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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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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一悲一笑하여 令人破涕
思謙兄足下
過永州하여 爲僕言得 道思謙蹇然有當官之心하니 乃誠助太平者也라하여 僕聞之喜甚이라
然微王生之說이라도 僕豈不素知耶
所喜者耳與心叶하여 果於不謬焉爾
僕不幸하여 嚮者進當臲臬兀 不安之勢하여 平居閉門 口舌無數
況又有久與游者 乃岌岌而操其間이리오
其求進而退者 皆聚爲仇怨하여 造作粉飾하여 蔓延益肆
非的然昭晰하고 自斷於內하니 則孰能了僕於冥冥之間哉리오
然僕當時年三十三甚少
하여 超取顯美하니 欲免世之求進者怪怒媢嫉이나 其可得乎
凡人皆欲自達이어늘 僕先得顯處하여 才不能踰同列하고 名不能壓當世하니 世之怒僕 宜也
이요 官又以是進하니 辱在附會
聖朝弘大하여 貶黜甚薄하니 不能塞衆人之怒하여 謗語轉하여 囂囂嗷嗷하여 漸成怪民이라
飾智求仕者 更言僕以悅讐人之心하여 日爲新奇하여 務相喜可하여
自以速援引之路 而僕輩坐益困辱이라
萬罪橫生하여 不知其端이라
伏自思念컨대 過大恩甚하여 乃以致此하니
悲夫
人生少得六七十者어늘 今已三十七矣
長來覺日月益促 歲歲更甚이라
大都不過數十寒暑 則無此身矣 是非榮辱 又何足道리오
云云不已 秪益爲罪리라
兄知之하고 勿爲他人言也하라
居蠻夷中久 慣習炎毒하여 昏眊重膇하니 意以爲常이러니
忽遇北風晨起하여 薄寒中體하니 則肌革慘懍하고 毛髮蕭條
瞿然注視 怵惕以爲異候하여 意緖殆非中國人이라
楚越間聲音特異하여 鴂舌啅譟러니 今聽之怡然不怪하여 已與爲類矣
家生小童 皆自然嘵嘵하여 晝夜滿耳하고 聞北人言이면 則啼呼走匿하니 雖病夫亦怛然駭之
出門見適州閭市井者하면 其十有八九 杖而後興하니
自料居此 尙復幾何
豈可更不知止하고 言說長短하여 重爲一世非笑哉리오
讀周易困卦라가 至有言不信尙口乃窮也 往復益喜하여 曰 嗟乎 余雖家置一喙以自稱道 詬益甚耳라하니라
用是更樂瘖黙하여 思與木石爲徒하고 不復致意
今天子興敎化하고 定邪正하여 海內皆欣欣怡愉 而僕與四五子者 獨淪陷如此하니 豈非命歟
命乃天也 非云云者所制 余又何恨이리오
獨喜思謙之徒 遭時言道 道之行이면 物得其利
僕誠有罪
然豈不在一物之數耶
身被之하고 目覩之 足矣 何必攘袂用力하여 而矜自我出耶
果矜之 又非道也
事誠如此 然居理平之世하여 終身爲頑人之類 猶有少恥하여 未能盡忘이라
儻因之際하여 得以見白하여 使受天澤餘潤이면 雖朽枿敗腐 不能生植이라도 猶足蒸出芝菌하여 以爲瑞物하리라
一釋廢錮하여 移數縣之地 則世必曰罪稍解矣라하니라
然後收召魂魄하여 買土一鄽하여 爲耕甿하고 朝夕歌謠하여 使成文章하여 庶木鐸者采取하여 獻之法宮하여 增聖唐大雅之什이면
雖不得位라도 亦不虛爲太平之人矣리라
此在望外 然終欲爲兄一言焉이라
宗元再拜하노라


04. 한림翰林 소면蕭俛에 보낸 편지
슬퍼하다가 다시 웃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거두게 한다.
사겸형思謙兄 족하足下께 올립니다.
어제 기현祁縣왕사범王師範영주永州에 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장좌사張左司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 ‘사겸思謙사심私心 없이 정직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마음이 있다.’고 했으니, 진실로 태평시대를 이룩하는 데에 도움이 될 인물이다.”라고 하므로, 제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러나 왕생王生의 이와 같은 말이 없더라도 제가 어찌 그렇다는 것을 평소에 모르겠습니까.
