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1)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宗元白하노라
前以所致石鍾乳非良이라
聞子敬所餌與此類라하고 又聞子敬時憒悶動作이라하니
以爲未得其粹美하여 而爲麤礦燥悍所中이라
懼傷子敬醇懿 仍習謬誤 故勤勤以云也하니라
再獲書辭하니 辱徵引地理證驗하여 多過數百言이라 以爲土之所出乃良이라 無不可者라하니
是將不然이라
夫言土之出者 固多良而少不可하니 不謂其咸無不可也니라
草木之生也依於土
然卽其類也 而有居山之陰陽하고 或近水하고 或附石하여
其性移焉이라
又況鍾乳 直産於石하니 石之精麤疎密 尋尺特異
而穴之上下 土之厚薄 石之高下不可知 則其依而産者 固不一性이라
然由其精密而出者 則油然而淸하고 炯然而輝하여 其竅滑以夷하고 其肌廉以微
食之使人榮華溫柔하고 其氣宣流하여 生胃通腸하여 壽善康寧하며 心平意舒하여 其樂愉愉
由其麤疎而下者 則奔突結澁하고 乍大乍小하며 色如枯骨하고 或類死灰하고 淹顇不發하며 叢齒積纇하고 重濁頑璞이라
食之使人偃蹇壅鬱하여 泄火生風하고 戟喉癢肺하고 不聰하여 心煩喜怒하고 肝擧氣剛하여 不能和平이라
故君子愼焉하여 取其色之美
而不必唯土之信이요 以求其至精 凡爲此也니라
幸子敬餌之 近不至於是 故可止御也니라
必若土之出無不可者 雖旁岐揉曲이라도 皆可以貫犀革이요 雖離奇液瞞하고 空中立枯者라도 皆可以梁百尺之觀하고 航千仞之淵이요 이니 凡其大耳短脰 拘攣踠跌하여 薄蹄而曳者라도 皆可以勝百하며 馳千里 이요
若是而不大謬者少矣
若是則反倫悖道甚矣 何以異於是物哉리오
是故中言丹砂者 以類芙蓉而有光이요 言當歸者 以類馬尾蠶首 言人參者 以人形이요 黃芩以腐腸이요 附子八角이요 甘遂赤膚 類不可悉數니라
若果土宜乃善이면 則云生某所 不當又云某者良也니라
又經註曰 始興爲上이요 次乃廣連이라하니
今再三爲言者 唯欲得其英精하여 以固子敬之壽 非以知藥石角技能也니라
若以服餌不必利己 姑務勝人而夸辯博 素不望此於子敬하니
其不然明矣 故畢其說이라
宗元再拜하노라
博喩文非不古 然亦絶有蹊逕이라


02. 석종유石鍾乳에 관해 논하는 내용으로 연주자사連州刺史 최씨崔氏에게 보낸 편지
이사李斯의 〈간진황축객서諫秦皇逐客書〉의 풍격을 고스란히 배웠다.
종원宗元은 말씀드립니다.
저번에 보내주신 석종유石鍾乳는 질이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경子敬께서 복용한 것이 이것과 유사하다는 말을 들었고, 또 자경子敬이 그 당시 마음이 산란하고 답답한 증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순정한 것을 얻지 못해 조잡한 광물鑛物중독中毒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경子敬의 순후하고 아름다운 기질을 손상하고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다가는 뭔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그처럼 진지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편지를 받아보니 그 종유석鍾乳石산지産地에 관한 지리적 증거를 끌어댄 내용이 수백 자가 넘었는데, ‘주산지主産地에서 나온 것은 질이 좋으므로 복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번에 저는, 주산지에서 나오는 것은 본디 질이 좋은 것이 많아 못 먹을 것이 적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지, 주산지에서 나온 것은 모두 먹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목草木이 사는 것은 땅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 종류를 살펴보면 사는 곳이 산중의 음지陰地인가, 양지陽地인가 하는 차이가 있고 혹은 물가에서 자라는가, 혹은 돌에 기생하는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 성질도 다릅니다.
