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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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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을 잡은 자에게 시상施賞할 것을 표문表文
識達事體하고 文亦典刑이라
식견識見사체事體를 통달하였고, 문장 또한 전범典範이 될 만하다.
臣伏見六月八日勅컨대이로되 擒捕未獲으로 陛下悲傷震悼하사 하시고
신이 삼가 6월 8일에 내리신 칙서勅書를 보건대 미친 도적이 재신宰臣상해傷害하였는데도 잡지 못함으로 인해 폐하께서 매우 비통해하시어 침식寢食도 편히 하지 못하시고,
特降詔書하사 明立하야 云有能捉獲賊者 賜錢하고 라하시니이다
특별히 조서를 내려 의 규정을 밝게 세워 “도적을 잡는 자가 있으면 돈 만 을 상으로 주고, 다시 높은 관직에 제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今下手賊等 四分之內 已得其三하니 其餘兩人 蓋不足計니이다
지금 범죄에 가담한 도적의 4분의 3을 이미 잡았으니, 나머지 두 명을 〈잡지 못한 것은〉 따질 것이 못 됩니다.
하야 知自하니 再降明詔하사 絶其하고 又與等官하소서
뒤를 추적하여 왕승종王承宗사주使嗾에서 나온 짓임을 알았으니, 재차 분명한 조서를 내리시어 그의 조청朝請을 금지하시고, 또 왕사측王士則왕사평王士平 등에게 관직을 주소서.
八日之 無不行者로되 獨有賞錢尙未賜給하니 群情疑惑하야 未測聖心이니이다
8일에 내리신 조칙詔勅을 실행하지 않은 것이 없으되 아직 상전賞錢을 주지 않으시니, 민심이 의심하여 성상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聞初載錢置市之日 市中觀者日數萬人 巡繞瞻視하며 咨嗟歎息하고 旣去復來하야 以至日暮라하니이다
듣건대 당초에 상으로 줄 돈을 실어다가 저자거리에 쌓아놓던 날부터 저자에는 구경꾼이 날마다 수만 명씩 모여들어 돈더미 주위를 돌며 바라보면서 감탄을 연발하였고, 갔다가는 다시 와서 해가 저물 때까지 구경하였다고 합니다.
百姓 小人이라 重財輕義ᄅ새 不能深達事體하고 但見不給其賞하고 便以爲朝廷愛惜此錢하야 不守이라하니 自近傳遠이면 無由辨明이니이다
백성百姓소인小人이라서 재물을 중하게 여기고 의리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일의 체통을 깊이 알지 못하고 단지 상을 주지 않는 것만을 보고서 조정이 이 돈을 아껴 언약言約을 지키지 않는다고들 하니, 이 소문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전해진다면 변명할 길이 없습니다.
且出賞 所以求賊이어늘 今賊已誅斬하니 若無人捉獲이면 國家何因得此賊而 承宗何故而 士則士平何故與美官也잇가
상으로 줄 돈을 내어놓은 것은 도적을 잡기 위함인데 이제 도적을 이미 주살誅殺하였으니, 만약 도적을 잡은 사람이 없었다면 국가가 어떻게 이 도적을 잡아 법에 의해 집행執行할 수 있었겠으며, 왕승종王承宗을 어떻게 토벌하고 조청朝請을 금지할 수 있었겠으며, 왕사측王士則왕사평王士平에게 어떻게 좋은 관직을 줄 수 있었겠습니까?
三事旣因獲賊이니이다
이 세 가지 일은 모두 도적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獲賊必有其人이어늘 不給賞錢하시니 實亦難曉니이다
틀림없이 도적을 잡은 사람이 있는데, 상전賞錢을 주지 않으시니, 실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假如聖心獨有所見하야 審知不合加賞이라도 其如天下百姓及後代久遠之人何哉잇가
가령 성상의 심중心中에 혼자만의 소견이 있으시어, 상을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천하의 백성과 먼 후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명하시겠습니까?
