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二十五年
이라 春
에 衛人伐邢
하니 이라가 하다
正月丙午
에 衛侯燬滅邢
이라하니 同姓也
라 故名
하다 라하다
注
[主意]謂禮至行詐以滅同姓하니 其惡大矣라 然禮至之惡이 非以銘諸器而不泯實이요 以載於左氏之傳而不泯實이라
物莫壽於金石
注+物莫壽於金石:二物堅而不朽이라 言於千載之上而傳於千載之下者
는 皆託金石以不朽
注+皆託金石以不朽:金石不朽 刻其銘於金石者 亦與之而不朽라
然金有時而銷
注+然金有時而銷:銷 鎔也하고 石有時而泐
注+石有時而泐(륵):音勒 出周禮考工記 泐 破裂也하니 其所託者
도 未必眞可恃也
注+其所託者 未必眞可恃也:以其銷泐 故不可恃라
一得其託
이면 不銷不泐
하야 視古今如
暮者
는 果何物
注+一得其託……果何物:設問可託以不朽者 果爲何物고 曰 君子之論是也
注+曰 君子之論是也:此句一篇主意라
天下不見湯之盤
注+天下不見湯之盤:盤 沐浴之器也 言湯之盤 今已不存이로되 而能誦日新之銘者
는 託於大學也
注+而能誦日新之銘者 託於大學也:大學載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言有大學之書 則盤雖不存 而其銘尙存요
天下不見周之量
注+天下不見周之量:量者 也 言周之量 今已不存이로되 而能誦文思之銘者
는 託於周官也
注+而能誦文思之銘者 託於周官也:周禮冬官考工記氏爲量 其銘曰 時文思索 允臻其極云云 言有周禮之書 則量雖不存 而其銘尙存라
是則銘託於湯盤者
가 反不如託於大學之堅
注+是則銘託於湯盤者 反不如託於大學之堅:盤有存亡 大學之書無存亡이요 銘託於周量者
가 反不如託於周官之固
注+銘託於周量者 反不如託於周官之固:量有存亡 周官之書無存亡라
君子之論其可恃
가 豈金石比耶
注+君子之論其可恃 豈金石比耶:繳結上一段意 可恃字應前아 善託於君子之論
은 固不朽
注+善託於君子之論 固不朽:轉入本題 盤銘量銘 皆善之託요 惡託於君子之論
도 亦不朽
注+惡託於君子之論 亦不朽:左氏所載 禮至之銘 惡之託也라
衛禮至行險僥倖
注+衛禮至行險僥倖:而取其國
注+而取其國:掖殺國子 而滅其國코도 恬不知恥
注+恬不知恥:不知大惡之可羞恥하고 反勒其功於銘
하야 以章示後世
注+反勒其功於銘 以章示後世:銘見本題註하니
人皆以禮至之惡
이 因金石而遺臭萬世也
注+人皆以禮至之惡 因金石而遺臭萬世也:常人之論如此 晉桓溫曰 丈夫不能流芳百世 亦當遺臭萬年나 抑不知禮至之惡
이 雖因金石而傳
注+抑不知禮至之惡 雖因金石而傳:雖因所銘之器而傳이나 不因金石而遠
注+不因金石而遠:銘之於器 雖傳而不能久이라
自今而求禮至之所銘者
注+自今而求禮至之所銘者:左傳但載其銘 而不言其何器컨대 鼎耶
아 鍾耶
注+鼎耶鍾耶:或銘於鼎 或銘於鐘아 敦耶
注+敦(대)耶:敦 音對 禮器也아 鉶耶
注+鉶(형)耶:鉶 音邢 鉶 羹之鼎也 或銘於敦 或銘於鉶아 而已滅已沒
하니 化爲飛塵
하야 蕩爲太虛
하야 無絲髮之存矣
注+自今而求禮至之所銘者……無絲髮之存矣:禮至所銘 雖不知爲器 然其器已泯滅久라
物不存則銘不存
注+物不存則銘不存:器所以載其銘하고 銘不存則惡不存
注+銘不存則惡不存:銘所以著其惡이라 然禮至之惡
은 播在人口