또 더구나 종유鍾乳는 오직 돌에서만 나는데, 돌은 그 질이 단단하고 고운 것과 무르고 거친 것, 그리고 그 길이 등이 다른 것들에 비해 특별히 다릅니다.
종유석鍾乳石을 입수했을 때〉 그것이 나온 동굴 위치의 높낮이와 주변 토질이 기름지고 척박한지의 여부, 그리고 종유석鍾乳石의 길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없는데, 그것이 어디에 의지해 자랐느냐에 따라 그 성질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단단한 돌에서 위로 솟은 것은 윤기가 흘러 해맑고 환하게 빛이 나면서 중앙에 뚫린 구멍이 매끄럽고 결이 촘촘합니다.
이것을 먹으면 사람이 얼굴에 화색이 돌아 부드러워지고 그 기운이 온 몸에 퍼져, 위장에 활력이 생기고 막힌 창자를 뚫리게 하여 수명이 연장되고 기력이 강녕康寧하며, 마음이 평온하고 기분이 느긋해짐으로 인해 유쾌해집니다.
반면에 무르고 거친 돌에서 아래로 자란 것은 울퉁불퉁하면서 껄끄럽고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색깔은 마른 뼈 같거나 혹은 잿빛 같고 오랫동안 야위어 발육하지 않았으며, 이빨자국처럼 흠집이 많고 거친 옥돌처럼 무겁고 혼탁합니다.
이것을 먹으면 사지四肢가 굳어지고 기혈氣血이 막혀 열이 새나가고 풍기風氣가 생기며, 목구멍을 찌르고 폐를 간질거리며, 정신이 맑지 않아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기복이 심하고 이 들뜨고 가 강하여 심신이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신중히 하여 색이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굳이 주산지에서 나는 것만 믿을 것이 아니라 질이 좋은 물건을 구하라는 것은 대체로 이 때문입니다.
다행히 자경子敬께서 복용한 것이 최근에 이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니, 무턱대고 복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합니다.
만약 주산지主産地에서 나온 물건은 무엇이든 좋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면 동남 지방의 죽전竹箭은 휘어진 곁가지라도 모두 무소 가죽을 뚫을 수 있을 것이고, 북산北山의 재목은 비록 구부러지고 물러 진액이 질질 흐르거나 속이 텅 비어 서서 말라죽은 것이라도 모두 백 척 누대樓臺에 들보로 올라가고 천 길 깊은 못에 띄울 배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기주冀州 북부는 말이 나는 곳이니 큰 귀에 짧은 목으로 웅크리고 넘어지면서 떨리는 발굽을 질질 끄는 말이라도 모두 백 의 짐을 이겨내고 천 리를 달릴 수 있을 것이고, 옹주雍州박옥璞玉은 모두 숫돌로 쓸 수 있을 것이고, 서주徐州의 거름흙은 모두 큰 사직단社稷壇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형주荊州의 띠풀은 모두 술을 거를 수 있을 것이고, 구강九江의 큰 거북은 모두 점을 칠 수 있을 것이고, 사빈泗濱의 돌은 모두 음악을 연주하는 석경石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서도 크게 잘못되지 않는 경우는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로 보면 나라에서 팔려는 에게 아침에 물을 먹인다거나 상장喪杖으로 수레바퀴통을 꿰어 바퀴를 돌리는 자들도 모두 사유師儒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고을에서 명예를 탐내는 자들도 모두 명의名醫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서자西子(西施)가 사는 마을에 못생기고 얼굴을 찌푸리는 자들도 모두 군주의 애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산서山西의 경박하고 무례하며 탐욕스럽고 잔인한 자들도 모두 흉문凶門을 박차고 나가 지방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산동山東의 무식하고 미련하여 농사를 짓고 애들처럼 대추나 밤을 씹어 먹는 자들도 모두 묘당廟堂 위에서 국사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면 질서를 위반하고 도리를 거스르는 정도가 심할 것이니, 이 물건의 경우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이러므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 단사丹砂를 말한 곳에는 연꽃과 비슷하되 밝은 빛이 있는 것이 좋다 하고, 당귀當歸를 말한 곳에는 잎 모양이 말꼬리와 누에머리 같은 것이 좋다 하고, 인삼人蔘을 말한 곳에는 사람 모양처럼 생긴 것이 좋다 하였으며, 황금黃芩은 줄기 속이 썩은 것이 좋다 하고, 부자附子는 잎이 8모로 된 것이 좋다 하고, 감수甘遂는 껍질이 붉은 것이 좋다 하는 등, 이와 같은 사례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만약 이름난 주산지主産地에서 나온 것이라야 좋다면 마땅히 어느 지역에서 나온다고 말하지, 어떤 것이 좋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의 에 “시흥始興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광주廣州연주連州이다.”라 하였습니다.
