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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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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卽漢魏以來七之遺也 然所見不遠이라
姑存之하여 以見子厚詞賦之麗云이라
吳子問於柳先生曰
先生 晉人也 晉之故 宜知之리라
하다
然則吾願聞之可乎
曰 可하다
晉之故封 掎之하고 起之하며 黃河迤之하고 靡之하니 或巍而高하고 或呀而淵이라
景霍汾澮 以經其壖하니 若化若遷하여 鉤嬰蟬聯하고 然後融爲平川하니 而侯之都居 大夫之邑建焉이라
其高壯 則騰突撐拒하고 聱岈鬱怒 若熊羆之咆 虎豹之嗥하여 終古而不去
攫秦搏齊 當者失據하고 燕狄惴怯하여 若卵就壓하니 振振業業하여 覷關蹀戶하여 惕若僕妾이라
其按衍 則平盈旋緣하고 紆徐夷延하여 若飛䳒之翔舞 洄水之容與
以稼則碩하고 以植則茂하고 以牧則蕃하고 以畜則庶하여
而人用是富하고 而邦以之阜
其河則濬源崑崙하여 入於天淵하니 出乎無門하여 行乎無垠이라
自匈奴而南하여 以介西鄙하고 衝奔太華하여 運肘東指
混潰后土하여 濆濁糜沸하니 黿鼉詭怪 于于汨汨 騰倒䭿越하고 委泊涯涘하여 呀呷欱納하여 摧雜失墜
其所盪激 則連山參差하고 廣野壞裂하며 轟雷努風 撼𪁟干𡼛이라
崩石之所轉躍 大水之所擢拔 漰泙洞踏者 彌數千里하니 若萬夫之斬伐이라 而其軸轤之
所負 橦檣之所御 鱗川林壑 隳雲遁雨하여 瞬目而下者 榛榛沄沄하여 一赴하니
若是何如
吳子曰
先生之言 豐厚險固하니 誠晉之美矣
備敗而已 非以爲榮觀顯大也
皆晉人之藉也
願聞其他하노라
先生曰
之金 之工으로 火化水淬하면 器備以充하니 爲棘爲矛하고 爲鎩爲鉤하고 爲鏑爲鏃하고 爲槊爲鍭
하고하며하고하여 肅肅褷褷하여 合衆靈而成之
博者狹者 曲者直者 歧者勁者 長者短者 攢之如星하고 奮之如霆하며 運之如縈하여 浩浩弈弈하고 淋淋滌滌하며 熒熒的的이라
若雪山冰谷之積하니 觀者膽掉하여 目出寒液이라
當空發耀 英精互繞하고 晃蕩洞射하니 天氣盡白하여 日規爲小
鑠雲破霄하여 跕墜飛鳥
弓人之弓 函人之甲 膠角百選하고 犀兕七屬이라
乃使으로 服而持之하여 南瞰諸華하고 北讋群夷
技擊節制 聞於天下하니 是爲善師
延目而望之라가 固以拳拘喘汗하고 免冑肉袒하여 進不敢降하고 退不敢竄이라
若是何如
吳子曰
夫兵之用 由德則吉하고 由暴則凶하니
是又不可爲美觀也
라커든 況徒以堅甲利刃之爲上哉리오
先生曰
晉國多馬하니 이라
土寒氣勁하여 崖坼谷裂하니 草木短縮하고 鳥獸墜匿이나 而馬蕃焉이라
師師兟兟하고 溶溶紜紜 轠轠轔轔하며 或赤或黃하고 或玄或蒼하고 或醇或駹이라
黭然而陰하고 炳然而陽하여 若旌旃旂幟之煌煌이라
乍進乍止하고 乍伏乍起하고 乍奔乍躓하니 若江漢之水 疾風驅濤 擊山盪壑하여 雲沸而不止
群飮源槁하고 迴食野赭하며 浴川蹙浪하고 噴震播灑하면 潰潰焉若海神駕雪而來下
觀其四散惝怳하여 開合萬狀 喜者鵲厲하고 怒者人搏이라
決然坌躍하여 千里相角이라
風騣霧鬣 斸山抉壑 耳搖層雲하고 腹捎衆木하여 寂寥遠游라가 不久而復이라
攫地跳梁 堅骨으로 交頸互齧이라가 鬪目相馴하고 聚溲更噓라가 昂首張齗이라
其小者則連牽繳繞라가 仰乳俯齕하며 蟻雜螽集하여 啾啾潗潗하고 旅走叢立이라
其材之可者 收斂攻敎하여 掉手飛縻하니 指毛命物하면 百步就羈
하고 하며 하고 하여 以佃以戎할새 獸獲敵摧
若是何如
吳子曰
恃險與馬者 子不聞乎
請置此而新其說하노라
先生曰
晉之北山有異材하여 之爲宮室求大木者 天下皆歸焉이라
仲冬旣至하여 寒氣凝成하면 外凋內貞하니 瀋液不行하여 乃堅乃良이라
萬工擧斧以入하여 必求諸巖崖之欹傾 澗壑之紆縈하니 凌巑岏之杪顚하고 漱泉源之淦瀯이라
根絞怪石하고 不土而植하여 千尋百圍하니 與石同色이라
羅列而伐者 頭抗河漢하고 刃披虹霓하니 聲振連巒하고 柹塡層谿
丁丁登登하고 硠硠稜稜하여 若兵車之乘凌이라
其響之所應 則潰潰漰漰하고 洶洶薨薨하여 若騫若崩하여 若螭龍之鬪 風霆相騰이라
其殊而下者 札𡼛捎殺하고 摧崪坱圠하여 霞披電裂하니 이라
鵾鸛鶖鶬 號鳴飛翔하고 貙豻虎兕 奔觸讋慄하여 伏無所入하고 遯無所脫이라
然後斷度收羅하여 捎危顚하고 芟繁柯하여 乘水潦之波하여 以入於河而流焉이라
盪突硉兀하여 轉騰冒沒하니 하고
抵曲鱗蹙하고 匯流雷解하여 前者汨越하고 後者迫隘하여 乃下夫之懸水
摺拉頹踏하고 捽首軒尾하며 澒入重淵하여 不知其幾百里也
濤波之旋 滔山觸天이라가 旣渟旣平하여 彌望悠焉이라
良久 乃始昂屹涌溢하여 挺拔而出하니 林立峯崪하여 穿雲蔽日이라가 渙然自撓하여 復就行列하여 渾渾而去하여 以至其所
唯良工之指顧 之隆麗詭特 皆是之自出이라
若是何如
吳子曰
吾聞君子患無德하고 不患無土하며 患無土하고 不患無人하며 患無人하고 不患無宮室하며 患無宮室하고 不患材之不己有라하니
先生之所陳 四累之下也
先生曰
河魚之大 上迎濤波하여 羅壅津涯 千里雷馳하여 重馬輕車 이라
大罟斷流하고 脩網亘山하며 罩罶䍡罣 織絍其間이라
巨舟軒昂하여 仡仡迴環하고 水師更呼하여 聲裂이라
於是鼓噪沓集而從之하여 扼龍吭하고 拔鯨鰭하며 戮白黿하고 逐毒螭하며하고 立水湄
搜攪流離하여 掬縮推移하여 梁會網蹙하면 騰天彌圍하고 掉躃擁踴이라가 以登夫之垂하니
其有乘化會神하여 振拔漣淪하여 摛奇文하고 出怪鱗하여 騰飛濤而上逸하고 生電雷於龍門者라도 猶仰綸飛繳하여 頓踏而取之
莫不脫角裂翼하여 呀嚇匍匐이라
復就臠切하면 莫保龍籍하고 具糅五味하여 布列雕俎 風雲失勢하여 沮散遠去
若夫魦鱨鮪鯉鰋鱧魴鱮之瑣屑蔑裂者 夫固不足悉數
漏脫紘目하여 養之水府 而三河之人 則已塡溢饜飫하고 腥膏舃鹵하며
聞膾炙之美라도 則揜鼻蹙頞하여 賤甚糞土而莫顧者也
若是何如
吳子曰
一時之觀 不足以夸後世 口舌之味 不足以利百姓이니
姑欲聞其上者하노라
先生曰
之鹽 晉寶之大也
人之賴之與穀同하니 化若神造 非人力之功也