注+然禮至之惡 播在人口:萬世之下 人皆譏笑하야 初不隨物而朽
注+初不隨物而朽:器已朽而惡不朽하니
吾是以知禮至之所以遺臭萬世者
注+吾是以知禮至之所以遺臭萬世者:應前가 非金石也
注+非金石也:非因所銘之器而傳요 君子之論也
注+君子之論也:實因左氏之書 傳之而不朽也라 使幸而不爲左氏所載
면 則銘亡而惡亦亡矣
注+使幸而不爲左氏所載 則銘亡而惡亦亡矣:發明主意極明니
豈至於今日猶爲人詆訶而不已耶
注+豈至於今日猶爲人詆訶而不已耶:詆訶 排斥也아 見辱於市人
注+見辱於市人:譬如爲市井人所辱은 越宿而已忘
注+越宿而已忘:人不傳其事故也이어니와 見辱於君子
注+見辱於君子:若君子取人惡事 而筆之於書는 萬世而不泯
注+萬世而不泯:以其書愈久而愈傳也이라
君子所以筆誅口伐於蓽門圭竇之間
注+君子所以筆誅口伐於篳門圭竇之間:篳門 以竹爲門也 圭竇 穿墻穴以出入 其銳如圭之首也 此貧賤者之所居也 筆誅口伐 謂以筆削議論紀錄人之罪惡也하야 而老姦巨猾心喪膽落者
注+而老姦巨猾心喪膽落者:如孔子作春秋而亂臣賊子懼는 恃此權也
注+恃此權也:以筆削之嚴 雖無權 猶有權也라
遇伯樂者
는 駑駘之不幸
注+遇伯樂者 駑駘之不幸:伯樂識馬 故無才之馬 遇之爲不幸이요 遇匠石者
는 樗櫟之不幸
注+遇匠石者 樗櫟之不幸:匠石識木 故不材之木 遇之爲不幸이요 遇左氏者
는 禮至之不幸
注+遇左氏者 禮至之不幸:禮至不幸而遇左氏 遭其紀錄 而惡不泯이라
向若禮至之事
가 偶逃左氏之紀錄
이면 其辱亦必有時而止矣
니 是擧衛國之嘲哂
注+是擧衛國之嘲哂:嘲 罵也 哂 笑也이 不如左氏一字之辱也
注+不如左氏一字之辱也:嘲哂 見於一時 左氏傳於萬世라
禮至之辱
注+禮至之辱:承上文辱字說은 雖他人爲之汗顔泚顙
注+雖他人爲之汗顔泚(체)顙:泚 亦汗也 顙 額也 言他人代禮至惶恐也이나 然至曷嘗自以爲辱哉
注+然至曷嘗自以爲辱哉:轉一意 言禮至之無恥아
想其顯書深刻之時
注+想其顯書深刻之時:明書掖殺國子之事 深刻其銘於器에 未必不願君子之紀錄也
注+未必不願君子之紀錄也:他人以爲惡 而禮至以爲功故也 發出禮至心術라 以辱爲榮
하야 其無愧而不知恥
注+以辱爲榮 其無愧而不知恥:用荘子句하니 盖不足多
注+盖不足多(矣)[責]:轉生下意이라
吾切怪戰國秦漢以來
注+吾切怪戰國秦漢以來:春秋之後로 用兵者反覆狙詐
注+用兵者反覆狙詐:皆以詭計戕人滅國가 大率皆禮至之比
注+大率皆禮至之比:如禮至者 不但一人로되 不特其人自矜其功
注+不特其人自矜其功:亦如禮至爲銘之意이요
而作史者亦從而咨
頌嘆之
하야 以誇示來世
注+而作史者亦從而咨(羨)[美]頌嘆之 以誇示來世:左氏以禮至爲惡而譏之 後世作史者 反以此等爲功而美之하니라 甚矣
라 風俗之日薄也
注+甚矣 風俗之日薄也:感嘆人心不古 而風俗薄惡여
春秋之時
에 有一禮至
注+春秋之時 有一禮至:僅有一人 如此無恥로되 人固已指爲異
注+人固已指爲異:時人以爲可怪之事하야 特書之以爲笑端
注+特書之以爲笑端:左氏直書其惡 使觀書者 付之一笑하니 孰知後世爲禮至者
가 將千百而未已耶
注+孰知後世爲禮至者 將千百而未已耶:豈知後世效禮至所爲者 萬無窮也아
又孰知後世執筆而記之者
도 亦禮至之徒耶
注+又孰知後世執筆而記之者 亦禮至之徒耶:豈知後世作史者 誇美此等惡事 其心術盖與禮至一也아 甚矣
라 風俗之日薄也
注+甚矣 風俗之日薄也:重言之 以寓感慨不已之意여
