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所言亦是特其淺者耳
春秋左氏言 因載六逆之說曰
賤妨貴 少陵長 遠間親 新間舊 小加大 淫破義 六者 亂之本也라하니라
余謂少陵長 小加大 淫破義 是三者 固誠爲亂矣
然其所謂賤妨貴 遠間親 新間舊 雖爲理之本可也어니와 何必曰亂이리오
夫所謂賤妨貴者 蓋斥言擇嗣之道 子以母貴者也
若貴而愚하고 賤而聖且賢
以是而妨之 其爲理本大矣 而可捨之以從斯言乎
此其不可固也니라
夫所謂遠間親 新間舊者 蓋言任用者之道也
使親而舊者愚하고 遠而新者聖且賢
以是而間之 其爲理本亦大矣 又可捨之以從斯言乎
必從斯言而亂天下하리니 謂之師古訓可乎
此又不可者也니라
嗚呼 是三者 擇君置臣之道 天下理亂之本也
爲書者 執斯言하여 著一定之論하여 以遺後代
上智之人固不惑於是 自中人而降 守是爲大據하여 而以致敗亂者 固不乏焉이라
乃理하고 乃亂하니 貴不足尙也
乃安하고 乃危하니 親不足與也
乃興하고 乃滅하니 舊不足恃也 顧所信何如耳
然則斯言殆可以廢矣니라
古之言理者 罕能盡其說하니
建一言하고 立一辭而不安이라
謂之是可也 謂之非亦可也하여 混然而已
敎於後世 莫知其所以去就하니
明者慨然將定其是非 則拘儒瞽生相與群而咻之하여 以爲狂爲怪하니
而欲世之多有知者可乎
夫中人可以及化者 天下爲不少矣
然而罕有知聖人之道하니 則固爲書者之罪也니라


04. 육역六逆에 관한 논설
주제의 발단으로 다룬 소재는 이 작품에서도 그저 평범한 것일 뿐이다.
좌구명左丘明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나라 주우州吁의 일을 말할 적에 육역六逆에 관한 내용을 기재하였다.
거기에 “미천微賤한 자가 존귀尊貴한 자를 방해하는 것, 나이 어린 자가 나이 많은 자를 압박하는 것, 관계가 소원疎遠한 자가 친근親近한 자를 배제하는 것, 새 신하가 옛 신하를 배제하는 것, 지위 낮은 자가 지위 높은 자를 거스르는 것, 지나친 행위로 중용中庸의 도를 파괴하는 것 등 이 여섯 가지는 혼란을 일으키는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나이 어린 자가 나이 많은 자를 압박하는 것’, ‘지위 낮은 자가 지위 높은 자를 거스르는 것’, ‘지나친 행위로 중용의 도를 파괴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분명히 혼란의 근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미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방해하는 것’, ‘관계가 소원한 자가 친근한 자를 배제하는 것’, ‘새 신하가 옛 신하를 배제하는 것’은 비록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방침에는 그럴 수 있지만, 어찌 반드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미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방해하는 것’은 후계자 선택의 원칙을 밝힌 것으로, 지위를 승계하는 자는 반드시 정처正妻장자長子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존귀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미천하지만 덕과 재능을 지닌 자가 있다고 하자.
이때 미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방해한다면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방침에는 큰 문제이긴 하나, 그렇다고 덕과 재능을 지닌 자를 방치해버려 〈존귀한 자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그 말을 따라야겠는가.
이러므로 그 말이 반드시 옳다고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관계가 소원한 자가 친근한 자를 배제하는 것’과 ‘새 신하가 옛 신하를 배제하는 것’은 관리를 임용하는 원칙과 관련된 말이다.
그러나 만약 관계가 친근하고 오래된 신하는 어리석고, 관계가 소원하고 신참인 신하는 덕과 재능을 지녔다고 하자.
이때 관계가 소원하고 신참인 신하가 그렇지 않은 신하를 배제한다면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방침에는 이 또한 큰 문제이긴 하나, 그렇다고 덕과 재능을 지닌 자를 방치해버려 〈관계가 친근하고 오래된 신하를 배제하면 안 된다는〉 그 말을 따라야겠는가.
