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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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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友人守永州司馬員外置同正員柳宗元 謹遣하여 奉淸酌庶羞之奠하여 敬祭於之靈하노라
嗚呼天乎
君子何厲
天實仇之
生人何罪
天實讐之
聰明正直하고 行爲君子 天則必速其死하고 道德仁義하고 志存生人이면 天則必夭其身하니
吾固知蒼蒼之無信 莫莫之無神이나 今於化光之歿 怨逾深而毒逾甚이라
故復呼天以云云이라
天乎痛哉
堯舜之道 至大以簡하고 仲尼之文 至幽以黙이라
千載紛爭하여 或失或得이나 倬乎吾兄 獨取其直하여 貫於化始하고 與道咸極이라
推而下之하여 法度不忒하고 旁而肆之하여 允塞이라
道大藝備하여 斯爲全德이어늘 而官止刺一州하고 年不逾四十하여 佐王之志 沒而不立하니 豈非修正直以召災하고 好仁義以速咎者耶
宗元幼雖好學이나 晩未聞道
嗚呼 積乎中不必施於外하고 裕乎古不必諧於今 二事相 從古至少
至於化光하여는 最爲太甚이라
理行第一 尙非所長이요 文章過人 略而不有하니 夙志所蓄 巍然可知
貪愚皆貴하고 險狠皆老하니 則化光之夭厄 反不榮歟
所慟者志不得하여 蚩蚩之民 不被化光之德하고 庸庸之俗 不知化光之心이라
斯言一出 內若焚裂하니
海內甚廣이나 知音幾人이리오
今復往矣 吾道息矣
雖其存者라도 志亦死矣
臨江大哭하니 萬事已矣
窮天之英 貫古之識 一朝去此하여 終復何適
嗚呼化光이여 今復何爲乎
止乎行乎
昧乎明乎
豈蕩而爲太空與化無窮乎 將結而爲光耀以助臨照乎
豈爲雨爲露以澤下土乎 將爲雷爲霆以泄怨怒乎
豈爲鳳爲麟爲景星爲卿雲以寓其神乎 將爲金爲錫爲圭爲璧以栖其魄乎
豈復爲賢人以續其志乎 將奮爲明神以遂其義乎
不然이면 是昭昭者其得已乎 其不得已乎
抑有知乎 其無知乎
彼且有知 其可使吾知之乎
幽明茫然하여 一慟腸絶이라
嗚呼化光이여 庶或聽之하라


08. 형주자사衡州刺史 여온呂溫에 대한 제문祭文
원화元和 6년인 신묘년 9월 계사삭 모일에 벗 수영주사마守永州司馬 원외치동정원員外置同正員 유종원柳宗元은 삼가 서리書吏 동조同曹와 우리 집 하인 양아襄兒를 보내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제물을 받들어 삼가 여팔형呂八兄 화광化光의 영령께 제사를 올립니다.
아, 하늘이시여.
군자가 무엇을 해롭게 했습니까.
그런데도 하늘은 군자를 미워하였습니다.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하늘은 백성을 원수로 여겼습니다.
총명하고 정직하며 품행이 군자다우면 하늘은 반드시 그의 죽음을 앞당기고, 도덕과 인의를 갖추고 뜻이 백성에게 있으면 하늘은 반드시 그의 몸을 요절시킵니다.
나는 본디 저 푸른 하늘은 믿을 것이 못 되고 저 적막한 곳에는 신령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만, 지금 화광化光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원망이 한층 더 깊고 매몰찬 정도가 한층 더 심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 또 하늘을 불러 이렇게 외쳐대는 것입니다.
하늘이여, 애통합니다.
의 도는 워낙 커서 간결하고, 중니仲尼의 글은 워낙 깊어 고요합니다.
이에 대해 천 년 동안 어지럽게 다투면서 어떤 것은 모르고 어떤 것은 터득하였으나, 뛰어나신 우리 형만은 그 바른 길을 취하여 일관되게 교화敎化를 근본으로 삼고 정도正道를 행해 모든 것이 극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아래 백성에게 시행하자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고, 주변으로 세상에 적용하자 중정中正하고 온화한 중화中和의 덕이 온 누리에 충만하였습니다.
