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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1)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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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總叙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에 대한 총서總叙
孔子之繫易曰 이라하니 斯固所以敎天下後世爲文者之
공자孔子께서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그 뜻은 심원深遠하고 그 문사文辭우아優雅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천하 후세에 문장을 배우는 자들을 가르치신 절실한 말씀이다.
然而 顔淵子貢以下 齊魯間之秀傑也 或云이라하여늘
그러나 공자 문하門下에서 수업한 제자弟子 중에 안연顔淵자공子貢 이하가 모두 나라와 나라의 뛰어난 인걸人傑이었고, 혹자는 “몸소 육예六藝를 통달한 자가 70여 인이었다.”고 하였는데,
모두 문학文學과목科目에 끼지 못하였고, 낀 사람은 겨우 자유子遊자하子夏 두 사람뿐인 것은 어째서인가?
蓋天生賢哲 各有獨稟하니 譬則泉之溫 石之結綠 金之指南이라
대체로 하늘이 현명賢明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낼 때에는 각각 독특獨特기질氣質부여賦與하기 때문이니, 비교하자면 샘에 뜨거운 샘이 있고, 불에 차가운 불이 있고, 돌에 결록結綠(美玉)이 있고, 금속金屬지남철指南鐵이 있는 것과 같다.
人於其間 以獨稟之氣 而又必之專一하야 以致其至하니 之於音 之於占 之於射 於御 之於醫 彼皆以天縱之智 加之以專一之學하야 而獨得其解니라
사람은 그 사이에서 독특하게 받은 기질을 또 반드시 전일專一하게 수련修鍊하여 그 극치에 도달하니, 영륜伶倫음률音律에, 비조裨竈점술占術에, 양유기養由基가 활쏘기에, 조보造父가 수레몰이에, 편작扁鵲의술醫術에, 의료宜遼가 구슬놀이에, 혁추奕秋가 바둑에 정통한 것은 저들이 모두 천부天賦재지才智를 타고난 사람들로 전일하게 학습學習하여 홀로 그 이치를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斯固以之擅當時而名後世
이들은 진실로 이로 인해 당시에 명성을 독점하고 후세에 이름을 전한 것이니, 다른 사람이 서로 우열을 겨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다.
孔子沒而游夏輩各以其學授之諸侯之國이나 已而散逸不傳하니라
공자孔子서거逝去한 뒤에 자유子游자하子夏 등이 각각 자기들이 배운 것을 제후諸侯 나라에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모두 흩어져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았다.
秦人燔經坑學士 而六藝之旨幾輟矣니라
나라가 경서經書를 불태우고 학사學士들을 묻어 죽이자 육예六藝의 뜻이 거의 중단中斷되었다.
漢興하야 招亡經하고 求學士 始乃稍稍出하야之文 號爲하니라
나라가 일어나서 없어진 경서經書를 구하고 학사學士들을 초치招致하자, 조조鼂錯가의賈誼동중서董仲舒사마천司馬遷유향劉向양웅揚雄반고班固 등이 비로소 점차 진출進出하여, 서경西京(西漢)의 문장文章고아高雅하고 순정純正하다고 일컬어졌다.
以下 非不 然六藝之旨 漸流失하니라
최인崔駰채옹蔡邕 이하 사람들도 문장이 씩씩하고 힘이 있어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육예의 뜻은 점점 사그라져 없어졌다.
魏晉宋齊梁陳隋唐之間 文日以靡하고 氣日以弱하니 어든 而況於穿札乎
, , , , , , , 사이에는 문장이 날로 화려해지고 기세가 날로 유약柔弱해졌으니, 강한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도 끝에 이르러 힘이 다하면 나라에서 생산된 얇은 비단도 뚫을 수 없는데, 더구나 갑옷을 뚫을 수 있겠는가.
昌黎韓愈首出而振之하고 柳柳州又從而和之하니 於是始知非六經不以讀이요 이라
창려昌黎 한유韓愈가 처음 나와서 화려하고 유약해진 문풍文風진작振作시키고, 유유주柳柳州(柳宗元)가 또 뒤따라 호응呼應(和)하니, 이에 비로소 육경六經이 아니면 읽지 말아야 하고 선진先秦양한兩漢의 글이 아니면 보지 말아야 할 줄을 알았다.
其所著書論敍記碑銘頌辯諸什
그들이 지은 비명碑銘 등 여러 에는 진실로 일가一家의 문장을 독창獨創한 것이 많다.
그러나 대체로 모두 육예六藝(六經)의 유지遺旨를 찾아서 서로 오르내리며 도운 것들이다.
