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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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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覽子厚之所以序西漢이면 而文章之旨 亦可槪見矣
混久矣 言事駁亂하여 尙書春秋之旨不立이라
自左丘明傳孔氏하고 太史公述歷古今하여 合而爲史記 迄于今交錯相糺하여 莫能離其說하고國語 紀言不參於事
頗本右史尙書之制
然無古聖人蔚然之道하고 大抵促數耗矣
而後之文者寵之
文之近古而尤壯麗 莫若漢之西京하니 班固書傳之
吾嘗病其畔散不屬하여 無以考其變일새 欲采比義러니 會年長疾作하여 駑墮愈日甚하여 未能勝也
幸吾弟宗直 愛古書하여 樂而成之
搜討磔裂하고 攟摭融結하며 離而同之하되 與類推移하니 不易時月 而咸得從其條貫이라
森然〈炳然〉하여 若開하고 指揮聯累하고 圭璋琮璜之狀 各有列位하여 不失其敍하니 雖第其價可也니라
以文觀之 則賦頌詩歌書奏詔策辯論之辭畢具하고 以語觀之 則右史紀言尙書戰國策成敗興壞之說大備하여 無不苞也
是可以爲學者之端耶
始吾少時者 自贊爲是書하여 吾嘉而敍其意 而其書終莫能具하고 卒俟宗直也
故刪取其敍하여 繫于左하여 以爲西漢文類首紀하니라
殷周之前 其文簡而野하고 魏晉以降 則盪而靡하니 得其中者漢氏
漢氏之東하여는 則旣衰矣
當文帝時하여 始得明儒術하니라
武帝尤好焉하여 而公孫弘董仲舒司馬遷相如之徒作하여 風雅益盛하여 敷施天下 自天子 至公卿大夫士庶人 咸通焉이라
於是宣於詔策하고 達於奏議하며 諷於辭賦하고 傳於歌謠하니 由高帝訖于哀平王莽之誅 四方之文章 蓋爛然矣
史臣班孟堅 修其書할새 拔其尤者하여 充于簡冊하니 則二百三十年間 列辟之達道 名臣之大範 賢能之志業 黔黎之風美列焉이라
若乃合其英精하고 離其變通하며 論次其敍位 必俟學古者興行之
唐興 用文理하여 貞元間文章特盛하니
本之三代하고 浹于漢氏하여 與之相準이라
於是有能者하여 取孟堅書하여 類其文하고 次其先後하여 爲四十卷하니라


01. 유종직柳宗直이 지은 《서한문류西漢文類》의 서문
자후子厚가 《서한문류西漢文類》에 대해 쓴 서문을 살펴보면 문장의 의의를 또한 대강 알 수 있다.
좌사左史우사右史의 일이 뒤섞인 지 오래되었으니, 말과 일이 난잡하여 《상서尙書》와 《춘추春秋》의 취지가 사라졌다.
좌구명左丘明공자孔子의 《춘추春秋》에 을 쓰고, 태사공太史公이 고금의 역사를 기술하고 이것을 모아 《사기史記》를 편찬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역사서의 내용이〉 섞이고 꼬이어 어느 누구도 그 형식을 구분하여 서술하지 못했고, 오직 좌씨左氏의 《국어國語》만 말을 기록하고 일은 끼워 넣지 않았다.
전국책戰國策》과 《춘추후어春秋後語》는 상당히 우사右史의 《상서尙書》 방식을 근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옛 성인聖人의 위대한 도는 없고 대체로 번잡하고 미진한 편이다.
그런데도 후대의 문인들은 그것들을 좋아한다.
글 가운데 옛글에 가깝고 특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으로는 나라의 서경西京(前漢)시대의 것만 한 것이 없는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그 글이 전해져온다.
나는 일찍이 〈그 글들이〉 흩어지고 이어지지 않아 그 변천을 살필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러워 모범으로 삼을 만한 글을 뽑아내려고 하였으나, 마침 나이도 많고 병이 생겨서 아둔함이 날로 심해져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내 아우 종직宗直고서古書를 좋아하여 그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완성하였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자세히 검토한 뒤에 그것을 수집하여 종합하고, 다시 분리하여 합치되 〈문체가 같은 것끼리〉 유별로 조정하였는데, 한 계절이 가기 전에 모두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내용이 풍성하고 빛이 나서 마치 많은 이 보관된 창고를 여는 듯하고, 이리저리 이어놓은 구성은 옥으로 만든 귀한 제기祭器들이 각기 제자리에 놓여 있어 순서를 잃지 않은 것과 같으니,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도 될 것이다.
문체로 살펴보면 등의 글을 모두 갖추었고, 말을 기록한 것으로 살펴보면 말을 기록한 우사右史의 체제로서 《상서尙書》‧《전국책戰國策》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관한 설이 크게 구비되어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 이 책은 학문하는 자의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젊었을 적에 노자路子라는 이가 있어 이런 책을 만든다고 스스로 과시하기에 내가 가상히 여겨 그에 관한 생각을 서술했었는데, 그 책은 끝내 완성하지 못하였고 결국 종직宗直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그 서술문을 손질하여 아래에 붙여 《서한문류西漢文類》의 서문으로 삼을까 한다.
이전에는 그 글이 간단하여 거칠고, 이후로는 과장되어 무력하니, 그 중용中庸을 얻은 것이 나라의 글이다.