도가 크고 재능을 갖추어 완전한 덕을 이루었는데도 관직은 한 자사刺史에 그치고, 나이는 마흔을 넘기지 못함으로써 제왕을 보좌할 뜻을 지니고도 매몰되어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바르고 곧은 도를 수양하여 재앙을 부르고, 인의仁義의 덕을 닦기를 좋아하여 불행을 초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원宗元은 어릴 적에 비록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늦게까지도 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군자를 사귄 뒤에야 비로소 행동이 중용中庸에 부합하여, 간사하고 잡된 사심을 떨쳐버리고 곧고 바른 도심道心을 드러냄으로써 나아가는 길이 어긋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실로 형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아, 내면에 쌓아둘 뿐 굳이 밖에 행하려 하지 않는 것과, 뜻이 옛 도와 잘 통할 뿐 굳이 지금 사람과 부합하려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성취하는 일은 옛날부터 그런 사람이 극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화광化光의 경우는 그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치적은 으뜸이었으나 역시 장기는 아니었으며, 문장은 월등했으나 하찮게 여겨 힘쓰지 않았으니, 품었던 평소의 뜻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욕심 많고 어리석은 자들은 모두 존귀하고, 음험하고 표독한 자들은 장수하니, 그렇다면 화광化光의 요절과 재앙은 오히려 영예로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애통한 것은, 뜻을 행하지 못하고 공을 베풀지 못함으로써 어린 백성들이 화광化光의 은덕을 입지 못하고, 무식한 풍속이 화광化光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점입니다.
이 말이 한번 입 밖으로 나오니 속이 타들어가고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세상이 넓다지만 지기知己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벗들이 몰락하여 뜻과 사업이 거의 끊어진 뒤로, 오직 바라는 희망은 화광化光께서 그 큰 계책을 펼쳐서 빛나는 업적을 이루어 한 시대를 주름잡음으로써,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화광化光께서 또 떠나가시니 우리의 도는 다 되었습니다.
비록 살아 있다고 해도 의지는 죽었습니다.
강가에서 크게 통곡하니 만사가 이미 끝났습니다.
하늘에 닿는 드높은 영기英氣와 고금을 관통하는 식견識見을 지니시고 하루아침에 이곳을 떠나 끝내 어디를 가신단 말씀입니까.
아, 화광化光이시여, 지금 다시 무엇을 하시렵니까?
멈추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모른 척하시렵니까, 알아보시렵니까?
흩어져서 허공이 되어 조화와 함께 영원하시렵니까, 아니면 응어리져 광채가 되어 세상을 비추는 빛을 도우시렵니까?
비가 되고 이슬이 되어 이 땅을 윤택하게 하시렵니까, 아니면 번개와 천둥이 되어 원한과 노여움을 푸시렵니까?
봉황이 되고 기린이 되며 상서로운 별이 되고 채색구름이 되어 그 신령함을 붙여두시렵니까, 아니면 이 되고 주석朱錫이 되며 규옥圭玉이 되고 벽옥璧玉이 되어 그 넋을 머물러두시렵니까?
다시 현인이 되어 그 뜻을 이어가시렵니까, 아니면 일어나 신명이 되어 의로움을 이루시렵니까?
그렇지도 않다면 그 밝으신 지혜는 과연 없어지는 것입니까,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또 지각은 있으십니까, 없으십니까?
그쪽에서도 지각이 있으시다면 나에게 알도록 해주지 않으시렵니까?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아득하여 통곡하노라니 애가 끊어집니다.
아, 화광化光이시여, 내 이 말을 들어주십시오,


역주
역주1 : 永州司馬로 있던 元和 6년(811) 9월에 쓴 글이다. 呂溫(772~811)의 사적에 대해서는 앞의 〈衡州刺史東平呂君誄〉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역주2 (維年月日)[維元和六年 歲次辛卯 九月癸巳朔某日] : 저본에는 ‘維年月日’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歲次는 歲星이 위치한 자리라는 뜻이다. 木星, 곧 歲星이 12년마다 천체를 한 바퀴 돌기 때문에 하늘의 둘레를 12분야로 나누고 거기에 12地支를 차례대로 배치하여 연도를 구분한다.
역주3 書吏同曹家人襄兒 : 同曹와 襄兒는 인명이다. 書吏는 글씨 쓰는 일을 맡은 관리이고, 家人은 노복을 가리킨다.
역주4 呂八兄化光 : 呂八은 呂溫을 가리킨다. 八은 排行으로, 呂溫이 그의 형제자매 중에서 나이 서열이 여덟째에 해당하므로 呂八이라 한 것이다. 化光은 그의 자이다.
역주5 中和 : 《中庸》에 “희열, 분노, 비애, 쾌락의 감정이 발동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 하고, 발동하여 모두 법도에 들어맞는 것을 和라 한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呂溫이 일을 처리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아 中正하고 온화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6 宗元幼雖好學……兄實使然 : 작자의 학문은 陸質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처음에 呂溫과 韓泰 등의 벗을 통해 陸質의 저술을 접했으므로 하는 말이다.
역주7 (勘)[期] : 저본에는 ‘勘’으로 되어 있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期’로 바로잡았다.
역주8 〈行 功不得〉 : 저본에는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自友朋彫喪……知我所立 : 永貞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 작자를 위시한 젊은 개혁파 동지들이 모두 지방의 司馬로 폄직되어 쫓겨나고 오직 呂溫 한 사람만 다행히 화를 면해 앞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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