時謹獨者 君子之所難하니 蓋畏則加意
하고 而忽則多不加意耳
일새니라
苟不能乘其不意하고 而徒觀其加意之時면 則令色足恭의 矯僞蠭起리니 其本質眞態를 亦何自而見哉리오
涖衆之容
이 必肅於燕閒之日
注+臨衆是顯明時 燕閒是隱晦時하고 對賓之語
가 必嚴於私昵之時
注+對賓是顯明時 私昵是隱晦時어든 又況盟會聘享之際
注+歃血曰盟 相聚曰會 遣使相問曰聘 以禮飮酒曰享 此尤重於涖衆對賓之時에 金石在庭
注+其時 在庭有金石之樂하고 籩豆在席
注+在坐有籩豆之器하며 在前
注+有擯以導賓 有相以助主하고 三揖在下
注+卿大夫士 皆在其下 周禮司士云 卿 大夫以其等揖 士旁아
旦失色於堂
注+旦 早也 行禮堂上 苟有失色之擧이면 暮傳笑於國
注+暮 晩也 傳之一國 人皆笑之하고 片言之誤
注+亦謂行禮時가 可以起萬口之譏
注+萬口亦指國人而言니라
人情好勝而惡辱
注+失色誤言 爲人譏笑 取辱之甚 人皆知惡하니 豈不能勉强於須臾耶
注+發盡小人尤知自飾(飭)之意리오
今攷左氏之所載
注+引本題出處컨대 其周旋揖遜
과 辭氣容貌
가 可嗤可指者
注+嗤 笑也 指 議也가 相望於冊
注+如此失禮 左傳紀載甚多하니 此理之不可曉者也
注+以上一段 皆可疑問難라
凡人之情
은 爲惡於人之所不見
注+謂蹤肆於隱晦之時하고 爲善於人之所見
注+謂矯飾於顯明之時하야 欲以欺世而售其姦
注+泛言小人情狀이라
胡不反觀一身
하야 以近取譬乎
注+托一身之病 以喩上文意아
肝受病則目不能視
注+醫書曰 肝其候目하고 腎受病則耳不能聽
注+醫書曰 腎其候耳하며 脾受病則口不能食
注+醫書曰 脾氣通於口하고 心受病則舌不能言
注+醫書曰 心其聲言이라
肝也腎也脾也心也는 在內하야 而人所不見者也요 目也耳也口也舌也는 在外하야 而人所見者也라
受病於人之所不見
注+肝腎脾心 人所不見 以喩人在隱晦之時이면 則其病必發於人之所見矣
注+目耳口舌 人所同見 以喩人在顯明之時라
是故隱顯晦明
이 本無二理
注+照應起語 發明主意니라
隱之所藏
이 待顯而露
注+隱顯無二理하고 晦之所蓄
이 待明而彰
注+晦明無二理이라
彼春秋之公侯卿大夫
注+斷本題는 하고 及盟會聘享之際
에 雖欲勉强修飾
注+應爲善於人之所見이나 終有時而不能揜
注+如人受病於內 而見於外이라
歃血而忘者
는 不自知其忘也
注+陳五父요 受玉而惰者
는 不自知其惰也
注+晉惠公며 奏樂而歎者
는 不自知其歎也
注+曹太子요 相語而泣者
는 不自知其泣也
注+宋平公與叔孫昭子 ○ 四不自知 發明不能揜之意라
方正冠鳴佩
注+謂盟會聘享時에 儼然肅然
하야 自謂中禮
注+勉强修飾하고 而不知人已議其後矣
注+己雖不自知 而旁觀者 皆見而議之라
平居暇日
에 暗室屋漏之所爲
注+平日爲惡 受病於中가 至於此時
하야 如遇明鏡
하야 無不發見
注+如病形於外하니 吾是以知顯者
는 隱之影
이요 明者
는 晦之響也
注+隱如形顯 如影之隨形 晦如聲明 如響之隨聲로라
君子欲無得罪於衆
注+結尾歸正意 謂對衆欲無失禮인댄 必先無得罪於獨
注+平日必謹獨이요 欲無得罪於朝
ㄴ댄 必先無得罪於家
니라
苟徒以一日之敬
으로 而蓋終身之邪
注+言欺世而售其奸者면 是濁其源而揚其流
하고 斧其根而漑其葉也
注+引喩發盡主意라
雖然
注+餘意春秋之時
에 旁觀竊議者
注+指譏議失禮之人는 特爲瞽史之學者耳
注+謂以失禮而料其死亡 猶之占人禍福也로되 而愆失繆戾
注+指失禮者가 已不能逃其目
注+尙不能逃譏議者之所見하니 使有知道者立於其側
注+設使有知道君子在旁 其所見必巽於瞽史矣이면 又將若之何
注+結句含不盡意오
진陳나라 오보五父가 정鄭나라에 가서 맹약에 참여하여 삽혈歃血할 때 마음이 딴 곳에 있다
진陳나라 오보五父가 정鄭나라에 가서 맹약에 참여하여 삽혈歃血할 때 마음이 딴 곳에 있다
傳
은공隱公 7년, 진陳나라가 정鄭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12월에〉 진陳나라 공자公子 오보五父가 〈맹약에 참가하기 위해〉 정나라로 가서 임신일壬申日에 정백鄭伯과 결맹結盟하였는데, 피를 마실 때 마음이 맹약에 있지 않은 듯하였다.