但至其所 則見溝堘畦畹之交錯輪囷하여 若稼若圃
敞兮勻勻하고 渙兮鱗鱗하여 邐瀰紛屬하여 不知其垠이라
俄然決源釃流하여 交灌互澍 若枝若股하여 委曲延布하고 脈寫膏浸하여 潗濕滑汨하여 彌高掩庳하여 漫壟冒塊
決決沒沒하여 遠近混會하고 抵値堤防하여 瀴瀛沛濊하여 偃然成淵하고 漭然成川이라
觀之者徒見浩浩之水 而莫知其以及이라
神液陰漉하여 甘鹵密起하니 孕靈富媼 不愛其美
無聲無形 熛結迅詭하고 迴眸一瞬 積雪百里
皛皛羃羃 奮僨離析 鍛圭椎璧하고 眩轉的皪이라
乍似隕星及地하여 明滅相射하고 冰裂雹碎하여 巃嵸增益이라
大者印纍 小者珠剖하며 涌者如坻하고 坳者如缶하니
日晶熠煜 螢駭電走
盈車하고 方尺數斗
於是裒斂合集하여 擧而堆之 皓皓乎之巍巍하고 皦乎溔乎하여 之淋漓
駭化變之神奇하여 卒不可推也
家獲作鹹之利하고 人被六氣之用하여 和鈞兵食하고 以征以貢이라
其賚天下也 與海分功하니 可謂有濟矣
若是何如
吳子曰
이라하니 豈謂是耶
雖然이나 此可以利民矣
而未爲民利也
先生曰
願聞民利하노라
吳子曰
安其常而得所欲하고 服其敎而便於己하며 百貨通行而不知所自來하고 老幼親戚相保而無德之者 不苦兵刑하고 不疾賦力하나니 所謂民利 民自利者是也니라
先生曰
文公之霸也 (秦破楚하고 囊括齊宋하며 하고 하며
天子恃焉하여 以有諸侯하고 諸侯恃焉하여 以有其國하고 百姓恃焉하여 以有其妻子而食其力이라
叛者力取하고 附者仁撫하며 推德義하고 立信讓하며
하며 達禁止하고 一好尙이라
公侯大夫 策文馬하고 馳軒車하여 出入環連하여 貫於國都
則有之堂 九几之室하니 大小定位하고 左右有秩이라
餼饋하고 交錯하여 響有嘉樂하고 宴有이라
登降好賦하고 犧象畢出하여 犒勞贈賄 率禮無失이라
理兵하여 大戎小戎으로 鍾鼓丁寧하여 以討不恭이라
車埒萬乘하고 卒半天下하여 鼓之則震하고 旆之則畏
其號令之動 若水之源하고 若輪之旋하여 莫不如志
當此之時하여 咸能驩娛以奉其上이라 故其民至於今 好義而任力이라
此以民力自固하고 假仁義而用天下 其遺風尙有存者
若是可以爲民利也乎
吳子曰
近之矣 然猶未也
彼霸者之爲心也 引大利以自嚮하고 而摟他人之力以自爲固하여 而民乃後焉이라
非不知而化하고 不令而一이니 異乎吾嚮之陳者
故曰近之矣 猶未也라하노라
先生曰
古帝王之更都焉이니 堯之所理也
故其人至於今儉嗇하고
이라 故其人至於今善讓하고
故其人至於今好謀而深하고
故其人至於今和而不怒하고
이라 故其人至於今憂思而畏禍하고
故其人至於今恬以愉하나니
此堯之遺風也
願以聞於子何如
吳子離席而立하여 拱而言曰
美矣善矣
其蔑有加矣로다
此固吾之所欲聞也
夫儉則財用足而不淫하고 讓則遵分而進善하여 其道不鬪하고 謀則通於遠而周於事
和則仁之質이요 戒則義之實이라
恬以愉則安而久於其道也니라
至乎哉
今主上方致太平하여 動以堯爲準하니
先生之言 道之奧者
若果有貢於上이면 則吾知其易易焉也로라
擧晉國之風以一諸天下 如斯而已矣라하고
敬再拜受賜하니라


08. 지방의 특색을 물은 것에 대해
이후 내려오는 칠체七體의 형식으로 쓴 것이지만 견해가 원대하지는 않다.
우선 초록에 포함시켜 유자후柳子厚가 지은 사부詞賦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오자吳子유선생柳先生에게 물었다.
“선생은 지방 출신이시니 그곳의 상황을 아시겠습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그에 관해 듣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의 옛 강토는 태항산太行山이 서북쪽에서 외부를 견제하고 수양산首陽山이 중앙에서 높이 일어났으며, 황하黃河가 서남부를 감아 돌고 대륙택大陸澤이 동부에 펼쳐졌는데, 어떤 곳은 우뚝 솟아 드높고 어떤 곳은 움푹 꺼져 깊은 못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곽산霍山에서 흘러나온 분수汾水회수澮水가 들판을 경유하는데 마치 조물주가 조화를 부리듯이 이리저리 휘감아 돌면서 면면히 이어지고 그런 뒤에 한곳으로 모여 넓은 평야가 되니, 나라 군주의 도읍이 자리하고 대부들의 봉읍封邑이 이곳에 조성되었습니다.
높고 큰 산으로 말하자면, 기세가 등등하고 험악하여 마치 크고 작은 곰들이 포효하고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거리면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을 움켜쥐고 를 후려칠 적에 대항하는 자는 근거지를 잃었으며, 은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 마치 태산에 짓눌린 달걀과도 같아 전전긍긍 나라의 관문을 엿보면서 눈치를 살피는 것이 겁에 질린 노복과 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광활한 지세地勢로 말하자면, 평탄하고 완만하게 펼쳐져 마치 솔개가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허공과 호수가 아스라이 넘실대는 수면水面과도 같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풍성하고 나무를 심으면 잘 자라며, 소와 양을 방목하면 번식하고 닭과 돼지를 기르면 늘어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로 인해 넉넉하고 나라도 이로 인해 부강합니다.
강물로 말하자면, 곤륜산崑崙山에서 발원하여 황하黃河로 들어가는데 물길이 없는 곳으로 나가고 끝없이 먼 곳으로 흘러갑니다.
흉노 지역으로부터 남으로 흘러 서부 경계를 나누고, 태화산太華山에 부딪히면 팔꿈치가 굽혀지듯 방향이 꺾여 동쪽으로 향합니다.
