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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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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嶺南節度使所領者이요 所建饗軍堂之制亦弘敞하고 而文亦稱이라
唐制 嶺南爲五府州以十數
號令之用 則聽于節度使焉이라
其外大海多蠻夷하니으로 西抵에는 環水而國以百數하니 則統于
內之幅員萬里 時聽敎命하고 外之羈屬數萬里 以譯言贄寶 歲帥貢職하니之重하여 以治于廣州
故賓軍之事 宜無與校大
且賓有牲牢 嘉樂好禮 以同遠合疏하고 軍有犒饋宴饗 勞旋勤歸 以群力一心하니
閈閎階序 不可與他邦類
必厚棟大梁 夷庭高門이니 然後可以上充於揖讓하고 下周於步武니라
且專二使하니 增德以來遠人하고 申威以修戎政이라
大饗宴合樂하되 從其豐盈하니라 先是爲堂於治城西北陬하니 其位 公北向하고 賓衆南向하며于其西하고 視泉池于其東이라
隅奧庫仄하고 庭廡下陋하니 日未及晡 則赫炎當目하여 汗眩更起하여 而禮莫克終이라
故凡大宴饗大賓旅에는 則寓于外壘하여 儀形不稱이라
公於是始斥其制하여 爲堂南面하니 橫八楹이요 縱十楹이라
嚮之宴位 化爲東序하고 西又如之하니라
其外 更衣之次 膳食之宇 列觀以游目하고 偶亭以展聲하니 彌望極顧 莫究其往이라
泉池之舊 增濬益植하여 以暇以息하여 如在林壑이라
問工焉取하니 則師輿是供이요 問役焉取하니 則蠻隷是徵이며 問材焉取하니 則隙宇是遷이라
或益其闕하여 伐山浮海하고 農賈拱手하고 張目視具하니라
乃十月甲子克成하여 公命饗于新堂이라
咸飾于下하고 鼓以鼖晉하고 金以鐸鐃
公與監軍使 肅上賓하고 延群僚하니 將校士吏 咸次于位
卉裳罽衣 胡夷蜑蠻 睢盱就列者 千人以上이라
鉶鼎體節하여 燔炰胾炙 羽鱗貍互之物 均飫于卒士하고
揳擊吹鼓之音 飛騰幻怪之容 寰觀于遠邇
禮成樂遍 以敍而賀하고 且曰 是邦臨護之大 하니 非是堂之制不可以備物이요 非公之德不可以容衆이라
曠于往初라가 肇自今玆 大和有人하여 以觀遠方이라 古之戎政 其曷用加此리오하니라
猶克稱能하여 以垂到今이라
矧玆具美하여 其道不廢 願刻于金石하여 以永示後祀
遂相與來告하고 且乞辭어늘
某讓不獲하여 乃刻于玆石云이라


02.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향군당饗軍堂에 관한 기문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가 관장하는 지역은 중진重鎭이고 그가 세운 향군당饗軍堂의 규모도 크고 웅장하였는데 이 문장도 그에 부합된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영남嶺南은 5개의 로 되어 있고 각 는 10개의 를 관할한다.
크고 작은 전차부대와 각종 군령은 모두 절도사節度使의 지시를 따른다.
그 밖으로 해변 지역에 많은 변방 민족이 있는데, 유구流求가릉訶陵으로부터 서쪽으로 대하大夏강거康居에 이르기까지 물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가 100개국이나 되니, 이들은 압번박사押蕃舶使가 관할한다.
안으로 영남嶺南 지역 만 리는 관원과 수비병을 거느리고 황제의 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그 바깥쪽 외국 수만 리는 통역 관원을 두어 보화寶貨를 받아내서는 해마다 조정에 공물을 진상하는데,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는〉 이 두 使의 막중한 임무를 한 몸에 지고 광주廣州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이 때문에 그가 빈객賓客을 접대하고 군무軍務를 다스리는 일은 당연히 그 어느 절도사와도 비교될 수 없다.
그리고 빈객을 접대하는 것에는 각종 날고기와 익힌 고기에다 좋은 음악과 겸손한 예절로써 멀고 소원한 이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일이 있고, 군무를 다스리는 것에는 음식을 먹여주고 잔치를 열어주며 진영에서 돌아온 군사를 위로하고 동정하는 것으로 힘과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일이 있다.
그러니 그가 주재하는 이곳의 대문과 계단이며 담 등 구조물을 다른 곳의 것과 같게 할 수 없다.
반드시 크고 굵은 기둥과 넓은 뜰, 높은 대문이 있어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당상堂上에서는 빈객들과 예절을 차릴 수 있고, 아래 뜰에서는 군사들의 행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사대부御史大夫 부풍공扶風公광주자사廣州刺史로 있으면서 절도사節度使압번박사押蕃舶使의 직까지 도맡았는데, 덕을 쌓아 먼 곳의 사람들을 오게 하고 위엄을 떨쳐 군정을 정비하였다.