〈이를 본〉 설백洩伯이 말하기를 “오보는 반드시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환공桓公 5년에 진陳나라에 동란動亂이 발생하였다.
조曹나라 태자太子가 노魯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할 때 음악을 연주하자 탄식하다
傳
환공桓公 9년, 조曹나라 태자太子가 와서 조현朝見하자 상경上卿의 예禮로 접대하였으니 예禮에 맞았다.
조나라 태자를 대접할 때 첫 술잔을 올리고 음악이 연주되자 태자가 한숨을 쉬니, 시보施父(魯나라 대부)가 말하기를 “조나라 태자에게 우환憂患이 생길 것이다.
이곳은 탄식할 자리가 아닌데 〈탄식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傳
희공僖公 11년, 천왕天王(周 양왕襄王)이 소무공召武公과 내사內史 과過를 보내어 진후晉侯에게 작명爵命을 내렸다.
진晉 혜공惠公이 옥玉을 받을 때 태만怠慢하니 내사 과가 돌아와서 주周 양왕襄王에게 고告하기를 “진후는 아마도 후손後孫이 없을 것입니다.
왕王께서 작명을 내리시는데 서옥瑞玉를 받을 때 태만하였으니, 이는 먼저 스스로 체통體統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찌 후사後嗣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傳
문공文公 17년, 양중襄仲이 제齊나라에 가서 곡穀에서 결맹結盟해준 것에 배사拜謝하고 돌아와서 문공文公에게 복명復命하였다.
“신臣이 들으니 제인齊人이 노魯나라의 보리를 먹으려 한다고 합니다만, 신이 보기에는 아마도 그리되지 않을 듯합니다.
제군齊君의 말이 구차苟且하니 장문중臧文仲의 말에 ‘임금이 구차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공손귀보公孫歸父가 노魯나라에서의 생활을 말하면서 즐거워하다
傳
선공宣公 14년, 가을 9월에 초자楚子가 송宋나라를 포위하였다.
겨울에 공손귀보公孫歸父가 곡穀에서 제후齊侯와 회합會合할 때 안환자晏桓子를 만나 노魯나라에서의 생활生活을 말하면서 즐거워하니, 안환자가 고선자高宣子에게 말하기를 “자가子家(歸父)는 아마도 노魯나라에서 도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노나라에서 총애寵愛가 끊이지 않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반드시 탐심貪心이 생기고, 탐심이 생기면 반드시 남의 이익利益을 빼앗기를 꾀한다.
남의 이익을 빼앗으면 남도 나의 이익을 빼앗기를 꾀할 것이니, 온 나라 사람이 그의 이익을 빼앗기를 꾀한다면 어찌 도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傳
선공宣公 15년, 진후晉侯가 조동趙同을 보내어 포로捕虜로 잡은 적인狄人을 주왕周王에게 바치게 하였는데, 진헌進獻할 때 조동이 공경恭敬하지 않았다.
이를 본 유강공劉康公이 말하기를 “10년이 되지 않아 원숙原叔(趙同)에게 반드시 큰 화禍가 있을 것이다.
진후晉侯가 노후魯侯를 만나볼 때 공경하지 않다
傳
성공成公 4년, 성공이 진晉나라에 가니, 진후晉侯가 성공을 만나볼 때 공경恭敬하지 않았다.
