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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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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부처의 뼈에 대해 논한 표문表文
韓公以天子迎佛 特以祈壽護國爲心이라
한공韓公은, 천자天子불골佛骨을 맞이하려는 것은 그 마음이 단지 장수長壽를 기원하고 나라를 보호하는 데 있다고 여겼다.
故其議論亦只以上立說하고 無一字論佛宗旨
그러므로 그 논의論議 또한 단지 복전福田만으로 논리論理를 세웠을 뿐, 불교佛敎종지宗旨를 논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臣某言하노이다
신 아무개는 말씀드립니다.
佛者 夷狄之一法耳
삼가 생각건대 불교佛敎는 오랑캐나라의 한 일 뿐입니다.
하니 上古未嘗有也니이다
후한後漢 때에 비로소 중국에 흘러 들어왔으니 상고시대에는 〈중국中國불법佛法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昔者 黃帝在位百年이요 年百一十歲 少昊在位八十年이요 年百歲 顓頊在位七十九年이요 年九十八歲 帝嚳在位七十年이요 年百五歲 帝堯在位九十八年이요 年百一十八歲 帝舜及禹年皆百歲니이다
옛날에 황제黃帝재위在位 기간이 100년이고 수명이 110세였으며, 소호少昊는 재위기간이 80년이고 수명이 100세였으며, 전욱顓頊은 재위기간이 79년이고 수명이 98세였으며, 제곡帝嚳은 재위기간이 70년이고 수명이 105세였으며, 제요帝堯는 재위기간이 98년이고 수명이 118세였으며, 제순帝舜도 모두 수명이 100세였습니다.
此時天下太平하야 百姓安樂壽考로되 然而中國未有佛也니이다
이때는 천하가 태평하여 백성들이 안락하고 장수하였지만 중국에 불법이 없었습니다.
其後殷湯亦年百歲 湯孫太戊在位七十五年이요 武丁在位五十九年이니
그 뒤에 나라 탕왕湯王은 수명이 100세였고, 탕왕의 손자 태무太戊는 재위기간이 75년이고, 무정武丁은 재위기간이 59년이었습니다.
書史不言其年壽所極이나 推其年數 蓋亦俱不減百歲
고서古書고사古史에 그들이 누린 수명이 얼마인지 말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재위한 연수年數를 가지고 그들의 수명을 추측해보면 모두 100세 이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周文王年九十七歲 武王年九十三歲 穆王在位百年이니이다
나라 문왕文王은 수명이 97세였고, 무왕武王은 수명이 93세였으며, 목왕穆王은 재위기간이 100년이었습니다.
此時佛法亦未入中國하니 非因事佛而致然也니이다
이때는 불법이 아직 중국에 들어오기 전이니, 부처를 섬김으로 인해 이런 수명을 누린 것이 아닙니다.
漢明帝時 始有佛法이나 明帝在位纔十八年耳 하야 不長이니이다
명제明帝 때에 비로소 불법佛法(佛敎)이 있었으나 명제는 재위기간이 겨우 18년뿐이었고, 그 뒤로 혼란과 멸망이 계속되어 황운皇運이 길지 못하였습니다.
宋齊梁陳元魏以下 事佛漸謹이나 年代尤促이니다
원위元魏(北魏) 이후로는 부처를 섬김이 점점 경근敬謹해졌으나 국가의 연대年代는 더욱 짧아졌습니다.
在位四十八年이로되 前後하고 宗廟之祭 하며 晝日一食하되 止於菜果러니
오직 무제武帝만이 재위기간이 48년이었는데, 전후 세 차례에 걸쳐 몸을 바쳐 부처를 공양하였고 종묘宗廟의 제사에 희생犧牲을 쓰지 않았으며, 낮에는 한 끼만을 먹되 먹는 것은 채소와 과일뿐이었습니다.
其後竟爲所逼하야 하고 國亦尋滅하니이다
그런데도 뒤에 끝내 후경侯景의 핍박을 받아 대성臺城에서 굶어죽고 나라도 이내 멸망하였습니다.
事佛求福이라가 乃更得禍하니 由此觀之컨대 佛不足事 亦可知矣니이다
부처를 섬겨 을 구하려다가 결국 다시 를 얻었으니, 이로써 보면 부처는 섬길 만한 것이 못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야 當時群臣 古今之宜하야 推闡聖明하야 以救斯弊하야
고조高祖( 고조高祖)께서 비로소 나라의 선양禪讓을 받아 〈황제가 되신 뒤에 신하들을 불러〉 불법佛法을 제거할 것을 논의하게 하였으나, 당시 군신群臣들의 재능과 식견이 심원深遠하지 못하여 선왕의 와 고금의 시의時宜를 깊이 연구해 성상聖上의 뜻을 천명闡明하여 이 폐단을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其事遂止하니 臣常恨焉이니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드디어 중지되고 말았으니, 신은 항상 이를 한스러워하였습니다.
