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
之道有三
하니 一曰正蒙難
이요 二曰法授聖
이요 三曰化及民
이라
當紂之時하여 大道悖亂하니 天威之動이 不能戒요 聖人之言이 無所用이라
나 無益吾祀
라 故不爲
하며 나 與亡吾國
이라 故不忍
하니
是用保其明哲하여 與之俯仰하고 晦是謨範하여 辱於囚奴라
及天命旣改하고 生人以正하니 乃出大法하여 用爲聖師하여 周人得以序彛倫而立大典이라
故在書曰 以箕子歸하여 作洪範이라하니 法授聖也라
率是大道하여 藂於厥躬하여 天地變化하되 我得其正하니 其大人歟인저
於虖
라 當其周時未至
하고 殷祀未殄
에 比干已死
하고 微子已去
하니 向使紂惡未稔而自斃
하고 念亂以圖存
인댄
唐某年에 作廟汲郡하고 歲時致祀하니 嘉先生獨列於易象일새 作是頌云이라
무엇보다 사방득謝枋得이 간추려 말한 몇 마디가 절묘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대인大人의 도가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정도를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성인聖人에게 전수해주는 것이고, 셋째는 교화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다.
은殷나라에 기자箕子라는 인인仁人이 있어 그가 실로 이 도를 구비하여 세상에 우뚝 섰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육경六經의 뜻을 기술할 때 그에 대해 한층 더 간곡하게 하였다.
주왕紂王의 때를 당하여 대도大道가 무너지고 혼란해져 하늘의 위엄을 동원해도 경계할 수 없었고 성인聖人의 말씀도 소용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을 올려 목숨을 바치는 것이 참으로 어질다 할 수는 있으나 내 종묘제사를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게 없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고, 새 왕조에 헌신하여 종묘제사를 보존하는 것이 참으로 어질다 할 수는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조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다 갖추면서 무리 없이 행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그처럼 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명철함을 보존하여 세상과 더불어 부침했고, 자기의 계책과 법도를 숨기고서 옥에 갇히고 노예가 되는 치욕을 당하였다.
세상이 어두워도 사악한 마음이 없었고, 희망이 무너져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기자箕子의 밝음이 묻혔다.” 하였으니, 이는 바른 도를 따르다가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천명天命이 바뀌어 주周나라가 들어서고 백성들이 바른 길로 나아가자, 마침내 큰 법을 내놓아 성군의 스승이 됨으로써 주周나라가 이로써 윤리를 정리하고 큰 법령을 확립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기자箕子를 데리고 돌아와 〈홍범洪範〉을 지었다.” 하였으니, 이는 법을 성인聖人에게 전수해준 것이다.
조선朝鮮에 봉해진 뒤에 예의의 도를 보급하고 풍속을 변화시키자, 모두 덕을 지녀 풍속이 고루하지 않았고 원근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교화되었다.
그리하여 은殷나라 왕실 제사의 규모를 더 넓히고 먼 변방의 민족을 중화中華와 대등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교화가 백성에게 미친 것이다.
이 세 가지 성인의 큰 도를 따라 행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천지가 바뀌더라도 자신은 바른 도를 꿋꿋하게 지킬 수 있었으니, 이것이 대인大人인 것이다.
아, 주周나라 시대가 아직 이르지 않고 은殷나라 왕실 제사가 아직 끊기지 않았을 때에 비간比干이 죽고 미자微子가 이미 떠나갔으니, 가령 주紂의 죄악이 극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죽고 무경武庚이 나라가 혼란할 것을 염려하고 나라를 보존할 것을 도모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만약 나라에 뛰어난 인물이 없다면 누구와 함께 태평성대를 일으키겠는가.
이는 진실로 인간사에 있어서 혹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치욕을 참으면서 그처럼 행동했던 것은 이 점에 대해 생각하신 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唐나라 모년에 급군汲郡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때에 따라 제사를 올리니, 나는 선생이 홀로 역상易象에 나열된 것을 가상히 여겨 이 송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