제가 기뻐한 것은 귀로 들은 말이 평소의 마음과 일치하여 과연 어긋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저는 불행히도 지난날 조정의 정세가 출렁거려 불안한 상황에서 벼슬하여 평소에 문을 닫고 앉아 있어도 근거 없는 비방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저와 교유하던 사람이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어대니 어찌하겠습니까.
조정에 진출하기를 도모하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자들이 함께 뭉쳐 원수가 되어서는 황당한 말을 조작해내며 그 범위를 계속 넓혀나갔습니다.
이러니 사실을 분명히 알아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진상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저의 무고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 당시에 나이가 33세로 비교적 젊을 때였습니다.
어사이행御史裏行에서 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이 되어 요직으로 높이 올라갔으니, 진출을 꾀하는 자들의 분노와 시기‧질투를 면하려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모두 자기 자신이 영달하기를 원하는 가운데 제가 먼저 요직을 얻었는데 재주가 동년배同年輩들을 뛰어넘지 못하고 명망名望이 당대를 압도하지 못했으니, 세상이 저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죄인과 사귄 지 10년이나 되고 관직 또한 이로 인해 끌어올려졌으니, 치욕스러운 것은 이 죄인과 부화뇌동附和雷同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조정의 은덕이 커서 폄직되어 축출되는 정도로 매우 경미한 벌에 처해짐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고 비방하는 말이 오히려 더 늘어나 시끌벅적 떠들어댐으로써 저를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갔습니다.
잔꾀를 부려 관직을 갈구하는 자는 한층 더 저에 대해 말을 하여 원수의 비위를 맞추느라 날마다 새롭고 이상한 설을 만들어 원수의 마음이 기쁘고 흥겹도록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관로로 진출하는 길을 앞당겼지만 저희들은 이로 인해 고통과 모욕이 더 가중되었습니다.
무수한 죄목이 근거 없이 만들어졌는데 그 단서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허물은 크고 은덕은 관대하여 마침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서글픕니다.
인생은 6, 7십 세까지 살 수 있는 자가 적은데 저는 지금 나이가 37세입니다.
늘어나는 나이에 따라 세월이 더 짧은 것을 느끼는 정도가 해마다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대체로 수십 년을 넘어가지 못하고 제 몸이 없어질 것이니, 시비是非 영욕榮辱을 말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주절주절 계속 말하면 저의 죄만 더 보태질 뿐입니다.
형께서만 이와 같은 사정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남쪽 변방에서 지낸 지 오래되고 보니 무더운 장독瘴毒에 찌들어 두 눈은 흐릿하고 다리는 부어 무거운데, 내심 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풍이 새벽에 불어 으스스한 찬 기운이 몸을 손상시키니 피부가 차갑고 머리털이 푸석푸석해졌습니다.
겁이 나 살펴보고 잔뜩 긴장하여 이는 특수한 기후 때문이라 여기면서 이와 같은 심정은 거의 중원中原 지역 사람은 지니고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역은 말소리가 특이하여 때까치가 떠들어대는 소리와 같은데, 이제는 그 소리를 들어도 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아 이미 이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습니다.
제 집의 노복奴僕이 이곳에서 낳은 어린애까지도 다 자연스레 방언方言을 구사하여 밤낮으로 귀가 시끄러운데, 어쩌다가 북방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면 울어대면서 도망가 숨으니, 그 모습을 보면 비록 병자病者라도 두려워하고 놀라 마지않습니다.
문밖에 나가 향리나 저자로 가는 자를 보면, 그들이 열 명 가운데 여덟아홉은 지팡이를 짚고서야 겨우 일어납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제가 이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갈 날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중단할 줄 모르고 계속 남들의 장단점을 말하여 또 세상 사람의 비난과 비웃음을 야기할 것이 있겠습니까.
제가 《주역周易곤괘困卦를 읽다가 “말을 하더라도 남이 믿지 않으니 말에 의지하면 더욱 곤궁해진다.”라고 한 부분에 이르러, 되풀이해 읽어볼수록 더욱 더 기뻐 중얼거리기를 “아, 내가 비록 천하의 집집마다 입을 하나씩 두어 나를 변명하고 두둔하게 하더라도 나를 욕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면서 목석木石과 동반자가 되어 더 이상 제 의사를 드러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현재 천자께서 교화를 일으키고 사악邪惡정직正直을 확정하여 천하 사람은 모두 즐거워하고 있으나 저와 네댓 사람은 이처럼 매몰되어 있으니, 이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운명은 하늘의 뜻이라 이런저런 말을 하는 자가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제가 또 무슨 유감을 품겠습니까.