伏惟陛下 神聖 數千百年已來未有倫比하야
삼가 생각건대 예성문무황제폐하睿聖文武皇帝陛下(憲宗)께서는 신성神聖하고 영무英武하심이 수천백 년 이래로 비교될 이가 없습니다.
卽位之初 卽不許爲僧尼道士하고 又不許創立寺觀하니 臣常以爲高祖之志 必行於陛下之手니이다
그리하여 즉위하신 초기에 사람들이 출가出家하여 승려僧侶비구니比丘尼도사道士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또 새로 불사佛寺도관道觀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신은 항상 고조의 뜻이 반드시 폐하의 손에서 시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今縱未能卽行이나 豈可轉令盛也잇가
지금 비록 즉시 시행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방임放任하여 더욱 융성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今聞陛下令群僧迎佛骨於鳳翔하야 御樓以觀하고 舁入大內하고 又令諸寺遞迎供養이라하니
지금 듣건대 폐하께서 승려들을 시켜 봉상鳳翔으로 가서 불골佛骨을 맞이해 오게 하여, 누대樓臺에 올라 관람하고서 이것을 실은 가마를 대내大內(皇宮)로 들이시고, 또 여러 사찰寺刹에 명하여 이 불골佛骨을 맞이해 돌려가며 공양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臣雖至愚 必知陛下不惑於佛하야 作此崇奉하야 以祈福祥也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반드시 폐하께서 부처에 미혹하여 이처럼 융숭히 받들어 복과 상서를 기구祈求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농사가 풍년이 들고 인민이 안락해진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경도京都서인庶人들을 위해 괴이한 구경거리와 즐거운 놀이거리를 마련하시려는 것뿐임을 잘 압니다.
安有聖明若此而肯信此等事哉잇가
어찌 이처럼 성명聖明하신 폐하께서 이런 일을 믿어서이겠습니까?
然百姓愚冥하야 易惑難曉하니 苟見陛下如此 將謂眞心事佛이라하야
그러나 백성들은 어리석어 미혹되기는 쉽고 깨닫기는 어려우니, 만약 폐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면 백성들은 아마도 폐하께서 진심으로 부처를 섬기시는 것으로 여겨,
皆云天子大聖이로되 猶一心敬信이어늘 百姓何人이완대 豈合更惜身命가하고
모두 “천자는 큰 성인聖人이신데도 오히려 일심으로 공경해 믿으시는데, 백성이 무엇이라고 어찌 신명身命을 아끼겠는가?”라고 하고,
焚頂燒指하며 百十爲群하야 解衣散錢하야 自朝至暮 轉相倣效하야 惟恐後時하야
정수리를 태우고 손가락을 태우며,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옷을 벗어주고 돈을 시주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로 본받아 오직 남에게 뒤질까 두려워하여,
老少奔波하야 棄其業次하리이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생업을 버릴 것입니다.
若不卽加禁遏하고 更歷諸寺 必有斷臂臠身以爲供養者리이다
만약 이런 일을 즉시 금지하지 않고 불골佛骨이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게 한다면 반드시 어깨를 자르거나 살점을 도려내어 부처에게 공양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傷風敗俗하야 傳笑四方이니 非細事也
풍속을 손상하여, 사방에 웃음거리를 전하게 될 것이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夫佛 本夷狄之人이라 與中國言語不通하고 衣服殊製하며 口不言先王之하고 身不服先王之하며 不知君臣之義 父子之情하니
저 부처는 본래 오랑캐나라의 사람이라서 중국과는 말이 통하지 않고 의복도 제도가 다르며, 입으로는 선왕先王법언法言을 말하지 않고 몸에는 선왕의 법복法服을 입지 않으며,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정을 알지 못합니다.
