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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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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覽此序
亦可見古之欲兼詩與文이나 而竝盛者 亦世所難이니
而況吾曹乎
曰 文之用 而已
雖其言鄙野 足以備於用이라
然而闕其文采 固不足以竦動時聽하고 夸示後學이니 立言而朽 不由也
故作者抱其根源하여 而必由是假道焉이라
作於聖이라 故曰經이요 述於才 故曰文이라
文有二道하니 辭令褒貶 本乎者也 導揚諷諭 本乎者也
著述者流 蓋出於書之 易之 하니 其要在於高壯廣厚하고 詞正而理備하니
謂宜藏於簡冊也
比興者流 蓋出於虞夏之詠歌 殷周之하니 其要在於麗則淸越하여 言暢而意美하니
謂宜流於謠誦也
玆二者 考其旨義 乖離不合이라
故秉筆之士 恒偏勝獨得하여 而罕有兼者焉이라
厥有能而專美 命之曰藝成이라하니
雖古文雅之盛世라도 不能竝肩而生이라
唐興以來 稱是選而不怍者 니라
其後以著述之餘 攻比興而莫能極하고 以比興之隙으로 窮著述而不克備
其餘各探一隅하여 相與背馳於道者 其去彌遠하니 文之難兼 斯亦甚矣
少以著聲於時하니 其炳耀尤異之詞 諷誦于文人하여 滿盈于江湖하고 達于京師하니라
晩節徧悟文體하니 尤邃敍述이라
學富識遠하고 才涌未已하여 其雄傑老成之風 與時增加
旣獲是 不數年而夭하니라
其季年所作尤善하니 其爲鄂州新城頌 諸葛武侯傳論 餞送梓潼陳衆甫 汝南周愿 河東裴泰 武都符義府 泰山羊士諤 隴西李鍊凡六序 廬山禪居記 辭李常侍啓 遠遊賦 七夕賦之選已
用是하니 其可謂具體者歟인저
嗚呼 公旣悟文而疾하고 旣卽功而廢하며 廢不逾年 大病及之하여
卒不得窮其工竟其才하여 遺文未克流于世하고 休聲未克充於時
凡我從事於文者 所宜追惜而悼慕也로다
宗元以通家修好 幼獲省謁이라
故得奉公元兄命하여 論次篇簡하고 遂述其制作之所詣하여 以繫于後하노라
嘗謂子厚詩過昌黎하고 而文特讓一格矣로니


02. 양평사楊評事 문집文集후서後序
다음과 같이 평론한다.
이 서문을 살펴보면 옛사람들이 을 짓는 솜씨를 겸비하려고 하였지만, 이 두 가지가 모두 뛰어난 자는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들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의 작용은 사령辭令포폄褒貶도양導揚풍유諷諭뿐이다.
비록 그 말이 저열하고 거친 문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채文采가 없다면 실로 당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없고 또 후학에게 과시할 수도 없으니, 이론을 내세우더라도 생명력이 없는 문장은 군자君子가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자는 문장의 근본사상을 견지하는 동시에 반드시 문채를 빌려 그것을 표현한다.
성인聖人에 의해 창작된 것은 이라 부르고, 재능 있는 사람이 의 뜻을 드러내 밝힌 글은 이라 부른다.
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사령辭令포폄褒貶저술류著述類산문散文에 근원을 두었고, 도양導揚풍유諷諭비흥류比興類시가詩歌에 근원을 두고 있다.
저술류著述類의 문장은 《상서尙書》의 등의 문체와 《주역周易》의 상사象辭계사繫辭 및 《춘추春秋》의 공자孔子가 수정한 문장에서 나왔으니, 그 특징은 기세가 웅장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문구가 엄정하고 도리가 충분한 것에 있다.
이로 인해 간책簡冊에 써서 서적으로 수장收藏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비흥류比興類의 작품은 시대의 노래와 시대의 에서 나왔으니, 그 특징은 곱고 규칙적이며 소리가 맑고 우렁차 언어가 유창하고 정취가 아름다운 것에 있다.
이로 인해 읊조리고 외워 널리 전파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이 두 종류의 작품은 그 의도와 의의를 살펴볼 때 서로 달라 합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글을 짓는 사람은 통상적으로 한쪽에만 뛰어나고 두 방면에 두루 능한 이는 드물다.
그중 어느 누가 이 두 방면에 다 뛰어나 명성을 독차지한 자가 있으면 그를 문예가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록 옛날 예악禮樂 교화敎化가 융성했던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동시에 출현할 수는 없었다.