계문자季文子가 말하기를 “진후는 반드시 화난禍難을 면免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은 밝으시니 천명天命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저 진후의 운명運命이 제후諸侯에게 달렸으니, 공경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정백鄭伯이 옥玉을 줄 때에 시선視線이 유동流動하고 걸음이 빨랐다
傳
성공成公 6년, 봄에 정백鄭伯이 진晉나라에 가서 화평和平을 맺어준 것에 배사拜謝하였다.
정백이 동영東楹의 동쪽에서 수옥授玉의 예禮를 거행擧行하자, 사정백士貞伯이 말하기를 “정백은 아마도 죽을 것이다.
시선視線이 유동流動하고 걸음이 빨라 자신의 위치位置에 안착安着하지 못하였으니, 아마도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傳
성공成公 13년, 진후晉侯가 극기郤錡를 보내어 원병援兵을 청請하게 하였는데, 일을 봉행奉行할 때 극기가 공경하지 않았다.
이를 본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극씨郤氏는 아마도 멸망滅亡할 것이다.
예禮는 몸을 세우는 척골脊骨과 같고, 경敬은 몸을 지탱하는 기초基礎와 같은 것인데, 극자郤子는 기초를 무시無視하였다.
그리고 극자가 선군先君의 사경嗣卿으로, 임금의 명命을 받고 와서 출병出兵을 요청한 것은 사직社稷을 보위保衛하기 위함인데 태만怠慢하였으니, 이는 그 군명君命을 버린 것이다.
성자成子가 제육祭肉을 나누어줄 때 공경하지 않다
傳
성공成公 13년, 성공이 경사京師에 갈 때 제후諸侯와 함께 주왕周王께 조현朝見하고서 드디어 유강공劉康公과 성숙공成肅公을 따라 진후晉侯와 회합會合하여 진秦나라를 토벌하였다.
출병하기에 앞서 성자成子가 사社에서 제육祭肉[脤]을 받을 때 공경하지 않으니, 이를 본 유자劉子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사람은 천지天地의 중화中和된 기운을 받아 태어나니, 이것이 이른바 ‘천명天命’이다.
그러므로 동작動作, 예의禮義, 위의威儀 등의 법칙法則을 가지고 〈각자의〉 천명天命을 안정시켜야 한다.
현능賢能한 자는 이를 보양保養하여 복福을 부르고[致], 현능賢能하지 못한 자는 이를 폐기廢棄[敗]하여 화禍를 취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예禮에 진력盡力[勤]하고, 소인小人은 본업本業에 진력해야 한다.
예禮에 진력함에는 공경恭敬을 다하는 것만 한 게 없고, 본업本業에 진력함에는 돈후敦厚하고 독실篤實함만 한 게 없다.
공경恭敬(공경을 행함)은 신명神明을 공양供養함에 있고, 돈독敦篤은 본업本業을 지킴에 있다.
국가國家의 대사大事는 제사祭祀와 전쟁戰爭에 있는데, 제사에는 집번執膰의 예禮가 있고, 전쟁에는 수신受脤의 예禮가 있는 것이 신神을 섬기는 큰 예절禮節이다.
그런데 지금 성자成子는 태만하였으니 그 천명을 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번 출전出戰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傳
성공成公 14년, 위후衛侯가 향연饗宴을 열어 고성숙苦成叔을 접대接待할 때 영혜자寗惠子가 상相이 되었다.
고성숙이 오만傲慢하니, 영혜자가 말하기를 “고성숙의 집안은 아마도 망할 것이다.
옛날에 향사享食의 예禮를 거행할 때에 그 사람의 위의威儀를 관찰하고 그 사람의 화복禍福을 살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람이 오만하였으니 이는 화禍를 자초自招하는 행위行爲이다.”라고 하였다.
위衛나라 손문자孫文子가 노魯나라에 빙문聘問 와서 잘못을 고치려는 기색이 없다
傳
양공襄公 7년, 위衛나라 손문자孫文子가 빙문聘問 와서 양공이 한 계단階段을 오를 때마다 손문자도 동시에 한 계단을 올랐다.
이때 숙손목자叔孫穆子가 상相이었는데, 빠른 걸음으로 가서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회합會合에서 우리 임금께서 위군衛君보다 뒤에 오른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대는 우리 임금보다 뒤에 오르지 않으니, 우리 임금께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대에게 이런 경시輕視를 당하는지〉 모르겠소.
