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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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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이수재李秀才에게 답한 편지
因與李秀才無舊하고 獨於元賓詩中得其人이라
한유韓愈이수재李秀才와 안면이 없었고, 단지 원빈元賓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았을 뿐이다.
故遂始終托元賓하야 以寫兩與之情이라
그러므로 시종 원빈에 의탁하여 둘 사이의 정을 서술하였다.
愈白하노라
는 아룁니다.
故友李觀元賓十年之前示愈別吳中故人詩六章
고인故人이 된 벗 이관李觀 원빈元賓이 10년 전에〈별오중고인시別吳中故人詩〉6章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其首章 則吾子也 盛有所하니라
수장首章은 바로 원빈이 그대에게 준 송별시送別詩였는데, 그대를 매우 칭찬하였습니다.
元賓行峻潔淸하고 其中狹隘하야 不能苞容하야 於尋常人 不肯苟有論說이라
원빈은 품행品行고결高潔하고 속이 좁아서 남을 포용하지 못하므로 평범한 사람에 대해 구차하게 논설論說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고 於是知吾子非庸衆人이로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이런 시를 쓴 까닭을 추구追究하고 나서야 이에 그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時吾子在하고 其後愈出在外하야 無因緣相見하니라
그러나 그때 그대는 오중吳中에 있었고, 그 뒤에 나는 경사京師를 떠나 외방外方에 나와 있었으므로 인연이 닿지 않아 서로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元賓旣沒 其文益可貴重이나 思元賓而不見하야 見元賓之所與者 則如元賓焉이라
원빈이 죽은 뒤에 그의 문장의 가치는 더욱 귀중貴重해졌으나, 나는 원빈을 생각해도 볼 수가 없어서 원빈이 사귀던 벗을 보면 마치 원빈을 보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今者辱惠書及文章하고 觀其姓名하니 元賓之聲容恍若相接하고 讀其文辭하니 見元賓之知人交道之不汚로라
그런데 지금 보내주신 편지와 문장을 받고서 그대의 성명姓名을 보니 마치 원빈의 음성과 용모를 접하는 것 같았고, 그대의 문장을 읽어보니 원빈이 사람을 알아보고서 벗을 사귄 방법이 저열低劣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甚矣 子之心有似於吾元賓也
그대의 마음이 어쩌면 그리도 원빈과 같으십니까?
子之言以愈所爲 不違孔子하고 不以爲工이라하야 將相從於此라하니 愈敢自愛其道而以辭讓爲事乎
그대가 “나의 행위가 공자孔子의 도에 어긋나지 않고, 조탁彫琢을 공교로움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여, 장차 나에게 와서 이를 배우려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내 어찌 감히 나의 학식學識을 아껴 사양을 일삼을 수 있겠습니까?
然愈之所志於古者 不惟其辭之好 好其道焉爾로라
그러나 내가 고문古文에 뜻을 둔 것은 그 문사文辭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문사 속에 담긴〉 도를 좋아해서일 뿐입니다.
讀吾子之辭하고 而得其所用心 하니
그대의 문장을 읽어보고서 그대가 마음을 쓰는 일이 아마도 이(彫琢)보다 깊은 데 있는 듯하여, 내가 그대와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을 알았으니, 하물며 도를 표현하는 문장이겠습니까?
愈頓首하노라
유는 머리를 조아립니다.
역주
역주1 答李秀才書 : 李秀才의 이름은 師錫이고 字는 圖南이다. 《昌黎集》 권2의 〈北極一首贈李觀〉과 권24의 〈唐故太子校書李公墓誌銘〉에 의하면 韓愈의 나이 25세 때인 貞元 8년(792)에 처음 李觀을 만났고, 2년 뒤인 정원 10년에 이관이 京師에서 客死하였다. 이 편지에 ‘十年前示愈別吳中故人詩’라 하였으니, 이 答信은 한유가 四門博士로 있던 정원 18년에 쓴 것이다. 이관은 자가 元賓이다. 정원 8년에 한유와 함께 進士試에 及第한 사람으로 文名이 한유와 비슷하였다.
역주2 稱引 : 칭찬해 敍述함이다.
역주3 因究其所以 : 이어 남에 대해 함부로 論說하지 않는 원빈이 무슨 이유로 李秀才를 그리도 칭찬하였는지를 追究하였다는 말이다.
역주4 吳中 : 春秋 때 吳나라의 首都였던 吳郡을 이르는데, 지금의 江蘇省 蘇州이다.
역주5 琢雕 : 시문을 아름답게 다듬는 것이다.
역주6 將復有深於是者 與吾子樂之 : ‘將’은 ‘殆(아마도)’의 訓으로 쓰였다. 復有深於是者는 마음을 쓰는 일이 문장을 彫琢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聖賢의 道를 追究하는 데 있어서, 나와 함께 성인의 도를 즐길 수 있을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역주7 況其外之文乎 : 하물며 道를 表現하는 문장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느냐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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