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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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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 장적張籍에게 답한 편지
古之胥 敎誨擧動言語 無非相示以義 非苟相諛悅而已니라
옛날에 재지才智를 지닌 사람은 가르침과 행동과 언어言語가 모두 도의道義를 드러내 보이지 않음이 없었고, 구차하게 아첨하여 상대를 기쁘게 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執事不以籍愚暗하고 時稱發其善하야 敎所不及하고 施誠相與하야 不間塞於他人之說하니 是近於古人之道也니라
집사執事께서는 저를 우매하다 하지 않으시고 때때로 저의 장점을 칭찬하시며 저의 부족한 바를 가르쳐주셨고, 진심으로 저를 대하시어 남의 말이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였으니, 집사執事고인古人의 도에 가까우신 분입니다.
籍今不復以義 是執竿而拒歡來者 烏所謂承人而古人之道歟
그런데 제가 지금 도의로써 아뢰지 않는다면 이는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을 몽둥이를 들고서 막는 것이니, 어찌 이른바 “남을 고인의 도로 받든다.”는 것이겠습니까?
頃承論於執事하니 嘗以爲世俗陵靡하야 不及古昔 蓋聖人之道廢弛之所爲也라하니라
근자에 집사의 지론持論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세상 풍속이 쇠퇴衰頹하여 옛날만 못한 것은 성인의 도가 폐기廢棄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宣尼沒後 楊朱墨翟恢詭異說 干惑人聽 孟子作書而正之하니 聖人之道復存於世하니라
선니宣尼(孔子)가 서거逝去하신 뒤에 양주楊朱묵적墨翟의 허망하고 괴이한 학설이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자, 맹자孟子가 글을 지어 바로잡으니 성인聖人의 도가 다시 세상에 보존되었습니다.
秦氏滅學하고 漢重以黃老之術敎人하야 使人寖惑 揚雄作法言而辯之하니 聖人之道猶明하니라
나라가 학술學術소멸消滅시켰고, 나라는 거듭 황로黃老의 학술로 사람들을 가르쳐 사람들을 점점 미혹에 빠져들게 하자, 양웅揚雄이 《법언法言》을 지어 밝게 분변하니 성인의 도가 오히려 밝아졌습니다.
及漢衰末하야 西域浮屠之法 入於中國 中國之人 世世譯而廣之하니 黃老之術相沿而熾하야 天下之言善者 惟二者而已니라
서한西漢 말기末期서역西域불법佛法이 중국으로 들어오자,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번역하여 널리 전파하니, 황로黃老의 학술과 함께 순풍順風을 타고 불길처럼 일어나, 천하에 을 말하는 자가 오직 불로佛老뿐이었습니다.
昔者 聖人以天下生生之道曠으로 乃物其金木水火土穀藥之用而厚之하고 因人資善으로 乃明乎仁義之德以敎之하야 裨人有常이라
옛날에 성인은 천하에 생생生生(생명生命보양保養생활生活하는 방법)가 없다 하여 이에 등의 물건을 사용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였고, 사람의 바탕이 함으로 인해 이에 인의仁義덕행德行을 밝혀 백성들을 가르쳐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지킬 도의道義가 있게 하였습니다.
故治生相存而不殊하니라
그러므로 생활을 영위營爲하는 방법이 존속되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今天下資於生者 咸備聖人之器用이로되 至於人情하야는 則溺乎異學하야 而不由乎聖人之道하야 使君臣父子夫婦朋友之義沈於世하야 而邦家繼亂하니 固仁人之所痛이라
지금 천하에 등에 의지해 생활하는 자들이 모두 성인이 만드신 기용器用은 준비하면서 인정人情에 이르러서는 이단異端의 학설에 빠져 성인의 도를 따르지 않아,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붕우朋友도의道義를 세상 풍속에 침몰沈沒시켜 국가에 혼란이 계속되게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인인仁人통한痛恨하는 바입니다.
自揚子雲作法言으로 至今近千載 莫有言聖人之道者 言之者 惟執事焉耳
양자운揚子雲이 《법언法言》을 지음으로부터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인의 도를 말하는 이가 없었고, 말한 이는 오직 집사뿐입니다.