연주連州에서 나온 것을 굳이 복용할 것이 없다고 권하는 이유는 곧 시흥始興에서 나온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처럼 재삼 말씀드리는 것은 오직 좋은 석종유石鍾乳를 구해서 자경子敬장수長壽를 확고하게 하자는 것이지, 제가 약물藥物을 안다 하여 그 재능을 겨루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경子敬께서 만약 “종유석鍾乳石을 먹는 것이 자기에게 꼭 이로울 것이 없으므로 그저 남을 이기기 위해 자기의 언변言辯박식博識을 과시한 것이다.”라고 하신다면, 이는 제가 평소에 바라보던 자경子敬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하고픈 말을 다하였습니다.
종원宗元은 재배하고 이 편지를 올립니다.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범위를 넓게 잡아 비유한 문장이 옛사람의 투식이 아닌 것은 아니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점이 있다.”


역주
역주1 與崔(饒)[連]州論石鍾乳書 : 작자의 나이 38세 때인 元和 6년(811)에 쓴 편지이다. 이때 永州司馬로 재임 중이었다. ‘連州’는 저본에 ‘饒州’로 되어 있는 것을 《唐文粹》와 《文章正宗》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崔氏는 작자의 큰누나 남편인 崔簡으로, 자는 子敬이며, 博陵 安平 사람이다. 작자가 쓴 〈故永州刺史流配驩州崔君權厝志〉에 의하면, 貞元 5년(789)에 進士에 급제하고 山南西道節度府에서 掌書記를 지냈고 刑部員外郞을 거쳐 連州刺史가 되었다. 永州刺史로 전임되어 부임하던 도중에 驩州로 유배되었으며, 작자가 이 편지를 보낸 이듬해인 812년 1월 26일에 죽었다. 石鍾乳는 鍾乳石으로, 〈祭姊夫崔使君簡文〉의 “독성이 있는 돌을 먹어 원기가 손상되었다.[悍石是餌 元精以渝]”는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崔簡은 鍾乳石에 중독되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은 鍾乳石은 주산지에서 난 것이 좋다고 한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품질이 중요하지 생산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역주2 李斯逐客書 : 逐客書는 〈諫秦皇逐客書〉의 약칭이다. 戰國 때 鄭나라 사람이 개천을 준설한다는 명목으로 秦나라에 와서 간첩활동을 하다가 발각되자, 秦나라가 제후국 출신의 모든 客卿을 추방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때 楚나라 上蔡(지금의 河南 지방) 출신으로 그 대상에 포함된 李斯(?~B.C. 208)가 이 글을 조정에 올려 그것이 부당함을 호소한 결과 추방령이 취소되었고, 마침내 재상이 되어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諫秦皇逐客書〉에서, 외국사람이 秦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역사적인 사례를 차례로 열거하여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재능을 지닌 사람이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출신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각종 사물을 실례로 들어, 사물 또한 그것이 갖고 있는 효용성이 중요하지, 그것이 생산된 지방과는 무관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역주3 : 章士釗의 《柳文指要》에, ‘疑’자의 잘못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역주4 幽(關)[悶] : 저본에는 ‘關’으로 되어 있으나, 《唐文粹》에 근거하여 ‘悶’으로 바로잡았다. 幽關은 두 腎臟 사이를 뜻하는 의학 명사이다. 幽悶은 정신이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뜻이므로 맑지 않다는 ‘不聰’과 부합된다.
