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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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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6. 후희侯喜의 사람됨을 논하여 여주汝州 노낭중盧郞中에게 올린 추천장推薦狀
文婉曲感慨하니 盧郞中當爲刺心
문장은 완곡하나 감정이 격렬하니, 노낭중盧郞中은 응당 마음이 뜨끔하여 후희侯喜천거薦擧하였을 것이다.
爲文甚古하고 立志甚堅하야 行止取捨 有士君子之操하니라
위에 기록한 그 사람은 지은 문장이 매우 고아古雅하고 세운 뜻이 매우 견고하여 행지行止(행동거지)와 취사取捨사군자士君子절조節操가 있습니다.
家貧親老로되 無援於朝하고 在擧場十餘年이로되 竟無知遇하니라
집은 가난하고 어버이는 연로年老하였으나 조정에는 그를 이끌어주는 이가 없었고, 과장科場에서 십여 년을 보냈으나 끝내 알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愈常慕其才而恨其屈하야 與之還往 歲月已多
나는 항상 그의 재능을 앙모仰慕하고 그의 억울함을 한탄하면서 그와 교유交遊한 세월이 이미 오래입니다.
嘗欲薦之於主司하고 言之於上位 名卑官賤하야 하니라
일찍이 그를 주사主司(主試官)에게 추천하고 고관高官에게 말씀드리고자 하였으나, 나의 명성名聲이 낮고 관직官職미천微賤하여 그 길을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觀其所爲文 未嘗不揜卷長嘆이로라
그러므로 그의 문장을 볼 때마다 책을 덮고 장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去年 愈從 本欲携持同行이나 適遇其人自有家事하야 하야 又廢一年이라
작년에 내가 조선調選에 참가하기 위해 경사京師로 갈 때에 본래 후희侯喜를 데리고 함께 가려하였으나, 마침 후희의 집안에 일이 생겨 길을 떠나기가 어렵고 처지가 곤란하여 또 1년을 허비하였습니다.
及春末自京還하야 怪其久絶消息이러니 五月初至此하야 自言爲閤下所知라하며 辭氣激揚하고 面有矜色曰 侯喜死不恨矣
나는 늦은 봄에 경사에서 낙양洛陽으로 돌아와서 그의 소식이 오래 끊긴 것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5월 초순에 그가 이곳 낙양으로 와서 합하閤下께 인정을 받았다고 하면서 격앙된 언성言聲과 자랑스러운 안색顔色으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喜辭親入關하야 羈旅道路 見王公數百이나 未嘗有如盧公之知我也로라
내가 어버이를 이별하고 관중關中으로 들어가서 나그네로 도로를 떠돌 적에 만나본 왕공王公이 수백 명이었으나, 노공盧公처럼 나를 알아준 사람이 없었다.
하야 老死草野러니 今胸中之氣하고 復有仕進之路矣로라
나는 근자近者에 장차 진흙 속에 버려져 초야에서 늙어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지금은 가슴속의 기운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다시 벼슬길도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愈感其言하야 賀之以酒하고 謂之曰
나는 그의 말에 감동하여 술자리를 마련해 그를 축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盧公 天下之賢刺史也
노공盧公천하天下현량賢良자사刺史이다.
未嘗有所하니 蓋難其人而重其事니라
그러나 누구도 추천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아마도 인재를 얻기 어렵고 그 일을 중대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今子鬱爲하니 其言死不恨 固宜也
그런데 지금 그대가 성대하게 선수選首가 되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대의 말은 진실로 당연하다.
古所謂知己者正如此耳니라
옛사람의 이른바 ‘지기知己’란 것도 바로 이와 같을 뿐이다.
身在貧賤하야 爲天下所不知 獨見於大賢 乃可貴耳어니와 若自有名聲 此乃 又何足貴乎
몸이 빈천한 처지에 있어 천하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던 사람이 유독 대현大賢지우知遇를 받는 것은 하게 여기지만, 스스로 명성을 가진 자가 다시 권세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는 것이라면 이는 바로 이익을 쫓는 장사치의 일이니 귀할 게 뭐 있겠는가?
子之遇知於盧公 眞所謂知己者也니라
그대가 노공의 알아줌을 받은 것은 참으로 이른바 ‘지기知己’를 만난 것이다.
士之修身立節코도 而竟不遇知己 前古已來 不可勝數니라
심신心身수양修養하고 절조節操를 세운 선비로서 끝내 지기를 만나지 못한 이가 예로부터 셀 수 없이 많았다.
或日接膝而不相知하고 或異世而相慕하니 以其遭逢之難일새니라
혹은 날마다 무릎을 맞대고 지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고, 혹은 동시대同時代 인물人物이 아닌데도 사모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는 지기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故曰 라하니 不其然乎
그러므로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하였으니, 그렇지 않은가?
不其然乎
그렇지 않은가?”
閤下旣已知侯生이어늘 而愈復以侯生言於閤下者 非爲侯生謀也 感知己之難遇하야 大閤下之德하고 而憐侯生之心이라
합하閤下께서 이미 후생侯生을 알아주셨는데도 내가 다시 후생을 합하께 말씀드리는 것은, 후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기知己를 만나기 어려운 것에 감분感憤하여 합하의 덕행을 위대하게 여기고 후생의 마음을 가엾게 여겨서입니다.
故因其行而獻於左右焉하노라
그러므로 그가 가는 기회를 이용해 합하께 이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謹狀하노라
삼가 을 올립니다.
역주
역주1 與汝州盧郞中論薦侯喜狀 : 盧郞中은 盧虔이다. 前任 刑部郞中이었고, 現任 汝州刺史이므로 ‘汝州盧郞中’이라고 칭한 것이다. 侯喜는 字가 叔起이다. 貞元 19년(803)에 韓愈의 추천으로 進士에 及第하였다. 이 狀은 한유가 四門博士로 있던 정원 18년에 쓴 것이다.
역주2 推(퇴)轂 : 수레를 미는 것이다. 《史記》 〈張釋之馮唐列傳〉에 의하면, 옛날에 將軍이 出征할 때 임금이 꿇어앉아 장군의 수레를 밀던 禮인데, 후세에는 장군을 임명하는 뜻으로도 쓰이고, 사람을 천거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薦擧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3 右其人 : 韓愈의 本集에는 前頭에 ‘進士侯喜’라는 네 자가 있으니, ‘右其人’은 곧 ‘위에 기록한 그 사람’이라는 말이다.
역주4 其路無由 : 그 길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5 調選 : 唐代에 관리의 成績을 審査하여 1년에 한 번씩 官職을 移動시키던 制度이다.
역주6 迍邅坎坷 : 迍邅은 길을 가기 어려움이고, 坎坷는 길이 울퉁불퉁하여 평탄하지 않은 것인데, 처지가 곤란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7 比者 : 近者이다.
역주8 分將委棄泥塗 : 分은 스스로 생각함이고, 泥塗는 진흙이니, 곧 卑賤한 지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9 勃勃然 : 왕성하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역주10 推引 : 추천해 이끌어줌이다.
역주11 選首 : 선발한 자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역주12 : 학문이나 재능 등을 인정해 대우함이다.
역주13 託形勢 :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依託함이다.
역주14 市道之事 : 장사치가 이익을 쫓는 일이라는 말이다.
역주15 士爲知己者死 : 이 말은 《史記》 〈刺客列傳〉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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