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月十六日에 前鄕貢進士韓愈謹再拜言相公閤下하노라
當是時
하야 天下之賢才
가 皆已擧用
이며 皆已除去
며
動植之物風雨霜露之所
者
가 皆已得宜
하며 麟鳳龜龍之屬
이 皆已備至
하니라
而周公以聖人之才
로 憑叔父之親
하야 其所輔理
之功
이 又盡
如是
하니 其所求進見之士
가 豈復有賢於周公者哉
아
不惟不賢於周公而已
라 豈復有賢於時百執事者哉
며 豈復有所
能補於周公之化者哉
아
然而周公求之如此其急은 惟恐耳目有所不聞見하고 思慮有所未及하야 以負成王託周公之意하야 不得於天下之心이라
이면 設使其時輔理承化之功未盡章章如是
하고 而非聖人之才
요 而無叔父之親
이면 則將不暇食與沐矣
리니 豈特吐哺握髮爲勤而止哉
리오
天下之賢才豈盡擧用이며 姦邪讒佞欺負之徒豈盡除去며
四海豈盡無虞며 九夷八蠻之在荒服之外者豈盡賓貢이며
天下之所謂禮樂刑政敎化之具豈盡修理며 風俗豈盡敦厚며
動植之物風雨霜露之所霑被者豈盡得宜며 休徵嘉瑞麟鳳龜龍之屬豈盡備至며
其所求進見之士가 雖不足以希望盛德이나 至比於百執事면 豈盡出其下哉며 其所稱說이 豈盡無所補哉리오
今雖不能如周公吐哺握髮
이나 亦宜引而進之
하야 요 不宜黙黙而已也
니라
惟其昏愚不知逃遁이라 故復有周公之說焉하노니 閤下其亦察之어다
然所以
는 以其於周不可則去之魯
하고 於魯不可則去之齊
하며 於齊不可則去之宋之鄭之秦之楚也
ᄅ새니라
今天下一君이요 四海一國이라 舍乎此則夷狄矣니 去父母之邦矣라
山林者는 士之所獨善自養而不憂天下者之所能安也니 如有憂天下之心이면 則不能矣라
故愈每自進而不知愧焉
하야 書
上足數及門而不知止焉
이로라
07. 두 번째 편지를 올리고 29일 뒤에 다시 올린 편지
의론議論의 정대正大함이 전편前篇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허자虛字를 써서 뜻을 함축한 곳을 보아야 할 것이다.
3월 16일에 전향공진사前鄕貢進士 한유韓愈는 삼가 재배再拜하고서 상공합하相公閤下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듣건대 주공周公이 보상輔相이 되었을 때에 현자賢者를 만나보기에 급하여 한 끼의 밥을 먹는 사이에 먹던 밥을 세 차례나 뱉어내고, 한 번 머리를 감는 사이에 감던 머리를 세 차례나 움켜쥐고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에 천하의 현재賢才가 이미 다 거용擧用되었으며, 간사하고 아첨하고 남을 속이고 배신하는 무리가 이미 다 제거되었으며,
사해四海 안이 이미 다 근심이 없으며, 황복荒服 밖에 있는 구이九夷와 팔만八蠻이 모두 이미 다 복종하여 공물貢物을 바쳤으며,
천재시변天災時變과 곤충초목昆蟲草木의 요괴妖怪가 이미 다 소멸되었으며,
천하에 이른바 ‘예악禮樂과 형정刑政과 교화敎化’의 법령이 이미 다 수정되고 정리되었으며, 풍속이 이미 다 돈후해졌으며,
풍우風雨와 상로霜露의 은택恩澤을 입는 동식물動植物이 이미 다 생장에 적의適宜한 환경을 얻었으며, 길한 징조와 아름다운 상서인 기린‧봉황‧거북‧용 등이 이미 다 빠짐없이 이르렀습니다.