그대는 조금 천천히 오르시오.”라고 하였으나, 손자孫子는 해명解明도 하지 않고 잘못을 고치려는 기색도 없었다.
목숙穆叔이 말하기를 “손자孫子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신하가 되어서 임금처럼 행동하고 잘못하고서도 고치지 않으니, 이는 망할 장본張本이다.”라고 하였다.
제齊나라 고후高厚가 태자太子의 상相이 되어 제후諸侯와 회합會合할 때 두 사람 모두 공경恭敬하지 않다
傳
양공襄公 10년, 봄에 제齊나라 고후高厚가 태자太子 광光의 상相이 되어 〈오자吳子를 만나기에〉 앞서 종리鍾離에서 제후諸侯와 회합會合하였는데, 〈이때 두 사람 모두〉 공경恭敬하지 않으니,
사장자士莊子(士弱)가 말하기를 “고자高子가 태자의 상이 되어 제후와 회합하는 것은 사직社稷을 보위保衛하기 위해서인데, 두 사람 모두 공경하지 않으니 이는 사직을 포기抛棄하는 것이다.
저들은 아마도 화禍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傳
양공襄公 21년, 상임商任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난씨欒氏를 금고禁錮하기 위함이었다.
제후齊侯와 위후衛侯가 공경恭敬하지 않자,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두 임금은 반드시 화禍를 면免하지 못할 것이다.
회견會見과 조현朝見은 예禮의 중요重要한 법칙法則[經]이고, 예禮는 정사政事를 싣는 수레이며, 정사는 몸을 수호守護하는 것이니, 예禮에 태만怠慢하면 정치政治가 잘못되고 정치가 잘못되면 몸을 지킬[立] 수 없다.
그러므로 화란禍亂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채후蔡侯가 정鄭나라의 향연饗宴을 받을 때에 공경하지 않다
傳
양공襄公 28년, 채후蔡侯가 진晉나라에서 돌아올 때 정나라에 들르니, 정백鄭伯이 연회를 열어 그를 접대하였는데, 채후의 태도가 불경不敬스러웠다.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채후는 아마도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전일前日에 그가 이곳을 지날 적에 우리 임금께서 자전子展을 보내어 동문東門 밖에서 그를 위로하게 하였는데 그때도 오만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앞으로 고칠 것으로 여겼는데, 지금 돌아오는 길에 접대를 받으면서도 태만하니 이는 바로 그의 본심이다.
소국小國의 임금이 되어 대국大國을 섬기면서 나태懶怠와 오만傲慢을 마음으로 삼으니 어찌 제 명에 죽을 수 있겠는가?
만약 화를 면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화가 그 자식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는 임금이 되어 음란하고 아비답지 못하였으니, 내가 듣건대 이런 자는 항상 자식에게 시해당하는 화가 있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목숙穆叔이 맹효백孟孝伯을 만나 조맹趙孟의 말이 구차苟且하다고 말하다
傳
양공襄公 31년, 목숙穆叔이 회합에서 돌아와 맹효백孟孝伯을 보고서 말하기를 “조맹趙孟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그 말이 구차하여 백성의 주인[民主]답지 않고, 또 나이가 채 50도 되지 않았는데 수다를 떠는 것이 8, 9십 먹은 늙은이 같으니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조맹이 죽는다면 진晉나라의 집정執政이 될 사람은 아마도 한자韓子(韓起)일 것이다.
그대는 어찌 계손季孫에게 ‘한자는 우호友好를 맺을 만한 사람이니, 군자君子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하니, 맹효백이 말하기를 “인생人生이 얼마나 산다고 누군들 구차苟且함이 없겠는가?
아침에 저녁 일을 예측豫測할 수 없으니 우호友好를 맺는다 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목숙이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맹손孟孫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조맹의 구차함을 말하였는데 맹손은 구차함이 그보다 더 심하였다.”라고 하였다.
조맹趙孟이 유정공劉定公에게 “우리는 목전目前의 안일만을 탐하며 녹祿이나 축낼 뿐, 아침에 저녁 일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로 대답하다
傳
소공昭公 원년元年, 천왕天王(周 경왕景王)이 유정공劉定公을 영潁으로 보내어 조맹趙孟을 위로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낙수雒水 가에 머물렀는데, 유자劉子가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우禹임금의 공적功績이시여!
