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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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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위중행衛中行에게 준 편지
公之卓然自立處 固在
이 외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自立] 탁월한 처심處心(정신,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大受足下 하니 爲賜甚大
대수大受 족하足下께, 주신 편지 잘 받아보니 내려주신 은혜가 매우 큽니다.
然所過盛하니 豈所謂誘之而欲其至於是歟
그러나 칭찬하신 말씀이 지나치게 높으니, 이 어찌 이른바 “사람을 유도하여 이런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不敢當이로라
그러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其中擇其一二似近者하야 則於交友忠而不反於背面者 少似近焉이나 亦其心之所好耳
칭찬하신 말씀 중에서 한두 가지 비슷한 것을 골라 취한다면, “벗을 사귐이 충성스러워 등 뒤에서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약간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이 또한 마음으로 좋아할 뿐이고,
行之不倦이라면 則未敢自謂能爾也 不敢當不敢當이로라
이를 행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으니, 〈이 말씀 또한〉 감당할 수 없습니다.
至於於富貴하야 以救世爲事者 皆聖賢之事業이니 知其智能謀力能任者也니라
“부귀를 취하는 일에 마음을 써서 세상을 구제하는 것을 사업으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으로 말하면 이는 모두 성현聖賢의 사업이니, 지혜와 재능과 계모計謀역량力量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라야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如愈者 又焉能之리오
나 같은 자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始相識時 方甚貧하야 이요 其後相見於汴徐二州에는 僕皆爲之하야 日月有所入하야 比之前時 豐約百倍로되
우리가 처음 서로 만났을 때에는 매우 가난하여 남의 도움으로 생활할 때였고, 그 뒤에 변주汴州서주徐州에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내가 모두 종사從事로 있었기에 다달이 수입이 있어서, 전일에 비하면 백 배나 풍족하였습니다.
足下視吾飮食衣服 亦有異乎
그러나 족하가 보시기에 나의 음식과 의복이 전과 다름이 있었던가요?
然則僕之心或不爲此汲汲也니라
그렇다면 나는 부귀富貴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其所不忘於仕進者 亦將小行乎其志耳니라
그러면서도 출사出仕를 잊지 못해하는 것은 나의 뜻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此未易遽言也
하지만 이 또한 쉽게 선뜻 말할 수 없습니다.
凡禍福吉凶之來 似不在我
화복禍福길흉吉凶이 오는 것은 나의 행위에 달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惟君子得禍爲不幸하고하며 君子得福爲恒하고 而小人得福爲幸하니니라
그러나 군자가 화를 당하면 불행으로 여기고 소인이 화를 당하면 정상으로 여기며, 군자가 복을 받으면 정상으로 여기고 소인이 복을 받으면 요행으로 여기니, 이는 그 사람의 행위가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必曰君子則吉하고 小人則凶者 不可也니라
그렇다고 반드시 “군자는 하고 소인은 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賢不肖 存乎己하고 貴與賤禍與福 存乎天하며 名聲之善惡 存乎人하니 存乎己者 어니와 存乎天存乎人者 吾將任彼而不用吾力焉이라
현불초賢不肖는 자기에게 달렸고, 귀천貴賤화복禍福은 하늘에 달렸으며, 명성名聲이 좋고 나쁨은 사람들에게 달렸으니, 내게 달린 것은 내가 힘을 써야 하겠지만, 하늘과 사람들에게 달린 것은 저들에게 맡겨두고 내가 힘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其所守者 豈不約而易行哉
그렇게 하면 내가 지켜야 할 일이 간약簡約하여 실행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足下曰 命之窮通 自我爲之라하니 吾恐未合於道니라
그런데 족하足下는 “곤궁困窮하냐 현달顯達하냐 하는 운명은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내가 보기에 이 말씀은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足下 則知矣리라 若曰 以道德爲己任하고 窮通之來 不接吾心이면 則可也리라
족하께서 전대前代의 일에 의거해 말씀하신다면 〈이 말씀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니, 만약 “도덕을 수양하는 것을 나의 임무로 삼고, 곤궁과 영달이 오는 것은 내 마음에 두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도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窮居荒涼이라 草樹茂密하고
나는 초목만 무성한 황량荒涼한 곳에서 곤궁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出無하야 因與人絶이나 一室之內 有以自娛니라
외출을 하려 해도 타고 갈 당나귀마저 없어, 사람들과의 교유가 끊겼습니다만 그래도 방 안에서 스스로 즐길 거리가 있습니다.
足下喜吾復脫禍亂인댄 不當安安而居 하라
족하께서 내가 다시 화란禍亂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신다면 편안히 집안에만 앉아 계시는 것은 옳지 않으니, 〈기회를 보아 한번〉 천천히 찾아오십시오.
역주
역주1 與衛中行書 : 貞元 15년(799) 2월에 宣武節度使 董晉이 죽자, 汴州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니, 韓愈는 변주를 떠나 徐州로 가서 徐‧泗‧濠節度使 張建封에게 의탁하였다가 정원 16년 여름에 또 서주를 떠나 洛陽으로 住居를 옮겼는데, 장건봉이 죽은 다음날 서주의 군대도 반란을 일으켰다. 韋中行은 한유가 재차 禍亂을 면한 것을 기뻐하여 편지를 보내어 위문하였다. 그러므로 한유가 이 答信을 보낸 것이다. 위중행은 자가 大受이다. 御史中丞 韋晏의 아들로 정원 9년에 進士에 及第하였다.
역주2 辱書 : 편지를 받았다는 말이다. 辱은 謙辭이다.
역주3 稱道 : 칭찬하는 말이다.
역주4 不敢當 : 남의 恩賜나 稱讚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로 謙辭이다.
역주5 竊取之 : 竊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謙辭로 쓰이니, 곧 위중행이 한유를 칭찬한 말 중에서 한두 가지 비슷한 것을 취한다는 말이다.
역주6 汲汲 : 목표로 삼은 한 가지 일에만 오로지 마음을 씀이다.
역주7 衣食於人 : 남에게 도움을 구하여 생활함을 이른다.
역주8 從事 : 官名이다. 漢代 이후로 刺史의 輔佐官을 모두 ‘從事’라 하였다. 韓愈가 汴州에 있을 때에는 董晉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觀察推官이 되었고, 徐州에 있을 때에는 張建封이 朝廷에 奏請하여 한유를 節度推官으로 삼았다.
역주9 小人得禍爲恒 : 恒은 常과 같으니, 正常이라는 말이다. ‘禍’는 저본에 ‘福’으로 되어 있으나, 本集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역주10 其所爲 似有以取之也 : 그 사람의 행위의 善惡이 禍福을 取(招來)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역주11 吾將勉之 : ‘將’은 ‘當’의 訓으로 쓰였다.
역주12 徵前世而言之 : 前世의 일에 根據[徵]하여 말함이다.
역주13 驢馬 : 당나귀이다.
역주14 遲遲而來 : 천천히 오라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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