抑吾有所深懼焉이로라 讀左氏之書者는 夫人而能笑禮至之妄也나 戰國秦漢以來爲將者는 其視禮至相去幾何아
然史之所載가 閎麗雄偉하야 可喜可愕하니 讀史者奪於其辭하고 而眩於其實하야 未必不快然慕之矣라
同是事也로되 讀左氏之書면 則隨左氏而輕之하고 讀後世之史면 則隨史官而重之하니 吾心之眞輕重安在耶아
今日之遊於書와 他日之遊於書가 一也로되 遊衆正之間이면 則見貪冒者賤之而不爲하고
遊衆邪之間이면 則見貪冒者慕之而欲爲라 人正亦正하고 人邪亦邪라
正者難見하고 而邪者易逢하니 終必爲小人之歸而已矣라 吁라 可畏哉ㄴ저
傳
僖公 25년, 봄에 衛人이 邢나라를 토벌하니 禮至 형제가 國子를 따라 城을 巡視하다가, 두 사람이 좌우에서 國子의 겨드랑이를 끼고 성 밖으로 나와 殺害하였다.
經에 “正月 丙午日에 衛侯 燬가 邢나라를 滅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同姓國을 멸하였기 때문에 ‘燬’라고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禮至가 銘文을 짓기를 “내가 國子를 끼고 나와 죽이니 누구도 감히 나를 막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注
이 글에서 말하였다. “禮至가 속임수를 써서 同姓國을 멸하였으니 그 악행이 크다. 그러나 禮至의 악행이 그릇에 새겨졌기 때문에 그 악행의 사실이 없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春秋左氏傳≫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악행의 사실이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만물 중에 쇠나 돌보다 장수하는 것은 없다.
注+두 물건은 견고하여 썩지 않는다는 말이다. 천 년 전에 말한 것이 천 년 뒤에 전해지는 것은 모두 쇠나 돌에 의탁해서 썩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注+쇠와 돌은 썩지 않으니 쇠와 돌에 새긴 명문도 그와 함께 썩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쇠도 녹을 때가 있고
注+銷는 녹는다는 뜻이다 돌도 깨질 때가 있으니
注+泐은 음이 ‘勒’이다. ≪周禮≫ 〈考工記〉에 나오니, 泐은 깨지고 부서진다는 뜻이다. 쇠나 돌에 의탁한 것도 꼭 믿을 것은 못 된다.
注+녹고 깨지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번 의탁하면 녹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아서
古今이
朝夕처럼 보이는 것은 과연 무슨 물건인가?
注+의탁하면 썩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슨 물건인지를 설문한 것이다. 바로 군자의
言論이다.
注+이 구절이 이 한 편의 主意이다.
