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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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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志步特數言이나 托諷言外者無限하니 深情轉處妙
江之滸 凡舟可縻而上下者曰步
永州北郭有步하니 曰鐵爐步
余乘舟來하여 居九年 往來求其所以爲鐵爐者無有
問之人하니 曰 蓋嘗有鍛鐵者居라가 其人去而爐毁者不知年矣
獨有其號冒而存이라하니라
余曰 嘻 世固有事去名存而冒焉若是耶아하니 步之人曰
子何獨怪是
今世有負其姓而立於天下者하여
曰 吾門大하여 他不我敵也라하고 問其位與德하면 曰 久矣 其先也니라하니
然而彼猶曰我大라하고 世亦曰某氏大라하니
其冒於號有以異於玆步者乎
向使有聞玆步之號하여 而不足釜錡錢鎛刀鈇者 懷價而來 能有得其欲乎
則求位與德於彼 其不可得亦猶是也니라
位存焉而德無有 猶不足以大其門이어늘 然且樂爲之下
子胡不怪彼而獨怪於是
以傲天下
由不推知其本而姑大其故號라가 以至於敗하고 爲世笑僇하니 斯可以甚懼
若求玆步之實이라가 而不得釜錡錢鏄刀鈇者 則去而之他 又何害乎
子之驚於是 末矣니라하니라
余以爲古有하여 觀民風하고 采民言하니
若是者 則有得矣
嘉其言可采하여 書以爲志하노라


17. 영주永州 철로보鐵爐步에 관한 지문志文
부두에 관해 서술한 것은 몇 마디에 불과하지만 언어言語의 이면에 의미를 붙여 풍자한 뜻이 무한하니, 깊은 생각을 굴린 점이 오묘하다.
강변에 배를 매어놓고 사람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한 곳을 라고 한다.
영주성永州城 북쪽 외곽에 가 한 군데 있는데 그곳을 철로보鐵爐步라 부른다.
내가 배를 타고 와 이 지방에 거주한 지 햇수로 9년이 되었는데, 이곳 나루터를 철로鐵爐라고 부르게 된 원인을 도처에서 알아보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가 하는 말이 “그것은 일찍이 어떤 대장장이가 이곳에 살았었는데 그가 떠나고 대장간은 허물어져 지금 몇 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현재 그 이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였다.
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 세상에 실체는 이미 없어졌는데 이름만 남은 이런 경우가 정말 있단 말인가.” 하니, 철로보鐵爐步 부근에 있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유독 이곳만 이상하게 생각합니까.
현재 세상에는 자기의 성씨姓氏에 의지하여 천하에 행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문家門은 대단하여 다른 가문이 우리와 견줄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지위地位덕행德行을 물으면 ‘오래 전에 나의 선조가 이미 지위도 있고 또 덕행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 가문은 대단하다.’ 하고, 세상 사람도 따라서 ‘어느 어느 가문은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헛되이 조상의 가문과 이름만 지니고 있는 것은 이 부두가 철로鐵爐라는 이름을 덮어쓰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가령 그 누가 이 부두의 이름을 듣고 발 달린 솥과 발 없는 솥, 그리고 삽ㆍ호미ㆍ칼ㆍ도끼 등 공구가 필요하여 돈을 들고 찾아온다 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자기 가문이 대단하다고 과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지위와 덕행을 지닌 것이 있느냐고 추구한다면, 철로보鐵爐步에 와서 공구를 사려고 한 경우처럼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그들이 지위가 있다 하더라도 덕행이 없으면 그 가문이 대단해질 수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기꺼이 저들의 발밑에 엎드립니다.
당신은 어찌 그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유독 이곳의 일만 이상하게 여깁니까.
규모가 큰 측면에서 말한다면, 의 후손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고, 의 후손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으며 유왕幽王여왕厲王문왕文王무왕武王의 후손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선조의 이름만으로 천하를 깔보고 거만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제 정황은 추구할 줄 모르고 우선 자기들 선조의 이름으로 허세를 부리다가 끝내 패망하는 지경에 이르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것이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철로보鐵爐步의 실제를 추구하였다가 발 달린 솥과 발 없는 솥, 그리고 삽ㆍ호미ㆍ칼ㆍ도끼를 얻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될 것이니, 또 무슨 문제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지금 여기의 경우를 보고 놀라워하는 것은 지엽적인 일입니다.”
내가 알기로 옛날에는 태사太史를 두어 민간의 풍속을 살피고 민간의 이야기를 채집했었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채집한다면 소득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크게 찬동하여 채집할 만하다고 인정하였기에 글로 써서 지문志文으로 남긴다.


역주
역주1 : 元和 8년(813) 永州司馬 재임시에 쓴 작품이다. 鐵爐步는 永州城 북쪽에 있는 부두의 이름이다. 鐵爐는 무쇠를 불리는 화로라는 뜻으로 대장간을 가리키고, 步는 물가에 배를 대는 부두라는 뜻인 ‘埠’와 통용하는 글자이다. 지난날 그 부두에 대장간이 있어 그곳을 그렇게 불렀으나 지금은 대장간이 없어졌는데 이름만 남아 있어 유명무실하였다. 작자는 부두 부근에 사는 어떤 사람의 입을 빌려 地位나 德行 등 내실은 없이 문벌만 믿고 함부로 우쭐거리는 당시의 귀족과 부잣집 자제들을 풍자하였다. 이것은 또 문벌제도를 타파하고 오직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할 것을 주장하는 작자의 진보적인 사상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志는 ‘序’나 ‘記’와 같은 성격으로, 어떤 사실을 서술하는 문체의 일종이다.
역주2 大者桀冒禹……幽厲冒文武 : 夏나라 桀, 商나라 紂, 周나라 幽王과 厲王은 덕행은 갖추지 못하고 오직 성군의 후손이라는 이름만으로 천자의 자리에 앉아 폭정을 자행하다가 패가망신하였다. 禹는 夏나라를 세웠고, 湯은 商나라를 세웠으며, 文王은 西周의 기반을 닦고 武王은 西周를 세웠다.
역주3 太史 : 관직명이다. 西周와 春秋 때 역사사실을 기재하는 책임을 지고 역사서를 편찬하며, 국가의 典籍과 天文ㆍ曆法 및 祭祀 등을 관장하였는데, 조정의 대신이 맡는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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