다만 기쁜 것은 사겸思謙 같은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토론할 수 있는 시기를 만났다는 점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행해지면 만물이 그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만물 가운데 한 물건이 아니겠습니까.
이상적인 정치를 제 몸으로 향유하고 이상적인 정치를 제 눈으로 목격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어찌 굳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힘을 들여 재능을 뽐내면서 스스로 제가 표면에 나서겠습니까.
만약 제 자신을 과시한다면 또 도리가 아닙니다.
제 사정이 분명히 이렇긴 합니다만, 그렇더라도 제가 태평성대에 살면서 종신토록 무지몽매한 무리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약간의 수치스러운 심정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역적을 평정하고 상을 내리는 때에 맞추어 어느 누가 황제께 고하여 저에게 하늘 같은 은택을 조금이라도 받게 해준다면 썩은 나무가 이미 깨지고 부패하여 왕성하게 번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영지버섯을 솟아나오게 하기에 족하여 상서로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폐기되어 금고禁錮에 처해진 벌칙에서 한번 풀려 두세 북쪽으로 유배지를 옮기면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벌칙이 조금 풀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흐트러진 제 영혼을 수습하여 자그마한 규모의 토지와 가옥을 사서 밭을 가는 농부가 되고, 아침저녁으로 노래 부르며 문장을 창작하여 민간의 가요를 수집하는 관리가 제 작품을 수집하여 황제의 궁전에 바침으로써 성당聖唐의 〈대아大雅시편詩篇에 보태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되면 비록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태평시대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제가 기대하기 버거운 희망이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형에게 이 한마디를 올리고 싶었습니다.
종원宗元은 재배하고 이 글을 올립니다.


역주
역주1 與蕭翰林俛書 : 작자의 나이 37세 때인 809년에 쓴 편지이다. 蕭俛(?~837)은 자가 思謙으로, 본문에서 사용한 호칭으로 볼 때 작자와 연배가 비슷한 것으로 사료된다. 蕭俛은 이 당시 右補闕로 재직 중이었고 2년이 지난 811년에 翰林學士에 제수되었으므로 제목의 ‘翰林’ 두 자는 나중에 편집자가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은 자기가 젊은 시절에 혈기가 왕성하여 進退의 도리를 모르다가 마침내 많은 사람의 비방으로 온갖 죄목이 가해졌고, 먼 남쪽 황량한 곳으로 폄직되어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였다는 것과 죄가 있어 스스로 변명하지도 못하고 다시 士類의 반열에 끼기를 감히 바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2 祁縣王師範 : 祁縣은 太原郡에 속한 고을인데, 王氏는 그 고장에서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다. 王師範의 사적은 알 수 없다.
역주3 張左司 : 左司는 관명으로, 尙書都省에 딸린 左司郞中의 약칭이다. 張左司의 사적은 알 수 없다.
역주4 自御史裏行 得禮部員外郞 : 御史裏行은 御史臺에 딸린 監察御史裏行의 약칭이고, 禮部員外郞은 尙書省에 딸린 관명으로, 모두 중앙관리 가운데 요직이다. 작자가 貞元 19년(803)에 御史裏行이 되고, 順宗이 즉위한 永貞 원년(805)에 禮部員外郞이 되었다.
역주5 與罪人交十年 : 罪人은 王叔文을 가리킨다. 順宗이 즉위한 뒤에 尙書戶部侍郞으로 국가 재정을 운영하는 권력을 잡고 柳宗元‧劉禹錫‧王伾 등과 연대하여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宦官 俱文珍의 반격으로 저지당하였고, 憲宗이 즉위한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작자가 21세 때 進士에 급제하여 文名을 날리고 재능이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자, 대선배인 王叔文이 그를 각별히 총애함으로 인해 남다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역주6 (移)[侈] : 저본에 ‘移’자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 및 《新唐書》 권168 〈柳宗元列傳〉에 근거하여 ‘侈’로 바로잡았다.
역주7 賊平慶賞 : 元和 4년(809) 10월에 成德軍節度使 王承宗(?~820)이 반란을 일으켜 德州刺史 薛昌朝을 가두고 조정에 대항하자, 左神策軍護軍中尉 吐突承璀가 토벌하여 항복을 받았다. 이를 경하하는 뜻으로 사형수 이하 죄인들의 죄를 경감하고 文武 관원의 가문을 계승할 맏아들에게 품계를 두 등급씩 올려주었다. 작자가 이 기회에 자기도 혜택을 받아 사면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新唐書 권7 憲宗本紀》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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