강물은 황토를 무너뜨려 진흙탕을 뿜어내고 죽처럼 들끓으니, 큰 자라와 악어 같은 기괴한 동물들이 콸콸 흐르는 강물에 떠올라 뒤집어지고 넘어지다가 물가에 내던져져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리저리 뒤섞여 맥이 빠져 있습니다.
강물이 거칠게 부딪치는 곳으로 말하자면, 잇닿아 이어져 있는 산은 들쭉날쭉해졌고 넓은 벌판은 무너지고 갈라졌으며, 그 소리는 천둥이 내리치듯 폭풍이 몰아치듯 우르릉 쾅쾅 울려댑니다.
무너져 내린 바위는 물줄기를 따라 구르고 수목樹木은 큰물에 뽑혀 물과 함께 흐르는데 쾅쾅대는 물소리가 수천 리에 이어지니,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전쟁에서 서로 찌르고 베는 듯합니다.
물건을 실은 배와 방향을 잡는 돛대들은 강물의 물고기와 골짜기의 숲처럼 즐비한데, 구름이 흩어지듯 소나기가 지나가듯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내려가는 배들이 떼를 지어 출렁이며 3천 리 길을 단숨에 달립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선생이 말씀하신 바 재물이 풍성하고 지형이 험난한 것은 실로 의 좋은 점입니다.
그러나 나라 사람이 안팎에 산하山河가 있다고 한 말은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일 뿐, 장관壯觀을 영예롭게 여기고 강대함을 과시하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기吳起의 이른바 ‘에 있지 지형地形이 험난한 것에 있지 않다.’는 말은 나라 사람의 기록에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대로大鹵에서 나오는 쇠붙이와 당계棠谿 고장의 기술로 불에 불리고 물에 담금질하여 만들면 장비가 갖추어지니, 끝이 좌우로 갈라진 미륙 창, 긴 자루 창, 양날 창, 갈고랑이, 날아갈 때 소리 나는 화살촉과 일반 화살촉, 자루가 1장 8척인 긴 창, 쇠뇌에 쓰는 화살 등을 만듭니다.
태백太白을 불러내고 욕수蓐收를 부르며 초요招搖를 부르고 치우蚩尤를 청해서는 신속하게 그리고 많은 수량을 여러 신령들의 정기를 모아 만들어냅니다.
넓은 것과 좁은 것, 굽은 것과 곧은 것, 갈라진 것과 단단한 것, 긴 것과 짧은 것들을 모아놓으면 별이 모인 듯 반짝이고 휘두르면 번개가 치는 듯하며 내돌리면 빛이 휘감기는 듯하여, 넓은 밤하늘에 빛이 환하고 쏟아지는 폭우 속에 불칼이 번쩍이고 도깨비불이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들은 또 무더기로 쌓인 설산雪山과 얼음 골짜기와도 흡사하여 이것을 보는 자는 간이 후들후들 떨려 눈에서 차가운 눈물이 납니다.
허공에서 휘두르면 광채와 정기가 어우러지고, 빛줄기가 흔들리며 허공을 관통하니, 하늘이 온통 밝아져서 해가 조그맣게 여겨집니다.
또 〈화살은〉 구름을 헤치고 창공을 뚫어 높이 나는 새를 떨어뜨립니다.
활 장인이 만드는 활과 갑옷 장인이 만드는 갑옷은 아교와 뿔을 수없이 골라내고 무소가죽 일곱 조각을 이어 붙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태산太山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北海를 뛰어넘는 용사勇士들에게 입혀주고 들려주어, 남쪽으로 각국을 감시하고 북쪽으로 오랑캐를 떨게 합니다.
그들의 전투기술과 지휘체계는 천하에 이름났으니, 이들이야말로 정예병精銳兵입니다.
적군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다가 그만 위축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투구를 벗어던지고 맨몸이 되어서는, 앞으로 나와 투항하지도 못하고 물러나 감히 달아나지도 못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대체로 군대를 부리는 일은 덕으로 하면 길하고 폭력으로 하면 흉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또 아름다운 것이 못 됩니다.
선진先軫이 말하기를 ‘군대는 대의大義가 바르면 강해지고 대의가 그르면 약해진다.’ 하였는데, 더구나 한갓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칼날을 으뜸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에는 말이 많이 나는데 지방이 그 산지입니다.
북방이라 찬 기운이 매서워 벼랑이며 계곡이 쩍쩍 갈라진 가운데, 초목은 키가 작고 움츠리며 새와 짐승은 허공을 낮게 날고 굴속에서 몸을 사리고 있지만 말들은 잘 자랍니다.
수많은 말들이 단정하게 무리를 형성하고 함께 우르르 내달릴 적에는 수많은 전차가 굴러가듯 대지가 진동하며, 털빛이 어떤 놈은 붉고 어떤 놈은 누렇고 어떤 놈은 까맣고 어떤 놈은 푸르고 어떤 놈은 희고 어떤 놈은 얼룩색입니다.
어두운 색의 말떼는 그늘에 가린 듯하고 밝은 색의 말떼는 햇빛을 받은 듯해 마치 여러 빛깔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듯 아름답고 선명합니다.
그들은 갑자기 전진하고 갑자기 멈추고 갑자기 엎드리고 갑자기 일어나고 갑자기 내달리고 갑자기 넘어지곤 하는데, 그 기세는 마치 장강長江한수漢水에 질풍이 파도를 일으켜 산을 때리고 골짜기를 뒤흔들며 물이 끓고 구름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떼 지어 물을 마시면 수원水源이 마르고 돌아가며 풀을 뜯으면 들판이 벌거숭이로 변하는가 하면, 냇물에서 목욕하면 물결이 출렁이고 코를 실룩거리면서 발굽으로 물결을 차 흩뿌리면 그 황홀한 모습이 마치 바다의 신이 눈보라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살펴보면, 사방으로 흩어져 미친 듯이 서로 모였다 합쳐졌다 하며 온갖 형상을 연출하는데, 말이 즐거울 때 달리는 모습은 까치가 나래를 펴고 하늘을 나는 듯하고, 성이 나 날뛰는 모습은 사람이 서로 발로 차면서 싸우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두 함께 뛰면서 천 리 길을 경주합니다.
이때 바람과 안개 속에 말갈기를 휘날리며 산을 짓뭉개고 골짜기를 후비면서 달리는데, 귀는 구름 속에서 흔들어대고 배는 초목을 스쳐 광활한 먼 곳까지 갔다가 오래지 않아 이내 돌아옵니다.
또 발굽으로 땅을 차며 발을 구르는데, 강한 골격에다 눈 윗부분에 근육이 있는 명마名馬들로, 목을 교차하며 서로 물다가 또 눈빛을 마주치며 친하게 굴고, 모여서 오줌 누고 다시 애정을 표하다가 또 머리 들고 입을 벌려 잇몸을 드러냅니다.
망아지들은 어미를 따라다니며 맴돌다가 머리 들어 젖을 빨고 머리 숙여 풀을 뜯으며, 개미나 메뚜기처럼 무리를 지어 히히힝 울어대면서 함께 내달리기도 하고 또 떼 지어 서 있기도 합니다.
부릴 만한 놈은 거두어 훈련을 시키기 위해 손을 흔들어 포승을 던지는데, 털의 색깔을 보아 대상을 정하면 백 걸음 안에 굴레를 씌웁니다.
이 말들은 순식荀息에게 끌려가거나 왕량王良에게 부려지거나 범앙范鞅이 뛰어 올라타거나 난침欒鍼에게 들려 올려지거나 하는 대상이 되어, 사냥에 나가기도 하고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짐승을 잡기도 하고 적군을 물리치기도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험난한 지세나 명마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듣지 못했습니까?
