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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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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杓直足下
遽至 得足下書하고 又於處得足下前次一書하니 意皆勤厚
僕在蠻夷中 比得足下二書하고 及致藥餌하니 喜復何言이리오
僕自去年八月來 稍已이라
往時間一二日作이나 今一月乃二三作이라
用南人하여 破決壅隔大過하니 陰邪雖敗 已傷正氣하여 行則膝顫하고 坐則髀痺
所欲者補氣豐血하여 强筋骨하고 輔心力이니
有與此宜者 更致數物하라
得良方偕至 益善이라
永州於楚爲最南하고 狀與越相類
僕悶卽出遊 遊復多恐하니
涉野則有蝮虺大蜂하여 仰空視地하여 寸步勞倦하고 近水卽畏 含怒竊發하니 中人形影이면 動成瘡痏
時到幽樹好石하여 暫得一笑 已復不樂하니
何者 譬如囚拘圜土니라
一遇和景이면 負牆搔摩하며 伸展支體하니 當此之時 亦以爲適이라
然顧地窺天하여 不過尋丈이라도 終不得出하니 豈復能久爲舒暢哉
明時百姓皆獲歡樂하니
僕士人頗識古今로되 獨愴愴如此하니 誠不足爲理世下執事
至比愚夫愚婦라도 又不可得이니 竊自悼也로라
僕曩時所犯 足下適在禁中하여 備觀本末일새 不復一一言之하노라
今僕癃殘頑鄙하니 不死幸甚이라
苟爲이면 不必立事程功이요 唯欲爲하여 差輕罪累로라
卽便耕田藝麻하고 取老農女爲妻하여 生男育孫하여 以供力役하며 時時作文하여 以詠太平이라
摧傷之餘 氣力可想이니 假令病盡已하여 身復壯이라도 悠悠人世 不過爲三十年客耳
前過三十七年 與瞬息無異하니 復所得者라도 其不足把翫 亦已審矣
杓直以爲誠然乎
僕近求得經史諸子數百卷하여 嘗候戰悸稍定이라가 時卽伏讀하니 頗見聖人用心 賢士君子立志之分이로라
著書亦數十篇이나 心病 言少次第하여 不足遠寄 但用自釋이라
貧者士之常이니 今僕雖羸餒 亦甘如飴矣
足下言已白煦僕이라하니 僕豈敢衆人待常州耶
若衆人이면 卽不復煦僕矣리라
然常州未嘗有書遺僕하니 僕安敢先焉이리오
僕各有書하니 足下求取觀之하되 相戒勿示人하라
在近地하여 簡人事하니 今不能致書
足下黙以此書見之하라
勉盡志慮하여 輔成一王之法하여 以宥罪戾하라
不悉이라
某白하노라


01.翰林 이건李建에게 보낸 편지
표직족하杓直足下께 드립니다.
고을 역참驛站의 수레가 뜻밖에 도착하여 족하足下의 편지를 받았고 또 몽득夢得을 통해 족하의 지난번 편지를 받았는데, 그 뜻이 모두 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주莊周가 말하기를 “갈대숲으로 도망가 있는 자는 사람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면 매우 기뻐한다.” 하였습니다.
제가 먼 남쪽지방에서 족하가 보낸 두 통의 편지를 연이어 받고 아울러 약품藥品까지 보내주셨으니, 그 기쁨을 또 무슨 말로 형용하겠습니까.
저는 지난해 8월 이후 비질痞疾이 약간 나았습니다.
과거에는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발작하였으나 지금은 한 달에 두세 번씩 발작합니다.
남쪽 사람들이 쓰는 빈랑檳榔여감餘甘을 복용하여 뱃속에 뭉친 응어리를 너무 지나치게 풀었더니, 음습한 병증은 사라졌지만 이미 원기를 손상하여 걸어다니면 무릎이 떨리고 앉아 있으면 넓적다리가 저립니다.
필요한 것은 기혈氣血을 보충하여 근육과 뼈를 강하게 하고 심장의 활력을 돕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증상에 적합한 것이 있으면 또 몇 가지 약물을 보내주십시오.
좋은 처방도 함께 보내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영주永州 지역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그 여건이 남월南越과 비슷합니다.
저는 가슴이 답답할 때는 곧 밖에 나가 놀지만 놀 때에는 또 두려운 일이 많습니다.