또 연회를 확대하고 악대樂隊를 확충하였으나 재정의 상황에 맞추었고 〈과도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광주성廣州城 서북 모퉁이에 건물이 있었는데, 그 위치에서는 절도사節度使가 북쪽을 향하고 빈객들이 남쪽을 향하며, 서쪽에서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동쪽으로는 못을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또 건물이 앉은 지대가 낮고 반듯하지 않으며 뜰과 행랑채가 낮고 허름하였으므로, 해가 저물지 않으면 뜨거운 열기가 눈앞에 닥쳐 땀이 흐르고 어지러워 예식을 마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연회나 군대행사는 바깥의 높은 공간에서 거행하였으므로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께서 비로소 그것을 허물고 남쪽에 건물을 새로 짓게 하였으니, 기둥이 가로로는 여덟 개이고 세로로는 열 개였다.
예전의 연회장소는 동쪽 행랑채로 바뀌고 서쪽도 그렇게 되었다.
그 밖에 탈의실과 주방 건물이 있고, 누각을 늘어 세워 경치를 둘러볼 수 있게 하고 정자를 확대하여 음악소리가 퍼지게 하였는데, 이리저리 둘러봐도 막힌 데가 없다.
예전에 못이 있던 곳은 바닥을 더 깊이 파고 나무를 심어 한가로이 쉬게 만들어 마치 숲속 골짜기에 있는 것 같았다.
장인匠人을 어디에서 취했는가 하면 군인들이 제공했고, 일꾼들을 어디에서 취했는가 하면 남방 민족 노복들을 동원했으며, 재목을 어디에서 취했는가 하면 빈 건물에서 옮겨왔다.
간혹 빠진 재목이나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산에서 베어오고 섬에서도 가져왔으며, 농부와 상인들은 따로 하는 일은 없고 음식을 정성껏 제공하였다.
마침내 10월 갑자일에 완공되어 공이 새 건물에서 연회를 베풀 것을 명하였다.
당아幢牙용독茸纛금절金節석우析羽패기旆旗여수旟旞 등 의장대의 깃발이 모두 건물 아래를 장식한 가운데 큰 북과 작은 북을 두드리고 쇠방울과 징을 울려댔다.
공은 감군사監軍使와 함께 귀빈을 정중히 모시고 동료들을 맞이하였으며 장졸과 관리들이 모두 제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풀잎 옷과 모직 옷을 입은 각지의 부족민들이 올려다보며 줄을 섰는데 천 명도 넘었다.
국그릇과 솥에 통째로 담거나 앞뒤 다리를 담아 굽고 삶은 고깃덩이에다 조류와 어류와 자라 등의 음식이며 단지에 가득 넘치는 주류酒類가 사졸들에게 골고루 제공되었다.
흥왕무興王舞복이기服夷伎, 그리고 두드리고 불어대는 음악소리와 날고 뛰는 괴이한 마술 등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졌다.
의식이 끝나고 음악이 끝나자 차례대로 축하하기를 “이 지역은 백성을 다스리는 범위가 크고 또 다섯 직위를 겸하였으니, 이 건물의 규모가 아니고서는 각종 기물을 구비할 수 없고 공의 덕이 아니고서는 이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형편없던 변방이 이제부터 달라져서 백성들을 크게 융화시킬 인물이 나오시어 변방을 살피시니, 옛 변방 정책이 어찌 이보다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또 말하기를 “화원華元은 이름난 대부였으나 양을 잡아 〈병사들에게 먹이면서〉 자기 전차를 모는 마부에게는 주지 않았고, 곽거병霍去病은 훌륭한 장군이었으나 고기를 남기면서도 사졸들이 굶주린 기색을 띠게 하였다.
이들은 그러고서도 능력을 칭송받아 지금까지 전해진다.
그런데 더구나 공께서는 이처럼 미덕을 갖추고 바른 도리를 폐하지 않았으니, 금석金石에 새겨 후세에 영원히 보였으면 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상의하여 나에게 와 고하며 글을 부탁하였다.
나는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침내 이 바위에 이처럼 새긴다.


역주
역주1 嶺南節度使饗軍堂記 : 元和 9년(814)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嶺南節度使는 당나라 때 方鎭의 이름이다. 玄宗 때 10개 節度經略使 가운데 하나이다. 開元 21년(733)에 嶺南五府經略討擊使를 두었고, 至德 원년(756)에 節度使로 승격하였는데, 廣州‧安南‧桂管‧邕管‧容管 등 5개 府를 관장하였다. 이때 馬摠(?~823)이 節度使로 있었다. 먼저 嶺南節度使가 관할하는 지역의 범위를 말하고, 이어 嶺南節度使 馬摠이 饗軍堂을 짓게 된 경위와 낙성식의 실황을 서술하였으며, 끝으로 馬摠의 덕을 칭송하였다.