우임금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아마 물고기가 되었을 것이오.
나와 그대가 면관冕冠을 쓰고 예복을 입고서 백성을 다스리고 제후를 통치하는 것이 모두 우임금의 덕택이니, 그대는 어찌 먼 옛날에 〈생민生民을 위해 치수治水하였던〉 우임금의 공덕功德을 계승하여 크게 백성들을 보호保護하지 않으시오?”라고 하니, 조맹趙孟이 대답하기를 “이 늙은이는 죄를 범할까만을 두려워하니 어찌 먼 앞일을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목전目前의 안일만을 탐하며 녹祿이나 축낼 뿐, 아침에 저녁 일도 생각하지 못하니, 어찌 먼 앞일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유자劉子가 돌아가서 천왕天王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속담에 이른바 ‘늙으면 지혜로워지지만 노망이 뒤따른다.’는 말은 아마도 조맹趙孟의 경우를 이른 듯합니다.
그는 진晉나라의 정경正卿으로 제후諸侯의 일을 주재主宰하면서 노복奴僕처럼 아침에 저녁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는 신神과 백성에게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神이 노하고 백성이 배반할 것이니 어찌 장구長久할 수 있겠습니까?
조맹趙孟은 다시 명년明年을 맞지 못할 것입니다.
신神이 노하면 그 제사를 흠향하지 않고, 백성이 배반하면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사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또 어찌 명년明年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단자單子의 시선視線이 아래를 향하고 말을 느리게 하다
傳
소공昭公 11년, 단자單子(單成公)가 척戚에서 한선자韓宣子를 회합會合할 때 시선視線이 아래로 향하고 말이 느렸다.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단자는 아마도 머지않아[將] 죽을 것이다.
조정朝廷에는 품계品階에 따라 정定해진 위치位置가 있고 야외野外의 회합會合에는 각자의 위치位置를 표시表示한 표지表識가 있으며, 옷에는 깃이 있고 띠에는 대구帶鉤가 있다.
조현朝見과 회견會見 때의 말은 반드시 표저表著의 위치位置까지 들려야 하니 이는 일의 차서次序를 밝히기 위함이고, 시선視線은 옷깃과 대구帶鉤 사이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니 이는 용모容貌를 단정히 하기 위함이다.
말로써 명령命令을 발표發表하고 용모容貌로써 태도態度를 표명表明하니, 말과 용모에 잘못이 있으면 일에 착오錯誤가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단자는 왕조王朝의 관장官長이 되어 회합會合에 와서 일을 명命하면서, 시선視線은 띠 위로 올라가지 않고 말소리는 한 걸음 밖에서는 들리지 않으며, 용모는 단정하지 않고 말은 분명하지 않았다.
용모가 단정하지 않으면 공손하지 않고, 말이 분명하지 않으면 조리에 맞지 않는다.
이는 자신을 지킬 원기元氣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송공宋公이 숙손소자叔孫昭子와 이야기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리다
傳
소공昭公 25년, 송공宋公이 연회宴會를 열어 소자昭子를 접대할 때 〈신궁新宮〉 시詩를 읊으니 소자는 〈차할車轄〉 시詩를 읊었다.
이튿날 연회할 때 술을 마시고 즐거워서 송공이 소자를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고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다.
이때 악기樂祁가 〈연회의 진행進行을〉 도왔는데, 물러나와 사람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송군宋君과 숙손叔孫이 모두 죽을 것이다.
내 듣건대 ‘즐거울 때 슬퍼하고 슬플 때 즐거워하는 것은 모두 상심常心을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마음의 정상精爽(정신)을 혼백魂魄이라 하는데, 혼백이 떠났으니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傳
소공昭公 32년, 11월에 진晉나라 위서魏舒와 한불신韓不信이 경사京師로 가서 제후諸侯의 대부大夫들과 적천狄泉에서 회합會合하여 옛 맹약盟約을 중수重修하고, 또 성주成周에 성을 쌓으라고 명령命令하였다.
이때 위자魏子가 남면南面해 앉아서 명을 내리니, 위衛나라 대부 표혜彪徯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하의 몸으로 참람하게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제후諸侯에게 대사大事를 명하였으니, 이는 그의 직임職任이 아니다.”