習俗者聞之하고 徒推爲訾하니 終無裨於敎也니라
그러므로 풍속에 길들여진 자들은 집사의 말을 듣고서 한갓 비난하며 헐뜯을 뿐이니, 끝내 교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執事聰明하야 文章與孟子揚雄相若하니 盍爲一說以興存聖人之道하야 使時之人後之人으로 知其去絶異學之所爲乎
집사는 총명聰明하시어 문장文章맹자孟子양웅揚雄과 서로 같으니, 어찌하여 한 권의 책을 지어 성인의 도를 부흥復興시키고 존속存續시켜 지금 사람과 후세 사람들에게 이단異端학설學說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지 않으십니까?
曷可囂囂爲多言之徒哉
〈그리하지 않고〉 어찌 시끄럽게 많은 말을 하는 무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然欲擧聖人之道者 其身宜亦由之也어늘 比見執事多尙駁雜無實之說하야 使人陳之於前以爲歡하니 此有以累於令德이라
그러나 성인의 도를 거행하고자 하는 자는 그 자신이 성인의 도를 행하는 것이 마땅한데, 근자에 집사를 보면 박잡駁雜하고 진실하지 못한 말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앞에서 진술하게 하며 기뻐하시는 경우가 오히려 많으니 이는 미덕美德에 누가 됩니다.
又商論之際 或不容人之短하야 如任私尙勝者하니 亦有所累也니라
그리고 또 남과 토론할 때에 혹 남의 단점을 용납하지 않아, 마치 자기를 믿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으니, 이 또한 누가 됩니다.
先王存六藝 自有常矣로되
선왕先王육예六藝에 관심을 둔 데에는 나름의 상규常規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有德者不爲하야 猶以爲損이어늘 況爲博塞之戱與人爭財乎
그런데도 유덕자有德者들은 육예를 하지 않고서 오히려 덕에 손상이 되는 것으로 여겼는데, 하물며 박새博塞(내기 바둑) 놀이를 하여 남과 재리財利를 다투는 것이겠습니까?
君子固不爲也니라 今執事爲之하야 以廢棄時日하니 竊不識其然이로라
군자는 본래 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집사께서는 박색을 하시어 세월을 허비하니 저는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且執事言論文章 不謬於古人이로되 今所爲 或不出於世之守常者하니 竊未爲得也로라
그리고 또 집사의 언론과 문장은 고인古人과 어그러짐이 없으면서도 지금 하는 행위는 상례常例를 지키는 세상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願執事絶博塞之好하며 棄無實之言하고 宏廣以接天下士하야 嗣孟子揚雄之作하야 辨楊墨老釋之說하야 使聖人之道 復見於唐이면 豈不尙哉
바라건대 집사께서는 좋아하시는 내기 바둑을 끊고, 진실하지 못한 말들을 버리고서 널리 천하의 선비들을 접촉하시고, 맹자孟子양웅揚雄의 뒤를 이어 글을 지어서 궤설詭說을 밝게 분변하여 성인의 도를 다시 나라에 드러나게 한다면 어찌 가상嘉尙하지 않겠습니까?
籍誠知之로되 以材識頑鈍하야 不敢竊居作者之位일새 所以咨於執事而爲之爾니라
저도 글을 지어 이단異端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만 재주와 식견이 우둔愚鈍하여 감히 작자作者의 자리에 앉을 수 없으므로 집사께 이 일을 하시도록 여쭙는 바입니다.
若執事守章句之學하야 因循於時하고 置不朽之盛事 與夫不知言으로 亦無以異矣리라
만약 집사께서 장구章句나 따지는 학문만을 고수하여 시대의 조류를 따르고 불후不朽성사盛事(저서를 남겨 후세에 영향을 끼치는 일)를 버리신다면 저 문장을 모르는 자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籍再拜하노라
재배再拜하고서 이 글을 올립니다.
