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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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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張本與昌黎同擧進士로되 而其贈文特呼之爲童子 其以唐有童子科乎 言莊而嚴하고 其序事處錯雜而煞有條貫이라
天下之以明二經擧於禮部者 歲至三千人이라 始自縣考試하야 定其可擧者然後 升於州若府하고
其不能中科者 不與是數焉이라 州若府總其屬之所升하야 又考試之如縣호되
加察詳焉하야 定其可擧者然後 貢於天子而升之有司하고 其不能中科者 不與是數焉하니 謂之이라
有司者總府州之所升而考試之호되 加察詳焉하야 第其可進者하야 以名上於天子而藏之하고
하나니 歲不及二百人이라 謂之이라 能在是選者 厥惟艱哉ㄴ저
二經章句 僅數十萬言이니 其傳注在外하고하며 又約知其이라
繇是擧者 或遠至十餘年然後 與乎三千之數하야 而升於禮部矣
又或遠至十餘年然後 與乎二百之數하야 而進於吏部矣 班白之老半焉이라
昏塞不能及者 皆不在是限하니 有終身不得與者焉이라
張童子生九年 自州縣達禮部하야 一擧而進立於二百之列하고 又二年 益通二經하니 有司復上其事하니라
之命하니라 人皆謂童子耳目明達하고 神氣以靈이라하니라
余亦偉童子之獨出於等夷也로라 童子請於其官之長하야 隨父而寧母하니라
歲八月 自京師道南至하고하야 北過大河之陽하야 九月始來及하니
自朝之聞人以及群吏 皆厚其하고 或作歌詩以嘉童子하니 童子亦榮矣로다
雖然이나 愈將進童子於道하야 라호라
夫少之與長也異觀하니 少之時 人惟童子之異어니와 及其長也하야는 將責成人之禮焉이라
成人之禮 非盡於童子所能而已也 然則童子宜暫息乎其已學者하고 而勤乎其未學者可也
唐荊川曰 只是科擧常事로되 而敍得何等


10. 張童子에게 준
張氏는 본래 昌黎와 같은 해에 進士가 되었는데 그에게 주는 글에 특별히 童子라고 부른 것은 唐代童子科가 있어서였는가? 말이 장중하고 엄숙하며, 일을 서술한 것이 뒤섞여 순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매우 條理가 있다.
天下에 두 經書를 통달하여 禮部에 천거되는 자가 해마다 3,000명에 이른다. 처음에 에서 시험을 보여 천거할 만한 자를 選定한 뒤에 로 올려 보내고,
선발에 들지 못한 자는 그 (올려 보내는 인원 수)에 넣지 않는다. 는 그 屬縣에서 올려 보낸 자들을 모아놓고서 또 에서처럼 시험을 보이되,
더욱 더 세밀히 考察하여 천거할 만한 자를 선정한 뒤에 〈그 명단을〉 有司(主務府署)에 올려 보내어 天子貢擧(천거)하게 하고, 선발에 들지 못한 자는 그 수에 넣지 않는데, 이를 일러 鄕貢이라 한다.
有司에서 올려 보낸 자들을 다 모아놓고서 다시 시험을 보이되, 더욱 더 세밀히 고찰하여 추천[]할 만한 자들의 등급을 매겨 그 名單을 천자께 올려 간직하게 하고,
〈그 명단을〉 吏部交付[]하는데, 〈뽑히는 사람이〉 1년에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들을 일러 出身이라 한다. 이 선발에 들기가 〈참으로〉 어렵다.
經書經文[章句]이 겨우 수십만 에 불과하니, 그 傳注(註釋)를 제외하고 모두 背誦해야 하고, 또 경문의 要旨[大說]도 대략 알아야 한다.
이러므로 擧子들이 혹은 멀게는 10여 년이 걸린 뒤에야 3,000명의 수에 끼어 〈그 명단이〉 禮部로 올라갈 수 있고,
또 혹은 멀게는 10여 년이 걸린 뒤에야 200인의 수에 끼어 〈그 명단이〉 吏部에 올라갈 수 있으니, 〈200인 중에〉 반백의 늙은이가 절반이다.
우매하여 及第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이 200인 안에 들지 못하니, 평생토록 200인에 끼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張童子는 아홉 살 때에 州縣의 천거로 禮部로 와서 한 차례의 應試로 200인의 대열에 進入하였고, 또 2년 뒤에 두 經書를 더 통달하니, 有司가 그 일을 위에 보고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衛兵曹에 제수하는 을 받았다. 사람들은 모두 “童子耳目이 총명하고 정신이 靈明하다.”고들 하였다.
