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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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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最工이나
然篇末椎牛一段 似漫溷이라
子厚每每文到縱橫時 便露此態
二十六日 宗元再拜하노라
前四五日 與邑中可與遊者遊하니
上池西小丘하여 坐柳下하여 酒行甚歡하니라
坐者咸望兄不能俱하야 以爲兄由服氣以來 貌加老而心少歡愉하여 不若前去年時라하니라
是時旣言 皆沮然眄睞하여 思有以已兄用斯術하되 而未得路하니라
間一日 最輕健하여 先作書하여 道天地日月黃帝等하고 下及列仙方士皆死狀하니
出千餘字 頗甚快辯이라
伏覩兄貌笑口順而神不偕來하니
及食時 竊睨和糅燥濕 與啖飮多寡猶自若이라
是兄陽德其言이나 而陰黜其忠也하니
若古之强大諸侯然이라 負固恃力하여 敵至則諾하고 去則肆하니 是不可變之尤者也니라
攻之不得이면 則宜濟師 今吳子之師 已遭諾而退矣
愚敢厲銳擐堅하고 鳴鍾鼓以進하여 決於城下하리니 惟兄明聽之하라
凡服氣之大不可者 吳子已悉陳矣
悉陳而不變者無他 以服氣書多美言하여 以爲得恒久大利 則又安得棄吾美言大利하고 而從他人之苦言哉리오
今愚甚吶하여 不能多言이라
大凡服氣之可不死歟 不可歟 壽歟 夭歟 康寧歟 疾病歟 若是者 愚皆不言이요
但以世之兩事己所經見者類之하여 以明兄所信書必無可用하리라
愚幼時嘗嗜音이러니
見有學操琴者 不能得碩師하고 而偶傳其譜하여 讀其聲하여 以布其爪指
蚤起則嘐嘐譊譊以逮夜하고 又增以脂燭하며 燭不足則諷而鼓諸席하니라
如是十年하여 以爲極工이라하여 出至大都邑하여 操於衆人之座러니 則皆得大笑曰 嘻 何淸濁之亂而疾舒之乖歟아하여
卒大慙而歸하니라
及年少長則嗜書러니 又見有學書者
亦不能得碩師하고 獨得國故書하여 伏而攻之하되 其勤若向之爲琴者하고 而年又倍焉이라
出曰 吾書之工 能爲若是라하니 知書者又大笑曰 是形縱而理逆이라하여
卒爲天下棄하니 又大慙而歸하니라
是二者 皆極工而反棄者 何哉
無所師而徒狀其文也니라
其所不可傳者 卒不能得이라 故雖窮日夜하고 弊歲紀라도 愈遠而不近也니라
今兄之所以爲服氣者 果誰師耶
始者獨見兄傳得氣書於하여 伏讀三兩日 遂用之하고 其次得氣訣於하여 又參取而大施行焉이라
是書是訣 遵與計皆不能知
然則兄之所以學者 無碩師矣
是與向之兩事者無毫末差矣
라하니 兄之術或者其類是歟
兄之不信인댄 今使號於天下曰 孰爲李睦州友者
今欲已睦州氣術者하고 不欲者右袒하라하면
則凡兄之友皆左袒矣리라
則又號曰 孰爲李睦州客者
今欲已睦州氣術者左袒하고 不欲者右袒하라하면
則凡兄之客皆左袒矣리라
則又以是號於兄之宗族이면 皆左袒矣 則左袒矣리라
入而號之閨門之內子姓親昵 則子姓親昵皆左袒矣리라 下之號於臧獲僕妾이면 則臧獲僕妾皆左袒矣리라 出而號於素爲將率胥吏者 則將率胥吏皆左袒矣리라
則又之天下하여 號曰 孰爲李睦州讐者
今欲已睦州氣術者左袒하고 不欲者右袒하라하면
則凡兄之讐者皆右袒矣리라
然則利害之源可知也리라
友者欲久存其道하고 客者欲久存其利하고 宗族姻婭欲久存其戚하고 閨門之內子姓親昵欲久存其恩하고 臧獲僕妾欲久存其主하고 將率胥吏欲久存其勢어니와 讐欲速去其害니라
兄之爲是術 凡今天下欲兄久存者皆懼 而欲兄速去者獨喜하리니 兄爲而不已 則是背親而與讐
夫背親而與讐 不及中人者 皆知其爲大戾어늘 而兄安焉하니 固小子之所懍懍也니라
兄其有意乎卓然自更하여 使讐者失望而慄하고 親者得欲而忭
則愚願椎肥牛하고 擊大豕하고 刲群羊하여 以爲兄餼하며
窮隴西之麥하고 殫江南之稻하여 以爲兄壽하리라
鹽東海之水하여 以爲鹹하고之粟하여 以爲酸하고 極五味之適하고 致五藏之安하여 心恬而志逸하고 貌美而身胖하리라
醉飽謳歌하고 愉懌訢歡하여 流聲譽於無窮하고 垂功烈而不刊이면 不亦旨哉
孰與去味以卽淡하고 去樂以卽愁하여 悴悴焉膚日皺하고 肌日虛리오
守無所師之術하고 尊不可傳之書하여 悲所愛而慶所憎하고 徒曰我能堅壁拒境하여 以爲强大 是豈所謂强而大也哉
無任疑懼之甚이라
하노라


03. 복기服氣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이목주李睦州에게 보낸 편지
문장이 매우 노련하다.
