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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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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書旨似倨하고 而語亦多光燄이라
二十五日 宗元白하노라
兩月來 三辱生書하고 書皆逾千言하니 意者相望僕以不對答引譽者然이라
僕誠過也 而生與吾文又十卷이니 噫亦多矣
文多而書頻 吾不對答而引譽 宜可自反이로되
而來徵不肯相見하니
亟拜亟問하면 其得終無辭乎
凡生十卷之文 吾已略觀之矣 吾性騃滯하여 多所未甚諭하니 安敢懸斷是且非耶
書抵吾必曰周孔이라하니 安可當也리오
生以直躬見抵 宜無所諛道어늘 而不幸乃曰周孔이라하니 吾豈得無駭怪리오
且疑生悖亂浮誕하여 無所取幅尺일새 以故愈不對答이로라
來柳州하여 卽周孔之하니 今而去我하여 하라
之二邦이면 又得二周孔이요 去之京師하면 京師顯人爲文詞立聲名以千數 又宜得周孔千百하리라
何吾生胸中擾擾焉多周孔哉
吾雖少爲文이나 不能自雕斲이요 引筆行墨하여 快意累累라가 意盡便止하니 亦何所師法이리오
立言狀物 未嘗求過人하니 亦不能明辨生之才致 但見生用助字하니 不當律令일새 唯以此奉答하리라
所謂乎歟耶哉夫者 疑辭也 矣耳焉也者 決辭也어늘 今生則一之
宜考前聞人所使用하여 與吾言類且異 愼思之則一益也리라
庚桑子言 吾取焉하니 道連而謁於潮인들 其卒可化乎
然世之求知音者 一遇其人이면 或爲十數文하여 卽務往京師할새 急日月하고 犯風雨하여 走謁門戶하여 以冀苟得이라
今生年非甚少어늘 而自荊來柳하고 自柳將道連而謁於潮하니 途遠而深矣
則其志果有異乎인저
又狀貌嶷然類丈夫하여 視端形直하고 心無岐徑하니 其質氣誠可也
獨要謹充之爾
謹充之 則非吾獨能이니 生勿怨하고 亟之以取法하라
時思吾言 非固拒生者하라
宗元白하노라


08. 두온부杜溫夫에게 답한 편지
편지의 취지가 거만한 것 같고, 말씨 또한 기세가 당당하다.
25일에 종원宗元은 고하네.
지난 두 달 동안 그대의 편지를 세 번이나 받았고 편지마다 모두 분량이 천 자를 넘었는데, 마치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망하는 것 같았네.
나에게 사실 허물이 있긴 하지만, 그대가 또 나에게 그대가 지은 문장 10권을 보내주었으니 아, 정말 많았네.
문장도 많이 보내고 편지도 자주 썼는데,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인정을 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마땅히 스스로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었네.
그런데도 편지를 보내 답장만 요구하고 나를 찾아와 만나보려 하지 않았네.
자주 찾아오고 자주 안부를 물었다면 어찌 내가 끝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대가 쓴 글 10권은 내가 이미 대략 보았으나 내 자질이 우둔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으니, 어찌 감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겠는가.
편지를 보낼 때마다 반드시 나를 주공周公공자孔子에 비유하였는데, 내가 주공周公공자孔子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사람을 비유해 말할 때는 반드시 비슷한 부류로 해야 하네.
그대가 곧고 바른 자세로 남을 대한다면 마땅히 아부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를 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부류라고 말하였으니, 내가 어찌 해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대가 도리를 거스르고 허황되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의심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답을 하지 않았었네.
〈그대가〉 유주柳州에 와서 자사刺史 한 사람을 만나보고는 그를 주공周公공자孔子라고 하였으니, 이제 이곳을 떠나 연주連州를 거쳐서 조주潮州를 찾아가보게.
그 두 지방에 가면 또 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인물 두 사람을 얻을 것이고, 그곳을 떠나 도성都城에 가면 문장을 짓고 명성을 날리는 명사들이 천 명을 헤아릴 정도이니, 거기서 또 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사람을 수천 명 얻을 것이네.
그대의 가슴속에는 어찌 그처럼 주공周公공자孔子가 많단 말인가.
