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知何自始立이나 因而勿除하고 完而恒新하여 相傳且千歲라
에 河東薛公
이 由刑部郞中刺道州
하여 除穢革邪
하여 敷和于下
하니
若痿而起하고 若矇而瞭하여 騰踴相視하고 讙愛克順하니라
駭曰 象之道는 以爲子則傲하고 以爲弟則賊하며 君有鼻而天子之吏實理라
以惡德而專世祀는 殆非化吾人之意哉로다하고 命亟去之하니
凡天子命刺史于下는 非以專土疆하고 督貨賄而已也라
蓋將敎孝悌하고 去奇邪하여 俾斯人敦忠睦友하고 祗肅信讓하여 以順于道니라
苟離于正이면 雖千載之違라도 吾得而更之커든 況今玆乎며 苟有不善이면 雖異代之鬼라도 吾得而攘之커든 況斯人乎아하니라
我有耈老어늘 公燠其肌하고 我有病癃이어늘 公起其羸하며
髫童之嚚을 公實智之하고 鰥孤孔艱을 公實遂之하시니
千歲之冥을 公闢其戶라 我子洎孫히 延世有慕리라하니라
宗元時謫永州
하여 邇公之邦
이라 聞其歌詩
하고 以爲古道罕用
이러니 賴公而存
하니 斥一祠而
焉
이라
明罰行于鬼神하고 愷悌達于蠻夷하니 不惟禁淫祠 黜非類而已라
08. 도주道州의 비정신鼻亭神을 허물어버린 일에 관한 기문
그러나 왕양명王陽明의 〈상사기象祠記〉를 읽어보면 또 누구의 설을 따라야 할지 망설여진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대로 물려주어 없애버리지 않고 보수하여 항상 새로운 모습을 유지하면서 천 년이나 전해져왔다.
원화元和 9년에 하동河東 사람 설공薛公이 형부낭중刑部郞中에서 도주자사道州刺史로 부임하여, 못되고 사악한 이들을 제거하여 아랫사람들에게 화합和合의 정치를 펼쳤다.
지쳤던 도주道州 백성들은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태평해졌으며 신음소리가 노래로 바뀌었다.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이 밝아진 듯 이리저리 뛰며 서로 둘러보면서 환호하고 유순해졌다.
고을이 이미 다스려지자 공께서는 민간의 풍속을 살피고 지도를 펼쳐보다가 이 사당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어 놀라 말하기를 “상象의 행태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오만하게 굴고 아우로서 형을 해쳤으며 유비有鼻의 군주로 있었으나 사실은 천자의 관리가 다스렸다.
악덕惡德을 행한 자에게 대대로 제사를 받아먹게 한다는 것은 〈천자가〉 우리 백성들을 교화하는 뜻이 아니다.”라고 하고, 빨리 허물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리하여 그 건물을 철거하여 터를 폐허로 만들고 신주神主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공께서는 또 초楚 지방 풍속이 귀신을 숭상하여 깨우치기 어려운 것을 걱정하여 백성에게 널리 고하였다.
“나는 듣건대 ‘귀신은 제 종족이 아닌 사람의 제물祭物은 흠향하지 않는다.’ 하였고, 또 듣건대 ‘예법禮法에 합당하지 않은 제사祭祀는 복을 받지 못한다.’ 하였다.
천자께서 자사刺史를 지방에 내려보내신 것은 그 강토를 지키고 재물을 감독하라는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효도孝道와 우애友愛를 가르치고 괴상하고 사악한 풍속을 없애 사람들이 돈후하고 충성스러우며 화목하고 우애하며, 공경하고 엄숙하며 진실하고 겸양하여 바른 도리에 순응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 사당을 허무는 것은 교화敎化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만약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비록 천 년이나 전해온 것이라도 내가 고칠 것인데 하물며 지금의 이 일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으며, 만약 악행이 있었다면 비록 다른 시대의 귀신이라도 내가 배격할 것인데 하물며 이 사람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그러자 고을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고 함께 노래하였다.
“우리의 늙은이들을 공께서 보살펴주시고, 우리의 병든 이를 공께서 일으켜주셨네.
어리석은 아이들을 공께서 실로 지혜롭게 해주시고, 의지할 데 없어 곤궁한 이들을 공께서 실로 길러주셨네.
천 년 동안 어두운 곳을 공께서 창을 열어 빛을 주시니, 우리와 자식 손자 대를 이어 흠모하리.”
나 종원宗元은 마침 영주永州로 유배되어 공이 계신 고을과 가까웠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듣고 생각하기를, 옛사람의 도가 행해지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제 공으로 인해 보존되었으니, 사당 하나를 허물어 두 가지 교화敎化가 일어났다.
분명한 처벌이 귀신에게 행해지고 온화한 덕이 변방 백성에게 파급되었으니, 이는 단지 잘못된 제사를 금하고 악인을 배격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다.
바라건대 따로 기문을 지어 산간의 바위에 새겨 사람들로 하여금 교화의 으뜸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