천하 사람들이
商湯의
浴盤을 보지는 못했어도
注+盤(욕조)은 沐浴할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湯王의 욕조가 지금은 이미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
日新’의
銘文을 욀 수 있는 것은 〈그 명문이〉 ≪
大學≫에 의탁해 있기 때문이고,
注+≪大學≫에 湯王의 욕조에 새겨진 글이 실려 있으니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이다. ≪대학≫의 기록이 있으니 욕조는 비록 남아 있지 않지만 그 銘文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湯德日新圖
천하 사람들이
周나라의
量器를 보지는 못했어도
注+量이란 龠‧合‧升‧斗‧斛이다. 周나라의 量器는 지금 이미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
文思’의 명문을 욀 수 있는 것은 〈그 명문이〉 ≪
周禮≫에 의탁해 있기 때문이다.
注+≪周禮≫ 〈冬官 考工記 栗氏〉에 “栗氏가 量器를 만들었다. 그 명문에 ‘이에 文德을 지닌 군왕이 백성을 〈위해 度量의 법칙을 세울 것을〉 생각하여 진실로 그 표준을 이루셨도다. 운운’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周禮≫의 기록이 있으니 量器는 비록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명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명문을
商湯의
浴盤에 의탁한 것이 도리어 ≪대학≫에 의탁한 것만큼 견고하지 못하고,
注+욕조는 남아 있거나 없어짐이 있으나, ≪大學≫의 글은 남아 있거나 없어짐이 없다는 말이다. 명문을
周나라의
量器에 의탁한 것이 도리어 ≪주례≫에 의탁한 것만큼 확고하지 못하다.
注+量器는 남아 있거나 없어짐이 있으나, ≪周官(周禮)≫의 글은 남아 있거나 없어짐이 없다는 말이다.
군자의 언론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어찌 쇠나 돌에 비할 바이겠는가.
注+앞 한 단락의 뜻을 묶어 맺었으니 ‘可恃’자가 앞글에 호응한다. 善行은 군자의 언론에 의탁하여 본래 썩지 않고,
注+전환하여 〈여기부터〉 본편으로 들어간다. 욕조에 새기는 것과 量器에 새기는 것은 모두 善을 기탁한 것이다. 惡行도 군자의 언론에 의탁하여 또한 썩지 않는다.
注+≪春秋左氏傳≫에 기록된 禮至의 명문은 惡을 기탁한 것이다.
衛나라
禮至는 위험한 것을 행하면서 요행을 바라
注+형제가 속임수로 邢나라에서 벼슬을 구한 것을 이른다. 남의 나라를 취하고도
注+國子의 겨드랑이를 끼고 나와 殺害하고 邢나라를 멸하였다는 말이다.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注+부끄러워할 만한 큰 악행인 줄 모른다는 말이다. 도리어 그
功을
銘文에 새겨 후세에 밝게 보였으니,
注+銘文은 본편 ≪春秋左氏傳≫ 주에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禮至의 악행이 쇠나 돌로 인해 더러운 이름이
千秋에 남게 되었다고 하였다.
注+보통 사람의 의론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晉나라 桓溫은 “대장부가 아름다운 명성을 百世에 남길 수 없으면, 또한 더러운 이름이라도 만 년토록 남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禮至의 악행이 쇠나 돌로 인하여 전해졌으나
注+‘비록 명문이 새겨진 그릇으로 인해 전해지더라도’의 뜻이다. 쇠나 돌로 인하여 오래 전해지지 못할 것임을 모른 것이다.
注+그릇에 명문을 새겨 비록 전해지더라도 오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禮至가 명문을 새긴 기물을 추구해보면
注+≪春秋左氏傳≫에는 다만 銘文만 기록되어 있고 그 그릇이 어떤 그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鼎일까?
鍾일까?
注+‘혹은 鼎에 새겼을까? 혹은 鐘에 새겼을까?’의 뜻이다. 敦일까?
注+敦의 음은 ‘對’이니 禮器이다. 鉶일까?
