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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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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日月 使持節柳州諸軍事 守柳州刺史 柳宗元 謹獻書于相公閣下하노라
宗元聞
有行之艱이라가 而墜千仞之下者하니
仰望於道하여 號以求出하니 過之者日千百人이로되 皆去而不顧하니라
就令哀而顧之者라도 不過攀木俯首하고 深矉太息이라가 良久而去耳 其卒無可奈何
然其人猶望而不止也러라
俄而有 持長綆千尋하고 徐而過焉하니 其力足爲也 其器足施也
號之而不顧어나 顧而曰不能力이면 則其人知必死於大壑矣리니
何也
是時不可遇 而幸遇焉이로되 而又不逮乎己
然後知命之窮勢之極하여 其卒呼憤自斃하고 不復望於上矣리라
宗元曩者 齒少心銳 徑行高步하여 不知道之艱이라가 以陷乎大阨이라
窮躓殞墜하여 廢爲孤囚하여 日號而望者 十四年矣
其不顧而去어나 與顧而深矉者 俱不乏焉이라
然猶仰首伸吭하고 張目而視曰 庶幾乎其有異俗之心 非常之力 當路而垂仁者耶아러니
今閣下以仁義正直으로 入居相位하니 宗元實竊拊心自慶하여 以爲獲其所望이라
故敢致其詞하여 以聲其哀하노이다
若又捨而不顧 則知沈埋踣斃하여 無復振矣리니
伏惟動心焉하라
宗元得罪之由 致謗之自 以閣下之明으로 其知之久矣리니 繁言蔓詞 秪益爲黷이라
伏惟念墜者之至窮하여 錫烏獲之餘力하고 舒千尋之綆하여 垂千仞之艱하여 致其不可遇之遇하여 以卒成其幸하라
庶號而望者 得畢其誠하여 無使呼憤自斃하여 沒有餘恨이면 則士之死於門下者 宜無先焉하리라
決在此擧하니 無任戰汗隕越之至로라
〈不宣이라
子厚困阨之久 故其書呼號哀籲若此니라
錄而存之하여 以見其始末云이라


01. 이이간李夷簡 상공相公에게 올린 편지
모월 모일에 사지절유주제군사使持節柳州諸軍事 수유주자사守柳州刺史 유종원柳宗元은 삼가 상공相公 각하閣下에게 편지를 올립니다.
종원宗元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삼도三塗의 험난한 길을 가다가 천 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 쪽을 올려다보고 소리치며 구해달라고 애원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하루에 수천 명이나 되었지만 모두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설령 그를 불쌍히 여겨 돌아보는 사람이라 해도 나무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여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탄식만 하다가 한참 후에 가버리니, 결국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계속 길 쪽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윽고 오획烏獲 같은 장사가 천 길이나 되는 긴 밧줄을 가지고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의 힘은 충분히 그를 끌어올릴 수 있고 그의 도구는 충분히 그에게 내려주어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소리쳐 애원해도 돌아보지 않거나, 돌아보더라도 자기 힘으로는 해볼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큰 골짝에서 반드시 죽고 말 것임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다행히 만났는데도 그것이 또 자기에게 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에는 운명運命이 끝나고 형세形勢가 다한 것을 알아 마침내 분해하다 소리치며 죽으면서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않을 것입니다.
종원宗元은 지난날 젊은 나이에 큰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길이 험난한 것도 모르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다가 큰 곤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막다른 곳에서 넘어지고 깊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외로운 죄수로 버림받은 신세가 되어서는 날마다 소리치며 위를 바라본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거나 돌아보되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만 보고 그냥 지나간 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쳐들어 목을 길게 빼고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말하기를 “어쩌면 속인俗人과는 다른 마음과 비상한 힘을 지니고 실권實權을 잡아 은덕恩德을 베풀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각하께서 인의仁義정직正直으로 조정에 들어가 재상의 자리에 앉으시니, 종원宗元은 실로 가슴을 치고 스스로를 축하하며 이제야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 글을 올려 애처로운 심정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만약 또 각하께서 버리고 돌아보지 않으신다면 이대로 매장되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마음을 움직여주십시오.
종원宗元이 죄를 얻은 이유와 비방을 당한 원인은 명철明哲하신 각하께서 알고 계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니, 그에 관해 잡다하게 말씀드리면 그저 번거롭게만 해드릴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진 자의 극한의 곤경을 생각하여 오획烏獲이 지닌 남은 힘을 베푸시고 천 길의 긴 밧줄을 풀어 천 길 아래 험난한 곳으로 내려주시어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만난 행운이 헛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소리치며 바라본 자가 쏟은 그 정성精誠성과成果를 거두게 함으로써 분하다 소리치며 쓰러져 여한을 품은 채 죽게 하지 않으신다면, 각하의 문하에서 각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선비가 〈이 종원宗元을〉 앞설 자가 없을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통하느냐 막히느냐가 이번의 이 시도로 결정될 것이기에 두려워 식은땀이 나고 떨리는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종원宗元은 황공한 마음으로 재배 드립니다.
자후子厚가 고난에 시달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글에서 이와 같이 애처롭게 호소한 것이다.
이 작품을 초록해 여기에 넣어 그 고난의 전말을 드러내 보였다.


역주
역주1 上李夷簡相公書 : 《柳河東集》에는 〈上門下李夷簡相公陳情書〉로 되어 있다. 작자가 柳州刺史로 있던 元和 13년(818)에 쓴 편지이다. 李夷簡(757~823)은 자가 易之로, 唐나라 宗室 鄭惠王 李元懿의 4대손이다. 貞元 3년(786)에 進士에 급제하고 拔萃科에 합격하여 藍田尉‧戶部侍郞‧判度支‧山南東道節度使‧劍南西川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이해에 御史大夫로 불려 들어가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相公은 재상에 대한 칭호이다.
역주2 三塗 : 옛날의 산 이름으로, 지금의 河南 嵩縣 서남쪽 伊河의 북쪽 비탈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4년에 “四嶽‧三塗‧陽城‧大室‧荊山‧中南은 九州에서 험난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若烏獲者 : 烏獲은 戰國시대 秦 武王 때의 용사이다. 力士 任鄙‧孟說과 함께 용맹과 힘으로 벼슬하여 높은 관직에 올랐다. 재상이 된 李夷簡을 그에 비유한 것이다.
역주4 生(之)[死]通塞 : 저본에는 ‘生之通塞’으로 되어 있으나, 《唐文粹》 권89에 ‘生死通塞’으로 되어 있다. ‘生’자가 존귀한 자에 대한 자신의 謙稱으로 사용되지만 이 편지에서 작자가 자신을 모두 宗元이라 칭한 점으로 볼 때, 《唐文粹》의 표기가 옳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5 〈不宣 宗元惶恐再拜〉 : 저본에는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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