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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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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中條貫龐雜이나 而文所點次處若掌이라
凡萬國之會 四夷之來 天下之道塗畢出於之內
奉貢輸賦 修職於王都者 入于近關이면 則皆重足錯轂하여 以聽有司之命이라
徵令賜予 布政于下國者 出于하고 而後按行成列하여 以就諸侯之館이라
故館驛之制 於千里之內尤重하니라
自萬年至于渭南 其驛六이니 其蔽曰華州 其關曰潼關이라
自華而北界于櫟陽 其驛六이니 其蔽曰同州 其關曰蒲津이라
自灞而南至于藍田 其驛六이니 其蔽曰商州 其關曰武關이라
其驛十有一이니 其蔽曰洋州 其關曰華陽이라
自武功西至于好畤 其驛三이니 其蔽曰鳳翔府 其關曰隴關이라
自渭而北至于華原 其驛九 其蔽曰方州
自咸陽而西至于奉天 其驛六이니 其蔽曰邠州
由四海之內 總而合之하여 以至于關하고 由關之內 束而會之하여 以至于王都
華人夷人往復而授館者 旁午而至 傳吏奉符而閱其數하고 縣吏執牘而書其物이라
告至告去之役 不絶於道하니 寓望迎勞之禮 無曠於日이라
而春秋朝陵之邑 皆有傳館하니 其飮飫餼饋 咸出於豐給하고 繕完築復 必歸於整頓이라
列其田租하고 布其貨利하여 權其入而用其積이라
於是有出納奇贏之數 勾會考校之政하니라
大曆十四年 始命御史爲之使하여 俾考其成하여 以質于尙書하니라
季月之晦 必合其簿書하여 以視其等列하고 而校其信宿하되 必稱其制
有不當者 反之於官하고 尸其事者有勞焉이면 則復于天子而優升之니라
勞大者增其官하고 其次者降其調之數하며 又其次猶異其考績이라
官有不職이면 則以告而罪之
故月受俸二萬于太府니라
史五人 承符者二人 皆有食焉이니라
先是假廢官之印而用之러니 貞元十九年 南陽韓泰告于上하여 始鑄使印而正其名이라
然其嗣當斯職 未嘗有記之者하여 追而求之 蓋數歲而往則失之矣
今余爲之記 遂以韓氏爲首하고
且曰修其職이라 故首之也라하노라


01. 관역사館驛使공관公館 벽에 쓴 기문
중간에 조리가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문장에서 비평하고 서술한 부분은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분명하다.
만국萬國에서 모이고 사방 변방에서 들어올 적에 〈경유하는〉 천하의 모든 길이 방기邦畿로 연결되어 있다.
공물貢物을 올리고 조세租稅를 운송하는 것으로 왕성王城에서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는 관문關門 가까이 들어오면 모두 두려워 발길을 멈추고 수레끼리 바싹 대놓은 뒤에 유사有司의 명을 기다린다.
또 〈황제가 무엇을〉 징수하거나 하사하는 조서를 가지고 전국에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사자使者전복甸服으로 나간 후에 대오를 형성하여 제후들의 역참驛站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역참 제도는 〈도성으로부터〉 천 리 이내에서 특히 중요하다.
만년현萬年縣에서 위남현渭南縣까지는 역참驛站이 6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화주華州이고 그 관문은 동관潼關이다.
화주華州에서 북쪽 경계인 역양현櫟陽縣까지는 역참이 6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동주同州이고 그 관문은 포진蒲津이다.
파수灞水에서 남쪽으로 남전현藍田縣까지는 역참이 6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상주商州이고 그 관문은 무관武關이다.
장안長安에서 주질현盩厔縣까지는 역참이 11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양주洋州이고 그 관문은 화양華陽이다.
무공현武功縣에서 서쪽으로 호치현好畤縣까지는 역참이 3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봉상부鳳翔府이고 그 관문은 농관隴關이다.
위수渭水에서 북쪽으로 화원현華原縣까지는 역참이 9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방주方州이다.
함양현咸陽縣에서 서쪽으로 봉천현奉天縣까지는 역참이 6개소인데 이들을 관할하는 곳은 빈주邠州이다.
전국 각지에서 다 모여 각 관문에 이르고 다시 관문에서 다 모여 왕성에 이른다.
왕래하는 도중에 역참을 이용할 중원中原변방邊方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들어올 적에 역참의 관리는 증빙서를 가지고 그 인원수를 검열하고 고을의 관리는 장부를 가지고 그 물건을 적는다.