그래서 ‘의 북쪽은 말의 산지일 뿐이다.’라고 하고, 또 ‘〈지세가 험난한 곳은〉 한 왕조가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라고 합니다.
그런 말씀은 그만두고 다른 말씀을 해주십시오.”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의 북방 산중에 매우 좋은 목재가 나서 건물을 짓기 위해 큰 목재를 구하는 목수와 공사工師가 천하에서 몰려옵니다.
11월이 되어 찬 기운이 응축되면 잎은 떨어지고 속은 더욱 단단해지는데, 수액이 흐르지 않아 단단하고 좋습니다.
수많은 인부들이 도끼를 들고 산으로 들어와서는 반드시 경사진 바위 절벽과 굽이도는 골짜기로 찾아오는데, 높은 산의 정상을 넘고 소용돌이치는 개울을 거슬러옵니다.
그 나무는 뿌리가 괴석을 휘감고, 흙이 없는 곳에서 자라나 천 길 높이에 백 아름이나 되는데, 거무스름한 색깔은 주변의 바위와 같습니다.
늘어서서 벌목하는 자들이 은하수 하늘 아래 고개를 높이 쳐들고 무지개를 가르듯 도끼질하는데, 그 소리는 산봉우리를 진동하고 찍혀 흩어진 나무 조각은 골짜기를 메웁니다.
쩡쩡 떵떵 하는 도끼 소리와 쿵쿵 쾅쾅 하는 나무 구르는 소리가 마치 전차들이 얼음 위를 내달리는 듯합니다.
그 메아리는 쿵쿵 쾅쾅, 퉁퉁 탕탕 하는 소리가 마치 말떼가 달리고 산이 무너지는 것 같아 용들이 어우러져 싸울 적에 비바람과 천둥이 치는 듯합니다.
베어져 아래로 구르는 목재들은 우르릉 꽝꽝 숲 나무를 짓뭉개고 흙더미를 무너뜨려 뽀얀 먼지가 일어나 노을이 퍼지고 번개가 갈라지는 듯하니, 또 공공共工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하늘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댓닭ㆍ황새ㆍ무수리ㆍ왜가리 같은 새들이 울부짖으며 날아다니고, 스라소니ㆍ들개ㆍ호랑이ㆍ무소 같은 들짐승이 겁에 질려 부딪치며 내달리는데,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고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런 다음, 길이에 맞춰 베어서 한곳에 모아 끝가지를 잘라내고 번잡한 가지를 제거하여 급류에 실어 황하黃河로 띄워 보냅니다.
목재는 암초에 부딪쳐 이리저리 뒹굴며 솟구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니, 마치 나라 때 신통한 이가 바위를 몰아 바다에 다리를 놓는 것과도 같습니다.
얕고 굽이진 곳에 이르면 물고기 비늘처럼 모이고, 소용돌이치는 곳에 이르면 번개 치듯 흩어지는데, 앞의 것이 급히 넘어가는가 싶으면 뒤의 것이 뒤쫓아 막아서며, 마침내 용문龍門의 폭포 아래로 떨어집니다.
서로 걸리고 겹쳐지는가 하면, 머리가 아래로 끌려 꼬리가 위로 들리고 깊은 물속에 잠기기도 하면서 몇백 리나 그렇게 흐르는지 모릅니다.
황하는 파도가 휘몰아쳐 산을 삼키고 하늘에 치솟다가는 또 고요하고 잔잔해져 저 멀리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윽고 목재들이 또 머리 들고 수면 위로 솟는데, 곧바로 높이 솟은 모습은 마치 수목이 솟고 봉우리가 우뚝하여 구름을 뚫고 해를 가리는 것 같다가 흩어져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다시 또 줄을 지어 한 덩어리가 되어서는 목적지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솜씨 좋은 장인匠人의 지휘에 의해 총대叢臺아방阿房장락長樂미앙未央건장建章소양昭陽 등 웅장하고 기이한 궁전들이 모두 이들 목재로 지어집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말했다.
“나는 듣건대 군자는 덕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땅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땅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백성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백성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궁전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궁전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목재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선생께서 늘어놓으신 것은 이 네 가지 걱정 중에 수준이 가장 낮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기궁虒祁宮이 완성되자 제후들이 배반하였습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황하黃河대어大魚들이 파도를 거슬러 올라와 물가에 가득 모여들면, 사람들은 두 마리 말이 끄는 가벼운 수레를 타고 천 리를 번개처럼 달려와 임금의 명에 따라 고기 잡는 도구들을 늘어놓게 한 뒤에 고기 잡는 광경을 구경합니다.
큰 그물은 물길을 막고 긴 그물은 강물을 가로질러 쳐지고, 각종의 통발과 크고 작은 어구漁具들은 그 사이에 빈틈없이 설치됩니다.
커다란 배가 뱃머리를 치세우고 의기양양하게 주변을 도는 가운데 어부들이 번갈아 고함을 질러대 그 소리가 상안산商顔山을 무너뜨릴 듯합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북소리를 둥둥 울리고 고함치면서 용의 목을 조르고 고래 지느러미를 잡아채며, 흰 자라를 죽이고 사나운 이무기를 내쫓는 한편, 풍이馮夷를 소리쳐 물리치면서 강가에 줄지어 섭니다.
그리고는 흩어진 고기떼를 찾아 한곳으로 몰아 어량魚梁과 그물로 조이고 끌어올리면 그물에 가득한 고기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고 퍼덕이다가 역산歷山 자락에 올려지는데, 그 광경은 마치 냇물이 쏠리는 듯, 산이 무너지는 듯, 구름이 덮이는 듯합니다.
이들 고기 중에 혹시 수면을 차고 솟구치는 신통력을 지니고서 기이한 무늬를 과시하고 괴이한 비늘을 드러내면서, 요동치는 물결을 뛰어 날아 상류로 내달려 용문龍門에 올라가 천둥번개를 만들어내는 놈이 있다 하더라도, 낚싯줄과 주살을 날려 절도 있게 낚아챕니다.
그러면 모두 뿔이 빠지고 날개가 갈라져 아가미를 벌리고 엎어져 퍼덕거립니다.
이놈을 잡아 다시 그 살을 토막 내면 더 이상 용이 될 수 없고, 이것을 다섯 가지 양념으로 버무려 무늬를 조각한 그릇에 올려 늘어놓으면 풍운風雲을 일으키던 기세는 아스라이 사라지고 맙니다.
모래무지ㆍ동자개ㆍ다랑어ㆍ잉어ㆍ메기ㆍ가물치ㆍ방어ㆍ연어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놈들은 사실 일일이 다 잡을 것도 없습니다.
그놈들이 그물에서 빠져나가 깊은 물에서 자라면, 황하 주변 세 고장 사람들이 고기가 넘쳐나 배불리 먹으며, 개펄에 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맛좋은 회나 구이의 냄새를 맡는다 해도 코를 가리고 이마를 찌푸리며 썩은 흙처럼 천시하고 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한때의 볼거리는 후세에 내세울 것이 못 되고 입으로 자랑하는 맛으로는 백성을 이롭게 하지 못합니다.