그러나 말미의 추우椎牛 한 문단은 지루한 것 같다.
자후子厚가 언제나 글을 써내려가다가 자유분방하게 논리를 전개할 때는 곧 이와 같은 버릇이 드러난다.
26일에 종원宗元은 재배드립니다.
4, 5일 전에 에서 어울릴 만한 몇 사람과 우계愚溪에서 놀았습니다.
못의 서쪽 작은 언덕에 올라가 버드나무 밑에 앉아 술을 마시며 매우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때 동석한 사람들이 모두 형이 함께하지 못한 것을 원망하면서, 형이 복기服氣를 한 이후로 외모가 더욱 늙고 마음에 즐거움이 줄어들어 지난해 같지 않다고 걱정하였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 모두 의기소침해져 눈을 가로 뜨며 형의 이 양생술養生術을 그만두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루 지나 복양濮陽 오무릉吳武陵이 가장 날렵하고 용감하여 맨 먼저 편지를 썼는데, 위로는 천지天地일월日月황제黃帝 등을 말하고, 아래로는 수많은 신선神仙방사方士 등이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던 상황을 말했습니다.
천여 자의 내용으로 매우 명쾌한 웅변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의 모습을 보니 입으로는 웃으며 순응하는 것 같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살펴보니 식재료를 배합하는 습도의 양과 먹고 마시는 분량의 다과多寡를 여전히 그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형이 겉으로는 그의 말을 고맙게 여기지만 속으로는 그의 충정을 무시한 것입니다.
마치 옛날에 강대한 제후들이 험난한 지세와 힘만 믿고서 적이 쳐들어오면 순순히 말을 듣는 것처럼 하고 철수하면 다시 제멋대로 하던 행태와 같으니, 실로 그런 형의 마음을 쉽게 바꾸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격을 해서 성공하지 못했으면 마땅히 군사를 다시 늘려야 하니 이제 오무릉吳武陵의 군사는 이미 형의 응낙을 받고 물러갔습니다.
이제 제가 정예병을 선발하여 갑옷을 입고 종과 북을 울리면서 진격하여 형의 성 밑에서 결전을 치르고자 하니 형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복기服氣를 하는 것이 절대로 옳지 않다는 것은 오무릉吳武陵이 이미 모두 말했습니다.
모두 말했는데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복기服氣에 관한 책에 달콤한 말이 많아 영구히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또한 어찌 자기가 들은 달콤한 말과 큰 이익을 버리고 타인의 쓴 말을 따르겠습니까.
지금 저는 매우 어눌하여 말을 많이 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복기服氣를 하면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 장수할 것인지 아니면 요절할 것인지, 건강할 것인지 아니면 질병에 걸릴 것인지 등 이와 같은 것들은 저는 모두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제가 보고 겪었던 이와 비슷한 두 가지 일을 가지고 형이 믿는 책이 필시 쓸모가 없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음악音樂을 좋아하였습니다.
주변에 비파를 연주하는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큰 스승은 만나지 못하고 우연히 악보樂譜를 얻어 그것을 읽으며 운지법運指法을 연습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밤까지 익히고, 밤에도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가며 익히고 기름이 떨어지면 악보를 외워 자리를 두드리며 익혔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익히고 자기의 솜씨가 아주 뛰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집을 나서 큰 도회지로 나가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하니,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허, 어찌 이리 청탁淸濁이 어지럽고 음률音律이 어긋난단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크게 부끄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또 나이가 좀 들어서는 서예書藝를 좋아하였는데, 또 보니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또한 큰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옛날 책을 구해 열심히 익혔는데 그 부지런함이 예전에 비파를 배우던 사람과 같았고 익힌 햇수는 두 배였습니다.