나는 비록 젊어서부터 글을 썼지만 스스로 갈고 다듬지는 못하고 붓을 들고 먹을 갈아 내키는 대로 써내려가다가 할 말을 다 쓰면 멈추었으니, 또한 무슨 전수받은 법이 있었겠는가.
논리를 세우고 사물을 묘사할 때 남을 뛰어넘기를 추구하지 않았으니, 또한 그대의 재능을 명백히 판별할 수 없고, 다만 그대가 조사助辭를 쓰는 것을 보니, 규율에 맞지 않는 점이 있어서 그저 이에 대해 답을 할까 하네.
이른바 는 의문형 종결사이고, 는 서술형 종결사인데, 지금 그대는 혼동하여 쓰고 있네.
마땅히 이전의 이름난 사람들이 사용한 사례를 고찰하여 본인이 한 말과 같은지 다른지 신중히 생각해본다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네.
경상자庚桑子곽촉藿蠋곡란鵠卵에 대해 말한 것을 나는 옳다고 보니, 연주連州를 거쳐 조주潮州를 찾아가서 주공周公공자孔子 같은 인물을 만난다 한들 결국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찾는 세상 사람들은 일단 그 사람을 만나면 〈우쭐해져서〉 간혹 문장 10여 편을 지어 들고 즉시 도성으로 달려가는데, 하루 한 달을 급하게 서두르고 비바람을 무릅쓰면서 이집 저집 찾아다녀 구차하게 알아주길 기대하네.
지금 그대는 나이가 그렇게 적지 않은데 형주荊州에서 유주柳州로 왔다가 유주柳州에서 연주連州를 거쳐 조주潮州까지 방문하려 하니, 길이 멀고도 험하네.
〈이로 볼 때〉 그 뜻이 사실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네.
또한 생김새도 의젓하여 대장부 같고 눈길이 바르고 형체가 곧으며 마음도 전일하니, 그 자질과 기상이 진실로 좋네.
다만 이것을 성실하게 채우기만 하면 될 뿐이네.
성실히 채우는 것은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대는 원망하지 말고 빨리 저 두 지방으로 가서 법을 취하기 바라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그대를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끔 생각해주게나.
맹자孟子가 “내가 달갑게 여겨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이 또한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네.
종원宗元은 고하네.


역주
역주1 復杜溫夫書 : 작자가 柳州刺史로 있을 때인 元和 14년(819) 봄에 쓴 편지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47세이며 이해 10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杜溫夫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역주2 〈周孔〉 : 저본에는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語人必於其倫 : 《禮記》 〈曲禮 下〉에 나온다. ‘語’자가 《禮記》에는 ‘儗’로 되어 있으므로 《禮記》의 뜻대로 번역하였다.
역주4 一刺史 : 柳州刺史로 있는 柳宗元 자신을 말한다.
역주5 道連而謁於潮 : 劉禹錫이 元和 10년(815) 3월에 連州刺史로 부임하였고, 憲宗이 佛骨을 궁중에 들여오려고 하자 韓愈가 이를 극력 저지하는 〈論佛骨表〉를 올렸다가 憲宗의 진노를 사서 元和 14년 1월에 潮州刺史로 貶謫되었다. 道는 길을 잡아 그곳을 지나간다는 뜻이다. 작자를 周公과 孔子 같은 위인이라고 추켜세우는 杜溫夫의 허황된 행태를 꼬집기 위해, 또 連州로 가서 劉禹錫을 만나고 이어 潮州로 가서 韓愈를 만나보면 그들도 周公과 孔子 같을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한 말이다.
역주6 藿蠋鵠卵 : 藿蠋은 콩잎을 갉아먹는 크고 푸른 벌레이고, 鵠卵은 학의 알이다. 《莊子》 〈庚桑楚〉에 “나나니벌은 커다란 콩잎벌레를 제 자식으로 바꿀 수 없고, 몸집이 작은 越나라 닭은 학의 알을 품을 수 없다.[奔蜂不能化藿蠋 越鷄不能伏鵠卵]”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태생적으로 정해진 역량이나 재능은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鵠은 여기서는 鶴과 같다.
역주7 二邦 : 劉禹錫이 있는 連州와 韓愈가 있는 潮州를 가리킨다.
역주8 余不屑之敎誨也者 是亦敎誨而已矣 : 《孟子》 〈告子 下〉에 나온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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