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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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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甚明法이라
又爽然自失矣리라
鼻亭神 象祠也
不知何自始立이나 因而勿除하고 完而恒新하여 相傳且千歲
河東薛公 由刑部郞中刺道州하여 除穢革邪하여 敷和于下하니
州之罷人 去亂卽治하고 變呻爲謠하니
若痿而起하고 若矇而瞭하여 騰踴相視하고 讙愛克順하니라
于理 公乃考民風하고 披地圖라가 得是祠하여
駭曰 象之道 以爲子則傲하고 以爲弟則賊하며 君有鼻而天子之吏實理
以惡德而專世祀 殆非化吾人之意哉로다하고 命亟去之하니
於是撤其屋하여 墟其地하고 沈其主於江하니라
公又懼楚俗之尙鬼而難諭也하여 乃徧告于人曰
吾聞라하고 又曰이라하니
凡天子命刺史于下 非以專土疆하고 督貨賄而已也
蓋將敎孝悌하고 去奇邪하여 俾斯人敦忠睦友하고 祗肅信讓하여 以順于道니라
吾之斥是祠也 以明敎也
苟離于正이면 雖千載之違라도 吾得而更之커든 況今玆乎 苟有不善이면 雖異代之鬼라도 吾得而攘之커든 況斯人乎아하니라
州民旣諭 相與歌曰
我有耈老어늘 公燠其肌하고 我有病癃이어늘 公起其羸하며
髫童之嚚 公實智之하고 鰥孤孔艱 公實遂之하시니
孰尊惡德이리오
遠矣自古
孰羨淫昏이리오
俾我斯瞽
千歲之冥 公闢其戶 我子洎孫 延世有慕리라하니라
宗元時謫永州하여 邇公之邦이라 聞其歌詩하고 以爲古道罕用이러니 賴公而存하니 斥一祠而이라
明罰行于鬼神하고 愷悌達于蠻夷하니 不惟禁淫祠 黜非類而已
願爲記以刻山石하여 俾知敎之首하노라


08. 도주道州비정신鼻亭神을 허물어버린 일에 관한 기문
문장이 매우 분명하고 법이 있다.
그러나 왕양명王陽明의 〈상사기象祠記〉를 읽어보면 또 누구의 설을 따라야 할지 망설여진다.
비정신鼻亭神의 사당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대로 물려주어 없애버리지 않고 보수하여 항상 새로운 모습을 유지하면서 천 년이나 전해져왔다.
원화元和 9년에 하동河東 사람 설공薛公형부낭중刑部郞中에서 도주자사道州刺史로 부임하여, 못되고 사악한 이들을 제거하여 아랫사람들에게 화합和合의 정치를 펼쳤다.
지쳤던 도주道州 백성들은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태평해졌으며 신음소리가 노래로 바뀌었다.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이 밝아진 듯 이리저리 뛰며 서로 둘러보면서 환호하고 유순해졌다.
고을이 이미 다스려지자 공께서는 민간의 풍속을 살피고 지도를 펼쳐보다가 이 사당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어 놀라 말하기를 “의 행태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오만하게 굴고 아우로서 형을 해쳤으며 유비有鼻의 군주로 있었으나 사실은 천자의 관리가 다스렸다.
악덕惡德을 행한 자에게 대대로 제사를 받아먹게 한다는 것은 〈천자가〉 우리 백성들을 교화하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고, 빨리 허물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리하여 그 건물을 철거하여 터를 폐허로 만들고 신주神主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공께서는 또 지방 풍속이 귀신을 숭상하여 깨우치기 어려운 것을 걱정하여 백성에게 널리 고하였다.
“나는 듣건대 ‘귀신은 제 종족이 아닌 사람의 제물祭物은 흠향하지 않는다.’ 하였고, 또 듣건대 ‘예법禮法에 합당하지 않은 제사祭祀는 복을 받지 못한다.’ 하였다.
천자께서 자사刺史를 지방에 내려보내신 것은 그 강토를 지키고 재물을 감독하라는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효도孝道우애友愛를 가르치고 괴상하고 사악한 풍속을 없애 사람들이 돈후하고 충성스러우며 화목하고 우애하며, 공경하고 엄숙하며 진실하고 겸양하여 바른 도리에 순응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 사당을 허무는 것은 교화敎化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만약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비록 천 년이나 전해온 것이라도 내가 고칠 것인데 하물며 지금의 이 일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으며, 만약 악행이 있었다면 비록 다른 시대의 귀신이라도 내가 배격할 것인데 하물며 이 사람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그러자 고을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고 함께 노래하였다.
“우리의 늙은이들을 공께서 보살펴주시고, 우리의 병든 이를 공께서 일으켜주셨네.
어리석은 아이들을 공께서 실로 지혜롭게 해주시고, 의지할 데 없어 곤궁한 이들을 공께서 실로 길러주셨네.