집을 나서 “나는 서예 솜씨가 뛰어나 이 정도로 쓸 수 있다.”라고 하며 써보였더니, 서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또 크게 웃으며 “이건 모양도 제멋대로이고 서법書法에도 어긋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천하 사람이 돌아보지 않으므로 또 크게 부끄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지극히 공을 들였는데 도리어 버림받았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스승에게서 배운 것 없이 그저 겉모양만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은 끝내 터득할 수 없으므로 비록 밤낮을 쉬지 않고 세월을 보냈어도 정도正道와 더욱 멀어지기만 할 뿐 가까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형이 복기服氣를 익히는 것은 과연 어떤 스승에게 배운 것입니까?
처음에 제가 본 바로는 형이 노준盧遵으로부터 복기服氣에 관한 책을 얻어 2, 3일 동안 엎드려 읽고 마침내 그것을 시도하였고, 그 후 이계李計로부터 복기服氣에 관한 요결要訣을 구해 이를 참고하여 본격적으로 익혔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나 요결은 노준盧遵이나 이계李計도 잘 알아보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형이 배운 것은 큰 스승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일과 털끝만큼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라 어떤 사람이 길에서 남이 버린 계약증서를 주워 남몰래 그것을 만지작거리면서 “내가 부자가 될 날이 멀지 않다.”라고 했다는데, 형의 양생술養生術이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형이 제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 “누가 나 이목주李睦州의 벗이냐?
지금 이목주李睦州복기服氣 양생술養生術을 그만두게 하기를 원하는 자는 좌단左袒을 하고 원하지 않는 자는 우단右袒을 하라.”라고 세상에 소
리쳐보십시오. 그러면 형의 벗은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입니다.
또 “누가 이목주李睦州의 객이냐?
지금 이목주李睦州복기服氣 양생술養生術을 그만두게 하기를 원하는 자는 좌단左袒을 하고 원하지 않는 자는 우단右袒을 하라.”라고 소리쳐보십시오.
그러면 형의 객은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입니다.
이어 형의 친족親族에게 이렇게 소리쳐도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이고, 인척姻戚들에게 소리쳐도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입니다.
집안에 들어가 내실에 있는 친근한 자손에게 소리쳐도 친근한 자손들은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이고, 아래로 노복奴僕비첩婢妾에게 소리쳐도 노복과 비첩들은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이며, 밖에 나가 평소 알고 지내던 장수將帥서리胥吏에게 소리쳐도 장수와 서리들은 모두 좌단左袒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천하를 향해 “나 이목주李睦州의 원수가 누구냐?
지금 이목주李睦州복기服氣 양생술養生術을 그만두게 하기를 원하는 자는 좌단左袒을 하고 원하지 않는 자는 우단右袒을 하라.”라고 소리쳐보십시오.
그러면 형을 원수로 여기는 자는 모두 우단右袒을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이 내 몸에 이롭고 무엇이 해가 되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벗은 우의友誼가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고, 객은 사이가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고, 친족과 인척들은 관계가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고, 규방閨房 안의 친밀한 자손은 은정恩情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라고, 노복과 비첩은 그들의 주인을 오래 모시기를 바라고, 장수와 서리들은 그 권세權勢가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는 반면에, 원수는 그들에게 해로운 존재가 빨리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형이 이 양생술養生術을 행하면 지금 천하에서 형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자는 모두 두려워하겠지만 형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자는 기뻐할 것이니, 형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 행하는 것은 친근한 사람들을 등지고 원수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친근한 사람을 등지고 원수를 도와주는 것은 지적 수준이 중간에 못 미치는 자라도 그것이 도리에 크게 어긋난 것임을 알 텐데 형은 태연하게 여기시니, 진정 제 가슴이 섬뜩해집니다.
형은 과연 돌연 마음을 바꿔 원수는 실망하여 두려움에 떨고, 친한 자는 소원을 이루어 손뼉을 치게 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저는 살진 소와 큰 돼지를 때려잡고 양 여러 마리를 죽여 형을 위해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
농서隴西의 보리를 모두 긁어오고, 강남江南의 벼를 모두 가져다 〈연회를 열어〉 형을 위해 축수祝壽하겠습니다.
또 동해의 물을 말려 짠맛을 만들고 오창敖倉의 곡식을 발효시켜 신맛을 만든 다음, 다섯 가지 맛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오장五臟의 편안함을 이뤄냄으로써 마음이 편안하고 뜻이 호방해지며 외모가 아름다워지고 몸집이 풍채가 있게 하겠습니다.