역주2 重鎭 : 요충지란 뜻으로, 군사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역주3 : 관할한다는 뜻인 ‘管’자와 같다.
역주4 大小之戎 : 大戎과 小戎이다. 戎은 전차로, 大戎은 전차 10대이고, 小戎은 1대이다. 전차 1대마다 상고시대에는 보병 72명이 1개조가 되었고, 후대에는 50명이 1개조가 되었다.
역주5 流求訶陵 : 流求는 지금의 대만이고, 訶陵은 廣州 동남쪽 바다에 있었다는 나라이다.
역주6 大夏康居 : 大夏는 지금의 그리스이다. 康居는 옛 서역의 국명으로, 동쪽은 烏孫, 서쪽은 奄蔡, 남쪽은 大月氏, 동남쪽은 大宛과 접해 있었다 한다.
역주7 押蕃舶使 : 唐나라에 와서 물자를 교역하는 외국 선박을 관장하는 관원인데, 嶺南節度使가 겸직하였다.
역주8 執秩拱{玉}稽 : 執秩은 관리의 爵祿을 관장하는 관원이고, 拱稽는 의장대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문관과 수비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稽’는 ‘棨’의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棨’는 기름을 칠한 나무창으로 지방관의 의장용으로 사용한다. 저본에는 ‘拱’ 뒤에 ‘玉’자가 있는데,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衍字로 보아 번역하지 않았다.
역주9 二使 : 節度使와 押蕃舶使를 가리킨다.
역주10 饔餼 : 죽은 가축을 饔이라 하고, 산 가축을 餼라 한다. 여기서는 날고기와 익힌 고기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역주11 是治 : 治는 관청소재지라는 뜻인 治所의 약칭이다. 여기서는 嶺南節度使가 주재하는 廣州를 가리킨다.
역주12 御史大夫扶風公廉廣州 : 扶風公은 扶風이 고향인 馬摠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會元이다. 元和 8년(813) 12월에 桂管觀察使에서 廣州刺史로 부임하여 嶺南節度使와 押蕃舶使를 겸직하였다. ‘廉’은 廉察의 약칭으로, 살피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역주13 部伎 :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악대를 가리킨다. 당 위에 앉아서 연주하는 坐部伎와 당 아래에 서서 연주하는 立部伎가 있다.
역주14 幢牙茸纛……旆旗旟旞 : 幢牙는 대장기이고, 茸纛은 군대의 큰 깃발이다. 金節은 깃대 꼭대기를 누런 비단으로 장식한 의장대의 의장용품이고, 析羽는 깃발 둘레에 여러 가닥의 실끈을 새 깃 모양으로 드리운 것이다. 旆旗는 용을 그린 깃발이고, 旟旞는 새매를 그린 軍旗이다.
역주15 沈泛醍盎之齊 : 齊는 齊酒로 다섯 가지의 齊酒가 있다. 첫 번째는 泛齊, 두 번째는 醴齊, 세 번째는 盎齊, 네 번째는 醍祭, 다섯 번째는 沈齊인데, 泛齊가 가장 탁한 술이고 沈齊가 가장 묽은 술이다. 《周禮 天官 酒正》
역주16 興王之舞 服夷之伎 : 興王之舞는 왕업을 일으킨 것을 기리는 춤으로, 七德舞‧九功舞‧上元舞 등을 가리킨다. 服夷之伎는 오랑캐를 복종시킨 왕의 덕을 기리는 음악이다.
역주17 五人合之 : 嶺南節度使가 五府討擊使를 겸직하였으므로 하는 말이다.
역주18 華元……殺羊而御者不及 : 華元은 春秋 때 宋나라 대부이다. 鄭나라가 쳐들어와 宋나라와 전투하기에 앞서 華元이 양을 잡아 병사들을 먹이고 자기의 전차를 모는 병사 羊斟에게는 나눠주지 않았다. 전투가 개시되자, 羊斟이 “앞서 양고기는 당신이 주관하였지만 오늘의 일은 내가 결정하겠다.” 하고, 전차를 몰아 적진으로 들어감으로써 華元은 포로가 되고 宋나라 군대는 대패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2년》
역주19 霍去病……餘肉而士有飢色 : 霍去病은 漢 武帝 때 匈奴를 공격한 명장이다. 젊었을 때 황제의 측근에서 侍中을 지내 사병의 처지에 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출정했다가 돌아올 적에 병사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는데도 남아 있던 쌀과 고기를 폐기하였다. 《漢書 권55 霍去病列傳》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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