足下所封示退之書云 欲推避僕以文墨事라하고 且以勵足下하니
若退之之才는 過僕數人일새 尙不宜推避於僕이니 非其實可知라
若雄者
는 如
를 退之獨未作耳
니 決作之
면 加恢奇
요 至他文過揚雄遠甚
이라
雄文遣言措意 頗短局滯澁하여 不若退之猖狂恣睢하여 肆意有所作이라
彼好獎人善하여 以爲不屈己면 善不可獎이라 故慊慊云爾也니라
且足下志氣高하여 好讀南北史書하고 通國朝事하며 穿穴古今하니 後來無能和라
今退之不以吾子勵僕하고 而反以僕勵吾子하니 愈非所宜라
吾子年甚少하고 知己者如麻하니 不患不顯이요 患道不立耳라
10. 위형韋珩이 보여준 한유韓愈의 편지에서 저술에 관한 일을 나에게 양보한다고 한 것에 대해 답한 편지
구양수歐陽脩의 편지는 유자후柳子厚의 이 편지와 유사한 점이 많다.
족하足下가 동봉해 보여준 한퇴지韓退之의 편지에 의하면, 저술에 관한 일을 나에게 양보하고 싶다 하고 아울러 족하足下를 독려해줬습니다.
한퇴지韓退之와 같은 재능은 혼자서 우리들 몇 사람을 능가할 정도이므로 나에게 양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그 말이 실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본디 외양상으로 한 말일 뿐입니다.
한퇴지韓退之가 존경하는 것은 사마천司馬遷과 양웅揚雄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은 한퇴지韓退之와 견주어볼 때 참으로 막상막하입니다.
하지만 양웅揚雄의 경우는 그가 쓴 《태현경太玄經》‧《법언法言》 및 네 편의 부賦 같은 글을 한퇴지韓退之가 아직 쓰지 않았을 뿐이지, 쓰기로 결심만 한다면 더 거창할 것이며, 다른 글도 양웅揚雄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양웅揚雄의 글은 낱말을 골라 쓰고 뜻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단촉短促하고 껄끄러워 한퇴지韓退之처럼 거침없이 붓대를 휘둘러서 명작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가령 양웅揚雄이 지금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한퇴지韓退之는 당연히 저술에 관한 일을 양보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내게 양보하겠습니까.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한 나머지 심지어 자기를 폄하하지 않으면 남을 칭찬할 수 없다고까지 여기니, 이 때문에 그처럼 겸손해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족하足下는 의지와 기개가 높고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남사南史》‧《북사北史》 등 역사서 읽기를 좋아하고 본조本朝의 역사사실에 정통하며 학문은 고금을 관통하므로, 후배들 중에 그 수준에 대응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유치하고 어리석어 이 세상에 이룬 업적은 하나도 없고 그저 지필묵紙筆墨으로 문자를 다루는 하찮은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퇴지韓退之가 쓴 편지에는 족하足下의 성취를 가지고 나를 독려하지 않고 도리어 나더러 족하足下를 독려하라고 하였으니, 더욱 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편지의 전체적인 내용은 족하足下에게 〈이미 이룬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자기를 억제하여 당대에 업적을 이룰 것을 희망하였으니, 이와 같은 생각은 진실로 옳습니다.
나더러 말해보라고 하더라도 역시 이 이상의 말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족하足下는 나이가 매우 젊고 알아주는 사람도 삼대 밭의 삼대처럼 늘어섰으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도道를 세우지 못할까만 염려하면 될 것입니다.
이는 내가 스스로를 독려하는 것이면서 또한 한퇴지韓退之를 도와 이로써 족하足下를 독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