以後 唐且中墜하고 하얀 天下니라
정원貞元 이후로 나라도 문운文運이 중간에 쇠퇴하였고, 그 쇠퇴한 문풍文風이 계속 흘러내려 전란戰亂이 끊이지 않던 오대五代 때에 미쳐서는 천하에 고문古文을 짓는 이가 매우 드물었다.
宋興百年 文運天啓
나라가 일어난 지 백 년 뒤에 하늘이 문운文運을 열어주었다.
於是歐陽公脩으로 偶得韓愈書하야 手讀而好之하니 而天下之士 始知通經博古爲高하고 而一時文人學士 하니라
이에 구양공歐陽公 수주隋州 고가古家에 버려진 고서古書 속에서 우연히 한유의 글을 발견하여 손수 읽어보고는 좋아하니, 천하의 선비들이 비로소 경학經學에 통달하고 고사古事에 해박한 것을 고상함으로 여길 줄을 알았고, 당시의 문인文人 학사學士들이 성대하게 구양공에게 귀의歸依하여 떨쳐 일어났다.
蘇氏父子兄弟 及曾鞏王安石之徒 其間材旨小大 音響緩亟 雖屬不同이나 而要之컨대 於孔子所刪六藝之遺 則共爲之者也
소씨蘇氏 부자 형제와 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 등은 재지材旨(재주와 지취旨趣)의 대소大小음향音響(시문詩文성조聲調)의 완급緩急은 비록 같지 않으나, 요컨대 공자孔子께서 산정刪定한 육예의 유지에 대해서는 모두 익히고 자세히 열람閱覽한 자들이다.
由今觀之컨대 譬則世之走於千里之門이라가 而中及二百里三百里而輟者有之矣則非也
지금 세상에서 보기에, 비교하자면 세상에는 준마駿馬를 달려 천 리 밖의 으로 가다가 200리나 300리에 미쳐 중지하는 자가 있으나, 이를 일러 북쪽[薊]으로 가면서 수레의 끌채를 남쪽[越]으로 틀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世之 往往謂文章與時相高下라하고 而唐以後 且薄不足爲라하니
세상에 글을 쓰는 자들은 이따금 ‘문장은 시대에 따라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한다.’고 하면서 나라 이후의 문장에 대해서는 또 ‘천박淺薄하여 배울 가치가 없다.’고 하니, 아!
抑不知文 特以道相盛衰 時非所論也
이는 문장은 다만 와 함께 서로 성쇠盛衰할 뿐이니, 시대는 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其間工不工 則又係乎斯人者之稟 與其專一之致否何如耳니라
그 사이에 문장이 정교精巧하고 정교하지 못한 것은 또 그 사람의 품성稟性과 전일하게 힘을 쓴 것이 어떠하냐에 달렸을 뿐이다.
如所云이면 則必之尙이요 之陳이니 之設也已
가령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반드시 태갱太羹현주玄酒만을 숭상하고 모자茅茨토궤土簋만을 진설陳設해야 하니, 삼대三代 이후로 명당明堂, 옥대玉帶, 운뢰雲罍, 희준犧樽을 진설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孔子之所謂其旨遠 卽不詭於道也 其辭文 卽道之燦然若니라
공자孔子께서 이른바 ‘그 뜻이 심원深遠하다.’는 것은 곧 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고, ‘그 문사文辭우아優雅하다.’는 것은 바로 가 찬란하여 마치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 촘촘히 퍼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斯固以來 人文不易之統也 而豈世之云乎哉
이는 진실로 복희伏羲(庖犧) 이래로 변역하지 않은 인문人文법통法統이니, 어찌 세인世人의 말과 같겠는가?
우리 나라 홍치弘治정덕正德 사이에 이몽양李夢陽북방北方에서 우뚝이 일어나니, 재지才智걸출傑出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已振詩聲하고 復揭文軌하야 而曰吾左吾史與漢矣라하고 已而又曰 吾라하니라
이미 로써 명성을 떨치고, 다시 문장文章궤범軌範제시提示하며 말하기를 “나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사기史記》‧《한서漢書》의 문장을 본받았다.” 하고, 또 “나는 황초黃初건안建安 때의 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以予觀之컨대 特所謂詞林之雄耳 其於古六藝之遺 豈不而互相已乎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단지 사림詞林에 뛰어난 자일 뿐이니, 그가 옛 육예六藝유지遺旨에 대해 어찌 깊이 빠져 방탕하고 참람하게 표절剽竊한 자가 아니겠는가?
