聞其操鳴絃爲新聲하고 撫節而歌에 莫不感動其音하고 美其容하여 以忘其居之遠而名之辱하여 方幸其若是也하니라
元和五年五月十九日에 積疾卒於湘水之東하여 葬東岡之北垂하니 年二十四라
10. 태부太府 이경李卿의 외부外婦 마숙馬淑의 묘지명墓誌銘
명법銘法에 비춰볼 때 이와 같은 사람은 묘지명墓誌銘을 쓰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자후柳子厚가 묘지명墓誌銘을 썼으니, 잘못이다.
성은 마馬이고 자는 숙淑으로, 광릉廣陵에서 태어났다.
마숙馬淑의 부친은 총總으로, 마숙馬淑을 잉태시키고 죽었기 때문에 마숙馬淑은 남강南康의 가기歌妓가 되었다.
이군李君이 목주자사睦州刺史로 있던 중 포악한 자를 비난하다가 모함을 받아 좌천되어 순주록사循州錄事가 되었다.
〈남강南康 지방을〉 지나가던 중에 그녀를 만나 좋아하여 외부外婦로 삼았고 함께 남해南海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영주永州로 양이量移해 왔을 때 영주永州의 문사文士들 가운데 이군李君의 벗이 많아 날마다 술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찾아간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파를 타 새롭고 아름다운 가락을 연주하고 박자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모두가 그 소리에 감동하고 그 자태에 매료되어 머나먼 타향에 와 있고 죄명을 지닌 죄인의 처지임을 잊고서, 이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원화元和 5년 5월 19일에 고질병으로 상수湘水 동쪽에서 세상을 떠나, 동쪽 산의 북쪽 언저리에 안장하니, 향년 스물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