역주5 東南之竹箭 : 竹箭은 신우대로 만든 화살이다. 《爾雅》 〈釋地〉에 “동남 지방에서 나오는 좋은 물건은 會稽의 竹箭이 있다.” 하였다.
역주6 北山之木 : 北山은 일반적으로 陝西 秦嶺의 主峯인 終南山을 가리킨다. 終南山은 북쪽 長安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남쪽인 漢中에서는 北山이라 부른다.
역주7 冀之北土 馬之所生 : 전설에 의하면 冀州 지방에서 名馬가 많이 난다고 하였다. 冀州는 옛날 九州의 하나이며, 그 북부는 지금의 山西와 河北 일대의 지방이다.
역주8 : 무게의 계량단위로, 1鈞은 30근이다.
역주9 雍之塊璞 皆可以備砥礪 : 《書經》 〈夏書 禹貢〉에 의하면 雍州에서 바치는 공물은 球琳과 琅玕이라고 하였는데, 球琳과 琅玕은 결이 고운 옥돌로, 칼을 가는 숫돌로 쓸 수 있다 한다. 雍州는 옛날 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陝西 중부와 甘肅 동남부 및 寧夏‧靑海 일부 지역이다. 塊璞은 球琳과 琅玕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옥돌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주10 徐之糞壤 皆可以封大社 : 《書經》 〈夏書 禹貢〉에 의하면 徐州에서 바치는 공물은 五色의 흙이라고 하였고, 그 註에 “왕은 五色土를 쌓아 社稷壇을 만들고, 諸侯를 세우게 되면 제후가 맡은 나라의 방위 색깔에 해당하는 흙을 떼어줘 그것을 가지고 가 자기 나라의 사직단을 쌓게 한다.” 하였다. 방위 색깔이란 동쪽은 청책, 남쪽은 적색, 서쪽은 백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 따위이다. 徐州는 옛날 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江蘇 長江 이북과 山東 동남부 지역이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흙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주11 荊之茅 皆可以縮酒 : 《書經》 〈夏書 禹貢〉에 의하면 荊州에서 바치는 공물은 菁茅라고 하였는데, 菁茅는 줄기가 삼각형이고 질긴 왕골의 일종이다. 주로 물건을 묶는 용도로 쓰며 술을 거를 때 이용한다고도 한다. 荊州는 옛날 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兩湖 전부와 豫‧黔‧兩廣 각 일부이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띠풀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주12 九江之元龜 皆可以卜 : 《書經》 〈夏書 禹貢〉에 의하면 荊州 九江에서 큰 거북을 바친다고 하였다. 전쟁 등 국가의 큰일을 행하기에 앞서 그 吉凶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칠 때 거북을 사용하는데, 죽은 큰 거북의 등껍질을 불에 구워 열기에 의해 갈라지는 선의 형태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거북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주13 泗濱之石 皆可以擊考 : 《書經》 〈夏書 禹貢〉에 의하면 徐州의 泗水 물가에서 물위에 뜨는 石磬이 난다고 하였다. 擊考는 두드린다는 뜻으로, 泗水 물가에서 난 石磬은 두드리면 소리가 맑아 악기로 사용할 만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곳에서 난 돌이라 하여 모두 질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주14 魯之晨飮其羊……皆可以爲師儒 : 春秋 때 魯 定公이 집정한 뒤로 간교한 장사꾼이 판쳐 시장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도성 曲阜에 沈猶라는 성씨를 가진 장사꾼이 매일 아침 羊에게 물을 먹여 무게를 늘린 뒤에 시장에 내다 팔아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였는데, 孔子가 재상이 된 뒤로 교화를 받아 감히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다. 《孔子家語 相魯》 상고 적에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부모의 喪中에 있는 아들은 누구나 喪杖을 짚었는데, 뒤에 魯나라 大夫 叔孫武叔이 조정에 들어가다가 어떤 목수가 그 喪杖을 마치 장난감처럼 취급하여 수레바퀴통을 꿰어 바퀴를 돌리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규정을 만들어 관직이 있는 자만 喪杖을 짚도록 하였다 한다. 《禮記 雜記 下》 師儒는 유생을 지도하는 敎官, 혹은 學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孔子의 조국으로 儒學의 본거지인 魯나라라 하여 장사꾼이나 목수까지 모두 師儒가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5 盧之沽名者 皆可以爲太醫 : 盧는 春秋戰國 때 齊나라의 지명으로, 명의 扁鵲이 살았다는 곳이다. 太醫는 의술이 뛰어나 궁중에서 醫藥을 관장하는 관원을 말한다. 扁鵲으로 인해 盧 고을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 고을에 가짜 의사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들도 모두 太醫가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揚子法言》에 “扁鵲이 盧 사람이었으므로 盧에 의원이 많다.”라고 하였다.
