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山隔其陰
하고 鉅海敵其陽
이라 是維島居
之民
하니 風氣之殊
가 著自古昔
하니라
唐之有天下에 號令之所加가 無異於遠近하니라 民俗旣遷하고 風氣亦隨하야 霜雪時降하고 癘疫不興하야
瀕海之饒가 固加於初하니라 是以人之之南海者가 若東西州焉하니라
皇帝
天下二十有二年
에 詔工部侍郞趙植爲廣州刺史
하야 盡
南海之民
하니 從事扶風竇平
하니라
平以文辭進이라 於其行也에 其族人殿中侍御史牟가 合東都交遊之能文者二十有八人하야 賦詩以贈之하니라
於是昌黎韓愈嘉趙南海之能得人하고 壯從事之答於知我하야 不憚行之遠也하고
又樂貽周之愛其族叔父하야 能合文辭以寵榮之하야 作送竇從事少府平序하노라
甌江과 閩江 너머의 남쪽은 모두 百越의 땅이다. 天文에 對應시키면 그 星次는 星紀이고 그 星宿는 牽牛이다.
이어진 山脈이 그 북쪽을 막고 큰 바다가 그 남쪽을 막고 있다. 이곳 섬들에는 오직 갈옷을 입은 백성들만이 살고 있을 뿐이니, 風氣가 〈中原과〉 다른 것이 예로부터 드러났다.
唐나라가 천하를 소유해 〈통치하자〉 號令(조정의 명령)이 시행[加]되는 것이 원근에 다름이 없었다. 민간의 풍속이 변천하자 風氣(氣候)도 따라서 바뀌어, 서리와 눈이 제때에 내리고 전염병이 생기지 않아서,
沿海 지방의 豐饒로움이 진실로 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므로 南海 지방으로 가는 자가 마치 中原의 東方과 西方의 州郡을 왕래하는 것과 같았다.
황제께서 천하를 통치하신 지 22년에 詔書를 내려 工部侍郞 趙植을 廣州刺史로 삼아, 南海의 백성을 모두 다스리게 하시니, 〈趙植은〉 扶風 사람 竇平을 從事(幕僚)로 임명하였다.
竇平은 뛰어난 文辭로 拔擢[進]되었다. 그가 떠날 때에 그 族人 殿中侍御史 竇牟가 東都의 벗 중에 문장에 능한 28인과 회합하여 詩를 지어 竇平에게 주었다.
이에 昌黎 韓愈는 趙南海(趙植)가 人才를 얻은 것을 가상히 여기고, 竇從事가 자기를 알아준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을 장하게 여기고,
또 貽周(竇牟)가 그 族叔父를 사랑해 文辭를 모아 族叔을 영예롭게 한 것을 기쁘게 여겨, 〈送竇從事少府平序〉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