그 말을 반드시 따르더라도 천하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니, 옛사람의 가르침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겠는가?
이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아, 이 세 가지 문제는 군주를 가려 세우고 신하를 임용하는 원칙으로, 국가의 통치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에 관계된 근본적인 큰일이다.
그래서 책을 쓴 자가 앞서의 그와 같은 말을 고집하여 일정한 논조를 세워서 후대에 남겼다.
지혜가 높은 사람이야 사실 여기에 현혹되지 않겠지만 중등 사람 이하는 이것을 절대적인 표준으로 삼아 지킴으로써 망하고 혼란을 초래한 경우가 사실 적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여공厲公이 죽은 뒤에 도공悼公이 계승하자 잘 다스려졌고, 나라는 양공襄公이 왕위를 계승하고 자어子魚가 물러나자 혼란해졌으니, 지위가 존귀한 사람은 반드시 높이기만 할 것이 못 된다.
나라는 장록張祿을 등용하고 양후穰侯를 쫓아낸 뒤에 안정되었고, 나라는 위성魏成적황翟璜을 재상으로 삼고 오기吳起를 멀리하자 위태로워졌으니, 관계가 친근한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반드시 찬동하기만 할 일이 못 된다.
부견苻堅왕맹王猛을 등용하고 번세樊世를 죽인 뒤에 흥성하였고, 호해胡亥조고趙高를 임용하고 이사李斯를 멸족시킨 뒤에 멸망하였으니, 옛 신하는 반드시 믿기만 할 것이 못 되고 그를 어느 정도로 신임信任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앞서의 그런 말들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
아, 옛날에 통치에 대해 말한 사람 가운데 말하고자 한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사람은 드물었다.
한 가지 주장을 하고 한 마디 견해를 말할 때 마음이 흔들려 불안정하였다.
그래서 옳다고 해도 되고 그르다고 해도 되는 등 애매할 뿐이다.
이로써 후대를 가르쳤으므로 사람들이 그 주장을 반대해야 할지 찬성해야 할지 몰랐다.
명철한 자가 의연하게 그 시비를 판단하려고 하면 완고한 유자儒者와 맹종하는 자들이 또 떼지어 일어나 떠들어대며 미쳤다고 하고 괴상하다고 한다.
그러니 세상에 지혜로운 자가 많기를 바란들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체로 중등 사람 중에도 교육을 받아 도리를 깨우칠 만한 사람이 천하에 적지 않다.
그런데도 성인聖人의 도리를 아는 자가 적으니, 이는 진정 그렇게 책을 쓴 자의 죄이다.


역주
역주1 : 元和 4년(809)경 永州司馬로 있을 당시 쓴 작품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3년에 나오는 내용에서, 衛나라 大夫 石碏이 州吁를 제거하기 위해 제기한, 정도를 거스르는 여섯 가지 항목 가운데 ‘미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방해하는 것[賤妨貴]’, ‘관계가 소원한 자가 친근한 자를 배제하는 것[遠間親]’, ‘새 신하가 옛 신하를 배제하는 것[新間舊]’ 등 세 가지는 혼란을 일으키는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역사적인 사건을 예로 들면서 반박하였다.
‘永貞革新’은 단지 몇 개월 동안 현행 정치국면에 대해 일대 혁신을 시도한 진보적인 사건이었다. 이 시도는 기득권을 갖고 이익을 취하고 있던 宦官과 守舊大臣ㆍ世家大族들의 지위와 이익을 침범함으로 인해 거센 반격을 받아 실패하고 말았다. 혁신을 지휘한 사람은 출신이 미천한 王叔文과 王伾였고 핵심인물은 작자와 劉禹錫 등 비교적 지위가 낮은 젊은 인재들이었다. 혁신이 실패한 뒤에 두 王氏와 작자 등 여덟 명의 젊은이들은 먼 지방의 刺史ㆍ司馬ㆍ司戶 등으로 폄직되었는데, 역사에서는 이것을 ‘二王八司馬事件’이라 부른다.