나아가 취기醉氣가 도도하고 배가 든든한 가운데 흥에 겨워 노래 부르고 근심 걱정 없이 한껏 즐기면서 후대에 명성을 전하고 공적을 남겨 없어지지 않도록 한다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맛있는 것을 버리고 싱거운 것을 맛보며 즐거움을 버리고 근심을 취하여 초췌한 몰골에 피부는 날로 주름이 지고 살집이 날로 줄어드는 경우와 견주어볼 때 과연 무엇이 더 낫겠습니까.
스승이 없는 양생술養生術을 고수하고 전수하는 사람이 없는 책을 소중히 여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미워하는 원수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면서, 그저 “나는 능히 성을 굳게 지켜 적군을 막았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강대하다 한다면 이것이 어찌 이른바 강대한 것이겠습니까.
깊은 의구심을 가눌 수 없습니다.
삼가 재배하고 이 편지를 올립니다.


역주
역주1 與李睦州〈論〉服氣書 : 元和 5년(810) 永州司馬로 있을 때 쓴 편지이다. 服氣는 단전호흡으로, 道家의 養生術을 말한다. 李睦州는 睦州刺史 李幼淸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深源이며, 節度使 李抱玉의 아들이다. 李幼淸이 元和 2년에 睦州刺史로 재임하던 중 李錡의 무고로 南海로 쫓겨났다가 작자가 있는 永州로 量移되어 이때 같은 지역에 있었다. 이 문장은 道家의 養生術을 익히고 있던 李幼淸이 不老長生이란 있을 수 없다는 친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한 다음, 그것을 익히더라도 스승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책만 보고 자의적으로 하다가는 세월만 낭비하고 오히려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論’자는 저본에 없으나, 《柳河東集》과 《全唐文》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愚溪 : 永州 邑城의 서남쪽에 있는 물 이름이다. 그 근원은 雅山에서 나와 瀟水로 흘러들어간다. 본명은 冉溪였는데 작자가 바꾼 것이다.
역주3 濮陽吳武陵 : 濮陽은 지금의 河南 지방이다. 吳武陵의 가문이 선대 때 濮陽에서 명망이 높았다. 吳武陵(?~834)의 본명은 偘이며 信州 사람이다. 기질이 강인하고 文才가 있어 작자와 楊憑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元和 2년(807)에 進士에 급제하고 2년 뒤에 永州로 유배되어 작자와 친분을 맺었다.
역주4 盧遵 : 涿州(지금의 河北 涿州市) 사람으로, 작자의 외사촌 아우이다. 뒤에 작자가 柳州에서 죽었을 때 그의 주검을 운반하여 萬年縣 묘지에 안장한 인물이다.
역주5 李計 :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역주6 宋人有得遺契者……吾富可待矣 : 《列子》 〈說符〉에 나오는 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을 말한다. ‘遺契’는 남이 폐기한 쓸모없는 계약증서라는 뜻이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문자를 竹簡이나 木版에 기록하였는데, 쌍방간에 이루어진 재물의 거래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 내용을 목판에 새긴 다음 두 쪽으로 쪼개어 쌍방이 각기 한 쪽씩 보관하였다. ‘密數其齒’의 ‘齒’는 木版의 쪼개진 부분이 매끄럽지 않고 이빨자국처럼 들쭉날쭉하므로 하는 말이다.
역주7 左袒 :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린다는 뜻으로, 지지와 옹호를 표시한다. 漢나라 초기에 呂氏 일족이 국정을 독단하자, 太尉 周勃이 呂氏 일족을 몰아내기 위해 北軍으로 들어가 군사들에게 의견을 묻기를 “呂氏를 지지하는 자는 右袒을 하고, 劉氏를 지지하는 자는 左袒을 하라.”라고 하였다. 右袒은 左袒의 반대이다. 《漢書 高后紀》
역주8 姻婭 : 사위의 아버지를 姻이라 하고, 동서간 곧 자매의 남편들끼리 부르는 호칭을 婭라 한다. 두 글자를 합쳐 부를 때는 혼인관계가 있는 친척, 곧 사돈이란 뜻의 포괄적 의미로 쓰인다.
역주9 {不} : 《柳河東集》 註에 “어떤 저본에는 ‘不’자가 없다.” 하였다. 이렇게 보는 것이 논리에 순하므로 ‘不’자를 衍字로 보아 번역하지 않았다.
역주10 敖倉 : 秦나라 때 세운 창고의 이름이다. 河南 滎陽縣 동북방의 敖山 위에 있었다.
역주11 〈謹再拜〉 : 저본에는 이 세 字가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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