得生書에 言爲師之說하고 怪僕所作師友箴與答韋中立書하여 欲變僕不爲師之志하고 而屈己爲弟子하니
僕之所避者는 名也요 所憂者는 其實也니 實不可一日忘이라
僕聊歌以爲箴하고 行且求中以益己하여 慄慄不敢暇하며 又不敢自謂有可師乎人者耳라
若乃名者는 方爲薄世笑罵니 僕脆怯하여 尤不足當也니라
內不足爲하고 外不足當이니 衆口雖懇懇見迫이라도 其若吾子何리오
僕之所拒는 拒爲師弟子名하여 而不取當其禮者也니라
若言道講古窮文辭하여 有來問我者면 吾豈嘗瞋目閉口邪아
攻其車하고 肥其馬하며 長其策하고 調其六轡하여 中道之行大都하라
幸而亟來하여 終日與吾子言이면 不敢倦하고 不敢愛하며 不敢肆하리라
苟去其名하고 全其實하며 以其餘易其不足이면 亦可交以爲師矣리라
如此無世俗累而有益乎己하리니 古今未有好道而避是者니라
12. 사도師道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엄후여嚴厚輿에게 답한 편지
그대의 편지를 받아보니, 스승이 되는 것에 대한 말을 언급하면서 내가 지은 〈사우잠師友箴〉과 〈답위중립논사도서答韋中立論師道書〉를 괴이하게 여기고 스승이 되지 않으려는 나의 뜻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기를 굽혀 제자가 되려고 하였네.
내가 쓴 두 편의 글은 그 내용이 결국 다르지 않네.
내가 피하는 것은 이름이고 염려하는 것은 그 내실이니, 내실은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되네.
나는 그저 그 내실을 노래로 만들어 잠언箴言으로 삼고, 장차 중용中庸의 도를 구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게 하자는 의도로 자나 깨나 전전긍긍할 뿐이며, 또한 감히 스스로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점이 있다고 여기지 않네.
이름 같은 것은 바야흐로 각박한 세상으로부터 조소嘲笑와 매도罵倒만 당하니, 나는 본디 여리고 겁이 많아 더더욱 감당하지 못하네.
안으로는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부족하고 밖으로는 세상의 조소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니, 많은 사람들이 비록 간절하게 강요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요청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실의 요점은 두 편의 글에 담긴 내용이 전부이니, 그대는 자세히 읽어보기 바라네.
그대가 말한 중니仲尼에 관한 설은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중니仲尼는 배울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그처럼 행할 수는 없네.
그를 배우기를 완전하게 하면 이에 곧 중니仲尼가 될 것이네.
배우기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고서 중니仲尼의 일을 행하려 하는 것은 마치 송宋 양공襄公이 패자霸者가 되기를 좋아하다가 나라를 망치고 마침내 화살에 맞아 죽은 것과 같으니, 중니仲尼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두 사람 같은 경우는 단지 장구章句의 스승일 따름이네.
지금 세상에는 장구章句의 스승은 사실 적지 않은데 나는 다행히 그런 사람은 아니네.
그대가 장구章句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필시 그것을 좋게 여겨 그대에게 기대를 거는 자가 있어서일 것이네.
도道를 말하고 옛 법法을 강론하고 문사文辭를 탐구하는 일로 스승이 되는 것은 진정 우리에게 딸린 일이네.
나는 재능과 용기가 한퇴지韓退之만 못하기 때문에 또한 한퇴지韓退之처럼 남의 스승이 되지 않으려 하네.
사람의 견해는 서로 다를 수도 있으니, 그대는 한퇴지韓退之의 예를 들어 나에게 요구하지 말기 바라네.
그러나 내가 천백 명을 모두 거절한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잘못이네.
내가 거절하는 것은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사제간師弟間의 형식적인〉 예를 차리는 일을 멀리하자는 것이네.
만약 도를 말하고 옛 법을 강론하고 문사文辭를 탐구하는 문제를 가지고 찾아와 내게 묻는 자가 있다면, 내가 어찌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입을 다물고만 있겠는가.
지금은 그 사람을 볼 수 없으나 또한 감히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네.
그대의 글은 매우 유창하니 큰 길을 활짝 열고 장차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이네.
수레를 단단히 손질하고 말을 살찌운 다음 채찍을 길게 하고 여섯 고삐를 고르게 잡고서 중앙의 길을 통해 큰 도회지로 달려가기 바라네.
이것을 버리고 또한 무엇을 스승으로 삼으려는가.
도道를 아는 자에게 자주 묻고 옛 법法을 살펴보면 스승이 적지 않을 것이네.
혹시 나를 자주 찾아와 종일토록 그대와 말하게 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고 감히 아끼지 않을 것이며 감히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네.
만일 사제간師弟間이란 이름을 버리고 그 내실을 온전히 지키면서 그 남는 것을 가지고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면, 이 역시 서로 사귀며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이와 같이 하면 세속의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에겐 유익한 점이 있을 것이니,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도를 좋아하면서 이 방법을 피한 사람은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