들판을 건널 때는 독사와 왕벌이 도사리고 있어 허공을 쳐다보거나 땅바닥을 살피느라 한 걸음 한 걸음이 매우 힘들고, 물가에 접근하면 물여우나 모랫니가 노기를 품고 갑자기 침범하니 사람의 몸이나 그림자에 독기를 뿜으면 그만 상처가 납니다.
가끔 호젓한 숲이나 보기 좋은 바위 곁에 이르러 잠시 한 번 웃음 짓곤 하지만 이내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그 이유는 감옥에 갇혀 감옥살이하는 것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화창한 날씨를 만나면 몸을 담에 붙이고 가려운 곳을 비벼대면서 사지를 느긋하게 쭉 펴기도 하니, 이런 때는 그래도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땅을 돌아보고 하늘을 엿보면서 여덟 자나 열 자 정도에 불과한 작은 공간조차도 벗어나지 못하니, 어찌 오랫동안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정치가 청명淸明한 세상에 백성들은 모두 각자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글을 읽은 선비로서 고금古今의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만 홀로 이처럼 처량하게 지내고 있으니, 정말로 태평한 세상 치하에서 관리가 될 자격이 부족한가 봅니다.
심지어 우매한 일개 필부와 견주어보더라도 그들보다 못하니 내심 저 자신이 서글퍼집니다.
제가 지난날 범한 과오에 관해서는 족하足下께서 그때 마침 궁궐에 계시어 그 내용을 두루 보셨을 것이므로 새삼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저는 몸은 병들어 쇠약하고 정신은 어리석고 고루하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만약 평범한 백성이 될 수 있다면 굳이 무슨 일을 추진하여 성과를 거둘 생각은 없고, 오직 제 관직이 양이量移되어 저의 죄가 경감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밭을 갈고 삼을 심으면서 늙은 농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고 손자를 길러서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노역勞役을 제공하며 수시로 글을 지어 태평한 세상을 노래할 것입니다.
저는 기가 꺾이고 몸이 상한 끝이라 기력이 어떻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으니, 가령 신병이 완전히 사라져 몸이 다시 건강해지더라도 덧없는 세상에서 앞으로 30년간 나그네가 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지나간 37년의 세월이 눈 한 번 깜박이고 숨 한 번 들이쉬는 것과 다를 게 없었으니, 앞으로 무엇을 얻는 일이 있더라도 크게 좋아할 것이 못 된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표직杓直께서도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십니까.
저는 요즘 경전經傳사서史書제자諸子 수백 권을 구해 얻어 일찍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조금 안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를 만나면 즉시 엎드려 읽곤 하는데, 이 속에서 성인聖人이 마음을 쓰는 것과 어진 사군자士君子들이 각자 뜻을 세우는 차이에 대해 상당히 엿보았습니다.
저술한 글이 또한 수십 편에 이르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논리가 정연하지 못해 당신께 보내드리지는 못하고 그저 제 마음을 달래는 자료로 삼을 뿐입니다.
빈궁貧窮이란 독서인讀書人의 당연한 본분이기에 지금 제가 비록 몸이 허약하고 배가 고프지만 그래도 맛있는 엿을 먹듯이 달게 여기고 있습니다.
족하足下께서 이미 상주자사常州刺史에게 고해 저를 돌보아주게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일반인을 대하는 자세로 상주자사常州刺史를 대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일반인처럼 대한다면 아마도 저를 돌보아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주자사常州刺史께서 저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없는데 제가 어찌 감히 먼저 글을 올리겠습니까.
배응숙裴應叔소사겸蕭思謙에게 제가 각각 편지를 보냈으니 족하足下께서 구해서 가져다 읽어보시되 부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마십시오.
돈시敦詩는 궁궐 안에서 직무를 보느라 인사人事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지금 그에게 편지를 써 보내지 못합니다.
족하足下께서 남모르게 이 편지라도 보여주십시오.
바라건대 마음을 다해 한 시대 왕조의 법도를 도와 이루어서 저희와 같은 죄인의 허물을 용서해주게 하십시오.
더 이상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무개는 사룁니다.