況今元濟承宗 尙未擒滅하고 兩河之地 太半未收하고 隴右河西 皆沒戎狄하니 所宜大明하야 使信在言前하야 하야 以圖功利니이다
더구나 지금 오원제吳元濟왕승종王承宗를 아직 잡아 죽이지 못하였고, 하북河北하남河南의 땅을 아직 절반 이상 수복하지 못하였으며, 농우隴右하서河西가 모두 오랑캐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니, 법령法令을 크게 밝혀 말보다 신의信義를 앞세우고서 명령을 내려 정벌군征伐軍을 보내어 공리功利를 꾀하심이 마땅합니다.
況自陛下卽位以來 繼有丕績하사하야 收夏州하고하야 收劍南東西川하며하야 收江東하고하야 收澤潞等五州하며 威德所加 兵不汚刃하고 收魏博等六州하며하야 收易定徐泗濠等五州니이다
더구나 폐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계속해 위대한 공적을 세우시어, 양혜림楊惠琳참살斬殺하고서 하주夏州를 수복하시고, 유벽劉闢을 참살하고서 검남劍南동천東川서천西川을 수복하시고, 이기李錡를 참살하고서 강동江東을 수복하시고, 노종사盧從史를 체포하고서 등 다섯 를 수복하시고, 위엄과 은덕으로 대하시어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등 여섯 를 수복하셨으며, 장무소張茂昭장음張愔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등 다섯 를 수복하셨습니다.
創業已來 列聖功德 未有能高於陛下者 可謂赫赫巍巍니이다
나라를 창업創業한 이후로 어느 열성列聖의 공덕도 폐하의 공덕보다 높은 공덕이 없었으니, 〈폐하의 공덕이야말로〉 전무후무한 빛나고 거룩한 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此由天授陛下神聖英武之德하야 爲巨唐中興之君하고 宗廟神靈所共祐助 勉强不已하야 守之以信이면 而太平不難致리이다
이것은 하늘이 폐하께 신성神聖하고 영무英武을 주어 대당大唐중흥中興시킨 군주君主가 되게 하고, 종묘宗廟신령神靈들께서 함께 도우셨기 때문이니, 끊임없이 노력하시어 신의로써 나라를 지키신다면 옛 땅은 수복할 것도 없고, 태평을 이루기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如乘快馬行平路하야 遲速進退 自由其心하야 有所欲往이면 無不可者리이다
마치 준마駿馬를 타고 평지를 달리는 같아, 지속遲速진퇴進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가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가지 못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於此之時 特宜示人以信이니이다
이러한 때에는 특별히 사람들에게 신의를 보이셔야 합니다.
공자孔子께서는 신의를 보존하기 위해 식량食糧을 버리셨습니다.
人非食不生이로되 尙欲捨生以存信이온 況可無故而輕棄也잇가
사람은 식량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데도 오히려 생존을 버리고 신의를 보존하고자 하셨는데, 하물며 아무 까닭 없이 신의를 가벼이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昔秦孝公用商鞅爲相하야 欲富國强兵하야 行令於國 恐人不信하야 立三丈之木於市南門하고 募人有能徙置北門者 與五十金하리라
옛날에 효공孝公상앙商鞅을 등용하여 승상丞相으로 삼고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자 하여, 이에 관한 법령法令을 반포하려 할 때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세 길 되는 나무를 저자 남문南門에 세워두고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나무를 북문北門으로 옮겨놓는 자가 있으면 50으로 주겠다.” 하였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 효공은 즉시 50금을 주었습니다.
秦人以君言爲必信이라하야 法令大行하야 國富兵强하야 無敵天下니이다
그러자 나라 사람들은 “임금님의 말씀은 반드시 믿을 수 있다.”고 여겨, 법령이 널리 시행되어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해져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三丈之木 非難徙也 徙之 非有功也로되 孝公輒與之金者 所以示其言之必信也니이다
세 길의 나무는 옮기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것을 옮긴 것이 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효공이 즉시 50금을 준 것은 자기의 말이 반드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昔周成王尙小 與其弟叔虞爲戱할새 削桐葉爲珪曰 以晉封汝하노라
옛날에 성왕成王이 어릴 적에 그 아우 숙우叔虞와 장난하며 놀 때 오동잎을 잘라 로 만들어 〈숙우에게 주며〉 “에 너를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其臣史佚 因請擇日하야 立叔虞爲侯하니 成王曰 吾與之戱耳
그 신하 사일史佚이 날을 잡아 숙우를 제후諸侯로 세우기를 청하니, 성왕이 “나는 그와 농담弄談하였을 뿐이오.”라고 하였습니다.
