獲書言史事하고 云具與劉秀才書라 及今乃見書藁하니 私心甚不喜라
若書中言인댄 退之不宜一日在館下니 安有探宰相意하여 以爲苟以史榮一韓退之耶아
若果爾면 退之豈宜虛受宰相榮己하여 而冒居館下하여 近密地하여 食奉養하고 役使掌故하며 利紙筆爲私書하여 取以供子弟費리오
且退之以爲紀錄者有刑禍라하여 避不肯就하니 尤非也라
史以名爲褒貶도 猶且恐懼不敢爲하니 設使退之爲御史中丞大夫면 其褒貶成敗人愈益顯이라
其宜恐懼尤大也
리니 則又將揚揚入臺府
하여 美食安坐
하고 行
於朝廷而已耶
아
在御史猶爾하니 設使退之爲宰相면 生殺出入升黜天下士하여 其敵益衆하리니 則又將揚揚入政事堂하여 美食安坐하고 行呼唱於內庭外衢而已耶아
又言不有人禍則有天刑이라하여 若以罪夫前古之爲史者然하니 亦甚惑이라
孔子之困于魯衛陳宋蔡齊楚者는 其時暗하고 諸侯不能以也라
當其時하여는 雖不作春秋라도 孔子猶不遇而死也리라
是退之宜守中道하여 不忘其直이요 無以他事自恐이니라
退之之恐은 唯在不直하고 不得中道요 刑禍非所恐也니라
고하면 則同職者又所云若是
하고 後來繼今者又所云若是
하여 人人皆曰我一人
하리니
如退之但以所聞知孜孜不敢怠면 同職者와 後來繼今者도 亦各以所聞知孜孜不敢怠하리니 則庶幾不墜하여 使卒有明也리라
不然
하고 徒信人口語
면 每每異辭
요 日以滋久
면 則所云
者 決必沈沒
하고 且亂雜無可考
하리니 非有志者所忍恣也
니라
今學如退之하고 辭如退之하고 好言論如退之하고 慷慨自爲正直行行焉如退之로되 猶所云若是하니 則唐之史述은 其卒無可託乎아
明天子賢宰相이 得史才如此而又不果하니 甚可痛哉로다
退之宜更思하여 可爲速爲하라 果卒以爲恐懼不敢이면 則一日可引去니라
今當爲而不爲
하고 又
館中他人及後生者
는 此大惑已
라
01. 사관史官의 직책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한유韓愈에게 보낸 편지
자후子厚의 문장은 웅변이 많은데, 이 편은 그중에서도 뚜렷하고 엄정하고 강직하다.
다만 기개를 너무 드러내, 기상이 혼후渾厚하고 문장이 구슬을 꿴 듯 질서정연한 창려昌黎보다 못하다.
정월 21일에 모某는 십팔장十八丈 퇴지退之의 시자전侍者前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받은 편지에 사관史官에 관한 일을 언급하면서 유수재劉秀才에게 보낸 편지에 모든 의견이 담겨 있다고 했기에 이제 그 편지를 구해 읽어보았는데, 내심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지난날 퇴지退之가 사관史官에 관한 일을 말할 때의 관점과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편지에서 말한 대로라면 퇴지退之는 하루라도 국사관國史館에 붙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 어찌 재상의 의중을 엿보면서 구차하게 사관史官의 자리로 퇴지退之 한 사람을 영화롭게 할 생각만 하고 있습니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퇴지退之는 〈임무는 수행하지 않고〉 재상이 자기를 영화롭게 해주는 명예만 받아들여, 국사관國史館을 차지하여 대내大內의 주변에서 봉록을 챙기고 하급 관리들을 부려먹으며, 관아의 지필紙筆을 이용하여 사적인 글이나 써서 자제子弟를 부양할 비용을 챙기는 것이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예로부터 도道에 뜻을 둔 사람은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
또한 퇴지退之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형벌과 재앙이 있다 하여 임무를 회피하고 수행하려 하지 않으니,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사관史官은 명분상으로만 포폄을 행하는 것인데, 이것조차도 두려워 감히 못하니, 가령 퇴지退之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이나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면 사람을 찬양하고 폄하하며 이루어주고 무너뜨리는 일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더욱 두려움이 클 것인데, 또 의기양양하게 어사대御史臺에 들어가 잘 먹고 편히 앉아 지내며 조정에서 출사出仕 확인만 하고 말 것입니까.
어사御史로 있을 때도 그랬으니, 가령 퇴지退之가 재상宰相이 되면 천하의 인물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들어오게 하거나 내치기도 하고,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키기도 하여 적이 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인데, 그래도 또 의기양양하게 정사당政事堂에 들어가 잘 먹고 편안히 앉아 지내며 조정 안팎에서 출사出仕 확인만 하고 말 것입니까.