注+鉶의 음은 ‘邢’이니 鉶은 국을 끓이는 솥이다. ‘혹은 敦에 새겼을까? 혹은 鉶에 새겼을까?’의 뜻이다. 〈무엇이 되었건〉 이미 다 없어졌으니 먼지가 되어 드넓은 허공에 날아다녀 한 올의 머리터럭만큼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注+禮至가 새긴 데가 비록 어느 그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그릇이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물건이 남아 있지 않으면 명문도 존재하지 않고,
注+그릇은 그 명문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이 존재하지 않으면 악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注+명문이 그 악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禮至의 악행은 사람들의 입에 전파되어
注+만 세대가 흘렀으나 사람들이 모두 비난하고 비웃는다는 말이다. 애당초 물건에 따라 썩지 않았으니,
注+그릇은 이미 썩어 없어졌으나, 惡行은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이로 인해
禮至가 더러운 이름을 천추에 남기게 된 것은
注+앞글에 호응한다. 쇠나 돌 때문이 아니고,
注+새긴 그릇으로 인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君子의 언론 때문임을 알았다.
注+실제로 左氏의 기록으로 인하여 전해져서 썩어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령 요행히 ≪
春秋左氏傳≫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명문이 없어져 악명도 없어졌을 것이니,
注+主意를 밝힌 것이 매우 분명하다.
어찌 오히려 지금까지 사람들이 비난해 마지않겠는가?
注+‘詆訶’는 배척한다는 뜻이다. 저자 사람들에게 당한 모욕은
注+비유하자면 市井의 사람에게 욕을 받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룻밤을 지나면 잊히지만,
注+사람들이 그 일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자에게 당한 모욕은
注+군자의 경우는 사람의 악한 사실을 찾아 그것을 서적에 쓴다는 말이다. 만세토록 없어지지 않는다.
注+서적은 오래될수록 더 전해진다는 말이다.
군자가 벽을 뚫어 문을 낸 오두막의 방에 앉아서 문자와 언어로써
誅伐하여
注+篳門은 댓가지를 엮어 만든 문이다. 圭竇는 담에 구멍을 뚫어 출입하는 곳인데 뽀족한 모양이 홀의 머리 부분 같으니 이는 빈천한 자들이 사는 곳이다. ‘筆誅口伐’은 다른 사람의 罪惡을 의론하여 筆削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크게 간악하고 교활한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注+孔子가 ≪春秋≫를 짓자 亂臣賊子가 두려워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권한을 믿기 때문이다.
注+筆削을 엄중하게 하니 비록 권한이 없더라도 권한이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伯樂을 만난 것은 노둔한 말의 불행이고,
注+伯樂이 말의 재주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재주 없는 말이 그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라는 말이다. 匠石을 만난 것은 가죽나무의 불행이며,
注+匠石이 재목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재목이 아닌 나무가 그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라는 말이다. 左氏를 만난 것은
禮至의 불행이다.
注+禮至는 불행하게도 左氏를 만나 기록을 당해서 惡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때 만약
禮至의 일이 우연히
左氏의 기록을 피했다면 그의 치욕 또한 반드시 그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온
衛나라 사람들이 비웃은 것이
注+‘嘲’는 욕하는 것이고, ‘哂’은 비웃음이다. 左氏가 한 글자로 모욕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注+욕과 비웃음은 한때에 받는 것이지만 左氏의 기록은 만세토록 전해지는 것이다.
禮至의 치욕은
注+윗글의 ‘辱’자를 이은 말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도 그를 위해 얼굴에 식은땀을 흘렸으나,
注+‘泚’도 땀의 뜻이다. 顙은 이마이니, 다른 사람이 禮至를 대신하여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禮至는 언제 스스로 치욕으로 여긴 적이 있었던가?
注+또 다른 뜻으로 전환하여 禮至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하였다.
