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渴西南行이라가 不能百步에 得石渠하니 民橋其上이라
又北하여 曲行紆餘하니 睨若無窮이나 然卒入于渴이라
惜其未始有傳焉者라 故累記其所屬하여 遺之其人하고 書之其陽하여 俾後好事者求之得以易하니라
元和七年正月八日에 蠲渠至大石하고 十月十九日에 踰石得石泓小潭하니
원가갈袁家渴에서 서남쪽으로 가다가 백 보가 안 되는 곳에서 석거石渠를 발견하였는데, 이 지역의 주민이 그 위에 다리를 걸쳐놓았다.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 샘물이 있어서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가는 갑자기 가늘어졌다.
도랑의 폭은 한 자 미만인 곳도 있고 두 자가 되는 곳도 있으며, 그 길이는 십여 보가량 되었다.
도랑물이 하나의 큰 바위까지 흘러와서는 지하로 들어가 그 바위 밑으로 흘러나온다.
큰 바위를 지나 앞으로 더 가면 바위웅덩이가 나오는데, 창포가 덮여 있고 푸른 이끼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물길은 다시 꺾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바위 밑으로 빠져 들어가고, 다시 흘러나왔을 때는 북쪽에 있는 작은 못으로 떨어진다.
못의 넓이는 사방 백 자가 안 되는데 물이 맑고 깊으며 피라미가 많다.
다시 북쪽으로 끝없이 굽이굽이 흐르다가 마침내 원가갈袁家渴이 있는 소수瀟水로 흘러들어간다.
석거石渠의 양쪽 기슭은 온통 기괴한 모양의 바위와 수목樹木, 그리고 특이한 풀과 보기 좋은 신우대가 있어 여러 사람이 줄 지어 앉아 휴식을 취할 만하다.
바람이 불어 신우대의 끝가지를 흔들어대면 그 소리가 산비탈과 계곡을 울린다.
시야에는 이미 흔들림이 멈추어 조용한데 귀에는 비로소 그 메아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나는 영주자사永州刺史를 따라와 이곳을 발견하였는데 바위도랑의 썩은 나뭇가지와 잎을 제거하고 퇴적한 토석土石을 긁어냈다.
썩은 나무들을 한 곳으로 모아 태워버리고, 막힌 것들을 긁어내 도랑물이 넘실대도록 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곳의 존재에 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음을 애석하게 여겨 이곳 주변의 경물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여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아울러 이 글을 석거石渠의 북쪽 바위에 새겨 앞으로 유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보도록 하였다.
원화元和 7년(812) 정월 8일에 석거石渠를 정리하면서 큰 바위가 있는 곳까지 하였고, 10월 19일에는 큰 바위를 지나 바위웅덩이와 작은 못까지 정리하였다.
석거石渠의 아름다운 경치가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완전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