역주16 西子之里……皆可以當侯王 : 西子는 春秋 때 越나라의 미녀 西施를 말한다. 西施가 평소에 심장병을 앓아 항상 이맛살을 찌푸렸는데, 그것을 본 같은 마을의 추녀가 자기도 찌푸리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에 찌푸리고 다녔다. 《莊子 天運》 나중에 越나라 왕 句踐이 원수를 갚기 위해 미녀 西施를 吳나라 왕 夫差에게 바쳤는데 夫差가 西施의 미모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국력이 약해지자, 句踐이 쳐들어가 원수를 갚았다. 《吳越春秋》 미녀 西施와 한 마을에 사는 여자는 못생겼더라도 모두 西施처럼 군주의 애첩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7 山西之冒沒輕儳……皆可以鑿凶門 : 山西는 산세가 험난하여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억세고 용감하여 장수가 많이 나온다는 설에 의거하여 하는 말이다. 凶門은 죽음을 상징하는 문이다. 고대에 장수가 출정할 때 북쪽으로 난 문짝을 박차고 통과함으로써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여기서는 山西에 사는 사람은 거칠고 형편없는 자도 모두 뛰어난 장수가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8 山東之稚騃樸鄙……皆可以謀謨於廟堂之上 : 山東은 지형이 순탄하므로 이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기질이 온순하고 理智的이어서 재상이 많이 나온다는 설을 따라 한 말이다. 廟堂은 조정을 가리킨다. 山東에 사는 사람은 무식하여 농사를 짓고 애들처럼 밤‧대추나 즐겨 먹는 자도 山東에 산다는 이유로 모두 조정의 재상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9 : 《神農本草經》을 가리킨다. 365종의 藥材가 수록된 고대의 유명한 藥書이다. 明나라 李時珍이 편찬한 《本草綱目》의 근간이 되었다.
역주20 始興爲上……正爲始興也 : 논조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한 앞서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작자의 의도를 추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앞부분에서 連州刺史로 재임 중인 상대방이 세간에 이름난 그 고장 連州의 鍾乳石을 가장 좋은 것으로 알고 다른 곳에서 난 것은 거들떠보지 않으므로 생산지보다 품질이 중요하다는 자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생산지를 중시하는 상대방의 인식 속으로 들어가 始興에서 난 것이 連州의 것보다 上品이라는 문헌자료를 제시하여, 일차적으로 상대방이 잘못된 인식을 거부감 없이 되돌리고 나아가 생산지보다 품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한 것이다.
역주21 唐荊川 : 明나라 唐順之(1507~1560)를 말한다. 散文家이자 文學理論家이다. 자는 應德, 호는 荊川이며, 武進 사람이다. 嘉靖 8년(1529)에 會試에 장원하고 編修‧兵部郞中‧右僉都御史 등을 역임하였다. 天文‧地理‧音樂‧數學‧曆法‧兵法 등을 연구하였으며, 古文에 능하여 王愼中‧茅坤‧歸有光 등과 함께 ‘唐宋派’로 불렸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