주자邾子가 옥玉을 높이 들고 노공魯公은 옥玉을 받는 자세가 낮았다
傳
정공定公 15년, 봄에 주邾 은공隱公이 와서 조현朝見하니 자공子貢이 두 나라 임금이 예禮를 행하는 것을 보았다.
주자邾子는 옥玉을 든 손이 너무 높이 올라가서 그 얼굴이 위로 향하고, 노魯 정공定公은 옥玉을 받는 자세가 너무 낮아서 그 얼굴이 아래로 숙여졌다.
자공이 말하기를 “예禮를 행하는 모습을 보건대 두 임금은 모두 사망死亡할 것이다.
예禮는 사생死生과 존망存亡의 주체主體이니, 좌우左右로 주선周旋(선회)하고 나아가고 물러갈 때에 부앙俯仰하는 것을 가지고 이에서 생존生存을 취하느냐 사망死亡을 취하느냐를 알 수 있고, 조회朝會‧제사祭祀‧상사喪事‧융사戎事를 가지고 이에서 생존하느냐 사망하느냐를 볼 수 있는데, 지금 정월正月에 서로 조현朝見하면서 모두 법도에 맞지 않았으니 마음을 이미 잃은 것이다.
조회朝會[嘉事]가 예禮[體]에 맞지 않았으니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자세가 높아 얼굴이 위로 향한 것은 교만驕慢이 드러난 것이고, 자세가 낮아 얼굴이 아래로 숙여진 것은 태타怠惰[替]가 드러난 것이다.
교만驕慢은 난동亂動에 가깝고, 태타怠惰는 질병疾病에 가깝다.
우리 임금이 주인主人이시니 아마도 먼저 사망死亡하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사賜(子貢)는 불행不幸하게도 말이 맞았으니, 이것이 사賜로 하여금 말 많은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춘추시대에는 결맹結盟과 회동會同, 빙문聘問과 연향宴享에서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의 오르고 내리며 말하고 침묵하는 절도節度를 보고서 그 사람의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의 조짐으로 삼았다.
이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상도가 아니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지만 나는 도리어 의심스러운 바가 있다.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은폐된 곳의 행위를 살피는 데 있고 드러난 곳의 행위를 살피는 데 있지 않으며, 어두운 곳의 행위를 살피는 데 있고 밝은 곳의 행위를 살피는 데 있지 않다
注+이 글은 논란을 반복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문체이니, ‘은현회명隱顯晦明’ 4자가 핵심이다..
드러난 곳과 밝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조심하고
注+‘현명顯明’은 사람들이 모두 보는 곳이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은폐된 곳과 어두운 곳에서는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는다
注+‘은회隱晦’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조심하는 곳에서는
注+드러나고 밝은 곳을 이른다. 비록
소인小人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자신을 단속할 줄 알지만
注+일시적으로 바로잡고 단속하는 것은 소인小人의 능사이다.,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는 곳에서는
注+은폐되고 어두운 곳을 이른다. 비록
군자君子라 하더라도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注+평소에 신독愼獨하는 것은 군자君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이는 조심하면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주의하지 않을 때의 행위를 살피지 않고 한갓 그가 주의할 때의 행위만을 관찰한다면, 화열和悅한 낯빛과 공손한 태도를 꾸미는 위선자僞善者가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니,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대중을 대할 때의 모습이 반드시 한가로이 홀로 있을 때의 모습보다 엄숙하고
注+‘임중臨衆(涖衆)’은 드러나고 밝은 때이며, ‘연한燕閒’은 은폐되고 어두운 때이다., 빈객을 대할 때의 언어가 반드시 친근한 사람을 대할 때의 언어보다 장엄한데
注+‘대빈對賓’은 드러나고 밝은 때이며, ‘사닐私昵’은 은폐되고 어두운 때이다., 하물며
결맹結盟이나
회동會同이나
빙문聘問이나
연향宴享할 때에
注+삽혈歃血하고 약속하는 것을 ‘맹盟’이라 하고, 서로 모이는 것을 ‘회會’라 하고, 사신을 파견하여 서로 문안하는 것을 ‘빙聘’이라 하며, 예법에 맞게 술을 마시는 것을 ‘향享’이라 한다. 이때는 ‘이중涖衆’이나 ‘대빈對賓’할 때보다 더욱 중요하다.종경鐘磬 등의
악기樂器가 뜰에 벌여 있고
注+그때에 뜰에는 금석金石의 악기가 있다.변두籩豆 등의
예기禮器가
석간席間에 벌여 있으며
注+자리에는 변두籩豆의 예기禮器들이 있다.,
빈상擯相이 앞에 있고
注+‘빈擯’을 두어 빈객을 인도하게 하고, ‘상相’을 두어 군주를 돕게 한다.삼읍三揖이
정하庭下에 있는 때이겠는가?