이것이 사관史官의 임무는 수행하지 않고 호칭의 영예만 누리고 봉록만 챙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인화人禍가 있지 않으면 천형天刑이 있다.”고 하여 마치 옛날에 역사를 저술한 사람들을 나무라는 것처럼 말했는데, 이 또한 매우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대체로 어떤 지위에 있으면 도道를 펼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도道가 진실로 펼쳐질 수 있다면 비록 죽을지언정 뜻을 굽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뜻을 굽힐 것이라면 차라리 당장 그 지위를 떠나는 것이 낫습니다.
공자孔子가 노魯‧위衛‧진陳‧송宋‧채蔡‧제齊‧초楚 등의 나라에서 곤경에 처했던 이유는 그 시대가 암울했고 제후諸侯들이 공자孔子를 등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자孔子가 불우하게 죽은 이유 또한 《춘추春秋》를 저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비록 《춘추春秋》를 저술하지 않았더라도 공자孔子는 역시 도를 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주공周公이나 사일史佚 같은 사람들은 비록 말을 기록하고 사건을 서술하였으나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만나고 현달했습니다.
이로 볼 때 역시 《춘추春秋》를 저술한 것이 공자孔子에게 누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범엽范曄은 반란을 꾀했으니 비록 역사를 저술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집안은 멸족당했을 것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은 천자의 비위를 건드려 노여움을 샀고, 반고班固는 아랫사람을 단속하지 않았고, 최호崔浩는 자기의 정직을 과시하여 포악한 오랑캐와 다투었으니, 이는 모두 중도中道가 아닙니다.
좌구명左丘明은 병으로 눈이 멀었으니, 이는 불행한 운명 때문입니다.
자하子夏는 역사를 저술하지 않았어도 눈이 멀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경계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 나머지도 모두 이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퇴지退之는 마땅히 중도中道를 지켜 그것을 펼칠 것을 잊지 말 것이요, 다른 일로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퇴지退之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도를 펼치지 못할까, 중도中道를 얻지 못할까 하는 것들이며, 형벌刑罰과 재앙災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대체로 〈당唐나라 개국 이후〉 200년 동안 문관文官과 무장武將 가운데 공명功名을 세운 자들이 무수하게 많다고 말씀하였는데, 실로 이와 같은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 퇴지退之가 “나 한 사람이 무슨 수로 〈그 많은 사실들을〉 밝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면, 같은 관직에 있는 자들도 그처럼 말할 것이고, 나중에 들어와 그 뒤를 잇는 자들 또한 그와 같이 말하여, 사람마다 모두 ‘나 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누가 역사歷史를 기록하여 전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퇴지退之가 그저 듣고 아는 일들을 감히 태만하지 않고 부지런히 기록한다면, 같은 관직에 있는 자들과 나중에 들어와 그 뒤를 잇는 자들 역시 저마다 듣고 아는 일들을 감히 태만하지 않고 부지런히 기록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지난날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끝내 세상에 밝혀질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하는 말만 믿는다면 기록할 때마다 말이 다를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세월이 지나다 보면 이른바 빛나고 뛰어나 천지에 우뚝 섰던 걸출한 인물들이 분명 매몰되고 또 혼란스러워져 살펴볼 근거가 없게 될 것이니, 이는 역사서歷史書 편찬에 뜻이 있는 사람이 차마 용인할 일이 아닙니다.
만약 과연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데에 뜻이 있다면 어찌 사람들이 재촉하고 독촉하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자기의 직무를 다하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귀신에 관한 것들은 묘연하고 황당하여 근거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식견이 있는 사람은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지退之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이것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오늘날 퇴지退之만큼 학문學問이 있고 퇴지退之만큼 문장文章이 대단하고 퇴지退之만큼 논변論辨을 좋아하고 퇴지退之만큼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스스로 정직正直과 강직剛直함을 표방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이와 같다면, 결국 당唐나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길 데가 없단 말입니까.
밝으신 천자와 어진 재상이 이와 같은 사재史才를 얻었는데 성과가 없다니,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퇴지退之는 마땅히 다시 생각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 빨리 수행하고, 끝내 두려워 감히 못하겠거든 당장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어찌 “장차 기회를 보아 떠나는 것을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또 사관史館의 다른 사람과 후배들에게 그 직무를 전가하겠다는 것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를 격려하지 않으면서 남을 격려하려고 한다면 곤란합니다.
“원서原書를 끌어와 논변한 부분이 실체를 드러냈다 숨겼다 하면서 착종체錯綜體로 문장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