籍所遺昌黎書甚當이로되 而昌黎答籍 特氣不相下耳
장적張籍창려昌黎에게 보낸 편지는 그 내용이 매우 타당하였으나, 창려가 장적에게 보낸 답서는 단지 심기心氣를 가라앉히지 못하였을 뿐이다.
愈始者望見於人人之中 固有異焉이러니 及聆其音聲하고 接其辭氣하얀 則有願交之志하니라
내가 처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대를 보았을 때는 참으로 남다른 점이 있다고 여겼고, 그대의 음성音聲(말씨)을 듣고 그대의 사기辭氣(말투)를 접하고 나서는 그대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었소.
하야 遂得하니 豈惟吾子之不遺리오
그런데 인연이 닿아 다행히 서로 만나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어찌 다만 그대가 나를 버리지 않아서일 뿐이겠소.
抑僕之焉耳
내가 그대와 만난 것은 혹[抑] 연때가 맞아서일 것이오.
근자에 나는 그대가 나에게 아무 말이 없는 것은 아마도[意] 내가 그대와 교제하는 방법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크게 원하던 바를 얻었으니, 마치 오랜 병이 몸에서 떠난 것처럼 상쾌하고 마치 뜨거운 물건을 잡은 손을 맑은 바람에 식히는 것처럼 시원하오.
然吾子所論 排釋老不若著書
그러나 그대의 말에 “입으로 불교佛敎도교道敎를 배척하는 것이 글을 지어 이단異端의 옳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만 못하다.
囂囂多言 徒相爲訾라하나 若僕之見 則有異乎此也로라
시끄럽게 많은 말을 하면 이를 듣고서 한갓 비난만 할 뿐이다.”라고 하였으나, 나의 견해는 이와 다르오.
夫所謂著書者 義止於辭耳 宣之於口 書之於簡 何擇焉
이른바 “글을 짓는다.”는 것은 자기의 주의主義문사文辭에 표현하는 것이니, 입으로 표현하는 것과 책에 기록해 문사로 표현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소.
非軻自著 軻旣沒 其徒萬章公孫丑相與記軻所言焉耳니라
맹가孟軻의 글은 맹가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맹가가 죽은 뒤에 그 제자 만장萬章공손추公孫丑가 함께 맹가의 말을 기록한 것일 뿐이오.
僕自得聖人之道而誦之 排前二家有年矣 不知者以僕爲好辯也라호라
나는 성인의 도를 배워 송습誦習한 뒤로 앞에서 말한 불로佛老를 배척한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나를 남과 변론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소.
然從而化者亦有矣 聞而疑者又有倍焉이라
그러나 나를 따라 변화한 자도 있었으나, 듣고서 의심하는 자들이 더욱 갑절이나 되었소.
頑然不入者 親以言諭之라도 不入이니 則其觀吾書也라도 固將無得矣리라
완고하게 나의 설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내가 직접 말로 깨우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그런 자는 나의 글을 본다 하더라도 진실로 깨닫는 바가 없을 것이오.
爲此而止 吾豈有愛於力乎哉
그렇기 때문에 저서를 하지 않는 것이지, 내 어찌 힘을 아껴서이겠소.
然有一說하니 化當世莫若口 傳來世莫若書 又懼吾力之未至也로라
그러나 일종의 논의論議에 “당세 사람을 교화하는 데는 말만 한 게 없고, 내세來世에 전하는 데는 글만 한 게 없다.”는 말이 있소만, 나는 또 나의 역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오.
공자孔子께서는〉 서른 살에 자립自立하셨고, 마흔 살에 불혹不惑하셨소.
吾於聖人旣過之라도 猶懼不及이어든 矧今未至하니 固有所未至耳니라
나는 나이가 성인의 나이를 넘어서도 오히려 〈자립과 불혹에〉 미치지 못할까에 두려운데, 하물며 지금 아직 성인의 나이에 이르지 않았으니 자립과 불혹에 이르지 못한 것은 당연하오.
請待五六十然後爲之하니 冀其少過也니라
5, 60세가 되기를 기다린 뒤에 글을 쓰려 하니, 이는 그때쯤이면 나의 글에 과오가 적어질 것으로 바라기 때문이오.
