彼所謂廉者는 曰不蔽惡也라하되 世人之命廉者는 曰不苟得也라하고 所謂恥者는 曰不從枉也라하되 世人之命恥者는 曰羞爲非也라하니
夫不蔽惡者는 豈不以蔽惡爲不義而去之乎며 夫不苟得者는 豈不以苟得爲不義而不爲乎아
蹈之斯爲道요 得之斯爲德이요 履之斯爲禮요 誠之斯爲信이니
又曰 一維絶則傾하고 二維絶則危하고 三維絶則覆하고 四維絶則滅이라하니
若義之絶이면 則廉與恥其果存乎며 廉與恥存이면 則義果絶乎아
人旣蔽惡矣며 苟得矣며 從枉矣며 爲非而無羞矣면 則義果存乎아
使管子庸人也인댄 則爲此言이어니와 管子而少知理道면 則四維者非管子之言也니라
논리를 세운 부분이 나름대로 정밀하고 심오하다.
《관자管子》에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를 사유四維로 삼았는데, 나는 그것이 관자管子의 말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한다.
거기에 이른바 염廉이란 ‘악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염廉을 정의할 때는 ‘구차하게 얻지 않는 것’이라 하고, 이른바 치恥란 ‘부정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치恥를 정의할 때는 ‘그른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과연 의義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유二維만 있을 뿐, 사유四維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대체로 악을 숨기지 않는 자가 어찌 악을 숨기는 것을 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 그것을 떨쳐버리지 않겠으며, 구차하게 얻지 않는 자가 어찌 구차하게 얻는 것을 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 그것을 행하지 않는 일이 없겠는가.
부정한 짓을 따르지 않는 것과 그른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염廉과 치恥는 의義의 작은 항목이다.
의義와 대등하게 별도의 법도가 될 수는 없다.
성인聖人이 천하에 큰 근본을 세운 것은 인의仁義라고 한다.
인仁은 은덕을 위주로 하고, 의義는 단호함을 위주로 한다.
은덕을 베푸는 자는 사람들을 친애하고, 단호한 자는 사리事理에 적합하게 하는데, 이로써 통치의 도리는 다 갖춰진다.
그 길을 가면 도道가 되고 그것을 얻으면 덕德이 되며, 그것을 이행하면 예禮가 되고 그것이 나오는 마음이 진실하면 신信이 된다.
이들은 모두 인의仁義를 행하는 방식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지금 관자管子가 사유四維라고 한 것은 아마도 성인聖人이 세운 근본이 아닐 것이다.
또 이르기를 “한 가지 법도가 끊기면 기울어지고, 두 가지 법도가 끊기면 위태로워지고, 세 가지 법도가 끊기면 뒤집히며, 네 가지 법도가 끊기면 멸망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의義가 끊기면 염廉과 치恥가 과연 존재하겠으며, 염廉과 치恥가 존재하는데도 의義가 과연 끊기겠는가.
사람들이 악을 숨기고 구차하게 얻으며, 부정한 짓을 따르고 그른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의義가 과연 존재하겠는가.
만약 관자管子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하였겠지만, 관자管子와 같은 인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사유四維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니〉 사유四維라는 것은 관자管子가 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