우선 그 이상의 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의씨猗氏 지방 소금은 의 보배 중에 큰 보배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 곡식과 다름없는데, 그런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은 신이 조화를 부리는 것 같고 사람의 공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 가보면 봇도랑과 밭두둑이 이리저리 얽혀 있어 마치 농지와도 같고 채소밭과도 같습니다.
평야처럼 툭 트이고 고기비늘처럼 펼쳐졌는데, 범위가 워낙 넓어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별안간 발원지를 터 물길을 인도하여 이리저리 흘려보내면 마치 나뭇가지인 양 팔다리인 양 구불구불 퍼져나가고 핏줄에 피가 돌 듯 축축하게 젖어들어, 높고 낮은 곳을 채우고 덮어버려 밭이랑과 언덕배기에 넘실거립니다.
소금물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흘러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고 큰 제방에까지 흘러들어, 바다처럼 호수처럼 넓은 것이 잔잔한 못이 되고 아스라이 뻗은 시내가 됩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광활한 수면만 시야에 들어올 뿐, 끝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신비로운 물은 모르는 사이에 걸러져 감미로운 소금 맛이 짙어지는데, 신령한 기운을 잉태한 풍요로운 대지의 어머니는 그 보물을 아끼지 않습니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가운데 불똥이 튀듯이 신비하게도 순식간에 사방 백 리에 흰 눈이 쌓입니다.
반짝반짝 덮인 소금은 굳어지면서 깨지는데, 마치 백규白圭백벽白璧과도 같은 것들이 황홀하게 빛이 납니다.
별안간 별똥별이 땅에 떨어져 깜박거리는 것 같고, 얼음이 갈라지고 우박이 부서져 높이 쌓인 것 같기도 합니다.
굵은 것은 옥도장 같고 가는 것은 진주가루 같으며, 솟은 곳은 모래섬 같고 움푹 파인 곳은 항아리 같습니다.
햇빛이 내리비치면 반딧불이 반짝이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방 다섯 자 넓이의 소금이면 수레에 가득 차고, 사방 한 자 넓이의 소금이면 두서너 말이나 됩니다.
이것들을 거두어 모아서 쌓아놓으면 하얗게 높은 현포懸圃 같고, 흰 눈으로 뒤덮인 광산狂山이나 태백산太白山과 흡사합니다.
그 변화가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여 끝내 그 이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나귀ㆍ노새ㆍ소ㆍ말 등으로 운반하여 서쪽으로는 지방으로 보내지고 남쪽으로는 지역으로 보내지며, 북쪽으로는 지역까지 보내지고 동쪽으로는 지역까지 보내집니다.
집집마다 소금을 이용하는 이익을 얻고 사람마다 육기六氣가 만들어낸 은덕을 입어 군사들이 먹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가 하면, 나라에 부세賦稅로 납부되고 공물貢物로 진상됩니다.
온 천하에 주는 선물로 그 공이 바다와 동등하니, 세상에 큰 도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위강魏絳이 말하기를 ‘보장寶藏(보물 창고)과 가까우면 공실公室은 빈궁해진다.’ 하였는데, 어찌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것은 백성에게 이익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 스스로 얻어내는 이익은 못 됩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했다.
“백성 스스로 얻어내는 이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오자吳子가 말했다.
“일상생활에 안주하면서도 필요한 것을 얻고, 교화敎化에 복종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며, 온갖 재화가 유통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노소와 친척이 상부상조하면서도 그것이 누구 덕인지 모르는 것은 병역과 형벌로 고통받지 않고, 조세와 노역에 고통받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민리民利로서 백성 스스로 얻어내는 이익인 것입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했다.
문공文公패업霸業을 이룰 당시, 을 제어하고 를 격파하며 을 통제하는 한편, 의 땅을 분할하고 이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반란을 평정하여 왕실을 안정시킴으로 인해 책명冊命과 하사품을 받은 뒤에 천자를 보좌하여 제후들의 잘못을 규찰하고 바로잡음으로써 후백侯伯이 되었으며, 천토踐土에서 제후들과 회합하여 옥백玉帛의 예물을 교환하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천자는 그에 의존하여 제후들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하였으며, 제후들은 그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통치하였고, 백성들은 그에 의존하여 처자를 거느리고 일상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반역자는 무력으로 정벌하고 따르는 자는 사랑으로 쓰다듬었으며, 도덕道德정의正義를 확산시키고 신의信義겸양謙讓의 기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을 알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혀주었으며, 금해야 할 것을 알리고 좋아하고 숭상해야 할 것을 통일시켰습니다.
천자에게 조회할 때에는 공후公侯대부大夫들이 털 색깔이 아름다운 말을 몰고 가리개가 있는 수레를 타고 달려오는데, 오가는 행렬이 끊임없이 나라 도성으로 이어집니다.
〈제후를 맞이하는 곳에는〉 다섯 길에 이르는 대청과 아홉 개의 탁자가 놓인 방이 있는데, 지위의 고하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고 좌우의 측근들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꿩이며 기러기 등 새와 짐승을 잡아 대접하고 각종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성대하게 차려진 가운데 풍악風樂이 울려 퍼지고 대청에는 공물이 쌓였습니다.
빈객들은 대청을 오르내리며 시를 읊고, 술잔을 모두 들고서 서로를 위로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데, 예법禮法을 준수하여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육경六卿이 군대를 출동하여 크고 작은 전차를 몰아 종과 북, 징을 울려대면서 천자에게 공손하지 못한 자들을 토벌하였습니다.
전차는 천자와 대등할 정도로 만 대나 되었고 군사는 천하 군사의 절반이나 되었으므로, 공격의 북을 울리면 천하가 벌벌 떨고 깃발을 매달면 모두가 두려워하였습니다.
명령이 발동되면 사기가 샘물처럼 솟고 호응이 수레바퀴가 구르듯 순조로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때에는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들의 군주를 섬길 수 있었으니, 이 때문에 그들이 지금까지 정의를 좋아하고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합니다.
이것은 백성의 힘으로 스스로 공고하게 하며 인의仁義를 표방하여 천하를 다스린 것으로서 그 유풍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다면 백성 스스로 얻어내는 이익이라고 할 만하겠습니까?”
오자吳子가 말했다.
“그에 가깝지만 여전히 아닙니다.
패자霸者의 마음가짐은, 큰 이익을 끌어다가 자신이 누리고 남의 노력을 끌어모아 자신을 공고하게 하면서 백성들은 뒷전에 두는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이 자신도 모르게 교화되고 명령이 없이도 통일되는 것이 아니니, 내가 앞서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그에 가깝지만 여전히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선생柳先生이 말하였다.
삼하三河는 고대의 제왕들이 교대로 수도를 세운 곳인데, 평양平陽임금이 다스리신 곳입니다.
띠풀로 지붕을 이고 다듬지 않은 서까래를 올린 집에서 투박한 질그릇을 사용하는 법도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근검하고 절약합니다.
온화溫和하고 공경恭敬하며 겸양謙讓하는 덕이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선량하고 겸양합니다.
많은 사람이 의견을 모으고 함께 건의하였으며 위에서도 아랫사람에게 의견을 구하는 도리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깊이 있게 사고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자 온갖 짐승이 몰려와 춤추고 봉황도 날아와 춤을 추었으며 백성이 달라져 화목해지는 아름다운 교화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화목하며 화를 내지 않습니다.
바른말을 들으면 절을 하고 예기치 않은 환란을 경계하였다는 가르침이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환란을 두려워합니다.