역주
역주1 與李翰林建書 : 작자가 永州司馬로 貶謫된 지 4년 뒤인 元和 4년(809)에 쓴 편지이다. 이때 작자의 나이는 37세였다. 李建(?~822)은 자가 杓直으로, 進士에 급제하여 秘書省校書郞을 지내고, 德宗이 그가 강직하다는 말을 듣고 左拾遺 翰林學士로 발탁하였다. 6년 전인 永貞 원년(805)에 작자가 王叔文의 정치집단에 가담하여 궁중에 설치한 시장을 해체하고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지방관의 권력을 억제하는 한편, 환관의 병권을 탈환하는 등 일련의 진보적인 조치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개혁의 수장이었던 王叔文과 王丕 등의 정치경험이 부족하고 잘잘못이 공존하며 매관매직하는 사례까지 일어난데다 개혁을 지원하던 順宗이 갑자기 죽음으로 인해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王叔文과 王丕 등이 몰락하자 이들과 노선을 함께했던 작자와 劉禹錫 등 8인이 모두 변방 고을의 司馬로 폄적되었다. 이 문장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세와 귀양지의 여러 가지 고충을 설명한 뒤에 인생살이가 덧없다는 말과 함께 벌이 경감되어 內地로 옮겨가서 평범하게 농사지으며 장가들어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것이다.
역주2 : 우편물을 전달해주는 驛站의 수레를 말한다.
역주3 夢得 : 劉禹錫(772~842)의 자이다. 작자와 절친한 벗이며 이 당시 朗州司馬로 貶謫되어 있었다.
역주4 莊周言……則跫然喜 : 蓬藋는 쑥과 명아주로 잡초를 뜻하고, 跫然은 기뻐하는 모양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莊周가 徐无鬼가 하는 말로 가탁하여 말하기를 “텅 빈 산골짜기로 도망가 홀로 떨어져 사는 사람은 무성한 잡초가 족제비들이 다니는 길마저 막아버린지라 텅 빈 골짜기에서 홀로 걷다 쉬다 하노라면 다른 사람의 발자국소리만 듣고도 즐거워한다.[夫逃虛空者 藜藋柱乎鼪鼬之逕 踉位其空 聞人足音 跫然而喜矣]” 하였는데, 이것을 축약하였다. 매우 얻기 어려운 소식을 비유하는 전고로 쓰인다.
역주5 痞疾 : 뱃속이 더부룩하고 결리는 것같이 아픈 증세로, 현대의학에서는 脾臟肥大症이라 한다.
역주6 檳榔餘甘 : 檳榔은 야자나무과의 종려목 열매로 크기는 매실 정도이다. 그 껍질은 大腹皮라 불리며 利尿劑의 성분이 있어 腹水를 치료한다. 餘甘은 橄欖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그 열매인 餘甘子를 말한다. 大腹皮와 모양이나 성분이 비슷하다.
역주7 射工沙虱 : 射工은 날도랫과 곤충의 애벌레로, 독이 있어 물속에 있다가 모래를 머금어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溪鬼蟲‧短狐‧射影‧水弩‧水狐‧抱槍‧含沙 등 여러 이름이 있다. 沙虱은 냇물이나 풀 속에 있는 독충으로, 몸집이 매우 작아 사람의 살에 붙으면 피부를 뚫고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시간이 지나면 뼛속까지 침입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한다.
역주8 : 唐 高宗(李治)의 이름인 ‘治’자를 피해 쓴 것이다. 이후 원문에 보이는 ‘理’자도 다스린다는 뜻으로 쓴 것은 모두 같은 경우이다.
역주9 堯人 : 《新語》 〈無爲〉에 “堯‧舜 세상의 백성은 집집마다 벼슬을 봉해줄 만하다.[堯舜之人 可比屋而封]”라고 한 말을 축약한 것이다. 본디 聖君의 어진 덕에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교화되어 집집마다 벼슬을 내려줄 만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에 사는 평범한 백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역주10 量移 : 죄로 인해 관리를 멀리 귀양 보냈다가 죄를 減等하여 도성에서 가까운 곳으로 임지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역주11 常州 : 李建의 형 李遜(761~823)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友道이다. 이때 常州刺史로 재직 중이었으며, 다음해에 越州刺史와 浙東觀察使로 전보되었다.
역주12 裴應叔蕭思謙 : 應叔은 裴塤의 자이고, 思謙은 蕭俛의 자이다.
역주13 敦詩 : 崔群(772~832)의 자이다. 이때 궁궐에서 翰林學士로 재직 중이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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