그 누가 악덕惡德을 높이게 했나?
먼 옛날 전통이었네.
그 누가 악인惡人을 흠모하게 했나?
우리의 눈을 멀게 했었네.
천 년 동안 어두운 곳을 공께서 창을 열어 빛을 주시니, 우리와 자식 손자 대를 이어 흠모하리.”
종원宗元은 마침 영주永州로 유배되어 공이 계신 고을과 가까웠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듣고 생각하기를, 옛사람의 도가 행해지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제 공으로 인해 보존되었으니, 사당 하나를 허물어 두 가지 교화敎化가 일어났다.
분명한 처벌이 귀신에게 행해지고 온화한 덕이 변방 백성에게 파급되었으니, 이는 단지 잘못된 제사를 금하고 악인을 배격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다.
바라건대 따로 기문을 지어 산간의 바위에 새겨 사람들로 하여금 교화의 으뜸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기를 바란다.


역주
역주1 道州毁鼻亭神記 : 元和 9년(814)에 쓴 것으로 보인다. 鼻亭神은 舜帝의 아우 象의 신을 모신 사당으로, 道州城 북쪽 60리 지점에 있었다. ‘鼻’는 ‘庳’와 통용하고 鼻亭은 舜帝가 아우 象에게 봉해줬다는 나라인 有庳를 가리킨다. 후세 사람들이 그곳에 象의 신을 받드는 사당을 세우고 그 이름을 鼻亭神이라 하였다. 道州刺史 薛伯高가 象은 바르지 못한 사람이니 백성을 인륜의 도리로 교화하는 면으로 볼 때 배척해야 할 대상이라 하여 鼻亭神을 헐어버린 과정을 서술하였다. 薛伯高(806~820)는 河東 사람으로, 자는 景晦이다. 尙書 刑部郞中으로 있다가 비방을 받고 元和 9년에 道州刺史로 좌천되어 13년까지 재임하였다. 醫術에 조예가 깊어 《古今集驗方》 10권을 저술하였다.
역주2 王陽明記象廟 : 王陽明은 明나라 학자 王守仁(1472~1529)이다. 記象廟는 象의 신을 모신 사당을 주제로 쓴 기문이란 뜻으로, 그가 1508년에 쓴 〈象祠記〉를 말한다. 지금의 貴州 일대의 苗族이 黔西縣 경내의 靈博山에 象의 사당을 중수한 뒤에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이 기문에서 “唐나라 사람이 有庳에 있던 象의 사당을 허물어버린 이유가 象이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에게 포학한 짓을 한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象의 사당을 세워 받들고 있는 것은 당사자인 象보다는 그의 형인 舜을 흠모해서이고, 또 象이 처음에는 못된 사람이었으나 후일에는 형의 교화로 개과천선하여 有庳 백성들에게 은덕을 끼쳤을 것이므로 그의 후일의 달라진 점에 의미를 둔 것이라고 말하였다. 象廟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작자와 王守仁의 견해가 달랐으나 모두 일리가 있으므로 茅坤이 어느 설을 따라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주3 元和九年 : ‘九年’을 ‘元年’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柳河東集》 권5 〈道州文宣王廟碑〉에 “薛公 伯高가 尙書 刑部郞中으로부터 道州刺史가 되었고, 이듬해 2월 정해일에 공이 희생과 폐백을 가지고 先聖 文宣王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薛公伯高 由尙書刑部郞中爲道州 明年二月丁亥 公用牲幣祭于先聖文宣王之廟]” 하였고, 그 아래 부분에 “9년 8월 정미일에 공이 새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九年八月丁未 公祭于新廟]”라고 하였다. 元和 9년의 이듬해인 10년 2월에는 정해일이 없고, 元和 2년 2월 29일이 정해일이므로 ‘九年八月’은 ‘元年八月’의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元和 2년 2월 29일이 정해일인 것은 맞지만, 元和 元年 8월에는 정미일이 없고 9년 8월에도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날짜의 간지를 따져 연도를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작자가 薛伯高가 道州刺史로 부임한 사실을 거론한 이 작품과 〈道州文宣王廟碑〉에서 그 시기를 동일하게 ‘九年’으로 표기하였고, 《唐刺史考》(郁賢皓 著, 江蘇古籍出版社, 1987. 2.) 2,472쪽 〈江南西道 道州〉의 ‘薛景晦(薛伯高)’에 ‘元和 9년(814)에서 13년(818)까지’라고 되어 있으며, 그에 관한 여러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였다.
역주4 : 지
역주5 鬼神不歆非類 : 《春秋左氏傳》 僖公 10년에 나온다.
역주6 淫祀無福 : 《禮記》 〈曲禮 下〉에 나온다.
역주7 二敎興 : 백성들에게, 살았을 때 잘못을 범한 자는 죽은 뒤에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행하도록 한 것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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