하는 일이 없이 다스리고 말하지 않아도 백성이 믿어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옷자락을 드리우고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지는 교화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곳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한적함을 따르고 여유로움을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요임금의 유풍遺風입니다.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자吳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올리며 말했다.
“훌륭합니다. 좋습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대체로 검소하면 재물이 충분해도 낭비가 없으며, 양보하면 분수를 따라 선량한 마음을 유지하여 서로 다투지 않으며, 사고하기를 좋아하면 먼 미래를 예견하고 일 처리가 치밀합니다.
화목함은 의 본질이며, 잘못을 경계함은 의 실체입니다.
한적함을 따르고 여유로움을 즐거워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평화로운 그 도를 오래도록 유지합니다.
최상입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바야흐로 태평성대를 이루시어 늘 요임금을 표준으로 삼으십니다.
선생의 말씀은 오묘한 도리입니다.
만약 주상께 바친다면 쉽게 채택될 것으로 압니다.
나라의 유풍으로 천하를 통일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오자吳子가 정중하게 재배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역주
역주1 : 吳子의 질문에 柳先生이 대답하는 대화형식의 작품이다. 吳子는 吳武陵을 가리키고, 柳先生은 작자 자신이다. 吳武陵(?~834)은 元和 2년(807)에 進士에 급제하고, 3년(808)에 永州로 유배되었다. 이로 볼 때 이 작품은 元和 3년부터 4년 사이에 후배인 吳武陵을 격려하기 위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체는 漢나라 枚乘의 작품인 〈七發〉에 의해 생긴 七體라는 형식으로, 일곱 가지의 유명한 사물을 서술하는 글이다. 晉은 지금의 山西省 일대로, 작자의 조상의 고향인 河東이 그에 속한다. 晉 지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吳武陵의 청에 따라 지형ㆍ광물ㆍ명마ㆍ목재ㆍ어류ㆍ소금 등 그 지역의 특색 있는 풍물을 차례로 소개하고, 맨 나중에 상고시대 그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 堯ㆍ舜에 관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였으며, 각각의 항목에 대해 吳武陵의 평론을 곁들이는 형식을 취하였다.
山下가 험난한 요새임을 말할 때는 ‘德에 있지 地形이 험난한 것에 있지 않다.’ 하고, 무기와 갑옷의 견실함을 말할 때는 ‘吉凶은 덕에 의해 생긴다.’ 하고, 名馬를 말할 때는 ‘말은 믿을 수 없다.’ 하고, 좋은 재목을 말할 때는 ‘군주가 덕이 없어 인재가 출현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궁실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말라.’ 하고, 강의 물고기와 소금, 보화를 말할 때는 ‘마땅히 백성이 스스로 이익을 창출해내는 것을 으뜸으로 여겨야 한다.’ 하고, 霸業을 찬양할 때는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일이 없이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2 太行(항) : 山西高原과 河北平原 사이에 걸쳐 뻗어 있는 太行山이다. 동북방 拒馬河谷에서 일어나 서남방을 향해 河北‧山西를 관통한 뒤에 山西‧河南 두 省 변경의 黃河 연안까지 이른다.
역주3 首陽 : 곧 首陽山으로, 지금의 山西 永濟縣 남쪽에 있으며 雷首山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伯夷ㆍ叔齊가 이 산에서 굶어죽었다고 한다.
역주4 大陸 : 大陸澤이라는 호수를 가리킨다. 河北 任縣의 동북방에 있으며, 鉅鹿‧隆平 두 현과 접해 있다. 옛날에는 廣阿‧鉅鹿‧泰陸‧大麓‧沃川이라고도 하였으며 속칭 張家泊이라 한다. 지금은 이미 메워져 육지가 되었다 한다.
역주5 百舍 : 1舍가 30리이므로 100舍는 3,000리이다.
역주6 晉人之言表裏山河者 : 춘추 때 晉나라와 楚나라가 城濮에서 대적하기 전에 晉나라 大夫 子犯이 晉 文公에게 “싸웁시다. 싸워서 이긴다면 반드시 제후들의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혹시 이기지 못하더라도 안팎에 산하가 있으니 분명히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건의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안팎에 산하가 있다는 것은 晉나라가 밖으로는 黃河, 안으로는 太行山 등 적이 침범하기 어려운 험난한 산하를 끼고 있다는 뜻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
역주7 吳起所謂在德不在險 : 吳起는 전국 때 衛나라 사람으로, 전략가이다. 魏 文侯에게 인정을 받아 西河太守를 지냈다. 魏 文侯가 吳起와 함께 배를 타고 西河를 내려오면서 “아름답도다. 산하의 험난하고 견고함이여. 이것이 魏나라 보배로다.” 하자, 吳起가 “〈나라의 보배는〉 덕에 있지 지형이 험난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 三苗氏는 왼쪽에는 洞庭湖, 오른쪽에는 彭蠡湖가 있었으나 道德과 信義를 닦지 않아 禹가 멸망시켰고……”라고 말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덕을 닦아야지 험난한 지형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史記 孫子吳起列傳》
역주8 大鹵 : 지금의 甘肅 固原 이북 지역으로, 太原‧大夏‧夏墟라고도 한다.
역주9 棠谿 : 지금의 河南 舞陽縣 서남쪽에 있으며 堂溪로 표기하기도 한다. 춘추전국 때 질 좋은 무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역주10 太白 : 곧 金星이다. 전설에 의하면 太白星이 兵象을 맡고 있다 하여 군대와 전쟁을 비유한다.
역주11 蓐收 : 서방의 神 이름이다. 사계절 중 가을을 맡은 신으로 金正이라 한다.
역주12 招搖 : 北斗星 자루 끝의 별이름이다. 분노를 상징한다고 한다.
역주13 蚩尤 : 곧 蚩尤旗로, 혜성 이름이다. 이 별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역주14 跟超掖夾之倫 : 《孟子》 〈梁惠王 上〉에 “太山을 끼고 北海를 뛰어넘는 유가 아니다.[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라고 한 말을 변형한 것으로, 힘과 기백이 뛰어난 勇士를 가리킨다.
역주15 先軫曰……曲爲老 : 先軫은 춘추 때 晉나라 사람으로, 原軫이라고도 한다. 젊을 적에 晉 文公을 따라 망명하여 趙衰ㆍ狐偃 등과 함께 ‘五賢士’로 불렸다. 城濮에서 楚나라 군대와 싸울 때 三軍을 지휘하여 크게 승리함으로써 晉 文公이 霸者가 되는 데에 기여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는 子犯, 곧 狐偃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주16 屈焉是産 : 屈은 춘추 때 晉나라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山西 吉縣 북쪽에 있다. 좋은 말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春秋左氏傳》 僖公 2년에 “晉나라 荀息이 屈에서 나는 말과 垂棘에서 나는 옥으로 虞나라에 길을 빌려 虢을 정벌하자고 했다.”라고 하였다.
역주17 蘭筋 : 말 눈의 윗부분에 뭉친 힘줄의 이름이다. 이런 말은 힘이 좋아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하여 駿馬의 별칭으로 쓰인다.
역주18 牽以荀息 : 荀息은 晉나라 대부로, 荀 고을을 食邑으로 받았고 자는 叔이다. 晉 獻公 19년(B.C. 658)에 그의 계책에 따라 虞나라에 길을 빌려 虢을 정벌하고 군대가 돌아오던 길에 虞나라까지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牽은 荀息의 계책에 의해 屈에서 나는 준마가 虞나라에 선물용으로 선정되어 끌려갔다는 뜻이다.