假如其身至今尙在하야 奉其國命來朝京師라도 陛下容而接之호되 不過一見하고 一設하야 賜衣一襲하야 衛而出之於境이요 不令惑衆也어든 況其身死已久하고 枯朽之骨 豈宜令入宮禁이리잇가
가령 부처의 몸이 지금까지 생존하여 그 나라의 사명使命을 받들고 경사京師로 와서 조현朝見한다 하더라도 폐하께서는 그의 조현을 허용하여 접견하시되, 선정전宣政殿에서 한 차례 접견하시고 예빈원禮賓院에서 한 차례 향연饗宴을 베풀어 접대한 다음 옷 한 벌을 주어 호위해 국경을 나가게 하는 데 불과하고, 민중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하셨을 것인데, 하물며 그 몸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마르고 썩은 뼈는 겨우 남은 흉물스럽고 더러운 물건이니, 어찌 이를 궁중으로 들여서야 되겠습니까?
孔子曰 라하고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하였고,
古之諸侯行弔於其國 尙令先以不祥然後 進弔어늘
옛날의 제후諸侯가 자기 나라에서 조상弔喪할 때에도 오히려 을 시켜 먼저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를 엮어 만든 비로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쓸어 없앤 뒤에 나아가 조상하였는데,
今無故取朽穢之物하야 親臨觀之호되 巫祝不先하고 桃茢不用이로되
지금 아무 까닭 없이 썩고 더러운 물건을 가져다가 친히 납시어 구경하시되 을 먼저 보내지도 않으시고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를 엮어 만든 비를 사용하지도 않으셨습니다.
群臣不言其非하고 御史不擧其失하니 臣實恥之하노이다
그런데도 신하들이 그 잘못을 말하지 않고 어사御史도 그 잘못을 거론하지 않았으니, 신은 실로 부끄럽게 여깁니다.
乞以此骨付之有司하야 投諸水火하야 永絶根本하야 斷天下之疑하고 絶後代之惑하야 使天下之人知之所作爲 出於尋常萬萬也
바라건대 이 불골佛骨을 담당 관원官員에게 주어 물속이나 불속에 던져 넣게 하여, 그 뿌리를 영원히 끊어버려 천하의 의혹과 후대의 미혹을 〈사전에〉 단절하시어,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큰 성인의 행위行爲가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남을 알게 하소서.
豈不盛哉 豈不快哉잇가
그리하신다면 어찌 성대한 일이 아니며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佛如有靈하야 能作 凡有殃咎 宜加臣身하리이다
가령 부처가 영험靈驗하여 재화災禍를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재앙災殃이 응당 신의 몸에 이를 것입니다.
上天하니 臣不怨悔로이다
하늘이 밝게 굽어보시니 신은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겠습니다.
無任之至하야 謹奉表以聞하노이다
격렬한 감정과 간절한 충성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이 표문을 올려 아뢰나이다.
역주
역주1 論佛骨表 : 이 表는 唐 憲宗 元和 14년(819)에 韓愈가 兵部侍郞으로 있을 때 올린 것이다. 이때 한유의 나이 52세였다. 鳳翔法門寺의 護國眞身石塔 안에 釋迦의 손가락뼈 한 마디를 간직하고서, 30년마다 한 번씩 탑을 열고 그 뼈를 꺼내었는데, 탑을 여는 해에는 풍년이 들고 백성의 생활이 안락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이해가 마침 탑을 여는 해였기에 헌종이 宦官 杜英奇 등을 보내어 맞이해 오게 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韓文公本傳〉에 보인다.
역주2 福田 : 佛敎語로, 부처를 供養하고 善行을 쌓으면 福을 받는 것이 마치 田地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穀物을 수확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3 伏以 :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는 文書에 상용하는 套式語로, ‘伏念’과 같은 말이다.
역주4 後漢時流入中國 : 後漢 明帝가 꿈에 키가 크고 이마에서 빛이 나는 金人을 보았다. 群臣에게 금인에 대해 물으니, 어떤 신하가 “西域에 神이 있는데, 그 이름을 ‘부처’라 합니다.”라고 하였다. 명제는 天竺으로 使者를 보내어 佛法을 물어오게 하고서, 드디어 중국에 그 형상을 그려 붙이게 하였다. 《後漢書 西域傳》
역주5 其後亂亡相繼 : 明帝 이후로 戚臣과 宦官이 권력싸움으로 서로 살육하고, 傷帝와 沖帝는 夭死하고, 質帝는 被殺되고, 獻帝에 이르러 마침내 曹操의 아들 曹丕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을 이른다.
역주6 運祚 : 皇帝의 在位期間와 壽命을 이른다.
역주7 梁武帝 : 南朝 때 齊나라의 大司馬로 齊 和帝의 禪讓을 받아 梁나라를 세운 蕭衍이다. 佛敎에 信心이 매우 깊었던 君主였다.