注+경卿‧대부大夫‧사士가 모두 뜰아래에 있다. 《주례周禮》 〈사사司士〉에 “고孤와 경卿은 한 사람씩 읍하고, 대부大夫는 상上‧중中‧하下의 등급이 같은 자끼리 함께 읍하고, 사士는 고孤‧경卿‧대부大夫의 양곁에서 읍한다.”라고 하였다.
아침에
당상堂上에서 실수한 것이 있으면
注+단旦은 아침이다. ‘당상堂上에서 예를 행할 때에 만일 실수한 행동이 있다면’이라는 뜻이다. 저녁이면 온 나라에 전해져 비웃음거리가 되고
注+‘모暮’는 해질녘이다. 그 소리가 온 나라에 전해져서 사람들이 모두 비웃는다는 말이다., 잘못한 한마디 말이
注+예를 행할 때를 말한다.만인萬人의 비난을 부른다
注+‘만구萬口’도 온 나라 사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영예를 좋아하고 모욕을 싫어하니
注+실수하거나 말을 잘못하여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욕됨이 심한 것이니 사람들은 모두 이를 싫어할 줄 안다는 말이다. 어찌 잠시인들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注+소인들은 더욱 스스로 행실을 신칙할 줄 알아야 하는 뜻을 다 드러내었다.
그런데 지금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재된 것을 살펴보면
注+본편의 출처에 인용하였다., 〈당시
각국各國 사신使臣들의〉 좌우로
주선周旋하고
읍양揖讓하는 것과
언어言語와
용모容貌가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것들이
注+‘치嗤’는 비웃는 것이고, ‘지指’는 비난하는 것이다. 그
책冊에 끊임없이 보이니
注+이와 같이 예법을 잘못 행한 사례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매우 많이 기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리로 보아 이해가 되지 않는다
注+이상의 한 단락은 모두 의심스러운 부분을 힐난하였다..
나는 그 까닭을 알았다
注+이 이하는 앞 단락의 의심하여 힐난한 것에 대한 응답이다..
대체로 사람의
상정常情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악행惡行을 하고
注+은폐되고 어두운 곳에서 방종하고 방자한 짓을 할 때를 이른다. 남이 보는 곳에서는
선행善行을 하여
注+드러나고 밝은 곳에서 속이고 꾸미는 짓을 할 때를 이른다., 세상을 속이고
간계奸計를 부리고자 한다
注+소인小人의 정황을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자신을 반성하여 가까이 자기 몸에서 비유를 취하지 않는가?
注+일신一身의 병에 가탁하여 윗글의 뜻을 비유한 것이다.
간肝에 병이 생기면
시력視力이 떨어지고
注+의서醫書에 간은 눈에서 살핀다고 하였다.,
신장腎臟에 병이 생기면
청력聽力이 떨어지고
注+의서醫書에 신장은 귀에서 살핀다고 하였다.,
비장脾臟에 병이 생기면 입맛이 떨어지고
注+의서醫書에 비장은 입과 기운이 통한다고 하였다.,
심장心臟에 병이 생기면 혀가 말라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注+의서醫書에 심장은 말소리라고 하였다..
간과 신장과 비장과 심장은 모두
체내體內에 있어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이고
注+간‧신장‧비장‧심장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것으로 사람이 은폐되고 어두운 곳에 있을 때를 비유하였다., 눈과 귀와 입과 혀는
체외體外에 있어서 남이 볼 수 있는 것이다
注+눈‧귀‧입‧혀는 사람들이 똑같이 보는 것이므로, 이것으로 사람이 드러나고 밝은 곳에 있을 때를 비유하였다..
남이 보지 못하는 곳에 병이 생기면 그 병이 반드시 남이 보는 곳에 드러난다
注+이 편 첫머리의 말과 조응하여 주의主意를 발명하였다..
