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瀟灑跌宕이나 惜也篇末 猶多抑鬱之思云이라
零陵城南 環以群山하고 延以林麓하여
其崖谷之委會에는 則泓然爲池하고 灣然爲溪
其上多楓柟竹箭 哀鳴之禽하고 其下多芡芰蒲蕖 騰波之魚
韜涵太虛하고 澹灩里閭하니 誠游觀之佳麗者已
崔公旣來 其政寬以하고 其風和以廉하여 旣樂其人하고 又樂其身이라
于暮之春 徵賢合姻하여 登舟于玆水之津하니 連山倒垂 萬象在下하고 浮空泛景 蕩若無外
橫碧落以中貫하고 陵太虛而徑度
하고 匏竹激越하니 熙然而歌하고 婆然而舞하며 持頤而笑하고 瞪目而倨하여 不知日之將暮하니 則於向之物者可謂無負矣
昔之人知樂之不可常하고 會之不可必也하여 當歡而悲者有之커든
況公之理行 宜去受厚錫하고 而席之賢者 率皆在官蒙澤하여 方將脫鱗介하고 生羽翮하리니
湘中하여 爲顦顇客耶
余旣委廢於世하여 恒得與是山水爲伍
而悼玆會不可再也 故爲文志之하노라


05. 영주永州 최사군崔使君을 모시고 남지南池의 연회에서 논 것을 기록한 서문
문장이 시원스럽고 자유분방하지만 아쉽게도 끝부분에는 억울해하는 생각이 다분하다.
영릉성零陵城의 남쪽은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림이 멀리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그 비탈과 골짜기 사이의 물이 모인 곳은 수심이 깊어 못을 이루고 굽이져 시내를 이루었다.
그 위에는 많은 단풍나무, 녹나무, 신우대와 구슬프게 우는 새들이 있고, 그 아래 물에는 많은 가시연밥, 새발마름, 연꽃과 물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이 있다.
거기에는 허공의 그림자가 잠겨 있고 마을 모습도 물빛 속에서 흔들리고 있으니, 참으로 유람하기 좋고 아름다운 곳이다.
최공崔公께서 이곳에 오신 뒤로 그 행정行政은 너그러우면서도 철저하고, 그 기풍氣風은 온화하면서도 청렴하여, 백성들을 즐겁게 하고 또 자신도 즐거움을 누렸다.
늦은 봄에 그는 어진 자들을 초청하고 친척들을 모아 이 물의 나루에서 배에 올랐는데, 연이은 산들이 거꾸로 드리워 만물의 형상이 아래에 있고 허공과 경물이 물위에 떠 끝없이 출렁거렸다.
〈우리가 탄 배가〉 하늘을 가로질러 그 가운데로 관통하고 허공을 타고 올라 곧장 지나갔다.
날개 달린 술잔이 날아다니고 박과 대나무로 만든 악기 소리가 높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즐겁게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턱을 괴고 웃거나 눈을 크게 부릅뜨고 거만을 부리면서 해가 저물어가는 줄도 몰랐으니, 앞서 거론한 온갖 경물을 저버리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즐거움이 항상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과, 모임을 반드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마땅히 기뻐해야 할 때인데도 도리어 슬퍼하는 경우가 있었다.
더군다나 최공崔公은 치적을 이루었으니 마땅히 이곳을 떠나 후한 상을 받을 것이고, 동석한 많은 인물들은 모두 다 좌천된 관리로 이미 은택을 입어 바야흐로 비늘과 껍질을 벗고 창공을 날아오를 날개가 날 것이니, 어찌 상수湘水 지방에서 머뭇거리며 초췌한 나그네로 살겠는가.
나는 이미 세상에서 버려져 영원히 이 산수山水와 어울려 지낼 것이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성대한 모임은 다시 거행할 수 없을 것이기에 이 문장으로 이번의 성대한 모임을 기록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陪永州崔使君遊讌南池序 : 永州 崔使君은 永州刺史 崔敏을 가리키고, 南池는 永州 관아가 있는 零陵縣 동남쪽에 있던 못이다. 崔敏은 貝州 淸河 사람이다. 元和 3년(808)에 歸州刺史에서 永州刺史로 전보되어 元和 5년에 임지에서 죽었다. 永州의 풍속이 미신을 신봉하였는데, 그가 부임하여 雜神을 받드는 사당을 헐어버리고 무당을 제거하자, 조세가 많이 걷히고 백성이 비로소 안녕을 누렸다고 한다. 작자가 그를 위해 祭文과 墓誌文을 지었다. 憲宗이 元和 2년 11월에 鎭海軍節度使 李錡(741~807)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듬해인 이해 1월에 大赦令을 포고하여 貶謫을 당한 모든 관리들이 量移되었다. 量移란 도성과의 거리가 가깝거나 혹은 조건이 비교적 좋은 고을로 옮겨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작자를 포함한 八司馬의 경우는 처음 貶謫될 당시 내린 조서에 ‘뒤에 사면하는 조처가 있더라도 영원히 量移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으므로 大赦令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글은 元和 3년 봄에 崔敏이 永州에 유배된 여러 사람을 위해 연회를 열어 하루를 즐긴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 연회는 사면을 받은 사람들을 축하하는 일종의 축하연 성격이었으나, 작자는 사면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말미에 비통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토로하였다.
역주2 : 여기서는 철저하다는 뜻이다.
역주3 羽觴飛翔 : 여러 사람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 뜻이다. 羽觴은 새 모양으로 만들어 양쪽에 날개가 있는 술잔이다.
역주4 夫豈趦趄(자저)湘中 爲顦顇客耶 : 屈原의 〈漁夫辭〉에 “屈原이 추방되어 江潭에서 노닐고 澤畔을 거닐며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행색이 생기가 없었다.”라고 한 어구와 의미를 인용한 것이다. 趦趄는 갈 듯 말 듯 망설인다는 뜻이다. 湘中은 湖南 최대의 강인 湘水가 있는 지역으로 屈原이 추방되어 서성거리던 곳인데, 여기서는 永州 일대를 가리킨다. 湘水는 廣西 동북부에서 발원하여 호남 동부를 관통하여 湘陰縣에서 洞庭湖로 흘러들어간다. 顦顇는 憔悴와 같은데 안색이 핼쑥하다는 뜻이다.
역주5 夫豈趦趄 : 자저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