史佚曰 天子無戱言이라
그러자 사일은 “천자에게는 농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니이다 於是 遂封叔虞於晉하니이다
말씀을 하시면 그 말씀을 사관史官사책史策에 기록하고, 예관禮官이 거행하여 성사成事시키고, 악관樂官이 음악에 실어 노래합니다.”라고 하니, 이에 드디어 숙우를 에 봉하였습니다.
옛날에 고조高祖는 황금 4만 근을 내어 진평陳平에게 주어 마음대로 쓰게 하고 출납을 묻지 않고서 항우項羽를 도모하게 하였습니다.
平用金間楚하야 數年之間 漢得天下하니이다
진평이 그 으로 〈나라 간첩을 매수해 역이용하여〉 수년 동안 초나라 군신君臣 사이를 이간하였기에 한나라가 천하를 얻게 된 것입니다.
論者皆言漢高祖深達於利하야 能以金四萬斤致得天下라하나
논평論評하는 자들은 모두 “한 고조가 이해利害에 매우 밝았기 때문에 4만 근의 황금으로 천하를 얻었다.”고들 합니다만,
以此觀之컨대 自古以來未有不信其言而能有大功者 亦未有不費少財而能收大利者也니이다
이상의 일을 통해 보면 예로부터 자기의 말을 지키지 않고서 큰 공을 이룬 자는 없고, 또 작은 재물을 허비하지 않고서 큰 이익을 거둔 자도 없었습니다.
臣於 本無恩義하니 彼雖獲賞이라도 了不關臣이니이다
신은 도적을 고발한 사람과 본래 은정恩情이 있는 사이가 아니니, 저 사람이 상을 받는다 해도 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所以 欲令陛下之信行於天下也
그런데도 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여 귀찮게 해드림을 피하지 않는 것은 폐하의 신의가 천하에 행해지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伏望恕臣之罪하시고 而收其이면 天下之幸이요 非臣之幸也니이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어리석고 비루하며 괴팍하고 무지한 죄를 용서하시고 신의 간절한 충성忠誠과 지극한 성심誠心을 거두어주신다면, 이는 천하의 다행이고 신만의 다행이 아닐 것입니다.
謹奉表以聞하노이다
삼가 표문을 올려 아뢰나이다.
역주
역주1 論捕賊行賞表 : 唐 憲宗 元和 10년(815) 6월 3일에 刺客이 宰相 武元衡을 살해하고 御史中丞 裴度의 머리에 傷害를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며칠이 지나도록 자객을 체포하지 못하자, 6월 8일에 勅書를 내려 자객을 잡은 자에게 만 貫의 돈과 5品의 관직을 내리겠다고 하고는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6월 10일에 王士則과 王士平이, 이 사건은 王承宗의 사주를 받은 張晏 등이 저지른 일이라고 고발하여 장안 등 8인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자객을 체포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賞錢을 내리지 않자, 韓愈가 상전을 내려서 백성들에게 國家의 信義를 보여야 한다며 이 表文을 올렸다. 《新唐書》와 《資治通鑑》에 의하면, 자객을 보내 무원형을 살해하라고 사주한 사람은 淄靑節度使 李師道이다.
역주2 狂賊傷害宰臣 : 唐 憲宗 元和 10년(815) 6월에 刺客이 宰相 武元衡을 살해하고, 御史中丞 裴度를 傷害한 사건을 이른다. 狂은 賊을 욕하기 위해 붙인 말이니, 참으로 미친 것이 아니다. 賊은 남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를 이르니, 刺客‧殺人者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역주3 形於寢食 : 寢食하는 사이에 드러난다는 말인데, 곧 침식도 편히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역주4 條格 : 法의 規定이다.
역주5 萬貫 : 葉錢 천 개를 꿴 꾸러미를 1貫이라 하니, 만 관이면 천만 錢이다. 그러나 천만 錢은 혼자의 힘으로는 며칠을 두고 운반하여도 다 운반할 수 없는 엄청난 돈이니, 상금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주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만 전을 이른 듯하다.