역주8 三度捨身施佛 : 捨身은 佛徒가 佛法을 선양하거나 布施하기 위해 寺院에 몸을 바치는 것이다. 《南史》에 의하면 梁 武帝는 大通 원년(527)과 中大通 원년(529)과 大淸 원년(547)에 각각 同泰寺로 가서 四部無遮大會를 열고 이어 사원에 몸을 바치니, 公卿들이 사원에 億萬錢을 喜捨하고서 도로 모셔왔다.
역주9 不用牲牢 : 牲牢는 祭祀에 바치는 牛‧羊‧豕를 이른다. 梁 武帝는 殺生을 하지 않기 위해 종묘의 제사에 희생을 쓰지 않고, 대신 밀가루로 희생의 모습을 빚어 쓴 것이다. 《南史》에 “天地의 제사와 조상의 제사에 쓰는 犧牲은 모두 밀가루로 빚은 희생으로 대신하였다.[郊廟牲牷 皆代以麵]”란 말이 보인다.
역주10 侯景 : 北魏의 장군으로 梁나라에 投降하였다가 뒤에 다시 양나라를 배반하고서 皇都 臺城을 함락하고 詔書를 위조하여 皇帝의 援軍을 해산시키고 스스로 大都督이 된 逆臣이다.
역주11 餓死臺城 : 《梁書》 〈武帝紀〉에 “근심과 울분이 병이 되어……淨居殿에서 죽었다.[憂憤寢疾……崩于淨居殿]”라 하였으니, 梁 武帝는 餓死한 것이 아니라 근심과 울분이 병이 되어 죽은 것이다.
역주12 高祖始受隋禪 : 唐 高祖 李淵이 隋 恭帝에게 禪讓을 받아 皇帝에 오른 것을 이른다.
역주13 議除之 : 武德 9년(626)에 고조가 太史令 傅奕의 건의에 따라 有司에게 詔書를 내려 천하에 僧侶‧比丘尼‧道士‧女冠(女道士) 등을 淘汰시킬 것을 논의하게 하였다. 《資治通鑑 唐紀》
역주14 材識不遠 不能深知先王之道 : 《新唐書》와 《舊唐書》에는 ‘材識’이 ‘識見’으로, ‘深知‘가 ’深究‘로 되어 있다.
역주15 睿聖文武皇帝 : 憲宗의 尊號이다.
역주16 英武 : 뛰어나게 용맹스러움이다.
역주17 度人 : 사람이 出家하여 승려나 도사가 됨이다.
역주18 恣之 : 放任함이다.
역주19 直以年豐人樂……戱玩之具耳 : 단지 塔에 간직한 佛骨을 꺼내면 풍년이 들고 백성의 생활이 안락해진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소망에 따라 이런 구경거리를 만든 것뿐이라는 말이다. 본편의 題下註 참조.
역주20 法言 : 禮法에 맞는 言語이다.
역주21 法服 : 禮法이 規定한 服飾이다.
역주22 宣政 : 宮殿의 이름이다. 唐나라는 대체로 外國使臣을 이곳에서 接見하였다.
역주23 禮賓 : 외국사신의 接待를 맡은 官署이다.
역주24 凶穢之餘 : 겨우 남은 흉물스럽고 더러운 尸骨이란 말이다. 凶穢는 死者의 尸骨을 이른다.
역주25 敬鬼神而遠之 : 이 말은 《論語》 〈雍也〉에 보인다.
역주26 巫祝 : 巫는 惡鬼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무당이고, 祝은 祭祀 때 축원하여 福을 비는 祝官이다.
역주27 桃茢袚除 : 桃는 복숭아나무 가지이고, 茢은 갈대를 엮어 만든 비이다. 袚除는 사악한 기운을 떨어냄이다. 《禮記》 〈檀弓 下〉에 “임금이 신하의 喪에 임할 때에 巫가 桃를 잡고 祝이 茢을 잡고 小臣이 창을 잡는 것은 흉한 기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君臨臣喪 以巫祝桃茢執戈]”란 말이 보인다.
역주28 大聖人 : 憲宗을 이른다.
역주29 禍祟(수) : 귀신이 일으키는 災殃을 이른다.
역주30 鑑臨 : 밝게 살핌이다. 鑑은 밝음이고, 臨은 위에서 아래를 살핌이다.
역주31 感激 :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분한 생각으로 감정이 세차게 일어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32 懇悃 : 간절한 충성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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