予於是手掇韓公愈, 柳公宗元, 歐陽公脩, 蘇公洵軾轍, 曾公鞏, 王公安石之文하야
나(茅坤)는 이에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구양수歐陽脩,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의 문장을 손수 뽑아
而稍爲批評之하야 以爲操觚者之券하고 題之曰八大家文抄라하니라
약간의 비평批評을 붙여 글을 쓰는 자들의 필독서必讀書로 삼고서, 그 제목題目을 ‘八大家文抄’라고 하였다.
家各有하고 條疏如左하노라
그리고 팔가八家마다 각각 을 붙이고, 이하와 같이 조목을 나누어 서술하였다.
嗟乎
아!
之八君子者 不敢遽謂盡得古六藝之旨 而予所批評 亦不敢自以得八君子者之深이나 要之大義所揭 或於道不相리라
이 여덟 군자가 옛 육예六藝의 뜻을 다 얻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고, 나의 비평 또한 감히 여덟 군자의 깊은 뜻을 다 얻었다고 할 수 없으나, 요컨대 대의大義를 드러낸 것을 명백明白하게 지적하여 서술敍述한 것이니 혹 와 서로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謹書之하야 以質世之知我者하노라
그러므로 삼가 써서 세상에 나를 아는 이들에게 질정質正을 구하노라.
時萬曆己卯仲春 歸安鹿門茅坤撰하노라
만력萬曆 기묘己卯(1579) 중춘仲春귀안歸安 녹문鹿門 모곤茅坤은 짓다.
역주
역주1 其旨遠 其辭文 : 《周易》 〈繫辭傳 下〉에 보이는 말로, 卦와 爻의 含意가 深遠하고 卦辭와 爻辭의 文章이 優雅하다는 말이다.
역주2 : 至言으로 절실한 말이다.
역주3 及門之士 : 門下에서 受學한 弟子를 이른다.
역주4 身通六藝者七十餘人 : 《史記》 〈孔子世家〉에 “공자의 제자 중에 六藝를 통달한 사람이 72인이었다.”는 말이 보인다. 六藝는 《詩經》‧《書經》‧《禮記》‧《樂記》‧《周易》‧《春秋》 등 六經을 이르기도 하고, 禮‧樂‧射‧御‧書(六書)‧數(九九) 등 6종의 技藝를 이르기도 한다.
역주5 文學之科……僅子游子夏兩人焉 : 《論語》 〈先進〉에 “德行에는 顔淵‧冉伯牛‧仲弓이었고, 言語에는 宰我‧子貢이었고, 政事에는 冉有‧季路였고, 文學에는 子游‧子夏였다.”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6 火之寒 : 반딧불, 또는 古木 등에서 燐의 작용으로 번쩍이는 불빛을 이른다.
역주7 伶倫 : 傳說 속의 인물이다. 黃帝 때의 樂官으로 樂律을 創製하였다 한다.
역주8 裨竈 : 春秋 때 鄭나라 大夫로 天文과 占術에 能通한 사람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17년에 보인다.
역주9 養由基 : 春秋 때 楚나라 사람으로 활을 잘 쏘았다. 《春秋左氏傳》 成公 16년에 보인다.
역주10 造父 : 周 穆王 때 사람으로 수레를 잘 몰았다. 《史記》 〈趙世家〉에 보인다.
역주11 扁鵲 : 春秋 때 鄭나라 사람으로 醫術이 高妙하였다. 《史記》 〈扁鵲倉公列傳〉에 보인다.
역주12 遼之於丸 : 僚는 春秋 때 楚나라의 勇士 宜僚이고, 丸은 弄丸으로 여러 개의 구슬을 손에 쥐고 떨어뜨리지 않고 놀리는 技藝이다. 《莊子》 〈徐无鬼〉에 “市南宜僚는 〈일찍이 白公勝이 모반을 일으켜 令尹 子西를 죽일 것을 강요하였을 때〉 구슬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요구에 겁을 먹지 않고 그들을 깨우쳐〉 白公과 子西 두 집안의 禍難을 해결되었다.[市南宜僚弄丸 而兩家之難解]”는 말이 보인다.
