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桐葉與小弱弟
하고 戲曰 以封汝
하리라하니 周公入賀
에
王曰 戲也
라할새 周公曰 天子不可戲
라하여 乃封小弱弟於
이라하니라
王之弟當封耶인댄 周公宜以時言於王이요 不待其戲而賀以成之也라
不當封耶에 周公乃成其不中之戲하여 以地以人을 與小弱者爲之主면 其得爲聖乎아
且周公以王之言不可苟焉而已라하여 必從而成之耶인댄
吾意周公輔成王에 宜以道從容優樂하여 要歸之大中而已요 必不逢其失而爲之辭하며
又不當束縛之 馳驟之하여 使若牛馬然이니 急則敗矣라
且家人父子도 尙不能以此自克이어든 況號爲君臣者耶아
此篇은 與守原議封建論二篇所謂大篇短章이니 各極其妙라
07. 오동잎으로 아우를 봉한 일에 관한 논변論辯
이와 같은 유의 문장은 모두 빈틈이 없어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
옛날 역사를 기록한 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왕成王이 오동나무 잎을 어린 아우에게 주면서 농담하기를 “이것으로 너를 봉해주마.” 하니, 주공周公이 들어가 축하하였다.
성왕成王이 농담이라고 말하자, 주공周公은 “천자는 농담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여, 마침내 어린 아우를 당唐에 봉했다고 하였다.
성왕成王의 아우가 마땅히 봉지封地를 받아야 한다면 주공周公이 분명히 적기適期에 왕에게 건의했을 것이고, 굳이 농담하기를 기다렸다가 축하하면서 서둘러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마땅히 봉지를 받아서는 안 되는데 주공周公이 끝내 도리에 맞지 않는 농담을 사실로 만들어 토지와 백성을 그처럼 어린 아우에게 주어 군주가 되게 했다면 주공周公이 과연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주공周公이 군왕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다 하여 반드시 그 말을 따라 실행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혹시 불행히도 왕이 오동나무 잎을 가지고 부녀자나 환관과 농담했더라도 또한 모두 다 따르겠는가.
대체로 군왕의 덕은 그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처리한 것이 합당하지 않다면 열 번을 바꾸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리에 합당한가의 여부에 달려 있으니 합당하다면 바꾸면 안 될 것이다.
만일 농담한 것을 기필코 실행하게 했다면 이는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생각건대,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할 때 분명히 정확한 원칙으로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여유롭고 즐겁게 하면서 결국에는 크고 바른 도리로 돌아가게 할 뿐, 결코 그의 실수에 영합하고 또 이 실수를 봉합할 구실거리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분명히 그를 속박하고 몰아세워 소나 말을 대하듯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니, 무슨 일이든 급하게 하면 실패하는 법이다.
그리고 가정의 부자간에 있어서도 이런 방법으로 구속할 수 없는데 하물며 군신君臣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우이겠는가.
이는 그저 식견이 고루한 하찮은 인물이 부리는 잔꾀이고, 주공周公이 마땅히 사용할 방법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당숙唐叔을 봉한 일은 태사太史 윤일尹佚이 재촉해 이루었다.” 하였다.
“이 편은 〈수원의守原議〉ㆍ〈봉건론封建論〉 두 편과 함께 이른바 거작 단편으로, 각기 절묘한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