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其爲書多悲愴嗚咽之旨
하여 而其辭氣瓌詭跌宕
하니 譬之
에 令人斷腸者也
라
至其中所論文章處하여는 必本之乎道하여 當與昌黎竝驅라 故錄其可誦者二十九首하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유자후柳子厚 편지의 투식은 영주永州와 유주柳州로 폄적貶謫된 이후부터 대체로 모두 사마천司馬遷의 〈답임소경서答任少卿書〉와 양운楊惲의 〈보손회종서報孫會宗書〉의 양식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가 쓴 편지는 서글퍼 오열하는 뜻이 다분하여 그 말투가 기이하고 호방하니, 비유하자면 호가胡笳소리를 듣고 새곡塞曲을 접할 때 사람으로 하여금 애가 끊어질 듯 처량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중 문장에 관해 논한 부분에 있어서는 반드시 도道에 그 근간을 두어 마땅히 창려昌黎(韓愈)와 선두를 다툴 만하기 때문에 읽을 만한 것 29수를 초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