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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2)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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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余讀하고 嘉其詞러니 而學者以爲盡出鶡冠子
余往來京師하여 求鶡冠子로되 無所見이라가
하여 始得其書
讀之 盡鄙淺言也 唯誼所引用爲美하고 餘無可者
吾意好事者僞爲其書하여 反用鵩賦以文飾之 非誼有所取之決也
太史公伯夷列傳稱賈子曰 貪夫殉財하고 烈士殉名하고 夸者死權이라하여 不稱鶡冠子
遷號爲博極群書하니 假令當時有其書 遷豈不見耶
假令眞有鶡冠子書런들 亦必不取鵩賦以充入之者리라
何以知其然耶
曰 不類니라


14. 《할관자鶡冠子》에 관한 논변論辯
나는 가의賈誼가 쓴 〈복조부鵩鳥賦〉를 읽고 그 문장을 칭찬하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모두 《할관자鶡冠子》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여러 차례 도성을 오가면서 《할관자鶡冠子》를 찾아보았으나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장사長沙에 이르러 비로소 그 책을 얻었다.
한번 읽어보니 모두 구질구질하고 천박한 내용으로, 오직 가의賈誼가 인용한 부분만 아름답고 나머지는 그럴 듯한 말이 전혀 없었다.
내 생각에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어떤 자가 이 책을 위조해서는 도리어 〈복조부鵩鳥賦〉 속의 문자를 가지고 포장한 것이지, 가의賈誼가 《할관자鶡冠子》 속의 말을 취한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고 본다.
태사공太史公(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가생賈生이 말하기를 ‘재물을 탐하는 자는 금전을 위해 죽고, 장렬한 선비는 명예를 위해 죽고, 헛이름을 추구하는 자는 권세에 죽는다.’고 했다.”라고 하여 〈가생賈生을 거론했을 뿐,〉 《할관자鶡冠子》는 거론하지 않았다.
사마천司馬遷은 많은 서적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이름났으니, 가령 그 당시 이 책이 있었다면 사마천司馬遷이 어찌 보지 않았겠는가.
가령 정말로 《할관자鶡冠子》라는 책이 있었다면 분명히 〈복조부鵩鳥賦〉 안에 있는 말을 취해 거기에 써넣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사마천司馬遷이 그랬다는 것을 아는가?
그 답은 “〈일관되게 글을 인용하는 그의 습관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 鶡冠子는 戰國 때 楚나라의 은사로, 성명은 알 수 없다. 깊은 산에 살면서 머리에 鶡冠을 쓰고 살았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가 썼다는 《鶡寇子》가 《漢書》 〈藝文志〉에는 1편이 있다고 되어 있고 道家로 분류하였다. 《隋書》 〈經籍志〉에는 3권으로 되어 있다. 작자는 長沙에서 후대에 나온 《鶡冠子》를 보고 이 책을 자세히 고찰한 뒤에 후인이 가탁한 위작임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鶡鳥는 꿩과 비슷하되 몸집이 크고 털 색깔은 푸르며, 싸울 적에는 죽어야 끝이 날 정도로 용감하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 새의 깃으로 갓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역주2 賈誼鵩賦 : 賈誼(B.C. 201~B.C. 169)는 西漢 洛陽 사람이다. 18세 때 河南郡守 吳公이 그의 명성을 듣고 자기 문하에 두었다가 文帝에게 천거하여 博士로 임명되었고 곧 太中大夫로 승진하였다. 正朔을 바꾸고 禮樂을 일으키는 등 개혁을 추진하다가 원로대신 周勃‧灌嬰 등의 배척으로 인해 長沙王太傅로 폄적되었다. 그곳에 있은 지 3년이 되었을 때 凶鳥로 알려진 올빼미가 賈誼의 집으로 날아들어와 그가 앉은 자리 한쪽에 내려앉았다. 長沙는 지대가 낮고 습도가 높은 지역인데 이 올빼미가 날아든 것으로 인해, 자기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鵩鳥賦〉를 지어 서글픈 마음을 달랬다. 鵩賦는 〈鵩鳥賦〉의 약칭이다.
역주3 至長沙 : 작자가 永州司馬로 폄적되어 갈 적에 長沙를 경유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유종원(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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