주공은 성인의 재능을 가진 분으로 성왕成王의 숙부라는 친분을 빙자憑藉하여 정치를 보좌하고 교화를 계승한 공적이 또 모두 이처럼 밝게 드러났으니, 주공을 찾아와서 알현하기를 요구한 인사 중에 어찌 다시 주공보다 현능賢能한 자가 있었겠습니까?
주공보다 현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찌 당시의 모든 관원보다 현능한 자가 있었겠으며, 어찌 다시 주공의 교화를 도울 만한 계모計謀를 가진 자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공이 인재를 구하는 일을 이처럼 서두른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인재人才가 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재가 있어서 주공에게 부탁한 성왕의 뜻을 저버려 천하의 마음을 얻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주공의 마음을 비추어보면 가령 그때 정치를 보좌하고 교화를 계승한 공적이 모두 이처럼 밝게 드러나지 못하고, 또 성인의 재능도 아니고 숙부라는 친분도 없었다면 아마 밥을 먹고 머리를 감을 겨를도 없었을 것이니, 어찌 단지 먹던 밥을 뱉고 감던 머리를 움켜쥐는 수고만을 하였을 뿐이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왕의 덕과 주공의 공에 대한 칭송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합하閤下께서 보상輔相이 되신 것도 이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어찌 천하의 현재賢才가 다 거용되었다고 하겠으며, 간사하고 아첨하고 남을 속이고 배신하는 무리가 어찌 다 제거되었다고 하겠으며,
사해 안이 어찌 다 근심이 없다고 하겠으며, 황복荒服 밖에 있는 구이九夷와 팔만八蠻이 어찌 다 복종하여 공물貢物을 바친다고 하겠으며,
천재시변天災時變과 곤충초목昆蟲草木의 요괴妖怪가 어찌 다 소멸되었다고 하겠으며,
천하에 이른바 ‘예악禮樂과 형정刑政과 교화敎化’의 법령이 어찌 다 수정되고 정리되었다고 하겠으며, 풍속이 어찌 다 돈후해졌다고 하겠으며,
풍우風雨와 상로霜露의 은택을 입는 동식물動植物이 어찌 다 생장에 적의適宜한 환경을 얻었다고 하겠으며, 길한 징조 아름다운 상서인 기린‧봉황‧거북‧용 등이 어찌 다 빠짐없이 이르렀다고 하겠으며,
찾아와서 알현하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비록 성덕盛德을 기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백관百官에 비하면 어찌 다 백관만 못하겠으며, 그들의 말이 어찌 다 도움 되는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비록 주공周公처럼 먹던 밥을 뱉고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서 맞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인도해 나오게 하여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살펴 취사取捨함이 마땅하고,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편지를 두 차례 올렸으나 저의 뜻이 통하지 않았고, 합하의 문에 세 차례 찾아갔으나 문지기가 사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도망갈 줄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주공의 이야기를 올리는 바이니 합하께서 살펴주소서.
옛날 선비는 석 달 동안 벼슬하지 못하면 서로 위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국故國을 떠날 때에 반드시 예물禮物을 싣고 갔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기를 어려워한 까닭은 주周나라에서 벼슬을 얻지 못하면 노魯나라로 가고, 노나라에서 얻지 못하면 제齊나라로 가고, 제나라에서 얻지 못하면 송宋나라, 정鄭나라, 진秦나라, 초楚나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천하에 군주가 하나이고 사해 안이 한 나라여서, 이 나라를 떠나면 이적夷狄의 나라이니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道를 행하는 선비가 조정에서 뜻을 얻지 못하면 산림山林에 은거隱居할 뿐입니다.
산림은 홀로 선善을 행하며 자신만을 수양하고 천하를 근심하지 않는 선비가 안주安住할 곳이니, 천하를 근심하는 마음이 있는 선비라면 산림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매양 스스로 벼슬에 나아가기를 구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고서 누차 편지를 올리고 누차 문전에 찾아가는 일을 그칠 줄을 모른 것입니다.
제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대현大賢의 문하門下에서 진출進出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니, 합하閤下께서는 조금이나마 굽어살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