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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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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이라하니 聖人未嘗絶曲也어늘
子厚性獨剛直이라 故以此得世謗嫉하니 而斬之情 見乎文이라
할새 所貴乎直이라
聖主取焉하여 하니 亘爲棟楹하고 齊爲閫閾이라
外隅平端하고 中室謹飭하니 하여 維量之則하고 이라
末代淫巧하여 不師古式하니
斷玆揉木하여 以限肘腋하니 欹形詭狀으로 曲程詐力이라
制類奇邪하여 用絶繩墨하니 勾身陋狹하고 危足僻側하여 支不得舒하고 脅不遑息하니
余胡斯蓄하여 以亂人極
追咎厥始하니 惟物之殘이라
稟氣失中하고 遭生不完이라
託地墝垤하여 反時燠寒이라
鬱悶結澁하고 癃蹇艱難하여 不可以遂하니 遂虧其端이라
離奇詰屈하고 縮恧巑岏하여
含蝎孕蠧하여 外邪中乾이라
或因先容하여 以售其蟠하고 病夫甘焉하여 制器以安이라
彼風毒敗形하고 陰沴遷魄하며 禍氣侵骨하고 淫神化脈하니
體仄筋倦하고 榮乖衛逆이어늘
乃喜玆物하여 以爲己適이라
器之不祥 莫是爲敵이니
烏可昵近하여 以招禍癖이리오
且人道甚惡하여 惟曲爲先이라
在心爲賊이요 在口爲愆이며 在肩爲僂 在膝爲攣이라
戚施踦跂 匍匐拘拳 古皆斥遠하여 莫致於前하니
問誰其類
今我斬此하여 以希古賢이라
諂諛宜惕이요 正直宜宣이며 道焉是達하고 法焉是專이라
咨爾君子 曷不乾乾
旣和且平이면 獲祐於天이라
去惡在微 愼保其傳하라


02. 굽은 궤안几案을 베는 글
에 “굽히는 경우가 있고 원칙적으로 동등한 경우가 있다.” 하였으니, 성인聖人을 외면한 적이 없다.
유자후柳子厚는 성품이 유독 강직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세상의 비방과 질시를 받았는데, 그 굽은 것을 잘라버리려는 속마음이 이 문장에 나타나 있다.
천지天地가 만물을 세상에 배치할 때 중요시한 것은 곧은 도리였다.
성군聖君이 그 도리를 취하여 도성을 세웠으니, 곧은 재목을 잇대어 들보와 기둥을 만들고 줄을 맞춰 문과 난간을 만들었다.
바깥 모퉁이도 반듯하게 하고 실내도 신중하게 꾸몄는데, 길이를 재는 도구는 를 이용하여 그것을 측량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위정자爲政者가 그것에 몸을 기대어 자신의 덕을 돕는 물건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바르지 않은 기교를 부리고 옛날 방식을 본받지 않았다.
굽은 나무를 잘라서 팔과 겨드랑이를 받치게 하니, 비뚤어진 형체에 괴이한 모습으로 규격을 왜곡하여 거짓과 폭력의 느낌을 풍긴다.
그 제도가 괴상하여 올바른 법도를 따르지 않음으로 인해 〈자리에 앉아 기대면〉 좁아서 몸을 옥죄고 기울어져서 다리가 불편하여 팔다리를 뻗을 수 없으며 옆구리도 좁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내 어찌 이것을 남겨두어 사람을 극도로 심란하게 하겠는가.
지금 그 잘못된 원인을 따져보니 재료에 결함이 있었다.
타고난 기운이 중용中庸을 잃었고 생장환경이 완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뿌리를 붙인 땅은 척박한 언덕이었고 추위와 더위도 제철에 어긋났다.
답답하고 괴롭고 허약하고 곤궁하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처음 단계부터 잘못된 것이다.
뿌리는 기괴하여 구불구불하고 윗부분은 오그라들었다.
나무굼벵이가 잔뜩 달라붙어 알을 까 겉은 거칠고 속은 메말랐다.
그런데 어떤 자가 앞서 손질하여 이 구부러진 재목을 팔았고, 병자가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그것이 마음에 들어 기물로 만들어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기물은 저습한 독기가 몸을 망치고 음산한 기운이 넋을 해쳤으며, 재앙의 기운이 뼛속에 침투하고 간특한 기운이 맥락을 변질시켰다.
그리하여 몸이 기울고 힘줄이 풀리며 정력이 막히고 혈기가 역류하였다.
그런데도 그 병자는 이 기물을 좋아하여 자신에게 알맞다고 여겼다.
상서롭지 못한 기물 가운데 이것에 필적할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이를 가까이하여 화를 부르겠는가.
또한 인심人心이란 몹시 사악하여 굽은 것만 앞세운다.
굽은 것을 마음에 두면 간교한 생각이 되고 입에 두면 허물이 되며, 어깨에 두면 곱사등이가 되고 무릎에 두면 마비를 일으킨다.
곱사등이에 절름발이가 되어 기어다니는 자는 옛사람들이 모두 멀리 내치고 앞에 두지 않았다.
무엇이 그들의 부류인가?
악목惡木도천盜泉이다.
조가朝歌에서 수레머리를 돌렸다는 말이 서간문書簡文에 실려 있고, 소왕昭王이 말뼈를 사들이듯 인재를 대우하자 악의樂毅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이 굽은 궤안几案을 베어 옛 현인賢人의 도를 추구한다.
아첨은 마땅히 경계하고 정직은 마땅히 선양해야 하며, 바른 도를 깨닫고 옳은 법을 따라야 한다.