역주19 御以王良 : 王良은 춘추 때 晉나라 사람으로, 말 모는 솜씨가 뛰어나 수레에 올라타 말을 몰면 말이 지치지 않았다고 한다. 《論衡 率性》 일설에는 郵無恤이라 한다. 魯 哀公 2년(B.C. 493)에 晉나라와 鄭나라가 鐵에서 전투를 벌일 때 郵無恤이 趙鞅의 전차를 몰았는데, 전투가 치열한 가운데 곧 끊어질 것 같은 고삐 두 줄로 좌우 바깥쪽의 두 말을 무난하게 제어하여 승리할 수 있게 하였다.
역주20 超以范鞅 : 范鞅은 춘추 때 晉나라 대부이다. 晉나라 역사기록에 의하면, 周 靈王 20년(B.C. 552)에 晉나라 대부 欒盈이 반역을 모의했다는 누명을 쓰고 외국으로 도망갔다가, 周 靈王 22년 4월에 晉나라 曲沃으로 잠입하여 曲沃 대부 胥午의 지지를 받아내고 그 지역의 군사를 동원하여 도성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范鞅이 내부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欒盈과 호응하려던 魏獻子를 회유하여 마음을 돌리게 한 다음, 魏獻子가 탄 전차에 뛰어올라[超乘]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왼손으로는 흔들리는 전차에 몸을 고정시키는 띠를 잡고서 魏獻子와 도성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작자가, 춘추 때 晉나라 전차를 그 지역에서 난 준마들이 끌고 달렸다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 위의 기록 중에서 ‘范鞅이 전차에 뛰어올라[超乘]’라는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3년》
역주21 軒以欒鍼 : 軒은 들어올린다는 뜻이고, 欒鍼은 晉나라 대부이다. 일찍이 晉 厲公이 탄 전차의 車右, 곧 전차의 오른쪽에 탄 무사가 되어 진흙탕에 전차바퀴가 빠지자 晉 厲公의 전차를 들어 올려 진흙길을 벗어나게 하였다. 이 전차를 끌었던 말 또한 晉나라에서 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成公 16년》
역주22 恃險與馬者……是不一姓 : 周 景王 7년(B.C. 538)에 세력이 막강한 楚 靈王이 蔡‧陳‧鄭‧許‧徐‧滕‧頓‧胡‧沈‧小邾 등 제후들을 지금의 河南 南陽 북쪽에 있는 申으로 불러 회합할 적에 晉 平公도 참여할 것을 통보하였다. 대부 司馬侯가 晉 平公에게 그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하자, 晉 平公이 “우리 晉나라는 외세가 두렵지 않은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누가 우리에게 대항하겠는가. 지세가 험난하고 마필이 많으며 齊ㆍ楚는 어려운 사정이 많다. 이 세 가지가 있으니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라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그러자 司馬侯가 말하기를 “험난한 지세와 많은 마필, 그리고 이웃나라의 재난을 믿는다면 이는 세 가지 두려운 일입니다. 四嶽ㆍ三塗ㆍ陽城ㆍ大室ㆍ荊山ㆍ中南 등은 九州의 험난한 곳이지만 한 성씨가 계속 보유하지 못했고, 冀 북방은 말이 많이 나는 지방이지만 이곳에 강성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4년》
역주23 梓匠工師 : 梓匠은 재목을 다루는 목수이고, 工師는 건축을 관장하는 관리이다.
역주24 又似共工觸不周而天柱折 : 共工은 炎帝의 후예이고, 不周山은 崑崙山 서북방에 있다는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黃帝가 炎帝와 싸워 이긴 뒤에 黃帝의 후예 顓頊이 천하를 통치하자, 共工이 顓頊과 황제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노하여 不周山을 들이받아 무너뜨려 하늘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의 밧줄이 끊어짐으로써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淮南子 天文訓》
역주25 類秦神驅石以梁大海 : 秦始皇이 돌다리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가 해가 뜨는 것을 보려고 하자, 어떤 神人이 나타나 바위를 몰아 바다로 내려보내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三齊略記》
역주26 龍門 : 곧 禹門口로, 山西 河津市 서북쪽과 陝西 韓城市 동북쪽에 있다. 黃河가 이곳에 이르면 두 기슭에 높은 절벽이 마주하고 있어 그 모양이 문처럼 보이고, 이곳의 폭포를 거슬러 뛰어올라온 잉어는 용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27 叢臺阿房長樂未央建章昭陽 : 叢臺는 전국 때 趙 武靈王이 세운 것으로, 邯鄲城 안에 있었으며 한 채가 아니고 여러 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阿房은 秦始皇이 세운 궁전으로, 上林苑에 있었다. 長樂ㆍ未央ㆍ建章ㆍ昭陽은 모두 漢나라 때의 궁전 이름이며 漢나라 長安城 안에 있었다.
역주28 且虒祁旣成 諸侯叛之 : 虒祁는 춘추 때 晉 平公이 세운 궁전 이름으로, 지금의 山西省 曲沃縣에 있었다. 晉 平公이 이 궁전을 세웠을 때 와서 축하하고 돌아간 제후들이 모두 건물을 너무 호화롭게 지었다 하여 晉나라를 멀리하였다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13년》
역주29 遂以君命 矢而縱觀焉 : 춘추 때 魯 隱公이 棠邑에 가서 어부들에게 어구들을 진열해놓게 하고 고기 잡는 광경을 구경한 일이 있으므로, 그 고사를 인용하여 晉나라 군주가 魯 隱公처럼 고기 잡는 광경을 구경했다고 가정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5년》
역주30 商顔 : 지금의 陝西 大荔縣 북쪽에 있는 산으로, 商原 또는 許原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주31 馮夷 : 전설 속에 나오는 黃河의 神 河伯으로, 水神을 가리킨다.
역주32 歷山 : 河東縣 雷首山을 가리킨다.
역주33 如川之歸……如雲之披 : 그물로 잡아 올린 많은 물고기가 산기슭에 널려 있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34 猗氏 : 지금의 山西 臨猗 남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이곳에 鹽池가 있다. 춘추 때 魯나라 猗頓이 이곳에 있으면서 소금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 한다.
역주35 : 길이의 단위이다. 1보는 5척으로, 약 1미터이다.
역주36 懸圃 : 전설에 昆侖山 정상에 있다는 仙境으로, 金臺‧玉樓가 있다 한다. 玄圃라고도 한다.
역주37 狂山太白 : 狂山은 전설에 나오는 산으로, 초목이 없고 여름에도 눈으로 덮여 있다고 한다. 太白은 陝西 眉縣 동남쪽에 있는 산이다. 秦嶺 主峯 가운데 하나로, 關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 위에 한 해 내내 눈이 쌓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38 西出秦隴……東逾周宋 : 秦은 지금의 陝西, 隴은 지금의 甘肅, 樊은 지금의 湖北 襄樊, 鄧은 지금의 河南 鄧縣, 燕은 지금의 北京市, 代는 지금의 山西 代縣 일대이고, 周는 곧 周南으로 지금의 河南 洛陽, 宋은 지금의 河南 商丘 일대이다.