하지만 동한東漢 때는 이미 쇠퇴하였다.
문제文帝 때에 처음으로 가생賈生을 얻어 유가儒家의 학술을 밝혔다.
무제武帝가 어느 군주보다도 유가儒家의 학술을 좋아함으로 인해, 공손홍公孫弘동중서董仲舒사마천司馬遷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무리가 나와 풍아風雅의 기풍이 더욱 융성해져서 천하에 널리 퍼지니, 천자天子로부터 대부大夫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에 능통했다.
그리하여 그 기풍이 조책詔策으로 알려지고 주의奏議로 전달되며, 사부辭賦로 풍자되고 가요歌謠로 전파되었으니, 고제高帝 때부터 애제哀帝평제平帝 때와 왕망王莽이 죽을 당시까지 사방의 문장이 모두 찬란하였다.
사관史官반맹견班孟堅(班固)이 《한서漢書》를 편수할 적에 그중에 뛰어난 문장을 뽑아 책에다가 채워 넣었으니, 230년 동안 여러 황제들의 훌륭한 법도와 명신名臣들의 큰 본보기, 그리고 현명하고 유능한 자들의 지향과 업적 및 백성의 아름다운 풍속이 그 안에 나열되었다.
〈그 문장 중에서〉 정수를 모으고 형식을 달리한 여러 문체文體를 분류하며 그 배열하는 순서를 이상적으로 정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옛 도를 배운 자가 나와 그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왕조가 일어나 문치文治를 행하여 정원貞元 연간에 문장이 특히 흥성하였다.
삼대三代에 근본을 두고 한대漢代의 문장을 충분히 수용하여 한대漢代와 서로 견줄 만한 수준이 되었다.
이에 유능한 자가 나와서 반맹견班孟堅의 《한서漢書》를 취해 그 문체를 분류하고, 그 선후의 순서를 정하여 40권을 만든 것이다.


역주
역주1 柳宗直西漢文類序 : 작자가 永州司馬로 있던 기간에 지은 것이다. 柳宗直(783~815)은 자가 正夫로, 작자의 사촌아우이다. 進士에 응시하였으나 작자가 죄를 얻음으로 인해 급제하지 못하였다. 貞元 원년(805)에 작자가 永州로 貶謫될 적에 따라갔고, 元和 10년(815) 柳州刺史가 되었을 때도 따라갔다. 《西漢文類》는 班固(32~92)가 편찬한 《漢書》에 나오는 문장을 골라 賦‧頌‧詩‧歌‧書‧奏‧詔‧策‧辯‧論 등 문체별로 분류하여 40권으로 만든 것이다. 이 서문은 두 가지 주제를 반복해가며 서술하였는데, 하나는 西漢시대의 문장 수준이 높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고, 하나는 柳宗直이 옛 것을 좋아하는 것을 찬양한 것이다. 序는 한 책이나 한 편의 詩文 앞에 쓰는 글로, 뒤쪽에 쓰는 跋과 대칭된다. 일반적으로 그 저작물을 짓게 된 연유, 내용, 체제, 목차에 대해 서술과 설명을 덧붙인다. 어떤 사람을 송별할 때 그에게 당부하는 글이라는 뜻으로도 간혹 사용된다.
역주2 左右史 : 사실을 기록하는 직무를 맡은 左史와, 언어를 기록하는 직무를 맡은 右史를 가리킨다. 서적으로 보면 《春秋》는 左史의 기록물이고, 《尙書》와 《國語》 등은 右史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역주3 左氏 : 左丘明을 가리킨다.
역주4 戰國策 : 처음에 《國策》‧《國事》‧《事語》‧《短長》‧《長書》‧《修書》 등의 명칭이 있었다. 西漢 劉向이 편집한 것으로 모두 33편이다. 戰國 때의 역사와 策士들의 論辯과 計策이 실려 있다.
역주5 春秋後語 : 東晉 때 孔衍(268~320)의 저술이다. 《戰國策》에 기록된 내용이 부실하다고 생각하여 《史記》를 근거로 오류를 바로잡아 10권으로 편집하였다. 秦 孝公부터 漢나라 때까지의 역사를 秦‧齊‧楚‧燕‧趙‧魏‧韓 등 7개국으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는데, 지금은 이미 유실되었다.
역주6 〈炳然〉 : 저본에는 없으나, 《柳河東集》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群玉之府 : 群玉은 본디 옥이 난다는 전설 속의 仙山이나, 여기서는 많은 옥을 보관한 창고라는 뜻이다.
역주8 路子 : 章士釗의 《柳文指要》에 의하면 五言詩를 잘 지었다는 路泌의 아들 路隨(776~835)를 가리킨다. 자는 南式으로, 陽平 사람이다. 左補闕‧侍講學士‧兵部侍郞知制誥를 역임하고 文宗 때 재상을 지냈다.
역주9 賈生 : 賈誼(B.C. 201~B.C. 169)를 가리킨다. 西漢 洛陽 사람이다. 18세 때 《詩經》과 《書經》을 능히 외우고 문장을 잘 지어 才士로 이름났다. 河南郡守 吳公이 漢 文帝에게 천거하여 博士가 되었고, 곧 太中大夫로 승진하여 正朔을 바꾸고 禮樂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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