왔다고 보고하고 떠났다고 보고하는 관원이 길에 끊이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관원이 역참에 묵거나 무엇을 기다리거나 누구를 영접, 혹은 위문하는 등의 일이 하루도 없는 때가 없다.
그리고 봄가을마다 찾아가 참배하는 황제의 능이 있는 고을에도 모두 역참이 있는데, 여행객이 먹을 음식은 반드시 풍족하게 제공해야 하고 여행객이 이용할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일은 반드시 미진한 점이 없게 한다.
역참에 딸린 농지의 조세와 재물의 이익을 통계하여 수입을 따져 축적된 것을 지출한다.
이래서 수입과 지출, 적자와 흑자를 따지는 일과 조사하고 살펴보는 정사가 있는 것이다.
대력大曆 14년(779)에 비로소 감찰어사監察御史관역사館驛使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역참 관원의 성적을 고찰하여 상서성尙書省에 보고해 질정을 받도록 하였다.
관역사館驛使는〉 각 계절의 끝 달 말일에 반드시 역참의 장부와 문서를 수합하여 관원의 등급을 살펴보고 역참에서 유숙한 인원수를 조사하되 반드시 관련 규정과 부합하는지 알아본다.
그 결과 만약 규정과 맞지 않는 점이 있으면 장부를 유관 관리에게 되돌려 보내고, 역참의 사무를 맡은 관리가 공로가 있으면 천자에게 보고하여 그들을 우대하여 승진시킨다.
공로가 큰 자는 그 관직을 높여주고, 그 다음으로 공이 있는 자는 그를 통해 징수할 재물의 수량을 감해주며, 또 그 다음가는 공이 있는 자는 좋은 성적을 매겨준다.
맡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관리는 상부에 고하여 처벌한다.
이 때문에 관역사館驛使는 매월 태부太府로부터 녹봉으로 돈 2만 을 받는다.
그의 밑에서 문서를 담당하는 인원 5인과 증빙서를 검열하는 인원 2인은 모두 관부官府에서 양식을 지급해준다.
이전에는 관역사館驛使관인官印은 폐기된 관인을 사용하였으나, 정원貞元 19년(803)에 남양南陽 한태韓泰가 황제에게 보고하여 비로소 관역사館驛使인장印章을 주조하여 이 관직의 명칭을 정식으로 확정하였다.
그런데 이 직책을 맡았던 전임자 중에 그가 수행한 직무를 기록한 자가 없어 그들의 행적을 소급해 찾아보았으나 몇 해 이전의 것은 그 내용이 없어졌다.
지금 내가 이 관역사館驛使에 관해 기문을 쓰면서 한태韓泰를 제1대로 삼았다.
그리고 그가 맡은바 직책을 잘 수행하였기 때문에 그를 제1대로 삼은 것이기도 하다.


역주
역주1 館驛使壁記 : 館驛使는 관직명으로, 驛站을 주관하는 장관인데 대부분 御史로 충원한다. 貞元 19년(803)에 작자가 자기와 함께 監察御史로 있던 그의 벗 韓泰가 館驛使로 부임해 가자, 그 이듬해에 館驛使가 직무를 보는 관청의 벽에 현판으로 걸기 위해 이 기문을 지었다. 館驛은 정부기구에서 설치한 것으로, 일반 여행객과 공무로 지방을 오가는 관리가 머무르는 곳이다. 唐나라 제도에 30리마다 1개소를 두었는데, 큰 길의 것은 驛이라 하고 작은 길의 것은 館이라 하며, 이것을 통칭하여 館驛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驛站이라 한다. 唐나라 전국에 설치한 館驛은 모두 1,639개소였으며, 이 기문에서 작자가 나열한 47개소는 도성과 그 부근에 있는 것을 위주로 한 것이다. 작자는 이 기문에서 역참 관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역참을 통과하는 돈과 재물을 관리하는 제도를 건전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記는 어떤 독립된 문체에 귀속시키기 어려운 잡다한 종류의 글들을 말한다. 臺閣名勝記, 山水遊記, 書畫雜物記, 人事雜記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주2 邦畿 : 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가리킨다.
역주3 甸服 : 夏나라 제도에서 九服 가운데 하나로, 왕성으로부터 500리 이내의 땅을 가리킨다.
역주4 自長安至于盩厔 : 주질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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