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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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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中多自矜이나 亦自悲愴이라
三日 宗元白하노라
得秀才書하여 知欲僕爲序 然吾爲文 非苟然易也
於秀才則吾不敢愛로라
吾在京都時 好以文寵後輩하니 由吾文知名者 亦爲不少焉이라
自遭斥逐禁錮 益爲輕薄小兒譁囂하고 群朋增飾無狀하여 當途人率謂僕垢汚重厚라하여 擧將去而遠之하니라
今不自料而序秀才 秀才無乃未得嚮時之益하고 而受後事之累
吾是以懼니라
潔然盛服而與負塗者處 而又何賴焉이리오
然觀秀才勤懇하고 意甚久遠하여 不爲頃刻私利하고 欲以就文雅하니 則吾曷敢以讓이리오
當爲秀才言之하리라
然而無顯出於今之世하고 視不爲流俗所扇動者라야 乃以示之하라
旣無以累秀才 亦不增僕之詬罵也리라
計無宜於此
若果能是 則吾之荒言出矣리라
宗元白하노라


09. 문장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공사貢士 요유방廖有方에게 답한 편지
내용 속에 스스로 과시한 점이 많으나 또한 절로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3일에 종원宗元은 고하네.
수재秀才의 편지를 받아보고 내가 서문序文을 써주길 바란다는 것을 알았는데, 나는 글을 쓰는 것을 함부로 쉽게 하지 않네.
그러나 수재秀才에겐 내가 감히 아낄 수가 없네.
내가 도성에 있을 때 글로써 후배를 총애하길 좋아하였고, 내 글로 인해 이름이 알려진 자 또한 적지 않았네.
〈그러나〉 추방되어 금고禁錮를 당한 이후 경박한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무뢰배들이 무리 지어 없는 말을 함부로 꾸며댐으로써, 조정의 요직에 있는 자들이 모두 나의 죄가 크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와의 관계를 멀리하려고 하였네.
지금 내가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수재秀才에게 서문을 써준다면 수재秀才는 지난날 나의 후배들이 받았던 그와 같은 이익은 얻지 못하고 도리어 장차 피해를 받지 않겠는가.
나는 이것이 두렵네.
의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등에 진흙을 짊어진 자와 함께 지낸다면 또한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살펴보건대, 수재秀才는 근면 성실하고 뜻이 매우 원대하여 순간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고상하고 우아한 뜻을 이루려고 하니, 내가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마땅히 수재秀才를 위해 말을 해야겠네.
그러나 〈내가 지어준 글을〉 세상의 일반 사람에게는 내보이지 말고 세속世俗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 보여주기 바라네.
〈그래야만〉 수재秀才에게 해가 되는 일이 없고, 또 나에게 욕이 더해지지 않을 것이네.
계책이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네.
만약 과연 이럴 수 있다면 나의 변변치 않은 말을 해보겠네.
종원宗元은 고하네.


역주
역주1 答貢士廖有方論文書 : 작자가 永州司馬로 있을 때인 元和 9년(814)이나 혹은 그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貢士는 지방 학교의 秀才로서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도성의 國子監 학생으로 들어간 사람을 가리킨다. 廖有方은 지금의 越南 河內 지역인 交州 사람이며, 생졸년은 알 수 없다. 元和 11년에 進士에 급제한 뒤에 游卿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校書郞을 지냈다. 이 편지는 廖有方이 序文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수락하는 내용이다. 작자가 나중에 〈送詩人廖有方序〉를 지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서문은 서책의 서문이 아니고 친지와 이별할 때 써주는 贈序일 것으로 생각된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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