憤當世之丞不得盡其職이라 故借壁記以點綴之하니라 而詞氣多澹宕奇詭라
丞之職
은 所以
이니 於一邑無所不當問
이라 其下
니 主簿, 尉
는 乃有
이라
丞位高而偪
일새 例以嫌不可否事
니라 에 吏抱成案詣丞
하야 卷其前
하야 鉗以左手
하고
右手摘紙尾하고 雁鶩行以進하야 平立睨丞曰 當署라하면
丞涉筆占位署
호되 惟謹
하고 目吏問可不可
하나니라 吏曰得
이라하고 則退
하니 不敢略省
하야 不知何事
라
官雖尊
이나 力勢反出主簿, 尉下
니라 必曰丞
이라하고 하나니라 丞之設
이 豈端使然哉
리오
元和初에 以前大理評事言得失黜官하고 再轉而爲丞玆邑하니라
始至
에 喟曰官無卑
요 顧材不足
이라하니라 旣噤不得施用
하니라 又喟曰丞哉丞哉
여 余不負丞
이라 而丞負余
라하고
丞廳故有記러니 壞漏汚不可讀이라 斯立易桷與瓦하고 墁治壁하야 悉書前任人名氏하니라
庭有老槐四行하고 南墻鉅竹千梃이 儼立若相持하며 水㶁㶁循除鳴이라
有問者면 輒對曰 余方有公事하니 子姑去하라하니라 考功郞中知制誥韓愈記하노라
唐荊川曰 此但說斯立不得盡職하고 更不說起記壁之意하니 亦變體也라
當世의 丞들이 그 職分을 다할 수 없는 것에 분개하였다. 그러므로 壁記를 빌려 단장[點綴]한 것이다. 문장의 기세가 대단히 호방하고 奇怪하다.
縣丞의 직책은 縣令을 補佐함이니, 한 縣의 事務에 대해 〈무엇이고〉 물어서는 안 될 것이 없다. 그 아래에 主簿와 尉가 있는데, 主簿와 尉는 나누어 관리하는 職務가 있다.
縣丞은 지위가 높아 縣令과 가까우므로 의례 혐의쩍게 여겨 公事에 可否를 말하지 않는다. 文書를 發送할 때가 되면 縣吏가 成案한 문서를 가지고 縣丞에게 와서 文券의 앞부분을 말아 왼손으로 거머쥐고,
오른손으로 종이(문서)의 끝을 잡고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걸어와서는 몸을 펴고 서서 현승을 힐끔 쳐다보며 “署名하시지요.”라고 한다.
그러면 縣丞은 붓에 먹을 묻혀 서명할 자리를 찾아 조심해 서명하고서 관리를 쳐다보며 “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관리는 “되었습니다.”라고 하고 물러가니, 현승은 감히 그 내용을 대략도 살피지 못해 전혀 무슨 일인지를 모른다.
官位는 비록 높으나 세력은 도리어 主簿와 尉 아래에 있다. 세속에서 慢官(閑散職)을 열거할 때에 반드시 “縣丞”을 말하고, 심지어 〈丞이란 말로〉 서로 헐뜯기까지 한다. 그러나 縣丞을 설치한 뜻이 어찌 본래[端] 이런 것이겠는가?
博陵 사람 崔斯立은 學問과 作文에 노력하여 자기의 소유를 축적하였고, 학술과 수양의 깊이가 깊고 영역이 넓어서 날로 진보[大]해 〈才華가〉 드러났다.
貞元 초년에 그는 자기의 재능을 믿고 京師로 와서 文藝를 겨루어, 두 차례의 科試에 두 번 다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元和 초년에 前 大理評事로 조정의 得失을 말하였다가 貶官되었고, 두 번 轉職하여 이 縣의 縣丞이 되었다.
처음 부임하였을 때에 그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관직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니, 다만 재능이 직무와 어울리기에 모자랄까만이 〈걱정될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에 감히 말도 할 수 없고 재능도 펼칠 수 없게 되자, 또 탄식하며 말하기를 “丞이여! 丞이여! 나는 丞을 저버리지 않는데 丞이 나를 저버리는구나.”라고 하고서,
이빨과 뿔을 모두 제거하고[枿去], 오로지 舊例에 따라 崖岸을 깨트리고서 丞 노릇을 하였다.
丞廳에 원래 壁記가 있었는데, 집이 무너지고 비가 새어 거무칙칙하게 더러워져서 읽을 수가 없었다. 崔斯立이 서까래와 기와를 바꾸고 흙손질하여 벽을 수리하고서 前任者들의 성명을 모두 벽에 기록하였다.
庭園에는 늙은 홰나무가 네 줄로 서 있고 남쪽 담 가에는 큰 대나무 천여 그루가 엄숙히 서서 마치 서로 버티는 듯하며, 물은 뜰을 따라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崔斯立이 깨끗이 청소해 물이 흐르게 하고는 심어놓은 두 그루 소나무를 마주보면서 날마다 그 사이에서 詩를 읊으며,
묻는 자가 있으면 “내 지금 公事가 있으니, 자네는 우선 돌아가라.”고 대답하였다. 考功郞中 知制誥 韓愈는 기록한다.
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記文은 단지 崔斯立이 職分을 다하지 못한 것만을 말하고, 벽에 기록한 뜻은 다시 언급[說起]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變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