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與董生論周易九六義
에 하여 以爲
이 異
라하여 而以爲新奇
하니
都不知一行僧承
하여 而果以爲新奇
하니 不亦可笑矣哉
아
韓氏注
에 曰 乾一爻三十有六策
이라하니 則是取其過揲四分而九也
요 坤之策一百四十有四
에 曰 坤一爻二十四策
이라하니 則是取其過揲四分而六也
라
其一者曰
이요 其二者曰 老陽數九
요 老陰數六
이니 二者皆變用
하고 周易以變者占
이라하니라
所以老陽九와 老陰六者는 九過揲得老陽하고 六過揲得老陰이니 此具在正義乾篇中이니라
君子之學은 將有以異也어든 必先究窮其書니 究窮而不得焉이면 乃可以立而正也어늘
今二子尙未能讀韓氏注孔氏正義하니 是見其道聽途說者라
足下取二家言觀之면 則見畢子董子膚末於學而遽云云也리라
는 則此說乃穎達說也
요 非一行僧畢子董子能有異者也
니
觀足下出入筮數하고 考校左氏컨대 今之世罕有如足下求易之悉者也라
然務先窮昔人書하여 有不可者而後革之면 則大善하리니
03. 《주역周易》 구육설九六說을 논하는 내용으로 유우석劉禹錫에게 보낸 편지
동생董生과 《주역周易》의 구九와 육六의 의미에 대해 토론한 것을 보니, 〈구九와 육六은〉 노老를 취하여 변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필중화畢中和가 일행승一行僧을 이어 이 설을 얻은 것으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와는 다르다.”고 하며 신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저 필자畢子와 동자董子는 어찌 학문을 피상적으로 익히고서 함부로 이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일행승一行僧이 한씨韓氏와 공씨孔氏의 설을 이어받은 것을 전혀 모르고 그만 신기하게 생각하였으니, 또한 가소롭지 않습니까.
한씨韓氏는 “건乾의 책策은 216이다.”라는 내용에 주석을 달기를 “건乾의 한 효爻는 36책策이다.” 하였으니, 이는 네 개씩 세어나갔을 때 결과가 9가 된 것을 취한 것이고, “곤坤의 책策은 144이다.”라는 내용에 주석을 달기를 “곤坤의 한 효爻는 24책策이다.” 하였으니, 이는 네 개씩 세어나갔을 때 결과가 6이 된 것을 취한 것입니다.
공영달孔穎達 등이 지은 《주역정의周易正義》에 구九와 육六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양陽은 음陰을 겸할 수 있고, 음陰은 양陽을 겸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양老陽의 수는 구九이고, 노음老陰의 수는 육六이니, 이 둘은 모두 변용하고 《주역周易》은 변하는 것으로 점을 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현鄭玄의 《주역주周易注》에도 변하는 것으로 점을 치기 때문에 구육九六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양구老陽九’와 ‘노음육老陰六’이란 책策을 아홉 번 세어 노양老陽을 얻고 여섯 번 세어 노음老陰을 얻은 것이니, 이는 모두가 《주역정의周易正義》 건편乾篇에 실려 있습니다.
주간자周簡子의 설도 이와 같은데 좀 더 상세합니다.
어찌 필자畢子와 동자董子는 그 책을 보지 않고 제멋대로 입으로 전한단 말입니까.
군자君子가 학문을 하면서 남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반드시 우선 그 책을 연구해야 하니, 연구하고도 얻는 게 없으면 새로운 이론을 세워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 두 사람은 아직 한씨韓氏의 주注와 공씨孔氏의 《주역정의周易正義》를 읽지 못했으니, 이는 오다가다 길에서 주워들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 어찌 이른바 《주역周易》을 알 수 있겠습니까.
족하足下께서 두 학자가 한 말을 구하여 살펴본다면 필자畢子와 동자董子가 학문을 피상적으로 익히고서 함부로 운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족하足下가 쓴 글에서 원개元凱가 세 《주역周易》을 함께 인용한 것을 부정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명가名價를 공영달孔穎達과 비교하면 누가 더 드러나느냐.’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한다고 한 부분은 〈인정할 수 없으니,〉 이 설은 곧 공영달孔穎達의 설이지 일행승一行僧‧필자畢子‧동자董子가 능히 남다른 견해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견해라고 한 것은〉 그의 잘못된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족하足下가 서수筮數를 다루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대조 고찰하는 것을 보니, 지금 세상에서 족하足下처럼 《주역周易》을 세심하게 연구하는 자가 드뭅니다.
그러나 힘써서 먼저 옛사람들의 책을 연구해보고 옛사람의 설이 옳지 않은 것을 발견한 뒤에 바꾼다면 매우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