역주6 仍加超授 : 仍은 ‘다시’이고, 加는 ‘올려줌’이고, 超授는 등급을 뛰어넘어 몇 단계 높은 관직에 임명함이다. 《舊唐書》 〈本紀 憲宗 下〉에는 “다시 5품관을 주겠다.[仍與五品官]”로 되어 있다.
역주7 根尋蹤跡 : 主謀者를 찾기 위해 뒤를 밟음이다.
역주8 承宗 : 成德節度使로 朝廷에 反抗한 軍閥 王承宗이다.
역주9 朝請 : 朝는 諸侯가 봄에 天子를 알현하는 것이고, 請은 가을에 알현하는 것이다.
역주10 王士則士平 : 武元衡이 살해당하고 裴度가 상해를 입은 것이, 王承宗의 使嗾를 받은 張晏 등이 저지른 일임을 알린 神策軍의 將士이다.
역주11 : 皇帝의 勅命이다.
역주12 言信 : 言約이다.
역주13 正刑法 : 법에 의해 형을 집행함이다.
역주14 賜誅絶 : 賜는 帝王이 신하에게 내리는 命에 대한 敬稱이다. 誅는 토벌이고, 絶은 朝請을 금지함이다.
역주15 約束 : 法令이다.
역주16 號令指麾 : 號令은 명령을 내림이고, 指麾는 군대를 파견함이다.
역주17 楊惠琳 : 夏綏節度使 韓全義의 사위로 한전의가 入朝한 틈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켜 城을 점령하고서 스스로 절도사가 되어, 조정에 반항한 자이다. 元和 元年 3월에 斬殺되었다.
역주18 劉闢 : 劍南西川節度使 韋皐가 죽자, 군권을 장악하고서 반란을 일으킨 자이다. 元和 元年 10월에 참살되었다.
역주19 李錡 : 鎭海節度使로 조정에 반항한 자이다. 元和 2년 11월에 참살되었다.
역주20 盧從史 : 昭義節度使로 적을 토벌하라는 皇命을 받고도 도리어 적과 내통한 자이다. 吐突承璀가 憲宗의 密旨를 받고 그를 잡아 長安으로 압송하였다.
역주21 張茂昭張愔 : 張茂昭는 義武節度使로 누차 表文을 올려 조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한 忠臣이다. 元和 5년 12월에 온 가족을 다 데리고 조정으로 들어왔다. 張愔은 武寧節度使로 병이 들자, 조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한 충신이다. 元和 2년에 조정에서 그를 불러들여 工部尙書로 삼았다.
역주22 光照前後 : 빛이 前後를 비춘다는 말로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빛난 功績이란 뜻이다.
역주23 故地不足收 : 信義를 지키면 모든 藩鎭이 歸順할 것이므로, 옛 땅을 수복하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복된다는 뜻이다.
역주24 孔子欲存信去食 : 《論語》 〈顔淵〉에 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孔子께서 “양식이 충분하고 兵備가 충분하면 백성들이 그 정부를 신임한다.” 하였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 하여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병비를 버려야 한다.” 하였다. 자공이 또 “부득이하여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양식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양식이 없으면〉 누구나 다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지만 백성이 정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나라는 存立하지 못하였다.”라고 한 말을 縮約한 것이다.
역주25 秦孝公用商鞅爲相……輒與五十金 : 이 일은 《史記》 〈商君列傳〉에 보인다.
역주26 周成王尙小……樂歌之 : 이 일은 《史記》 〈晉世家〉에 보인다. 珪는 古代에 天子가 諸侯를 封할 때 證票로 주던 瑞玉이다.
역주27 漢高祖出黃金四萬斤……不問出入 : 이 일은 《史記》 〈陳丞相世家〉에 보인다.
역주28 告賊之人 : 王士則과 王士平을 이른다. 이들은 神策軍의 將士로 元和 10년 6월에 도적의 이름을 들어 上奏하고, 또 王承宗이 使嗾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舊唐書 憲宗紀》
역주29 區區盡言不避煩黷 : 區區는 자기의 謙稱이고, 煩黷은 귀찮게 하는 것이다.
역주30 愚陋僻惷 : 어리석고 비루하며 괴팍하고 무지함이다.
역주31 懇款誠至之心 : 懇款은 간절한 충성이고, 誠至는 지극한 정성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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