나라가 개국한 이후 위의 두 방면을 겸비한 인물로 찬양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은 곧 재동梓潼 진습유陳拾遺이다.
그 뒤에 연국공燕國公 장문정張文貞저술류著述類의 문장을 쓰는 여가를 이용하여 비흥류比興類의 작품을 썼으나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장곡강張曲江비흥류比興類의 작품을 쓰는 여가를 이용하여 저술류著述類의 문장에 힘을 쏟았으나 완전한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그 나머지는 각기 한 방면을 탐구하여 서로 반대의 길을 내달려 더욱더 멀어졌으니, 의 두 영역을 겸하기란 또한 매우 어렵다.
양군楊君 같은 이는 젊었을 적에 시가詩歌로 당대에 명성을 얻었으니, 그 아름답고 특이한 시구詩句는 문인들에 의해 낭송되어 그 명성이 강호에 널리 퍼졌고 도성에까지 파급되었다.
만년에는 각종 문체에 대해 두루 깨우쳤는데, 서술문에 특히 조예가 깊었다.
학문이 풍부하고 식견이 원대하며 재능이 끊임없이 용솟음쳐 웅건하고 노련한 기풍은 날로 더해갔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요절하였다.
말년의 작품은 더욱 좋았으니, 〈악주신성송鄂州新城頌〉‧〈제갈무후전론諸葛武侯傳論〉과 재동梓潼 진중보陳衆甫, 여남汝南 주원周愿, 하동河東 배태裴泰, 무도武都 부의부符義府, 태산泰山 양사악羊士諤, 농서隴西 이련李鍊을 송별하는 여섯 편의 , 그리고 〈여산선거기廬山禪居記〉‧〈사이상시계辭李常侍啓〉‧〈원유부遠遊賦〉‧〈칠석부七夕賦〉 등은 모두 그의 문학작품 중에 우수한 것들이다.
이리하여 진군陳君의 뒤를 따르게 되었으니, 마땅히 저술著述시가詩歌 두 방면의 재능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은 여러 문체의 핵심을 깨닫더니 병을 얻었고 이미 성공에 거의 접근하더니 글쓰기를 중단하였으며, 붓을 놓은 지 한 해가 되기 전에 중병이 들었다.
그리하여 끝내 그 조예를 더 깊게 하고 그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함으로 인해, 남긴 작품이 세상에 널리 유포되지 못하고 아름다운 명성이 당대에 충만하지 못하였다.
우리들 문예文藝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애석해하고 슬퍼할 일이다.
종원宗元은 선대에 두 가문 간에 우호적인 교분이 있었기에 어릴 적에 공을 만나뵈었다.
그러므로 공의 맏형의 명을 받들어 그의 작품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편집하고 이제 그의 창작이 얻어낸 성취를 기술하여 문집의 후면에 붙인다.
나는 일찍이 자후子厚창려昌黎보다 낫고, 자후子厚창려昌黎보다 한 걸음이 못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대체로 천균千鈞의 무게가 나가는 쇠뇌는 함부로 쏘기가 어려운 법이다.


역주
역주1 楊評事文集後序 : 이 작품은 작자가 長安에서 관리로 있던 시기인 永貞 원년(805)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楊評事는 大理評事 楊凌(?~?790)을 가리킨다. 楊凌은 자가 恭履로, 虢州 弘農 사람이다. 詩와 文이 모두 뛰어나 그의 두 형인 楊憑‧楊凝과 함께 ‘三楊’이라 불렸다. 작자가 장인인 楊憑의 부탁으로 楊凌의 遺作을 편집하고 이 서문을 쓴 것이다. 먼저 文에 대한 관점을 散文인 ‘著述’과 詩歌인 ‘比興’ 두 가지로 나눈 다음, 각자의 성질‧특징‧기능을 논술하고, 아울러 그 기원과 발전양상에 관해 논술하였다.
역주2 : 본디 역사서 傳紀의 후면에 붙은 평론으로 명사인데,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역주3 辭令褒貶 導揚諷諭 : 辭令은 응대하는 말이고 褒貶은 칭찬하고 비판한다는 뜻으로 散文의 서로 다른 형식이고, 導揚은 이끌어 유도하고 고취한다는 뜻이며 諷諭는 슬며시 돌려서 타이른다는 뜻으로 詩歌의 서로 다른 수사법이다.
역주4 君子 : 재능과 덕을 겸비한 사람을 가리킨다.
역주5 著述 : 여기서는 기술하는 형식의 산문 문장을 가리킨다.