吾子又譏吾與人人爲無實駁雜之說하니 此吾所以爲戱耳
그대는 또 내가 사람들과 진실하지 못한 박잡駁雜한 이야기를 한다고 나무랐는데, 이는 단지 내가 장난삼아 한 것일 뿐이오.
比之酒色이면 不有間乎
주색酒色을 탐하는 것에 비하면 어찌 차이가 있지 않겠소.
吾子譏之 似同浴而譏裸裎也니라
그대가 나를 나무라는 것은 마치 함께 목욕하면서 벌거벗었다고 나무라는 것과 같소.
或似有之하니 當更思而悔之耳로라
“남들과 토론할 때 심기를 가라앉히지 못한다.”고 나무란 말씀은 혹 그런 점이 있었던 것도 같으니 다시 생각해 고치도록 하겠소.
之譏 敢不承敎
박새博塞을 좋아한다고 나무란 말씀은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소.
其他 俟相見하노라
이 밖의 일들은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薄晩 須到公府하니 言不能盡이로라
초저녁이 되면 반드시 공부公府로 가야 하니, 〈시간이 없어〉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오.
愈再拜하노라
유는 재배하고서 이 글을 드리오.
역주
역주1 答張籍書 : 이 答書는 韓愈가 자신의 缺點을 지적한 張籍의 편지를 받고서 貞元 14년(788)에 보낸 것이다. 이때 한유의 나이 31세였다. 장적은 字가 文昌이다. 저명한 詩人으로 한유의 벗이면서 제자이기도 하다. 정원 14년에 한유가 汴州에 있을 때 孟郊의 소개로 장적과 서로 알게 되었는데, 장적은 한유를 매우 존경하며 한유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므로 한유에게 편지를 보내어 한유의 네 가지 결점을 지적하였는데, 첫째는 孟子나 揚雄처럼 異端(老佛)을 배척하는 글을 짓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진실하지 않은 駁雜한 말이 많은 것이고, 셋째는 남과 토론할 때 心氣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이고, 넷째는 도박을 좋아하는 것이다. 讀者의 이해를 돕기 위해 《韓文考異》 〈答張籍書〉 題下에 실린 장적의 편지를 소개한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다.
역주2 吾子 : 親愛하는 사람에 대한 稱號이다.
역주3 因緣幸會 : 인연이 닿아 다행히 서로 만났다는 말이다.
역주4 所圖 : 여기서는 圖가 ‘心願’의 뜻으로 쓰였으니, 곧 ‘所願’이란 말이다. 下文에 ‘大得所圖’도 이와 같다.
역주5 所遇有時 : 만난 것은 서로 연때가 맞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바로 上文에 말한 ‘因緣幸會’이다.
역주6 吾子之闕焉無言 意僕所以交之之道不至也 : 闕焉은 缺如와 같은 말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는 것이고, 無言은 書信과 忠告하는 말이 없는 것이다. 意僕所以의 ‘意’는 ‘아마도’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7 脫然若沈痾去體 灑然若執熱者之濯淸風 : 脫然은 몸이 輕快한 모양이고, 沈痾는 오래도록 낫지 않은 병이다. 灑然은 시원함이다. 執熱者之濯淸風은 《詩經》 〈大雅 桑柔〉에 “누가 손으로 뜨거운 물건을 잡고 나서 찬물로 씻지 않겠는가.[誰能執熱 逝不以濯]”란 말이 보인다. 執熱者는 손으로 뜨거운 물건을 잡은 자이고, 濯淸風은 시원한 바람에 손을 식히는 것이다. 이 두 句의 뜻은 결점을 지적해준 張籍의 편지를 받으니 마치 오랜 병이 나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마치 덴 손을 서늘한 바람에 식힌 것처럼 시원하다는 말이다.
역주8 孟軻之書 : 《孟子》를 이른다. 軻는 맹자의 이름이다.
역주9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 《論語》 〈爲政〉에 보인다.
역주10 商論不能下氣 : 商論은 토론이고, 下氣는 心氣를 가라앉히고서 공손한 태도를 가짐이다.
역주11 博塞 :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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