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毁齒已上은 父兄鬻賣하여 以覬其利하고 不足이면 則盜取他室하여 束縛鉗梏之하고
至有鬚鬣者도 力不勝이면 皆屈爲僮하니 當道相賊殺以爲俗이라
行牧且蕘
러니 二豪賊劫持反接
하고 布囊其口
하여 去逾四十里之
賣之
라
寄僞兒啼하고 恐慄爲兒恒狀하니 賊易之하여 對飮酒醉라
童微伺其睡하여 以縛背刃하고 力下上하여 得絶하니
逃未及遠에 市者還하여 得童大駭하고 將殺童이어늘
曰 與其殺是僮으론 孰若賣之며 與其賣而分으론 孰若吾得專焉이리오
卽藏其尸하니라 持童抵主人所하여 愈束縛牢甚이어늘
奇之
하여 留爲小吏
나 不肯
하니 與衣裳
하여 吏護還之鄕
하니라
鄕之行劫縛者 側目莫敢過其門
하고 皆曰 是兒少
二歲
로되 而討殺二豪
하니 豈可近耶
아하니라
월越 지방 사람들은 인정이 야박하여 아들딸을 낳으면 반드시 그들을 돈으로 여긴다.
이를 갈 나이가 지나면 부형父兄이 자기 자식을 팔아 이익을 챙기고, 그래도 양이 차지 않으면 남의 집에서 아이를 잡아다가 포박하고 칼과 수갑을 채운다.
심지어 수염이 난 성인成人도 힘이 모자라면 모두 그들에게 굴복하여 종이 되는데, 길을 가로막고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풍속이 되었다.
아이가 다행히 몸집이 크면 놓아두고 어리고 약한 자를 묶어 데려간다.
한족漢族 관리는 이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기회로 삼아 만약 종을 수중에 넣게 되면 그들의 행위를 그대로 보아 넘기고 따져 묻지 않는다.
이로 인해 월越 지방의 호구가 자꾸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강탈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경우가 드문데 오직 구기區寄라는 아이는 열한 살의 나이로 그들을 이겨냈으니, 이 또한 기특한 일이다.
이는 계부종사桂部從事 두주사杜周士가 나에게 말해준 내용이다.
구기區寄는 침주郴州에서 나무하고 소를 치는 아이였다.
한창 소에게 풀을 뜯어먹게 하고 한편으로는 나무를 하고 있는데, 두 명의 강도强盜가 위협을 가해 손을 뒤로 묶고 천으로 입을 감싸 막고는 40리가 넘는 저자로 팔러 갔다.
구기區寄가 거짓으로 어린애처럼 훌쩍거리고 보통 아이들처럼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시늉을 하자, 강도들이 그를 쉽게 보고 마주앉아 술을 마셔 취하였다.
그런 다음 강도 한 명은 값을 흥정하러 시장에 갔고 다른 한 명은 바닥에 누워 있는데, 칼은 길 위에 꽂아둔 상태였다.
구기區寄는 조심조심 그가 잠이 든 것을 살펴가면서 〈칼이 있는 곳에서〉 뒤로 돌아 손을 묶은 줄을 칼날에 대고 위아래로 힘껏 비벼대 줄을 끊었다.
그리고 나서 도망쳤으나 미처 멀리 가기 전에 값을 흥정하러 갔던 자가 돌아와 다시 구기區寄를 잡고 자기 동료가 피살된 것에 크게 놀라 그를 죽이려 하였다.
“두 아저씨의 종이 되는 것보다는 한 아저씨의 종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저씨가 정말 나를 잘 대해주신다면 무슨 말이든 잘 듣겠습니다.”
‘이 종을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파는 것이 오히려 낫고, 팔아서 이익을 둘로 나누는 것보다는 나 혼자 차지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다행히 저자를 죽였으니 이것도 잘된 일이다.’
즉시 그 시체를 숨기고는 아이를 데리고 그를 사들일 주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더욱 단단히 묶어놓았다.
밤이 깊어지자 아이는 몸을 굴려 포승을 화롯불에 가까이 닿게 하여 태워 끊었다.
그런 다음 다시 칼을 잡아 그자를 찔러 죽이고 크게 소리치자 온 저자 사람들이 다 놀랐다.
“나는 구씨區氏 집 아들로 남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강도强盜 두 사람이 나를 잡아왔으나 내가 다행히 이들을 죽였습니다.
저자를 관리하는 관리가 주州에 고하고 주州에서 상부에 고하였는데 상부에서 불러 보니, 아이가 어린데도 성실하였다.
자사刺史 안증顔証이 기특하게 여겨 그곳에 남겨두고 하급관리로 삼으려 하였으나 아이가 원하지 않자, 의복衣服을 줘서 입히고 관리가 보호하여 그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고향에서 남의 자식을 납치해 가는 강도들이 곁눈질하며 감히 그의 문앞을 지나가지 못하면서 모두 하는 말이 “이 아이는 진무양秦武陽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도 두 명의 포악한 자를 공격하여 죽였으니, 어찌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