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予屛處東陽之武川
에 이라 出戶而望
에 無來人
이러니
談餘語隙
에 波及課試之文
일새 予思有以佐其
하야 乃取左氏
하야 書理亂得失之蹟
하고 疏其說於下
하니 旬儲月積
에 浸就編帙
하니라
諸生歲時
에 必抄寘楮中
일새 解其歸裝
이면 無虛者
하니라
深痼隱疾은 人所羞道而諱稱者어늘 揭之大塗하야 惟恐行者不閱하고 閱者不播라하니 彼豈靦然忘恥哉리오
予離群而索居가 有年矣라 過而莫予輔也하고 跌而莫予挽也하며 心術之差見聞之誤而莫予正也러니
幸因是書而胸中所存所操所識所習의 毫愆髮謬를 隨筆呈露하야 擧無留藏하고 又幸而假課試以爲媒하고 借逢掖以爲郵하야 徧致於諸公長者之側하니 或矜而鐫하고 或慍而謫하며 或侮而譙리라
《좌씨박의左氏博議》는 학생들의 과시科試를 위해 지은 것이다.
처음 내가 동양東陽의 무천武川에 은거隱居할 때는, 위로는 수림樹林만 보이고 아래로는 계곡溪谷만 보일 뿐, 방문을 나와 아득히 바라보아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반년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차츰 풀을 헤치고 찾아와서 나와 교유하였다.
담화談話하는 사이에 과시문科試文을 언급言及하기에 나는 그들의 필단筆端을 돕기로 생각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치란득실治亂得失의 사적史蹟을 뽑아 기록하고서 그 밑에 논설論說을 붙이기 시작하였는데, 날이 쌓이고 달이 쌓이자 점차 여러 권의 책冊이 되었다.
제생諸生이 명절名節 때나 휴가休暇를 받아 돌아갈 때면 반드시 이 책을 베껴 짐 속에 넣어 가지고 갔기 때문에, 돌아가는 자들의 행장行裝을 열어보면 이 책이 없는 자가 없었다.
또한 이웃에 사는 인척姻戚들이 이 책을 널리 전파傳播하여 책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니 너무 많이 전파되어 회수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가 내가 말을 쉽게 한다고 나무라기에 내가 천천히 대답하였다.
“그대 또한 병을 앓는 이웃 사람이 의사醫師를 찾는 일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깊이 숨긴 고질병은 사람들이 말하기 부끄러워 숨기는 것인데, 〈이웃의 병자病者는〉 그 병을 대로大路가에 게시揭示하고서 지나는 자들이 보지 않을까, 본 자가 널리 전파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고 하니, 저 사람이 어찌 뻔뻔스럽게 부끄러움을 잊어서이겠습니까?
덕德은 내면內面에 축적蓄積하려 하고 병病은 외부外部에 드러내려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무리를 떠나 외로이 생활한 지가 여러 해 되다 보니, 허물이 있어도 나를 보완해주는 이가 없고, 넘어져도 나를 잡아주는 이가 없으며, 용심用心의 잘못과 견문見聞의 오류誤謬를 바로잡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책을 통해 마음속에 보존한 생각, 지키고 있는 의지意志, 알고 있는 지식知識, 익힌 일들을 일정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서술하여 털끝만 한 잘못까지 모두 드러내고 숨기지 않았고, 또 다행히 과시科試를 매파媒婆로 삼고 봉액逢掖(선비)을 우체부郵遞夫로 삼아 여러 장자長者들 곁에 두루 이 책을 전하게 되었으니, 어떤 이는 〈이 책을 보고서〉 가엾게 여겨 가르쳐줄 것이고, 어떤 이는 화를 내어 나무랄 것이고, 어떤 이는 업신여겨 꾸짖을 것입니다.
한 마디 말을 들으면 한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으니 얻는 것이 어찌 많지 않겠습니까?
더욱 널리 전해질수록 병이 더욱 드러나고 이익이 더욱 많아질 것이니 나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습니까?”
그리고서 드디어 이 말을 차례로 서술하여 이 책을 보는 이들에게 고告하노라.
대체로 《춘추春秋》 경문經文의 뜻은 대략이라도 감히 참람하게 논하지 않았고, 〈전문傳文의〉 지엽적인 말과 군더더기 말만을 〈뽑아 논술한 것은〉 거자擧子들의 과시科試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 백공伯恭은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