이들이 혁신활동을 전개할 당시 주위 사람들이 볼 적에는 한 무리의 미천하고, 나이 어리고, 관계가 소원하고, 새 사람이고, 힘이 약소하고, 음탕한 욕심이 있는 집단이었다. 혁신이 실패하자 朝野의 모든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하였으며, 심지어 작자와 가까운 친지들까지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작자가 州吁의 일을 빌려 자기는 원칙을 굳게 지키고 절대 흔들리지 않으며 절대 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이 작품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永貞革新事件’을 변호하였다.
역주2 衛州吁之事 : 衛 莊公이 총애하는 첩이 낳은 아들 州吁가 자라면서 전쟁놀이를 좋아하였으나 莊公이 그를 끔찍이 사랑하여 제지하지 않았다. 莊公의 夫人 莊姜이 州吁가 만약 태자가 되는 날에는 그의 양자인 公子 完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될까 걱정하였다. 그러자 大夫 石碏이 莊公에게 간하기를 “제가 들은 바로는 자식을 사랑하되 마땅히 정도로 가르쳐 바르지 않은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만과 사치와 법도가 없는 것과 방탕한 것은 바르지 않은 길로 가는 행위인데, 이 네 가지 나쁜 버릇이 생긴 것은 그를 지나치게 총애하기 때문입니다.” 하면서, ‘賤妨貴’로 시작되는 정도를 어기는 여섯 항목을 제시하였다. ‘賤ㆍ少ㆍ遠ㆍ新ㆍ小ㆍ淫’은 州吁의 지위와 행위를 가리키고, ‘貴ㆍ長ㆍ親ㆍ舊ㆍ大ㆍ義’는 公子 完의 지위와 행위를 가리킨다.
역주3 〈大〉 : 저본에는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晉厲死而悼公入 : 春秋 때 晉나라는 厲公이 酒色에 빠지고 포악하여 신하들이 그를 죽이고 외국에 망명 중인 悼公을 불러들여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悼公은 적자가 아니었지만 나라를 잘 다스렸다.
역주5 宋襄嗣而子魚退 : 春秋 때 宋나라 公子 子魚는 재간이 매우 많았으나 적자가 아니었다. 桓公 때 子魚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子魚는 사양하고 응하지 않았다. 桓公이 죽은 뒤에 적자인 襄公이 왕위를 계승하여 부질없이 仁義만 논하다가 楚나라와 교전 끝에 패배하고 부상을 당해 죽었는데, 宋나라가 이때부터 쇠퇴하였다.
역주6 秦用張祿而黜穰侯 : 張祿은 곧 范雎이다. 魏나라 사람인데, 죄를 범해 張祿이라 성명을 바꾸고 秦나라로 도망하여 재상이 되었다. 穰侯는 秦 昭王의 장인인 魏冉의 봉호이다. 魏冉이 태후의 세력을 믿고 권력을 독단하여 횡포를 부렸는데, 昭王이 范雎를 중용하고 魏冉을 파면하자 秦나라가 차츰 강성해졌다.
역주7 魏相成璜而疎吳起 : 成은 魏 文侯의 아우 魏成이고, 璜은 翟璜으로 魏 文侯 때의 上卿이다. 吳起는 戰國 때의 명장으로 魏나라를 위해 여러 차례 戰功을 세웠다. 魏 文侯 때 魏成을 재상으로 삼고 吳起를 멀리하였는데, 吳起가 魏나라를 떠난 뒤에 魏나라의 세력이 약해졌다.
역주8 苻氏進王猛而殺樊世 : 苻氏는 前秦의 군주 苻堅이다. 그가 王猛을 기용하자 樊世가 불복하므로 그를 죽이고 王猛에게 권력을 전임하였다. 그 뒤로 前秦이 날로 강성해졌다.
역주9 胡亥任趙高而族李斯 : 胡亥는 秦二世이다. 趙高와 李斯는 모두 秦始皇의 옛 신하였는데, 胡亥가 즉위한 뒤에 趙高의 참소를 믿고 李斯를 멸족시켰다.
역주10 臲卼 :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을 뜻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