나 또한 張童子가 유독 무리에서 뛰어난 것을 훌륭하게 여긴다. 동자는 그 官長에게 휴가를 청해,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를 문안[]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해 8월 京師에서 출발해 陜州 남쪽으로 길을 잡아 虢州 동쪽에 이르고, 洛師(洛陽)에 미쳐서 북쪽으로 黃河北岸을 지나 9월에야 비로소 鄭州에 당도하니,
조정에 명망 있는 사람으로부터 5伯長(長官)과 群吏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에게 음식과 財貨를 후하게 보내고, 혹은 詩歌를 지어 동자를 찬양하였으니, 동자 또한 영예롭다 하겠다.
비록 그러나 나는 동자를 道德에 나아가게 하고 싶어서, 사람을 보내어 ‘동자는 진보하기를 구해야지, 속히 成人이 되고자 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러주게 하였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린이와 어른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단지 그 동자의 특이한 점만을 보지만, 그가 成長함에 미쳐서는 成人를 요구할 것이다.
成人는 동자가 다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동자는 이미 배운 것은 잠시 접어두고 아직 배우지 않은 것에 힘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와 張童子는 모두 陸公門人이다. 나는 顔回子路 두 사람이 헤어질 때에 勸勉하는 말을 서로 주고받은 것을 仰慕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을 떠나는 동자에게 주는 바이다.
唐荊川이 말하였다. “단지 예사로운 科擧의 일일 뿐인데도, 서술한 것이 어쩌면 그리도 頓挫한가?”


역주
역주1 贈張童子序 : 이 序는 韓愈가 고향 땅 河陽으로 省墓하러 갔던 貞元 10년(794) 가을과 겨울 어름에 張童子를 만나 써준 것인 듯하다. 童子는 唐나라 때에 人才를 선발하던 科擧 名目의 하나이다. 10세 이하의 아동으로 ≪孝經≫과 ≪論語≫를 每卷마다 열 번 純通한 자에게는 관직을 주고, 일곱 번 순통한 자에게는 出身을 주고서 이를 ‘童子科’라 칭하였다. 옛날에는 동자 중에 우수하여 經書에 통달한 자를 뽑아 ‘童子郞’에 제수하였다. 張童子는 그 이름과 世系를 상고할 수 없다.
역주2 鄕貢 : 學館의 考査를 거치지 않고 州나 縣의 추천을 통해 과거에 응시하는 士子를 이른다.
역주3 屬之吏部 : 屬은 歸屬시킴이니, 곧 擧子의 명단을 吏部에 交付한다는 뜻이다.
역주4 出身 : 禮部試에 급제하여 官員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자를 이른다.
역주5 : 책을 보지 않고 돌아앉아서 글을 욈이다.
역주6 大說 : 經文의 중요한 뜻을 이른다.
역주7 繇是拜衛兵曹 : 繇是는 由是이다. 衛는 左右衛를 이르고, 兵曹는 兵曹參軍을 이르니, 곧 左衛나 右衛의 兵曹參軍에 제수된 것인 듯하다.
역주8 : 州名인데, 治所는 陝縣(지금의 河南省 陝縣)에 있다.
역주9 : 州名인데, 治所는 弘農(지금의 河南省 靈寶縣)에 있다.
역주10 洛師 : 洛陽을 이른다.
역주11 : 州名인데, 治所는 管城(지금의 河南省 鄭州市)에 있다.
역주12 五都之伯長 : 五都는 雍‧陝‧虢‧蒲‧洛을 이르고, 伯長은 그 지방의 長官을 이른다.
역주13 餼賂 : 음식과 財貨를 이른다.
역주14 使人謂童子求益者 非欲速成者 : 여기의 童子는 童子科에 오른 張童子를 이른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를 말한 것이니, 곧 사람을 보내어 동자에게 “어린아이는 學問과 修養이 진보되기를 구해야 할 때이지, 속히 성인이 되고자 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을 일러주게 한 것이다. ≪論語≫ 〈憲問〉에 “闕黨의 童子가 命을 전하였다. 혹인이 묻기를 ‘이 동자가 학문이 進益(進步)하기를 구하는 자입니까?’라고 하니, 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 아이가 자리에 앉은 것을 보았고, 그 아이가 先生(어른)과 나란히 걷는 것을 보았으니, 진보하기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속히 成人이 되고자 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竝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란 말이 보인다.
역주15 愈與童子俱陸公之門人 : 貞元 8년(792)에 兵部侍郞 陸贄가 禮部考試를 주관할 때에 韓愈는 進仕科에 登第하고 張童子는 童子科에 등제하였기 때문에 모두 ‘陸公의 門人’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6 慕回路二子之相請贈與處 : 回路는 顔回와 子路이다. ‘贈處’는 子路가 魯나라를 떠날 때 顔淵에게 “떠나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何以贈我]”라고 하고, 안연이 또 자로에게 “남아 있는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겠는가.[何以處我]”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말로, 친구간에 헤어질 때 서로 勸勉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禮記≫ 〈檀弓 下〉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7 頓挫 : 詩文에 기복이 있고 성조가 잘 어울리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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