역주13 秋之於奕 : 秋는 바둑을 잘 둔 사람이다. 《孟子》 〈告子 上〉에 “전국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자이다.[秋通國之善奕者]”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14 非他所得而相雄者 : 相雄은 서로 優劣을 겨루는 것이니, 이 말은 곧 다른 사람이 우열을 겨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역주15 鼂錯(조조)賈誼董仲舒司馬遷劉向揚雄班固 : 鼂錯는 西漢 때의 政治家로 伏生에게 《尙書》를 수학하였고, 여러 편의 對策과 疏를 남겼다. 당시에 智囊으로 일컬어졌다. 賈誼는 西漢 때의 文人이면서 政治家로 〈治安策〉‧〈鵩鳥賦〉 등의 名文과 《新書》를 남겼다. 董仲舒는 서한 때의 儒學者로 《春秋》에 정통하였다. 〈天人策〉 등의 명문과 《春秋繁露》를 남겼다. 司馬遷은 서한 때의 史學者로 《史記》를 지었다. 劉向은 서한 때의 經學者로 《列女傳》‧《新序》‧《說苑》 등을 남겼다. 揚雄은 서한 때의 유학자로 《論語》를 모방하여 《法言》을 지었다. 班固는 後漢 때의 사학자로 《漢書》를 지었다.
역주16 西京 : 西漢의 首都 長安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西漢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17 爾雅 : 문장이 高雅하고 純正함을 이른다.
역주18 崔蔡 : 東漢의 文人 崔瑗과 蔡邕을 이른다.
역주19 矯然龍驤 : 矯然은 강하고 씩씩하여 힘찬 모양이고, 龍驤은 氣象이 凡常하지 않고 뛰어남이다.
역주20 强弩之末 且不及魯縞 : 《漢書》 〈韓安國傳〉에 보이는 말로, 강한 것도 힘이 쇠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후대로 내려올수록 문장의 기운이 쇠약해진 것을 비유한 말로 쓰였다.
역주21 非六經不以讀 非先秦兩漢之書不以觀 : 韓愈의 〈答李翊書〉에 “三代와 兩漢의 글이 아닌 것은 감히 읽지 않았고, 聖人의 뜻이 아닌 것은 감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非三代兩漢之書 不敢讀 非聖人之志 不敢存]”는 말이 보인다.
역주22 故多所獨開門戶 : 故는 固의 뜻으로 쓰였다. 獨開는 獨創이고, 門戶는 一家 또는 學派를 이르니, 진실로 一家의 文章을 독창한 것이 많다는 말이다.
역주23 大較幷尋六藝之遺 略相上下而羽翼之者 : 大較는 대개이고, 略도 대체이다. 이 말은 儒學의 정신을 계승하여 드러내 밝힌 것을 이른 것이다.
역주24 貞元 : 唐 德宗의 年號로 785년에서 805년까지 20년 동안이다.
역주25 沿及五代兵戈之際 : 沿은 흘러내려감이다. 五代는 唐나라가 망하고 宋나라가 建國하기 이전의 58년 사이에 梁‧唐‧陳‧漢‧周 등 王朝가 다섯 번 바뀐 혼란한 시대를 이른다. 五季로 불리기도 한다.
역주26 寥寥 : 寂寞한 모양으로 數量이 적음을 형용하는 말이니, 곧 古文을 짓는 文人이 매우 적었다는 말이다.
역주27 隋州故家覆瓿中 : 隋州故家는 수주의 李彦甫의 집을 이른다. 歐陽脩의 〈記舊本韓文後〉에 “내가 소싯적에 漢東에 살았는데, 한동은 궁벽하고 풍속이 누추하여 학자가 없었고, 우리 집은 가난하여 藏書가 없었다. 수주 남쪽에 大姓 李氏가 살고 있는데, 그 아들 언보가 자못 학문을 좋아하였으므로 내가 童子 때에 그 집에 가서 노는 날이 많았다. 벽장 사이에 古書가 담긴 헌 광주리가 있는 것을 보고서 들추어 보다가 《昌黎先生文集》 여섯 권을 발견하였다.[予少家漢東 漢東僻陋 無學者 吾家又貧 無藏書 州南有大姓李氏者 其子彦甫頗好學 予爲兒童時 多遊其家 見其弊筐貯古書在壁間 發而視之 得唐昌黎先生文集六卷]”는 말이 보인다. 覆瓿는 覆醬瓿의 준말로 훌륭한 著書를 사람들이 그 價値를 몰라보고서 장독 덮개로 쓴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放置한 古書 더미’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28 彬彬然附離而起 : 彬彬然은 성대한 모양이고, 附離는 歸依함이니, 당시의 문인 학사들이 성대하게 歐陽脩에게 귀의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9 家習而戶眇 : 家家마다 익히고 戶戶마다 보았다는 말인데, 家와 戶는 蘇氏‧曾鞏‧王安石 등을 이른다. 眇는 자세히 봄이다.
