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遠言略하여 猶未能究知其狀하니 若果蕩焉泯焉而悉無有면 乃吾所以尤賀者也니라
足下勤奉養하여 樂朝夕하며 惟恬安無事是望也라가 今乃有焚煬赫烈之虞하여 以震駭左右하고 而脂膏滫瀡之具도 或以不給일새
於是有水火之孽하고 有群小之慍하여 勞苦變動 而後能光明이라
其爲多能若是로되 而進不能出群士之上하여 以取顯貴者는 蓋無他焉이라
京城人多言足下家有積貨하니 士之好廉名者 皆畏忌하여 不敢道足下之善하고 獨自得之하여 心蓄之하고 銜忍而不出諸口하니 以公道之難明이요 而世之多嫌也라
僕自貞元十五年見足下之文章하여 蓄之者蓋六七年未嘗言하니
하여는 自以幸爲天子近臣
하니 得奮其舌
하여 思以發明足下之鬱塞
이나
僕良恨修己之不亮
하고 素譽之不立
하여 而爲世嫌之所加
하고 常與
言而痛之
하니라
而足下之才能
이 乃可以顯白而不汚
하여 其實出矣
니 是
之相吾子也
라
宥而彰之하여 使夫蓄於心者는 咸得開其喙하고 發策決科者는 授子而不慄이라
今吾之所陳若是는 有以異乎古라 故將弔而更以賀也하니라
足下前要僕文章古書하니 極不忘이요 候得數十幅乃倂往耳라
來
하여 言足下爲醉賦及對問
하니 大善
이라하니 可寄一本
하라
04. 화재火災를 당한 진사進士 왕참원王參元을 축하하는 편지
식견이 깊은 말이자, 옛 작가와 흡사한 문장이다.
양팔楊八이 보내온 편지를 받고 족하足下가 화재火災를 당해 집안에 남은 재산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크게 놀랐고 중간에는 뭔가 의심이 일었다가 뒤에는 마침내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본래 조위弔慰를 표시하려 했다가 지금 다시 축하의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길이 멀고 소식의 내용도 간략하여 그 상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정말로 남은 물건이 하나도 없이 다 타버린 것이 맞다면 이는 곧 내가 더욱 축하할 일입니다.
족하足下는 부모를 열심히 봉양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즐거워하며 오직 평안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다가, 지금 갑자기 큰불이 나는 뜻밖의 일을 당하여 족하足下를 크게 놀라게 했을 것이고, 심지어 여러 가지 음식재료도 어쩌면 충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놀랐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은 서로 의존하여 변할 수 있기에 갔다 왔다 하는 일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장차 큰일을 이루려고 할 적에 처음에는 곤경에 처하고 놀라는 일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를 당하거나 소인배들의 분노를 사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노고와 변화를 경험하니, 그런 다음에 광명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도리는 너무 요원하고 황당하여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이를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또 의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족하足下는 옛사람의 책을 읽어 문장文章을 쓰고 소학小學에 정통합니다.
이와 같이 재능이 많은데도 관계에 진출하여 많은 인물 중에 특출하게 존귀한 자리를 얻지 못했으니, 이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도성 사람들은 족하足下 집안에 재물이 쌓여 있다는 말을 많이 했으니, 청렴淸廉하다는 이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꺼려 감히 족하足下의 뛰어난 재능을 칭찬하지 못하고 혼자만 알아 마음에 쌓아두고서 입 밖에 꺼내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공정한 도리는 밝히기 어렵고 세상에 의심하는 자가 많아서 그런 것입니다.
일단 족하足下에 대해 훌륭하다는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가는 남을 조소嘲笑하길 좋아하는 자들은 〈곧 족하로부터〉 분명히 많은 뇌물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정원貞元 15년(799)에 처음 족하足下의 문장을 보고 찬미하는 말을 가슴에 품고 6, 7년을 지냈는데, 그동안 말을 꺼낸 적이 없습니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나 개인을 위해 공정한 도리를 저버린 것이고 족하足下만을 저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사御史, 상서랑尙書郞이 되었을 때 내심 ‘다행히 천자의 근신近臣이 되었으니 이제는 혀를 놀려서 억눌려 빛을 보지 못하는 족하足下를 드러내 밝혀줘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동료 관리들 속에서 칭찬을 해보면 오히려 돌아보고 내심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자신의 수양修養이 높지 못하고 평소에 명예名譽를 세우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받는 것이 정말 한스러웠으며, 항상 맹기도孟幾道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행히도 하늘이 내린 불에 족하足下의 재산이 깨끗이 타 없어져서 세상 사람들의 의심도 함께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집은 검게 타고 담은 붉게 태워져 사람들에게 족하足下가 하나도 가진 것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족하足下의 재능이 모욕侮辱을 당하지 않고 분명해져서 그 실상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는 축융祝融과 회록回祿이 그대를 도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와 맹기도孟幾道가 10년 동안 족하足下의 재능을 알고 있었던 것이, 이 불이 하룻저녁에 족하足下를 위해 청렴하다는 명예를 세워준 것만도 못합니다.
이 큰불이 그대를 도와 그대의 실상을 드러내줌으로써 그대를 칭찬하는 말을 마음속에 쌓아둔 사람은 모두 그 입을 열 수 있게 하고, 인재선발을 주관하는 자는 그대에게 관직을 줘도 두려워 떨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제는 비록 예전처럼 세상 사람들이 의심할까 위축되고 사람들의 조소를 받고 싶더라도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로 인해 나는 그대에게 큰 기대를 가집니다.
이 때문에 뒤에는 마침내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옛날 여러 제후국에 화재가 일어나 동등한 지위의 다른 국가는 모두 가서 위문하였으나 허許나라는 위문하지 않았다 하여 군자君子가 증오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한 정황은 이처럼 옛날의 그 경우와 다르기 때문에 위문을 하려다가 도리어 축하를 하는 것입니다.
안회顔回와 증삼曾參이 부모를 봉양할 적에 그 즐거움이 컸을 것이니, 또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족하足下가 예전에 나의 문장文章과 고서古書를 원했었는데, 전혀 잊어버린 것은 아니고 수십 편 정도 쌓이길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오이십일吳二十一 무릉武陵이 와서 족하足下가 〈취부醉賦〉와 〈대문對問〉을 썼는데 매우 좋다고 했으니, 한 부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나도 요즘 글쓰기를 좋아하여 도성에 있을 때와 상당히 다릅니다.
족하足下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구속이 워낙 심하여 그럴 수 없습니다.
이곳 남쪽으로 온 사람이 있기에 편지를 써서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