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生又持
廬
者所得石書
하여 模其文示余 云若將聞於上
이라하니 余故恐而疑焉
하노라
僕蚤好觀古書하여 家所蓄晉魏時尺牘甚具하고 又二十年來로 徧觀長安貴人好事者所蓄하여 殆無遺焉이라
以是善知書하여 雖未嘗見名氏라도 望而識其時也하니라
又文章之形狀은 古今特異어늘 弟之精敏通達로 夫豈不究於此오
今視石文
하니 署其年曰
라하되 其書則今田野人所作也
라
爲其永字等頗效
이나 皆永嘉所未有
요 辭尤鄙近
하여 若今所謂律詩者
하니 晉時蓋未嘗爲此聲
이라
又言植松烏
之
하여 怪而掘其土得石
이라하니 尤不經
하여 難信
이라
故立
者
는 不尙異
하고 敎人者欲其誠
이니 是故惡夫飾且僞也
니라
過制而不除喪이면 宜廬於庭이니 而矯於墓者는 大中之罪人也라
況又出怪物 詭神道하여 以奸大法하여 而因以爲利乎아
하고 하며 去比竹茨草之室
하고 而垍土大木陶甄梓匠之工備
하여 孽火不得作
하고
化惰窳之俗
하며 絶偸浮之源
하여 而
之力用
하고 寬徭嗇貨均賦之政起
하니 其道美矣
라
에 慮善善之過而莫之省
이면 誠慤之道少損
이라 故敢私言之
하노라
형천荊川은 “좌씨외전左氏外傳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원생元生이 나를 찾아와 전해준 아우의 편지를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았고, 여러 가지 거론한 내용을 모두 잘 알았네.
원생元生은 또 아우의 관할지역에서 아버지 무덤가에서 시묘살이하던 자가 발굴한 석각石刻의 글씨를 모사模寫한 것을 내게 보여주며, 장차 황제에게 보고할 생각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걱정되고 의심스러웠네.
나는 어릴 적부터 옛 글씨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여 집안에 소장한 진晉‧위魏시대 척독尺牘이 매우 많았고, 또 20년 전부터 장안長安의 귀인貴人과 호사가好事家들이 소장한 것을 거의 빼놓지 않고 두루 보았네.
이로 인해 글씨체를 잘 알아 글씨를 쓴 자의 성명을 모르더라도 보기만 하면 그 시대를 알아보았네.
그리고 문장의 형식은 고금古今이 서로 다른 법인데 아우처럼 영리하고 무엇이든 환히 아는 사람이 어찌 이 점을 따져보지 않았는가.
지금 석각石刻의 글씨를 살펴보니, 그 연도는 영가永嘉로 표기되어 있으나 서체書體는 지금 촌부村夫들이 쓴 것이었네.
비록 그 글자가 떨어져나가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옛날의 서체와 비슷하지 않네.
그중 ‘영永’자 등 필법筆法이 왕씨王氏의 변법變法을 상당히 본떴으나 〈이와 같은 서체가〉 영가永嘉 때에는 없었으며, 글의 내용은 더더욱 조잡해서 마치 지금의 이른바 율시律詩라는 것과 비슷하니, 진晉나라 때에는 이런 시체詩體가 없었네.
또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던 도중 까마귀가 그 소나무를 쪼아 꺾으므로 이상하여 그 아래 흙을 팠더니 석각石刻이 나왔다고 한 말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아 그 말을 믿기 어렵네.
그리고 옛날에 “장葬이란 곧 감춘다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흙으로 봉분封墳을 쌓고 무덤가에 나무를 심는 행위에 대해 군자君子가 이의異議를 제기했었는데, 더군다나 여막廬幕을 짓고 그 안에서 지내는 자를 과연 추켜세울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이 제도를 수립하고 법령을 제정하여 지나치면 죄를 물었네.
그러므로 대중大中의 도道를 세우는 자는 괴이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상대방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하니,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가식假飾과 위선僞善을 미워하는 것이네.
복상服喪의 기간이 지났는데 탈상脫喪을 하지 않으려면 집안의 뜰에 여막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니,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것은 대중大中의 죄인이라 할 수 있네.
그런데 더구나 또 괴이한 물건을 내놓고 신명神明의 도를 속임으로써 나라의 큰 법을 범하고 이로 인해 이익을 챙기려 한단 말인가.
효孝를 거짓으로 꾸며 이익을 취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진 자가 차마 그 잘못을 적발하지 못하니, 이는 교화에 손상이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네.
그러나 거짓을 행할 수 있고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하면 교화는 더더욱 무너질 것이네.
그와 같은 것은 간여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옳으며, 또 〈알더라도〉 덮어두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네.
대부大夫의 치적治績이 훌륭하였는데 그대가 그를 도와 참으로 미진한 점이 없었네.
동쪽 외성外城에 제방을 쌓고 시장 점포를 따로 설치하였으며, 대나무를 잇대고 띠풀을 엮어지은 집들을 없애고는 흙을 뭉치고, 굵은 나무를 다루고, 기와와 벽돌을 굽고, 가재도구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대거 양성하여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 〈집을 짓도록 하였네.〉
그리고 백성들의 고식적이고 나태한 습속을 변화시키고 몰인정하고 경박한 근원을 제거하여 뽕잎 따고 누에 치며 밭 갈고 김매는 일에 힘을 쏟게 하고, 부역賦役을 관대하게 하고 물자를 아끼고 과세課稅를 고르게 하는 치적을 일으켰으니, 그 방법이 훌륭하였네.
〈하지만 시묘살이하는 자가 석각石刻을 발굴한〉 이 일에 대해서는 그대가 선행善行을 표창하기를 지나치게 하는데도 살펴주지 않는다면, 벗을 충정忠情으로 대하는 도리에 다소 손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감히 은근히 이처럼 말하는 것이네.
대체로 회수淮水와 제수濟水의 맑은 물에 털끝만 한 오점이 있는 정도는 사실 문제거리가 되지 않네.
그러나 만일 이루자離婁子가 눈을 지긋이 감고 살펴본다면 아예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유쾌한 것보다는 못할 것이네.
부디 이 일을 조용히 덮어두고 석각石刻 글씨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다면 매우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