역주30 騕褭(뇨)騏驥 : 騕褭와 騏驥는 모두 駿馬의 이름이다.
역주31 塗之薊而轅之粤 : 薊는 北方의 地名으로 지금의 北京이고, 粤은 南方의 지명으로 지금의 廣東 一帶를 이른다. 塗는 도로이고, 轅은 수레의 끌채이다. 곧 북쪽으로 가면서 남쪽을 향해 수레를 달린다는 말이다.
역주32 操觚者 : 손에 木簡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로, 곧 글을 짓는 사람을 이른다.
역주33 太羹玄酒 : 太羹은 古代에 제사에 쓰던 調味하지 않은 肉汁이고, 玄酒는 淸水이다. 上古에는 술이 없었으므로 제사에 청수를 술로 사용하였다. 그 빛깔이 검기 때문에 ‘玄酒’라 한 것이다.
역주34 茅茨土簋 : 茅茨는 草屋이고, 土簋는 土器이니, 곧 古代에는 지붕을 갈대나 짚으로 이은 宗廟에서 흙으로 빚은 陶器에 음식을 담아 벌여놓은 것이다.
역주35 三代而下 : 三代는 夏‧商‧周이고, 而下는 而後이다.
역주36 明堂玉帶雲罍犧樽 : 明堂은 古代에 天子가 政敎를 宣布하던 곳으로 朝會‧祭祀‧慶賞‧選士‧養老‧敎學 등의 大事를 모두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玉帶는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이다. 雲罍는 구름 문양을 새긴 술병이다. 犧樽은 소의 모양으로 만든 술그릇이다.
역주37 騈枝 : 騈拇枝指의 준말로, 騈拇는 엄지발가락이 검지발가락과 붙어 하나가 된 것이고, 枝指는 엄지손가락 옆에 손가락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니, 모두 쓸데없는 물건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38 象緯者之曲而布 : 象緯는 日月星辰이고, 曲而布는 촘촘하게 分布된 것이다.
역주39 庖犧 : 八卦를 처음 그린 伏羲를 이른다.
역주40 弘治正德 : 弘治는 明 孝宗의 年號로 1488년에서 1505년까지이고, 正德은 明 武宗의 연호로 1506년에서 1521년까지이다.
역주41 李夢陽崛起北地 : 李夢陽은 字가 獻吉, 號가 空同子로 慶陽人이다. 北地는 秦‧漢시대의 郡名으로 지금의 甘肅 南部와 寧夏 남부 일대인데, 경양이 그 구역 안에 있다.
역주42 豪雋輻湊 : 豪雋은 豪俊으로 才智가 뛰어난 사람을 이른다. 輻湊는 수레바퀴의 살이 굴대통으로 모이는 것을 이르는 말로 한 곳에 많이 몰려듦을 뜻한다. 이는 前七子가 동시 함께 일어난 것을 가리킨 것이다. 전칠자는 古文을 주장한 李夢陽‧何景明‧徐禎卿‧邊貢‧康海‧王九思‧王廷相이다. 뒤에 李攀龍‧王世貞‧謝榛‧宗臣‧梁有譽‧徐中行‧吳國倫 등 7人이 나와서 이들을 계승해 古文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전자를 ‘前七子’, 후자를 ‘後七子’라 한다.
역주43 黃初建安 : 黃初는 魏 文帝의 年號로 220년에서 226년까지이고, 建安은 漢 獻帝의 연호로 196년에서 219년까지이다.
역주44 吾左吾史與漢矣……吾黃初建安矣 : 이 말은 李夢陽의 《空同集》에 보이지 않는다. 《明史》 〈文苑 李夢陽傳〉에 “文은 반드시 秦‧漢 때의 文이어야 하고, 詩는 반드시 盛唐 때의 詩여야 한다고 提唱하면서 이때의 詩文이 아닌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倡言文必秦漢 詩必盛唐 非是弗道]”라고 보이는데, 이 말을 茅坤이 敷衍한 것이다.
역주45 湛淫滌濫 : 湛淫은 沈浸과 같은 말로 깊이 빠짐이고, 滌은 방탕이고, 濫은 분수를 넘는 것이니, 곧 六經의 遺文을 좋아하여 분수를 모르고서 함부로 그 유문을 剽竊하였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46 剽裂 : 剽竊이다.
역주47 : 文體의 하나로 序의 종류인데, 序에 비해 간단한 것을 이른다.
역주48 指次點綴 : 指次는 指明과 같은 말로 명백하게 지적함이고, 點綴은 문장을 엮음이다.
역주49 盭(려) : 違背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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