역주6 比興 : 《詩經》의 여섯 가지 체제와 형식인 風‧雅‧頌‧賦‧比‧興의 일부로, 여기서는 편의상 나머지 네 가지를 대표하여 고대 詩歌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比는 비유하는 것이고, 興은 발단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실제 읊으려는 내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역주7 謨訓 : 《尙書》의 〈大禹謨〉‧〈皋陶謨〉와 〈伊訓〉‧〈高宗之訓〉 등을 가리킨다. 謨는 계책이고, 訓은 훈계한다는 뜻이다.
역주8 象繫 : 象은 《易經》 〈十翼〉의 하나로 爻象을 해석한 것이고, 繫는 《易經》 〈十翼〉의 하나로 上‧下 두 편이 있는데 《易經》의 통론이다.
역주9 春秋之筆削 : 筆削은 기록할 것은 기록하고 삭제할 것은 삭제한다는 뜻이다. 孔子가 魯나라 역사서인 《春秋》를 周나라 천자의 입장에서 글자와 문구를 수정하여 새로운 《春秋》를 편집하였는데, ‘春秋之筆削’은 ‘《春秋》의 孔子가 수정한 문장’이란 뜻이다.
역주10 風雅 : 《詩經》의 두 종류의 詩歌로, 風은 각 제후국의 민간 가요이고, 雅는 周 왕실 귀족의 詩歌이다.
역주11 梓潼陳拾遺 : 陳拾遺는 右拾遺를 지낸 陳子昂(661~702)을 가리킨다. 자는 伯玉으로, 梓潼郡 射洪 사람이다. 詩歌와 散文 방면에 혁신적인 선구자로, 齊‧梁 이후 내용은 없이 美辭麗句만 치중하는 문단의 풍조를 없애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역주12 燕文貞 : 張說(667~730)을 가리킨다. 자는 道濟로, 河南 洛陽 사람이다. 武后 때 賢良方正科에 급제하여 鳳閣舍人을 지낸 뒤에 中宗 때 兵部‧工部侍郞과 兼修文館學士를 역임하고 睿宗 때 재상이 되었다. 玄宗이 즉위했을 때 반역을 모의한 太平公主를 주벌하는 데에 참여한 공으로 中書令이 되고 燕國公에 봉해져 張燕公이라 불렸으며, 시호는 文貞이다. 당시 文壇의 영수로 碑文과 墓誌銘을 잘 지었으며, 시는 질박하면서도 기개를 갖췄는데 岳州로 폄직된 이후의 작품은 더 아름다워 사람들이 “강산의 도움을 얻었다.[得江山助]”고 말하였다.
역주13 張曲江 : 張九齡(678~740)을 가리킨다. 자는 子壽로, 韶州 曲江 사람이다. 武后 長安 2년(702)에 進士에 급제하고 校書郞이 되었으며, 玄宗 때 道侔伊呂科에 급제하고 左拾遺가 되었다. 司勳員外郞‧中書舍人‧書少監‧集賢院學士를 역임하고, 中書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시호는 文獻이다. 그의 시는 격조가 淸新하고 함축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역주14 楊君 : 楊凌을 가리킨다.
역주15 篇什 : 《詩經》의 雅와 頌은 10篇을 1什으로 묶었다 하여 만들어진 단어로, 후세에 詩歌의 뜻으로 사용된다.
역주16 人文 : 인류사회의 각종 문화현상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문학을 가리킨다.
역주17 陪陳君之後 : 陪는 모시고 뒤따른다는 뜻인 陪隨의 약칭이고, 陳君은 陳子昂을 가리킨다. 楊凌의 散文과 詩歌의 문예수준이 매우 높아 陳子昂의 다음은 된다는 뜻이다.
역주18 : 茅坤이 자기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19 千鈞之弩 難以再發也 : 鈞은 무게의 단위로, 1鈞은 30근이다. 弩는 石弓, 곧 쇠뇌이다. 再發은 화살을 두 번, 세 번 쉽게 쏜다는 뜻이다. 중량이 많이 나가는 쇠뇌로 쏜 화살은 매우 빠르고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강력한 적을 만나거나 사냥에서 거대한 짐승을 만났을 때 쏘는 것이지, 평범한 대상을 향해 함부로 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자가 그의 수준 높은 문장솜씨를 발휘할 만한 소재를 만나면 그때 비로소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지, 아무 때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이 서문은 작자가 그의 문장솜씨를 발휘할 만한 소재를 만나 쓴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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