생각건대 〈
國子를 끼고 나와 죽인 일을〉 분명하게 쓰고
注+國子의 겨드랑이를 끼고 나와 죽인 일을 분명하게 쓰고, 그릇에 그 명문을 깊게 새긴 때를 이른다. 〈그릇에
銘文을〉 깊게 새길 때에 군자가 기록해주기를 바라지 않은 것이 아닐 것이다.
注+다른 사람은 악행이라고 여겼으나 禮至는 功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禮至의 마음 씀을 드러냈다. 그는 치욕을 영광으로 여겨 부끄러움이 없고 치욕을 모른 것이니
注+≪莊子≫ 〈在宥〉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크게 꾸짖을 가치도 없다.
注+전환하여 아랫글의 뜻을 제기하였다.
나는
戰國시대와
秦나라‧
漢나라 이래로
注+春秋 이후를 이른다. 군대를 부린 자가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 없고 온갖 속임수를 쓴 것이
注+모두 속임수로 남을 해치고 남의 나라를 멸하였다는 말이다. 대체로 모두
禮至와 흡사한데도
注+禮至 같은 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공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注+이 또한 禮至가 명문을 새긴 뜻과 같다.
史家들도 따라서 찬미하고 감탄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과시한 것을 매우 괴이하게 여겼다.
注+左氏는 禮至가 악행을 하였다고 기롱하였는데, 後世의 史家들은 도리어 이런 것을 功으로 여겨 찬미한다는 말이다. 심하도다. 풍속이 나날이 경박해짐이여!
注+人心이 옛날만 못해 풍속이 야박하고 나쁘게 됨을 느껴 탄식하는 말이다.
春秋 때에는 한 명의
禮至가 있었으나
注+겨우 禮至 한 사람만이 이처럼 부끄럼이 없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미 괴이하다고 지적하여
注+당시 사람들은 괴이할 만한 일이라고 여겼다. 특별히 기록하여 웃음거리로 삼았으니,
注+左氏는 다만 그 惡을 기록하여 기록을 보는 자에게 한번 웃음거리를 주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누가 알았으랴! 후세에
禮至 같은 자가 천 명 백 명에서 그치지 않을 줄을.
注+후세에 禮至의 행동을 본받은 자가 만년토록 무궁하리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또 누가 알았으랴! 후세에 붓을 잡고 기록하는 자도
禮至 같은 무리일 줄을.
注+후세에 史家가 이러한 악행의 일을 자랑하고 찬미하여 그 마음 씀이 禮至와 한가지일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심하도다. 풍속이 나날이 경박해짐이여!
注+거듭 말하여 끝없이 개탄하는 뜻을 부쳤다.
또 나는 깊이 두려워하는 바가 있다. ≪春秋左氏傳≫을 읽는 자는 평범한 사람도 禮至의 망령된 행동을 비웃었는데, 戰國시대와 秦나라‧漢나라 이래로는 장수가 된 자들을 禮至와 비교해보건대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史書에 기록된 것이 화려하고 웅장하여 기뻐할 만하고 경악할 만하니, 역사서를 읽는 자들은 그 文辭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 내용에 눈이 어지러워 흔쾌히 사모하지 않는 자가 없다.
동일한 일인데도 ≪春秋左氏傳≫을 읽으면 左氏를 따라 그를 경시하고, 후세 史書를 읽으면 후대의 史官을 따라 그를 중시하니, 내 마음의 진정한 輕重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 서책에 노니는 것과 후일에 서책에 노니는 것이 한가지이다. 그런데 바른 무리 사이에서 노닐면 탐욕스런 자를 보고 천하게 여겨 그런 일을 하지 않고,
간사한 무리 사이에 노닐면 탐욕스런 자를 보고 사모하여 그런 일을 하고자 한다. 주변 사람이 바르면 자기도 바르고, 주변 사람이 간사하면 자기도 간사하게 된다.
바른 자는 만나기 어렵고 간사한 자는 만나기 쉬우니, 끝내 반드시 小人이 되고 말 것이다. 아! 두렵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