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1 :
永貞 원년(805) 9월 永貞革新이 실패했을 때 작자가 邵州刺史로 내쫓겨 부임하던 도중, 다시 永州司馬로 폄적되었다. 그래서 永州 유배지로 가기 위해 남쪽을 향해 湘江을 따라 올라가다가 汨羅水 입구에 이르러 戰國 때 그곳에 몸을 던져 죽은 楚나라 충신 屈原을 회상하고 이 문장을 쓴 것이다. 屈原은 楚나라 왕족으로, 왕에게 법도를 바로잡고 덕과 재능이 있는 인재를 등용하며 누적된 폐단을 개혁하고 齊나라와 연합하여 秦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인의 모함과 군왕의 우매함으로 인해 두 번이나 축출되었고, 秦나라 군대가 楚나라 도성을 공격하여 무너뜨리자 〈懷沙〉를 지어 절의를 위해 죽는 심정을 드러낸 뒤에 돌을 가슴에 품고 汨羅水에 투신하였다. 屈原의 그와 같은 정신과 행적이 작자와 같은 점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를 동정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문장의 형식은 屈原이 쓴 〈離騷經〉의 체제이고, 그 정신도 〈離騷經〉과 비슷하며, 風格도 같다.
역주5犴獄之不知避兮 宮庭之不處 :
楚 懷王이 욕심에 눈이 멀어 화를 자초한 일을 가리킨다. 秦나라 사자 張儀가 楚 懷王에게 齊나라와 절교하면 秦나라가 가져갔던 商於 땅 600리를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陳軫이 그 말을 듣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그 땅에 욕심이 난 懷王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秦나라에 속은 뒤에 화가 나서 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군대를 잃고 땅을 빼앗겼으며, 秦 昭王이 즉위한 뒤에 秦나라 변방인 武關에서 그와 회합했다가 구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3년 뒤에 秦나라 땅에서 죽었다. 犴獄은 감옥이다. 《史記 권40 楚世家》
역주6緩 :
戰國 때 명의인 兪跗와 秦緩을 가리킨다. 兪跗는 외과수술로 병을 치료한 사람으로, 피부절개는 물론 개복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역주7厲鍼石而從之 :
鍼石은 금속 침과 돌 침으로 모두 고대의 의료기구인데, 여기서는 세상의 병폐를 치유할 재능을 가리킨다. 屈原이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세상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조정에 들어가 요직에 앉았다는 것이다.
역주8但仲尼之去魯兮 曰吾行之遲遲 :
《孟子》 〈萬章 下〉에 “孔子께서 齊나라를 떠날 때는 밥을 지으려고 물에 담갔던 쌀을 건져 바쁘게 길을 떠나셨고, 魯나라를 떠날 때는 말씀하시길 ‘더디고 더디구나. 나의 걸음이여.’ 하셨으니, 이는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의 도리이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이는 孔子가 魯나라에서 도를 행할 수 없자, 다른 나라로 갈 적에 부모의 나라를 떠난다는 미련 때문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천천히 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孔子가, 魯나라가 부모의 나라임에도 도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떠난 그 사실에 치중하여, 屈原도 楚나라가 자신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孔子의 경우처럼 楚나라를 단념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는 屈原이 왜 楚나라에 버림을 받고서도 끝까지 충성을 바치려고 했을까 하는 일반 사람들의 의문을 대변하는 말이다.
역주9柳下惠之直道兮 又焉往而可施 :
柳下惠는 魯나라의 賢人으로, 聖人의 덕 가운데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和’의 덕을 지녔다고 한다. 《論語》 〈微子〉에 “柳下惠가 獄官을 맡았을 때 세 번이나 파면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당신은 魯나라를 떠날 수 없는가?’ 하자, ‘正道로 군주를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여러 번 파면되지 않겠으며, 만약 바르지 않은 도로 군주를 섬긴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는 정도를 견지한 柳下惠가 아첨 잘하는 신하를 좋아하는 군주의 총애를 받지 못해 계속 쫓겨났듯이, 屈原도 柳下惠와 같은 정도를 지녔으므로 어디를 가더라도 도를 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행해질 수 없는 도를 굳이 행하려고 시도했던 屈原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서 한 말이다.
역주10呵星辰而驅詭怪兮 :
屈原의 작품인 〈天問〉에 대해 漢나라 王逸이 쓴 서문에 “屈原이 조정에서 추방된 뒤에 山澤을 방황하다가 楚나라 선대의 왕을 모신 사당과 이전 公卿들을 모신 사당의 벽에, 天地‧山川의 신령들의 황홀하고 기괴한 모양 및 옛 聖賢들의 이상한 모습이며 그들이 행했던 일들이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하여 그 밑에서 쉬다가 그림을 올려다보며, 그 벽에 天‧地‧人에 관한 의문을 쓰고 천지신명에게 큰소리로 물어봄으로써 울분과 시름을 토로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 글에서 語源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11何揮霍夫雷電兮 苟爲是之荒茫 :
揮霍은 지휘한다는 뜻이고, 荒茫은 현실과 괴리되어 황당하다는 뜻이다. 屈原의 〈離騷經〉에 “달의 신령 望舒는 앞길을 인도하고, 바람 신령 飛廉은 뒤따라 붙게 했네. 봉황새는 날 위해 후환에 대비하고, 천둥 신은 나에게 준비 안 됐다 하네.[前望舒使先驅兮 後飛廉使奔屬 鸞皇爲余先戒兮 雷師告余以未具]” 하였고, 〈東君〉에 “용이 끄는 수레로 천둥에 올라타니, 수레 위 구름 깃발 저 멀리 펄럭이네.[駕龍輈兮乘雷 載雲旗兮委蛇]”라고 하였다.
역주12芈(미)爲屈之幾何兮 :
屈原의 친족들이 그 숫자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芈는 楚나라 왕의 성씨이고, 屈은 그 일파이다. 屈原의 조상인 屈瑕는 楚 武王 熊通의 아들인데, 그가 屈邑에 봉해졌기 때문에 屈을 성씨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