아, 너희 군자君子들이여, 어찌하여 노력하지 않는가.
마음이 온화하고 평온하면 하늘로부터 복을 얻을 것이다.
사악함을 제거하는 일은 사소한 곳에 있으니, 옛사람이 전하는 미덕을 삼가 잘 보전하라.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던 시기에 쓴 것으로 보이며 그 연도는 알 수 없다. 几는 앉아 있을 때 몸을 기대는 几案, 곧 얕은 탁자이다. 모양새가 반듯하지 못하고 괴상하게 굽어져 있는 几案을, 황제의 측근에서 온갖 아양을 떨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부정한 宦官에게 견주어, 증오하고 배격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斬은 베는 것이니, 曲几를 의인화하여 바르지 않은 자를 참수한다는 뜻이다.
역주2 經曰曲而等 : 經은 《禮記》를 가리킨다. 曲而等은 《禮記》 〈禮器〉에 “굽혀서 줄이는 경우가 있고 원칙적이어서 다 같은 경우가 있다.[有曲而殺也 有經而等也]”라고 한 문구를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굽혀서 줄인다’는 것은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이 三年服을 입는 법이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기간을 줄여 朞年服을 입는다는 뜻이다. ‘원칙적이어서 다 같다’는 것은 부모를 위해 삼년복을 입는 것은 천자부터 평민까지 다 똑같아 신분에 따른 차등이 없다는 뜻이다.
茅坤은 이 대목을 두고, 孔子의 禮는 膠柱鼓瑟의 원칙이 아니라 曲直을 모두 포함하는 융통성 있는 것이었다고 이해하고, 지나치게 ‘曲’을 배격한 柳宗元의 사고를 비판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역주3 后皇植物 : 后皇은 后土皇天의 약칭으로, 天地 곧 造物主를 가리킨다. 植物은 만물을 세상에 배치해 내놓는다는 뜻이다. 植은 置와 같다.
역주4 以建家國 : 《周禮》 〈冬官 考工記 下〉에 “장인이 도성을 축조할 적에 수평기를 매달아놓고 지면의 수평을 쟀다.[匠人建國 水地以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역주5 度焉以几 : 《周禮》 〈冬官 考工記 下〉에 “실내는 几를 이용하여 길이를 쟀다.[室中度以几]”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 几의 길이는 3자로 정해져 있고 실내에서 사용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几를 실내의 크기를 재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역주6 君子憑之 以輔其德 : 여기서의 君子는 爲政者를 가리킨다. 위정자가 앉아 항상 몸을 기대는 几의 크기와 규격이 일정하고 반듯하므로, 그것을 보고 마음을 경계함으로써 덕성을 수양한다는 것이다.
역주7 惡木盜泉 : 惡木은 나쁜 나무이고, 盜泉은 샘의 이름으로 지금의 山東 泗水縣 동북쪽에 있었다. 《尸子》에 “〈孔子가〉 盜泉을 지나갈 적에 목이 말라도 그 물을 마시지 않았으니, 그 이름이 싫어서였다.” 하였고, 陸機의 〈猛虎行〉에 “목말라도 도천 물 아니 마시고, 더워도 惡木 그늘에서 쉬지 않네. 惡木 어찌 가지가 없어서이랴, 志士라 바른 마음 지극하다네.[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惡木豈無枝 志士多苦心]” 하였다.
역주8 朝歌迴車 簡牘載焉 : 朝歌는 殷나라 도읍의 이름으로, 지금의 河南 湯陰縣 남쪽에 있었다. 紂王이 일찍이 음악을 만들고 이름을 朝歌라고 붙였는데, 墨翟이 수레를 타고 길을 가다가 그 지역이 朝歌라는 말을 듣고는 들어가지 않고 수레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朝歌가 ‘아침에 노래한다’는 뜻이므로, 사람이 유흥에 빠져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簡牘은 書簡文이란 뜻이다. 漢나라 鄒陽이 옥중에서 梁王에게 올린 편지인 〈獄中上梁王書〉에 “마을 이름이 勝母라 하자 曾子가 들어가지 않았고, 고을 이름이 朝歌라 하자 墨子가 수레를 돌렸습니다.[里名勝母 曾子不入 邑號朝歌 墨子回車]” 하였다.
역주9 昭王市骨 樂毅歸燕 : 전국 때 燕 昭王이 훌륭한 인재를 얻어 齊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郭隗가 그에게 말하기를 “옛날 어느 임금이 천 금으로 千里馬를 구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습니다. 궁인 한 사람이 자기가 구해 오겠다고 하며 나가더니, 3개월 만에 죽은 천리마의 뼈를 5백 금을 주고 사왔습니다. 임금이 크게 노하여 ‘내가 찾는 것은 살아 있는 말이다. 죽은 말을 어디에 쓰라고 돈을 5백 금이나 내버렸느냐.’라고 호통을 치자, ‘죽은 말도 5백 금으로 샀는데 하물며 살아 있는 말이겠습니까. 천리마가 이제 들어올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그 뒤 1년도 되기 전에 천리마가 세 필이나 들어왔습니다. 지금 왕께서 정말로 인재를 초치하고 싶다면 먼저 이 郭隗부터 대접하십시오. 郭隗가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더 뛰어난 인물이겠습니까. 어찌 천 리 길을 멀다 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昭王이 郭隗를 위해 그의 집을 화려하게 개축하고 스승으로 섬겼다. 이로 인해 魏나라 명장 樂毅와 齊나라 명사 鄒衍, 趙나라 책사 劇辛이 燕나라의 품으로 돌아와 齊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燕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戰國策 燕策》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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