역주39 魏絳之言曰 近寶則公室乃貧 : 魏絳은 韓厥의 잘못으로 보인다. 韓厥은 곧 韓獻子로, 춘추 때 晉나라 卿이다. 晉 景公 15년(B.C. 585)에 晉나라 도성을 絳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을 때, 여러 대부들이 郇瑕氏 지역이 토지가 비옥하고 鹽池와 가까워 국가에도 이롭고 군주도 즐거울 것이라고 하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韓獻子가 말하기를 “山林ㆍ川澤ㆍ鹽池는 다 국가의 寶藏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부유하면 백성들이 교만하고 나태해집니다. 寶藏과 가까우면 공실이 빈궁해지니 그곳은 좋아할 곳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新田으로 옮기자고 하여 그대로 따랐다. 《春秋左氏傳 成公 6년》
역주40 援)[挾] : 저본에는 ‘援’으로 되어 있는데, 何焯의 《義門讀書記》에 ‘挾’자로 의심된다 하였다. 그 의견이 타당한 것으로 보여 이에 근거하여 ‘挾’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1 曹衛解裂 : 魯 僖公 28년(B.C. 632)에 晉 文公이 楚나라에 시달리는 宋나라의 힘을 보강하기 위해 楚나라의 우호국인 曹ㆍ衛의 토지를 분할하여 宋나라에 준 일을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
역주42 魯鄭震恐 : 魯 僖公 30년(B.C, 630)에 鄭나라가 晉나라에는 무례하고 楚나라와 친근하다는 이유로, 晉 文公과 秦 穆公의 연합군이 鄭나라를 공격하여 도성을 포위함으로써 鄭나라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魯나라가 晉나라를 두려워한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春秋左氏傳 僖公 30년》
역주43 定周於溫 : 魯 僖公 24년(B.C. 636)에 周 襄王이 昭叔의 난을 피해 鄭나라로 가 머물러 있었는데, 그 이듬해에 晉 文公이 溫에서 昭叔을 사로잡아 隰城에서 죽이고 襄王을 왕성으로 맞아들였다. 溫은 그 옛 성터가 지금의 河南 溫縣의 경내에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 25년》
역주44 奉冊受錫……以爲侯伯 : 冊은 서면으로 어떤 지위를 임명하는 것으로, 策命을 가리키고 侯伯은 제후의 우두머리이다. 魯 僖公 28년에 周 靈王이 晉 文公의 공로를 치하하여 그를 侯伯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금으로 장식한 큰 수레인 大輅와 전차 및 그것들을 탈 때 입을 복장을 하사하고, 제후를 정벌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붉은 칠을 한 彤弓과 彤矢 등을 하사하면서 周 왕실을 보좌하여 제후들의 잘못을 규찰하라고 당부하였다.
역주45 齊盟踐土 : 魯 僖公 28년 5월에 魯侯ㆍ晉侯ㆍ齊侯ㆍ宋公ㆍ蔡公ㆍ鄭伯ㆍ衛子ㆍ莒子 등이 踐土에서 회합하여 맹약을 맺은 일을 가리킨다. 踐土는 鄭나라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 滎陽縣에 있었다.
역주46 示必(明)[行] (行)[明]所嚮 : 저본에는 ‘示必明 行所嚮’으로 되어 있는데,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47 春秋之事 : 《春秋》의 일은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고 빙문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48 五筵 : 筵은 길이의 단위로, 1筵은 1丈이다.
역주49 禽牢 : 禽은 꿩과 기러기 등 새이고, 牢는 소, 양, 돼지 등 짐승으로, 빈객을 접대하는 연회에서 제공하는 육류를 가리킨다.
역주50 文質 : 곱고 거칠다는 뜻으로, 육류와 채소 등 각종 음식물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역주51 庭實 : 제후끼리 서로 방문하거나 혹은 周나라 천자를 알현할 적에 대청마루에 진열하는 진상품을 가리킨다.
역주52 六卿 : 천자의 군대인 六軍의 主將을 가리킨다.
역주53 三河 : 河內ㆍ河南ㆍ河東 세 지역을 말한다.
역주54 平陽 : 지금의 山西 臨汾 서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堯임금이 도읍을 세웠다는 곳이다.
역주55 有茅茨采椽土型之度 : 茅茨는 초가집이고, 采椽은 棌椽과 같은 것으로 다듬지 않은 서까래이며, 土型은 국물을 담는 질그릇이다. 《韓非子》 〈五蠹〉에 “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초가집의 처마를 가지런히 자르지 않았고 서까래나무를 다듬지 않았다.[堯之王天下也 茅茨不翦 采椽不斲]” 하였다.
역주56 有溫恭克讓之德 : 《書經》 〈堯典〉에 “진실로 사람들을 공경하고 능히 현자에게 겸양하였다.[允恭克讓]”라고 堯임금의 덕을 서술한 문구를 인용한 것인데, 작자가 임의로 ‘允’을 ‘溫’으로 바꾸었다.
역주57 有師錫僉曰疇咨之道 : 師는 ‘많은 사람’, 錫은 ‘제시한다’는 뜻이다. 《書經》 〈堯典〉에 “많은 사람이 帝堯에게 의견을 제시하기를 ‘아래 계층에 곤궁한 백성이 있는데 그 이름은 虞舜이라 합니다.’ 하였다.[師錫帝曰 有鰥在下 曰虞舜]”라고 하였다. 이는 堯임금이 만년에 천자자리를 물려줄 적임자를 정할 때 독단으로 처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였다는 내용이다.
僉曰은 여러 사람이 말한다는 뜻이다. 《書經》 〈舜典〉에 “여러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伯禹가 司空이 될 만합니다.’ 하였다.[僉曰 伯禹作司空]”라고 하였다. 이는 堯임금이 죽은 뒤에 舜임금이 천자가 되어 국정을 총괄할 재상을 물색할 때의 일이다.
疇咨는 《書經》 〈堯典〉에 “帝堯께서 말씀하기를 ‘누가 天時에 순응할 자를 알아내어 등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였다.[帝曰 疇咨若時 登庸]”라고 하였다. 이 또한 堯임금이 요직을 등용할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증거이다.
역주58 有百獸率舞鳳凰來儀於變時雍之美 : 《書經》 〈益稷〉에 “夔가 말하기를 ‘내가 石磬을 크게 혹은 작게 치자, 온갖 짐승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夔曰 予擊石拊石 百獸率舞]”라고 한 것과, “韶樂(舜임금의 음악)을 아홉 곡 연주하자,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고 한 것과, 《書經》 〈堯典〉에 “각 제후국으로 하여금 서로 화합하게 하시자, 백성들이 아, 변화하여 이에 화목해졌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역주59 有昌言儆戒之訓 : 昌言은 좋은 말, 바른 말이란 뜻이다. 《書經》 〈大禹謨〉에 “禹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禹拜昌言]”라고 한 것과, “걱정이 없을 때 경계하소서.[儆戒無虞]”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역주60 有無爲不言垂衣裳之化 : 無爲는 無爲而治의 준말로, 《論語》 〈衛靈公〉에 “하는 일이 없이 다스린 자는 舜임금일 것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하였다.
不言은 不言而信의 준말로, 《中庸》 제33장에 “君子는 움직이지 않아도 백성이 존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백성이 믿는다.[君子不動而敬 不言而信]” 하였다.
垂衣裳은 《周易》 〈繫辭 下〉에 “黃帝와 堯ㆍ舜은 옷자락을 드리우고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으니, 이는 乾坤에서 그 이치를 취한 것이다.[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蓋取諸乾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성군은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앉혀놓기 때문에 바쁘게 서두르거나 고심하지 않아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는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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