그러므로 은폐와 드러남, 어두움과 밝음은 본래 별개의 이치가 아니다
注+‘은隱’과 ‘현顯’이 별개의 이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은폐된 곳에 감춰진 것이 드러난 장소에 노출되고, 어두운 곳에 쌓인 것이 밝은 장소에 나타난다
注+‘회晦’와 ‘명明’이 별개의 이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공公‧
후侯‧
경卿‧
대부大夫들은
注+본편을 단언하는 부분이다.암실暗室과
옥루屋漏에서도 삼가는
학문學問에 힘쓴 적이 없고,
결맹結盟이나
회동會同이나
빙문聘問이나
연향宴享할 때에 미쳐 비록 힘을 다해 자기의
불선不善을 숨기고자 하였으나
注+‘위선어인지소견爲善於人之所見(남이 보는 곳에서 선행을 한다.)’에 호응한다. 끝내 숨기지 못하였다
注+사람이 몸 안에 병이 들면 몸 밖에 드러나는 것과 같다..
‘
삽혈이망歃血而忘’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잊은 것이고
注+진陳나라 오보五父의 일이다., ‘
수옥이타受玉而惰’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나태해진 것이고
注+진晉 혜공惠公의 일이다., ‘
주악이탄奏樂而歎’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나온 것이고
注+조曹나라 태자太子의 일이다., ‘
상어이읍相語而泣’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것이다
注+송宋 평공平公과 숙손소자叔孫昭子의 일이다. ○ 네 가지의 자신도 모르게 잊은 것은 숨길 수 없다는 뜻을 드러내 밝힌 것이다..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패옥佩玉을 울릴 때를 당하여
注+결맹結盟‧회동會同‧빙문聘問‧연향宴享할 때를 이른다.근엄謹嚴하고
경건敬虔한 모습이 스스로
예禮에 맞는다고 생각하였고
注+애써서 꾸미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이 뒤에서 자기를 비난하는 줄은 모른 것이다
注+비록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곁에서 보는 자들이 모두 보고 비난한다는 말이다..
평소 한가할 때에
암실暗室과
옥루屋漏에서 한
행위行爲가
注+평소 악행을 하는 것은 몸속에 병이 든 것과 같다. 이때에 이르러 마치 밝은 거울을 만난 것처럼 다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注+병이 몸 밖에 드러난 것과 같다., 나는 이로 인해 드러난 곳은
은폐隱蔽된 곳의 그림자이고, 밝은 곳은 어두운 곳의 메아리라는 것을 알았다
注+은폐된 것은 형체가 드러남과 같으니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고, 어둠은 소리로 밝힘과 같으니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것과 같다..
군자가 대중에게 죄를 짓지 않고자 하면
注+결미結尾에 바른 뜻으로 귀결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에 예법禮法에 맞지 않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반드시 먼저 홀로 있을 때에 죄를 짓지 않아야 하고
注+평소에 반드시 신독愼獨해야 한다., 조정에 죄를 짓지 않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집에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만약 하루 동안의
경신敬愼으로 평생 동안의
사악邪惡을 덮고자 한다면
注+세상을 속이고 간계奸計를 부리는 자를 말한다. 이는 근원을 흐리게 하고서 하류가 맑기를 바라고, 뿌리를 찍어내고서 지엽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注+비유를 들어 주의主意를 다 드러내었다..
비록 그러하나
注+남은 뜻을 보충하는 말이다. 춘추시대에 곁에서 보고서 사사로이
평의評議한 사람은
注+예법禮法에 맞지 않음을 비난하고 의론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단지
고사瞽史의
학學을 한 사람들뿐이었으되
注+예법禮法에 맞지 않는 일을 가지고 그 당사자가 죽거나 망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했으니, 고사瞽史가 남의 화복禍福을 점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당시 군주나 대부들의〉
과오過誤와
위법違法이
注+예법禮法에 맞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미 그들의 눈을 피하지 못하였으니
注+오히려 비난하고 의론하는 자들이 보게 됨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도리를 아는 군자가 그 곁에 있었다면
注+가령 도道를 아는 군자가 곁에 있었다면 〈실례失禮의 상황을〉 본 것이 반드시 고사瞽史보다 못하였겠는가? 또 어떠하였겠는가?
注+결구結句에 미진한 뜻을 함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